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카미 군 거짓말도 잘하시네> 샘플 페이지

<샘플(일부)> 미즈카미 군 거짓말도 잘하시네

<미즈카미 군 거짓말도 잘하시네> 샘플

‘트리온체니까 걱정하지 마’ 같은 말을 해주었으면 좋았겠지만 먹혀들지도 않을 거짓말이거니와 거짓말에 익숙하거나 능숙한 사람도 아니었기에 그에게 그런 기대는 걸 수 없었다. 앞서 그를 움직이게 한 행동 원리는 타당했으니 베일 아웃이 동작하지 않아 그 자리 그대로 전투체가 해제된 자신 외엔 그의 동기가 될 자가 주변에 없었고, 따라서 화자는 사이드 이펙트 없이도 매일 밤 그 사실에 몸서리칠 자신이란 미래를 그 순간 똑똑히 읽어낼 수 있었다. 맨눈으로도 볼 수 있을 만큼 자명한 미래였다. 맨몸으로는 트리거 또는 트리온을 이용한 공격으로만 손상을 입힐 수 있는 트리온체에 맞설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들의 공격에 방어할 방법도 만무시리하였다. 쉴드도 없는 지금 물리적으로 막아내는 수 외엔 별수가 없다. 그나마 잘린다면 몸통보다는 팔이 더 생존율이 높으리란 판단, 아니, 실은 그런 판단조차 내릴 시간도 없이 찰나에, 본능적으로 화자는 팔을 들어 올려 시야를 막았다. 곧 다가올 처참한 아픔을 예상하면서. 눈까지 질끈 감고 말았으나 예상한 아픔은 오지 않았고 그는 다시 눈을 떠야만 했다. 정체를 알고 싶지 않은 소리가 귀에 닿은 직후였다. 그를 막아선 타자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제 것이어야 할 소리를 가져간 그로 인해 화자는 소리와 함께 뒤따라야 할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고통은 하나 없이 오직 소리만을 그 귀에 담는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귀를 막고 눈을 감아 그 무엇도 보거나 듣지 않았으면 좋았겠더라는 불손하고 무례한 생각을 머릿속에 쟁여두게 된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촤악, 치솟은 피가 눈앞을 덮었다. 그 와중에도 감지는 않아서 화자는 타자의 피를 뒤집어쓴 채 깜박이지도 못한 눈으로 그저 앞만을 바라보았다. ‘트리온체도 아니면서 무슨 자신감이에요.’ 같은 말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 역시 제게 같은 말을 되돌려줄 터, 조금도 먹히지 않을 말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모두 ‘돌려줄 수 있다면’의 이야기라서 화자는 결국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했다. 왜인지도 그는 안다.

목에서는 피가 너무 많이 났다.

너무나 많이 나서, 그 피를 전부 뒤집어쓴 화자 앞에 슈터와 스나이퍼가 쏜 탄환이 뒤늦게나마 그를 엄호하고, 어태커가 뛰어들어 거리를 벌리고, 그사이 온 지원군이 그를 끌고 나가고, 그 얼굴에 흰 수건을 덮어 시야를 가릴 때까지 화자는 모든 것을 직시한다. 누군가 화자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화자의 이름을 부른다. 화자는 그때까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고 따라서 자신을 화자로만 일컫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할 때. ……카미!

미즈카미!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같은 말을 해주지만 대답하지 못하였다. 대답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제3차 미카도시 대규모 침공, 정규 대원 중에서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4월에 있었던 일이다. 끝내 보더의 승리로 끝난 4월의 전쟁 이후, 5월, 미즈카미는 보더를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한다. 그러나 미카도시를 떠나지는 아니한다.

*

미카도 시립대학 공과대학 대학원생 사토 아야코는 대침공 당시 입은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저는 영구적인 후유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도 수년이 지난 지금은 더 이상 뛰지 못하는 자신에게 얼추 적응하여 타인의 도움 없이도 나름의 노하우로 계단을 오르내릴 줄 알게 되었다. 인생의 계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굴곡은 그 앞에 주저앉지 않은 그의 다리를 강하게 단련시켰다. 사토는 강인한 다리를 갖게 되었다.

6월의 햇살이 머리 위로 내리쬐는 여름 한낮에 그는 조별 과제를 하기 위해 카페로 향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이제 겨우 네 번째로 만나게 된 그의 조원이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수의 사정으로 첫 달은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리라만, 잔잔한 음악이 깔리는 카페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싶진 않다는 생각에 단념한 사토는 그가 앉은 자리를 향해 발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가 인기척을 내면 그 역시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보았다. 인사를 먼저 건넨 건 그쪽이었다.

“안녕, 사토.”

“안녕, 미즈카미.”

사투리가 묻어나오는 말투는 그가 타지방에서 왔음을 짐작케 하지만 미카도시에서 산 지도 꽤 되었다는 듯했다. 고등학교는 미카도시에서 졸업했다고 말하는 그에 관해 사토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일반대학원 전공 수업에서 서로를 처음 만난 둘은 이윽고 각자의 노트북을 두들기며 논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따금 서로에게 자신의 화면을 보여주며 과제에 집중했다. 오늘 하루로 끝나진 않을 분량에 기한도 넉넉했지만 가능한 한 빠르게 처리하고 쉬자는 제안에 두 사람 다 동의한 덕에 진도는 빨랐다.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났을까. 한 고개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어, 둘 중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잠시 휴식하기로 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아직 다 녹지 않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속 얼음들이 달그락대는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사토가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처음엔 부모님이 많이 반대하셨다는 이야기.”

“그렇구나.”

사토가 미카도시에서 살게 된 것은 대학원을 이곳으로 진학한 이후였다. 부모님은 그런 곳에서 혼자 괜찮겠냐며 독립해 나가는 당신들의 자녀를 몹시 걱정하셨지만, 다행히 트라우마 같은 게 남지 않았던 사토는 개의치 않고 제 뜻대로 밀고 나갔다. 거기다 트리온에 관해서 연구하기에는 미카도시만한 곳이 없으니까. 이는 사토의 연구 주제와도 맞닿아 있기도 했다. 그 말에 흐음, 하고 목을 울린 미즈카미가 턱을 괴었던 손을 내리고 천천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다행이네. 트라우마가 안 생겨서. 큰일이었는데도. 그 말에 사토는, 평소 궁금했던 점을 조심스럽게 물어볼 기회가 왔음을 알았다. 있잖아, 미즈카미. 애들이 그러던데.

“보더에 있었다는 게 사실이야?”

“응.”

그렇구나. 이것으로 그에 관해 확실하게 아는 사실이 하나 더 늘었다. ‘보더에 있었다’는 대답은 사토가 과거형으로 물은 질문의 대답이었고, 이제는 그만두었다는 사실까지 덤으로 알게 되었으니 구태여 질문할 필요는 사라졌다. 듣기론 제3차 대침공 이후 일선에 섰던 많은 보더 대원이 제대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 미카도시를 떠난 이들도 있다고 했다. 미즈카미는 여전히 미카도시에 머물러 있었지만, 미즈카미가 제대한 시점도 이와 비슷했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아 다행이란 말에서 본인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추론해 내는 것은 너무 나간 추측일까? 그러나 사실이라면 쉽게 입 밖으로 낼 이야기는 아니었다. 따라서 확인해 볼 수도 없었다. 확인해야 하는 의무도, 그걸 요구할 권리도 사토에겐 없었다. 애당초 이제 겨우 네 번 만난 사이였다. 멋대로 선을 침범하는 무례한 행동을 저지를 생각은 전혀 없다.

미즈카미가 그러한 사토를 눈치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창밖을 보며, 트라우마가 없다는 건 좋은 거야, 같은 말을 중얼거린 그는 곧 몸을 바로 하고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그에 사토도 노트북을 펼쳤다. 해가 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끝마치기 위해 두 사람은 다시 과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실은 사토만이 과제에 집중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아까와 달리 이따금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미즈카미는 자신의 행동을 사토가 눈치채지 못하게 할 정도로는 자신이 있었고 실로 그러했다. 아까보단 집중력을 잃은 상태였지만 그 상태로도 과제는 충분히 끝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 미즈카미는 자신이 보고 싶을 때마다 원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사람이라고는 부르지 않겠다. 미즈카미에게도 그 정도 분별은 남아 있었다. 어떤 말이 하고 싶든 속에서 소리 없이 생각할 뿐 절대 입 밖으론 내지 않을 만큼의 자제력도.

안 돼요.

지금 거리에서 더 가까워져선.

그러면 그 말에 별수 없다는 듯 수긍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그것’이다.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도 묻는 듯한 ‘그것’에게 수년째 같은 대답을 돌려주는 미즈카미도 지지 않는다. 그럼요. 계속할 수 있어요. 그러면 그것도 결국엔 단념했다. 단념하는 수 외엔 별수가 없기 때문이리다. 그와 달리 미즈카미는.

계속할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

학창 시절 미즈카미 사토시는 머리가 좋은 학생 중 하나였다. 취미로 고전을 암기하고 다닐 만큼 암기력이 우수한 이 학생은 중학생 때까지 장려회에 있었을 만큼 수를 읽는 능력 또한 뛰어났으니, 사고력, 분석력 등도 말할 것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장기를 그만두고 보더에 소속되어 툭하면 오후 수업을 빠져댔지만, 그럼에도 성적은 항상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그는 머리가 좋은 학생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탁월하다고 표현할 만큼 머리가 좋은 소년이었다.

보더에서 전투원으로 활약하였으므로 몸을 쓰는 능력도 나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그래도 역시 그 장기는 우수한 두뇌에 있었고, 미즈카미 사토시는 부대를 위한 전략을 세우고 돌발적인 상황에서도 그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는 데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그는 가히 그가 속한 부대의 두뇌였다. 그리고 거기까지기도 하였다. 여기까지만 듣는다면 그가 한 부대의 대장을 맡았겠구나 오해하는 자도 있을 법하지만, 정작 미즈카미는 보더에 소속된 이래 부대장을 맡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가 보더를 은퇴하는 날까지도, 미즈카미 부대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유감 같은 감정을 품은 날도 없었다. 미즈카미는 이코마 부대의 슈터였다. 그 사실은 이코마 부대가 사라지는 날까지도 달라지지 않았다. 연차가 쌓인 뒤 각기 다른 부대로 헤어져 신진을 육성하는 대원들도 몇 있었지만 미즈카미는 다른 부대의 슈터로 있는 자신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로, 그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하기도 전. 4월의 봄을 보내고 있었다. 언젠가 이코마 부대의 대원들도 독립하여 자신들의 부대를 세우게 될지도 몰랐지만(이코마 부대뿐 아니라 다른 부대도, 아즈마 부대처럼) 미즈카미에겐 지금의 봄날보다도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코마 부대는 그에게 딱 맞는 부대였고, 미즈카미는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고 있었다. 익숙함에 안주하여 발전의 기회를 내다 버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정말로, 하루에 충실히, 즐겁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좋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좋아하고 있을 뿐.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문이 열리고 있었던 것처럼 4월에, 제 감정을 들여다보다 깨닫게 된 거짓말 같은 감정일 뿐. 그래, 그는 좋아했다. 그의 부대를. 그들의 부대를. 다시, 그의 부대를. 그리고…….

*

“거짓말.”

‘거짓말이지. 그건 거짓말이지.’ 그 말에 긍정하면 정말로 거짓말이 되었고, 부정하면 누구도 반기지 않는 참이 되었다. 모두가 진실을 말하는 가운데 혼자 거짓말쟁이가 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의의와 의미와 이득이 있어야 했고, 그러지 않아 감쇄하는 의의와 의미와 이득 속에서 그는 얻을 것도 없이 거짓말쟁이가 될 순 없었다. 평상시 그는 필요하다면 제법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놓고 그걸 또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타인에게 제 감정을 감추거나 역으로 되쏘아 오인하게 만드는 기술은 어디까지나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술이며 그는 거짓말쟁이는 되어도 능란한 사기꾼은 되지 못했다. 상대에게 면박을 주어 면구스럽게 만들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의혹도 품지 못할 만큼 감쪽같이 속아 넘기는 데는 요령이 좀 더 필요했다. 그러므로, ‘거짓말이야. 그건 거짓말이야.’ 같은 말을 해주었어도 의미는 없었을 것이다. 언젠가처럼 제 의견을 고집하며 밀고 나가도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거짓말이지.

거짓말이야.

그건 거짓말이지.

그건 거짓말이야.

그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없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랬다니까요, 이코 씨.”

평소엔 얄미울 만큼 잘만 말하지 않았었냐고, 그러니 아무렇게라도 말해달라는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니까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코 씨.”

당신은 차분히 앞머리를 내리고 눈을 감고 있다. 코 고는 소리 따위 들리지 않는다. 목은 옷깃으로 덮어 드러나지 않게 철저하게 감추었다. 이미 모든 것을 소상히 알고 있는 유족이라 하여도 보여 좋을 게 없는 모습일 테니까. 아, 그들은 유족이라고 한다. 당신의 가족은 언제부터 유족이 되었나. 언제부터……. 실은 안다. 촤악, 하고 치솟은 피를 내가 철퍼덕, 하고 뒤집어썼을 때부터지. 그래. 그때부터였지. 그래. 그래서…….

“마오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이코마 씨.”

아니, 다르게 말해야지.

“귀엽고 귀여운 마리오쨩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이코 씨.”

당신의 가족들에게도. 그러나 그들은 그를 길러낸 만큼 그만큼 선하여 거짓말쟁이조차 되지 못한 이의 손을 잡고, 그저 꾹 잡아주었다. 냉증이라도 생긴 것처럼 그날 이후 차갑기만 한 손이 따뜻해지길 바라는 것처럼. 따뜻하길 바라는 것처럼. 아…….

다시는 손에 넣지 못할 온기여. 가져 보지도 못한 4월 위로 다시 어느 해의 4월이 겹쳐 들고, 혼자 있었어? 문을 열고 들어온 당신에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는다. 그 뒤 말한다. 휴강했어요? 일찍 오셨네요. 이코 씨. 아. 아무렇지도 않게 떨어지는 입이여.

“괜찮아요?”

눈가가 벌건 미나미사와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붙인다. 아니. 지금 당장 기절했으면 좋겠어. 그러나 그런 말은 차마 할 수 없어서, 당신 앞에선 절대 할 수 없어서, 괜찮아. 거짓말을 했더니, 코를 찌르는. 평생토록 익숙해지지도 무뎌지지도 못할 쇳내로도 마비되지 않은 후각이 인간 뇌의 잘못된 지각을 건드린 것 같았다. 트리온 기관의 농간일 수도 있겠다만 원인이 무엇이든 코를 찌르다 못해 뇌를 찌른 것만은 분명하였다. 그리하여 이제는 눈을 찌르고 싶게 만들지만 차마 찌르지 못한 눈에서 미즈카미는.

보았다, 당신을.

시선 끝에, 당신이.

걸리자, 당신은―미즈카미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다행히도 소리 없이.

그 입 다물어.

그 입 다물어요. 이…….

“…….”

그랬더니 뜻대로 입을 다무는 ‘그것’이었다. 그것 곧 당신이, 그것이 된 당신이, 당신이 된 그것이. 미즈카미의 뜻대로 입을 다물고 그 뒤로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받게 된 상담에서, 미즈카미는 상담심리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왜 그랬나요? 왜 그런 말을 했나요? 이에 미즈카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으니. 안 돼요, 그러면. 왜 안 되죠? ……하지 못했으니까요, 이코마 씨는. 무엇을 하지 못했죠? 말이요.

“목이 베여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이코 씨.”

……그것을 사람이라고 칭할 생각은 없다, 당연히. 사람은 아닐 것이다, 분명히. 사람이 아닌 것이 당연하니까, 이제는. 그러니 아무 말도 하지 마. 그 입을 열지 마. 내 악몽에서처럼 내 이름을 부르지 마요.

“미즈카미.”

미즈카미는 천천히, 소리가 나지 않도록 몰아쉰 숨을 다시 내쉬고, 칸막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에요? 연구실 출입문 문가에 선 선배가 미즈카미의 머리를 보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널 찾는데. 아는 애야? 자리에서 아예 일어나면 문틈으로 정말로 아는 얼굴이 보였다. 수업 같이 듣는 조원인데. 무슨 일 있나. 잠깐 나갔다 올게요. 그에 알겠다며 그와 교차하듯 제자리로 돌아가는 선배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귀엽던데. 귀엽다는 말 많이 들어봤을 것 같아. 그런가요……. 실없이 구는 선배에게 대충 맞장구를 쳐주며 미즈카미는 연구실 문턱을 밟고 나간다.


다투었나요?

오래전 상담심리사로부터 받은 질문에 미즈카미는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다 다시 시선을 올려 상담심리사의 눈을 보았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화를 내고 싶지 않았나요?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던가요? 아. 아뇨.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아 대답했다. 그래요?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마른 입술을 적신 후 이어지는 말을 입에 담았다. 우리는…….

우리가 다투는 가운데 중재할 사람의 부재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 했어요.

단호하게 끼어들어 우리를 떨어뜨려 놓아야 할 사람이 있어야 했음을 알고 싶지 않아 했어요. 그리고 다투어야 할 이유도 없잖아요. 나는 그 사람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나라도 구하기 위해 뛰어든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그들 중 많은 이가 보더를 떠났어요. 그러니 내가 어리광을 부려선 안 돼요. 왜 안 될까요? 나만 힘든 게 아니니까요.

당신에게 화를 낸 사람도 있었나요?

기억을 되짚다 대답했다. 화를 내도 된다고 했던 사람은 있었네요.

‘화내도 돼.’

아는 사람이었고, 당신의 친구였다. 그에 미즈카미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본 미래에서 내가 당신에게 화를 내나요?

‘아니.’

어떤 미래에서도 너는 나한테 화를 내지 않아. 그래서 말하는 거야. 미래를 바꾸고 싶어서. 그러하다길래 미즈카미도 물어선 안 되는, 하지 말았어야 할 질문을 입에 담았다.

‘보았나요?’

그는 대답했다.

‘직전에.’

아무렇지 않게 낮은 확률을 고르는 사람이 있다.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기어이 행동하고야 마는 사람이 있었다. 당신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음을 나는 짐작할 수 있었고, 그래서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못 내겠어요. 당신에게 화를 내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내게 화를 내야 해요. 그렇겠네. 미안. 등을 돌린 그가 멀어지기 전이었다.

‘진 씨. 이건 당신이 본 미래 중 몇 번째로 최선인 미래인가요?’

그는 대답했다.

‘최악. 최악의 미래야.’

그럴 것이다. 그는 당신의 친구였으니, 최선을 따질 수 없는 미래인 게 당연했다. 그 자리에 그는 없었으나 실상 그는 자리에 없는, 그래서 다른 이들은 보지 못했을 죽음까지 모두 보았으니, 나와 비교할 바가 아니리다. 그런 생각을 해서요. 선생님.

*

휴대전화를 조작해 주소록을 실행한다. 검색창에 이름을 검색하지만 마땅히 나오는 결과는 없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는 이제 주소록에서 나와 메신저 앱을 실행한다. 단체 메시지 방 대신 그 안에 속한 개인을 골라낸 그는 토도독, 자판을 두드려 한 통의 메시지를 상대에게 보낸다. 시간 될 때 연락 줘. 그 말을 끝으로 휴대전화를 덮으면 10분 정도 지났을까 싶을 때 휴대전화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때마침 연구실엔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전화를 들고 밖으로 나서는 미즈카미다. 계단 난간에 기대어 아래층을 내려다보며 통화 버튼을 꾹 누른 전화를 귀로 가져다 댄다.

“오키.”

통화 괜찮아? 그 말에 대답하는 목소리 뒤로 약간의 소란이 들려오지만 대화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다. 보더 제대 후 일반인으로 돌아온 그는 지금 대학교 마지막 일 년을 보내고 있었다. 눈앞에 있었으면 고개를 끄덕였을 그는 곧 통화에는 문제없다는 말을 전했다. 네. 무슨 일 있어요? 별일은 아니고. 간만에 목소리도 듣고, 또 물어볼 것도 있어서. 미즈카미 선배도 참. 하긴 통화는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늘 똑같지. 그래서 말인데. 네. 다른 게 아니라. 다른 게 아니라?

“유바 씨 번호 알고 있어?”

그에게 미즈카미는 메시지를 남기기 전 검색했으나 찾지 못한 이름을 묻는다. 평상시와 비교하여 전혀 튀거나 도드라지는 부분 하나 없는 목소리로, 그러면 수화기 너머의 오키도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아마 주소록에 있을 것 같아요.

「무슨 일이에요?」

더는 무슨 일 ‘있냐고’ 묻지 않고 곧장 찔러오는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많지 않다. 숨기고 할 것도 없이, 정말로 별거 아닌 일이기에 그렇다. 미즈카미는 그에게 짤막한 사정을 짤막하게 설명한다.

“아는 사람이 사람을 찾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유바 씨 같아서.”

「아는 사람이 사람을 찾는데, 그게 딱 유바 씨군요.」

전에 위험했을 때 보더 대원이 구해줬다는데, 아느냐고 물어오더라고. 4년 전쯤에. 제대 후 보더와 완전히 연을 끊은 사람도 없지 않지만(특히 보안 조치를 당한 자라면 더욱이) 미즈카미는 그에 해당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연이 닿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는 이들도 있으니 오키도 그중 한 명이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알아? 제가 알기론 계속 보더에 계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들었을 땐 교관으로 일하고 계신다 했던 것 같아요. 그래……. 그 뒤로 두 사람 각자의 근황과 안부를 나누면 통화를 종료할 시간이 다 됐다. 번호는 메시지로 보내놓을게요. 고마워. 그럼.

「자주 연락해요.」

통화는 끊어지고, 미즈카미가 해야 할 일도 정해졌다. 아까와 비교하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다시 메시지를 작성한 미즈카미는 딱 한 번 내용을 훑은 뒤 전송 버튼을 누른 그것을 두 번 다시 확인하지 않았다. 미즈카미입니다. 통화 가능한 시간 알려주세요. 잠시 후 메시지가 도착한다. 통화는 답장에 적힌 시간 중 하나에 이뤄지게 될 것이다. 3시. 4시 50분. 6시 20분. 그중 하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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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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