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감정

월드 트리거. 아즈마 이야기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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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아 맞히는 일이, 감정까지 필요한 일인가 싶다. 그렇게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늠쇠 위에 목표물을 놓고 방아쇠를 당기는 데 많은 감정이 담길 이유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저격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괴물, 다시 말해 생물로 보이지만 앞서 주입된 목적에 따라 동작할 뿐인 트리온 병사. 그게 아니면 쏘아 맞힌다고 하여도 목숨을 잃을 일은 없는 트리온 전투체. 그가 쏘아야 할 것은 그 두 가지였다. 그 외의 것을 쏘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는 그 사실 또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쏘아 맞히는 일에 감정을 불어넣지 않는 것은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 행동, 그리고 그로 인해 결정된 결과였다. 기계나 벌레 같이,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희박한 이지를 가진 존재가 되길 희망한 것은 그 손에 처음 무기를 쥐었을 때였다. 휘두르는 자신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다는 의지는 명확하였지. 무감한 자가 되고자 하는 자신을 부감하는 자신이 실감하는 자신은 오로지 자신과 교감하는 것으로 새어 나가려는 감정을 누감하고. 다감한 자신은 트리거 안에 내려놓은 채 눈을 뜬 육신에는 많은 감각을 남겨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불감하는 불감할 고통. 그리하면 아릴 것도 없어지고 주저할 것도 없어지고. 그것은 대체 무언가? 사람을 쏘아 맞히는 때조차도 주저하지 않게끔 하는 사람에서 배제된 어떤 것.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실은 알고 있다. 알고 있나니 그것은 사람이다.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는 사람이 없다. 트리온 육체 안에는 본체가 없다. 잠시간 의식을 의탁할 뿐인 신체에 위탁되는 의지는 다만 그 기억에 따라 그것을 조정할 뿐이다. 다, 전부, 남김없이.

쏘아 맞히는 일에 감정을 감각하지 않는 일 또한 조정의 일환인가?

메커니즘은 비밀이다. 메커니즘의 존재 또한 비밀이다.

다만 말할 수 있는 비밀은 그는 그것을 기억하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감정으로 그들을 쏘아 맞히는지 환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감해지도록 비워내면 설사 기억할지라도 기억되는 것은 감정 없이 가늠쇠 위에 목표물을 올려놓는 자신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자신이다.

쏘아 맞히는 일로는 무엇도 느끼지 못하게 두는 까닭은 무언가. 실은 알고 있다.

쏘아 맞히는 것은 언제나 트리온 전투체. 또는 트리온 병사. 그래야만 하지만…….

단행하는 자신을 쏘아 맞히는 자신을 연상한다. 자행하는 회상에는 쏘아 맞혀버린 뒤 그만 손을 떠는 자신이 있다. 최초엔 분명히 변명이 있었다. 구명도. 표명도. 있었지만 최초는 지나간 지 오래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닳았으니 다를 수밖에 없다.

쏘아 맞히는 일에 감정이 과연 필요한가 싶다. 그래도 말하지는 않는다. 말하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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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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