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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 달고 살지 말자

2024년 7월 27일 드림 60분 합작 제출본 ― 마크로스 델타 미쿠모 기느메르

2호선 by 시네마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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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시의 입 안에는 아직까지도 쓴 맛이 감돌았다. 주스를 한 모금 넘겨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 것은 미쿠모 기느메르의 요리 솜씨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적어도 그녀가 요리에 대한 열의까지 없진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순 없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성공적인 식사를 했다고는 빈말로도 말할 수 없었다.

“맛있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을 거 아냐? 처음부터.”

여자의 뻔뻔함은 확실히 예상한 것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 태도가 남자에겐 그닥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기서 불쾌함을 내비치는 것이 그녀의 태도에 대한 올바른 대응법이 아닐까 하고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경우의 예의 규범은 지금의 관계에서 하등의 쓸모가 없었다. 그가 상대하는 것은 상식을 총체적으로 결여한 사람이었다.

가끔은 그녀가 그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확신이라도 가질 수 있길 바랄 때가 있을 정도였다. 비유나 이미지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전자 단위의 이야기다. 물론 젠트라디가 버젓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시대에서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몰지각한 생각이다. 그래도 픽시에게는 미쿠모가 ‘사람’이라는 증거가 필요했다.

무모한 과학 실험으로 만들어진 고대 존재의 복제품이나 전설을 타고 전해져 내려오는 환상 같은 게 아닌, 그저 한 명의 사람에 불과하다는 증거가.

“그것은 맞는 말이야. 네게서 식사를 건네받는 것보다 더 안정적으로 영양분을 조달할 방법은 여럿 있으니까.”

“당연하지. 월급이 왜 높겠어? 경제의 유동성으로 태우도록 해.”

서로 한 번씩 잽을 주고받은 모양새였지만, 미쿠모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입가를 옅게 밀어올린 채였다. 그녀를 ‘주시’하는 임무에 그가 배정된 지도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그 정도의 비언어적 표현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을 만큼은 지식이 쌓였다. 어느 정도 적응도 되어 있었고, 확실하진 않으나 약간이나마 유대도 생겼으리라 추론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곤 말하지 못하겠는걸. 넌 어제 분명 자신감에 차 있었단 말이야. 그간 네가 보여주던 표현과는 아주 다른 방향이었지.”

“그건 내 눈에 비친 당신이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야. 당신이라는 사람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이 그것이기 때문이지.”

이번에도 미쿠모의 말은 사뭇 함의가 일반적인 선과 달랐다. 픽시는 분명 그녀 본인의 자신감을 왜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 질문했을 테지만, 그녀의 대답은 그녀 자신이 아니라 그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픽시에게 있어, 그녀와 대화하는 건 가끔 거울과 마주하는 것 같을 때가 있었다. 대화가 이렇게 흘러갈 때가 특히 그랬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지가 네게 중요한 거야?”

“나 자신의 행동 요소를 규정하고 쌓아올리는 것에 있어,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레퍼런스야. 난 당신이 조금 더 자랑스러워하길 바라는 바야.”

“돌겠군.”

미쿠모는 고개를 기울였다. 관용여구에 대한 지식이 폭넓진 않은 듯 했다. 남자는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며, 사실 쉬운 일도 아니다. 픽시는 스스로 도전을 피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도전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할 경우의 이야기일 뿐 얻을 것이 없는 일에 먼저 소매 걷으며 나서는 사람도 아니었다.

“왜 굳이 여기서 회전을 하는 거지, 픽시?”

“레토릭일 뿐이다.”

보랏빛 머리카락이 바람을 받아 느리게 휘날렸다. 생기 옅은 눈동자가 침묵 속에서 해석을 요구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픽시도 명확한 답을 제시해주고 싶었지만, 그러한 표현은 그의 어머니 세대도, 그 전이나 그 전의 전 세대도 당연하다 여기며 썼던 것들이었다.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를 그가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것을 미쿠모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다만, 지금 그녀에겐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접할 필요가 있었다. 설령 그 모든 것들 중 가지고 갈 만한 게 몇 개 없을 수도 있지만, 무엇이 사람으로서 필요하고 무엇이 사람으로서 필요 없는지 걸러내기 위해서라도 계속 질문해야만 했다.

절박하다면 절박한 것이겠지만, 그녀는 깨어난 이후 몇 주에 걸쳐서 인간은 모든 질문에 대해 해답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만 계속해서 확인할 뿐이었다. 그 짧은 사실은 그녀에겐 다른 사람들과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녀에겐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는 것. 또, 그녀는 그것을 ‘하고 싶다’는 것. 고려할 만한 다른 요소는 없을 터였다.

“맛없는 요리잖아.”

“레토릭이?”

픽시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점이 신기했다. 남자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았다 - 표면적인 선에서 그치지 않고, 은밀히 숨긴 함의마저 손쉽게 읽어낸 듯했다. 미쿠모는 흥미를 숨기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레퍼런스로 삼기에 충분할 만큼의 멋이 있었다.

“네 입맛에 맞는 요리는 아니지. 네겐 좀 더 직설적인 게 어울려. 제멋대로 사는 게 잘 맞지.”

“그걸 어떻게 확신해?”

“확신에 이유 같은 건 없어. 생각을 깊게 해 봐야 머리만 아파.”

남자는 그렇게 말을 맺더니, 들고 있던 주스 컵을 내밀었다. 본인이 마시던 거였다. 미쿠모는 희미하게 웃으며 건네진 걸 받아들었다. 어쩐지 그가 다음에 할 말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입가심이나 하면 그만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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