단편

안경

월드 트리거. 구 아즈마 부대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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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 컴퓨터 화면 또는 지면의 문자를 읽는 일이 많은 탓에 눈의 피로를 덜기 위해 장만한 안경이 하나 있었다. 트리온체로 신체를 전환하면 시력 역시 향상되기에 보더에서는 좀처럼 쓸 일도 없고 쓰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저를 잘 눈여겨보았는지 생일 선물 중 하나로 당당히 등장한 안경집에 어안이 조금 벙벙했더랬다. 내가 안경을 쓰는 건 어떻게 알았니? 가죽으로 되어 삼각기둥 모양으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안경집은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였고 아이들의 용돈으로는 사기 버거울 것이 자명했으나, 이곳은 보더였고 그들은 고정급과 성과급을 모두 수령하는 A급 전투원들이었다. 그들이 높은 급여를 타는 이유를 생각하면 어른으로서 입맛이 쓰기는 하나, 저를 위해 준비한 선물 앞에 ‘이 돈을 모아 저축을 하지 그러니’ 같은 소리로 흥을 깰 만큼 눈치 없고 배려도 없는 어른은 아닌지라, 아즈마는 그들이 내민 선물을 감사히 받아 들었다. 셋이 돈을 합쳐 선물을 준비한 것은 맞으나 니노미야와 카코가 조금 더 많이 보탰다는 사실을 밝힌 미와는 그 사실이 못내 신경 쓰이는 듯했지만, ‘아즈마 씨가 안경을 쓴다는 건 슈지가 알려줬습니다.’ 그런 그를 흘긋 내려다본 뒤 아무렇지 않게 공을 돌리는 니노미야에 카코도 까르르 웃으며 미와의 볼을 찔렀다. ‘안경집은 제가 골랐어요. 멋지죠?’ 그러며, 니노미야는 이런 선물을 고르는 데 센스가 없다며 가벼운 디스를 덧붙였고, 그에 뚱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부정하지는 않는 니노미야였다. 그들이 함께 방문한 백화점에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던 어떤 사건이 있었음을 암시하듯이.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처음엔 서로 데면데면하기 그지없었던 그들이 이제는 한데 모여 선물을 궁리하고 협력하여 준비할 정도의 사이가 된 것이 더욱 흡족한 아즈마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오래전 사은품으로 받았던 낡은 안경집을 꺼낸 뒤 새 안경집에 안경을 넣는 이른바 시승식과 비슷한 예식을 그들 앞에서 치러야 했다. 다행히 안경은 안경집에 딱 맞았더랬다. ‘고맙다, 얘들아. 정말로.’ 낡은 안경집은 그래도 언제 또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금껏 큰 흠 없이 잘 써오기도 했기에 버리는 대신 다시 가방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즈마 씨, 안경 쓴 모습 한 번만 보여주시면 안 돼요?’ 새 안경집도 마찬가지가 되기 직전, 카코의 부탁에 아즈마는 반쯤 집어넣었던 안경집도 다시 꺼내며 웃었다. ‘안 될 거 없지.’ 야무지게 사진까지 찍어 가겠다는 카코에 얼떨결에 기념사진까지 찍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축하할 일인가? 같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다들 워낙 들떠 있고 즐거워하고 있었으니 정말 ‘안 될 것이야 없었다.’

일상에서도 안경을 쓰게 된 건 그로부터 수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전투원에서 은퇴하고 완전히 사무직으로 전환한 뒤 문자를 읽을 일이 더 늘었기 때문일까. 점점 떨어져가는 시력을 본인도 느끼고 있었기에 짐작한 미래이긴 하였다. 더불어 안경집에서 안경을 꺼내는 일도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안경을 늘 착용하는 사람이면 으레 그러하듯 안경을 벗을 때는 잠에 들 때뿐이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잘 사용해온 안경집에겐 아쉽지만 안녕을 고할 때였다. 안경집은 서랍 속에서 도수가 낮은 이전 안경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언젠가 여분의 안경, 임시로 쓸 안경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둔 것으로 그날이 쉽게 오지는 않겠으나 찾아올 땐 갑자기 찾아오리라는 ‘안경 선배’들의 조언이 있었다. 아즈마는 그들의 조언을 기꺼이 수용했고, 과연 그 말이 틀리는 일은 없었다.

금이 간 안경은 멀찍이 날아간 지 오래였다. 맨눈으로는 뿌옇게만 보이는 가장자리인지라 어디로 날아갔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일반인의 신체란 이렇게나 무력하구나. 그래도 그 눈에도 건물을 부수고 천천히 인간⸺노획할 트리온 기관을 찾아다니는 트리온 병사의 거대한 모습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집 안에, 서랍장에, 오래전 애들에게서 선물로 받은 안경집 안에, 안경이 하나 있었는데. 여분의 안경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곧 새 안경을 맞추겠지만 안경원까지 가는 길이라던가 새 안경이 도착할 때까지의 일상에 적잖은 도움이 되리라. 물론 여기서 살아 돌아간다면의 이야기였다. 살아 돌아간다면. 하지만 말이다, 아즈마는 그 사실을 염려한 적이 없었다.

멀리서 슈터가 쏘아 올린 탄환의 세례가 트리온 병사를 가격해 쓰러뜨린다.

쓰러진 트리온 병사 위로 도약한 자의 손에 들린 호월이 그것을 내리쳐 갈라버린다.

누군지 보이지는 않지만 목소리는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기 아직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잠깐, 아즈마 씨!?’ 그야 누가 가르친 아이들인데, 말이다. 건물 잔해에 등이 배기긴 했지만 신경쓰지 않은 채로, 처음 그대로 쓰러진 그 상태에서 손만 들어 흔들흔들 흔든 아즈마가 이윽고 제게 달려오는 애들에게 말했다. ‘안경 안 쓴 모습은 오랜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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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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