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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볼 때는 선글라스를 끼세요

2024년 8월 3일 드림 60분 합작 제출본 ―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메지로 라모누

2호선 by 시네마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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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가 마무리되었다. 남자는 산뜻하게 말려진 수건을 집어들었다. 박자를 미리 계산한 듯, 돌아오는 우마무스메가 편안히 잡을 수 있는 거리에서 팔을 뻗어 내밀었다. 새하얀 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었다. 고마움이라곤 전혀 내비치지 않았지만, 남자도 그걸 이상히 여기진 않는 것 같았다. 메지로 라모누와의 관계는 언제나 그런 법이다.

“이번에는 꽤 격차가 작았지, 라모누.”

“그래서?”

메지로 가의 걸작이라는 호칭은 허례가 아니다. 그녀의 달리기는 평가의 대상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면에서 채점할 수 없다는 것뿐, 트레이너로서 남자에게는 주관을 말할 권리가 있기 마련이었다. 물론, 라모누에게도 그녀의 고유한 권리가 있었다. 귀를 기울일 지 말 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바로 그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것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한편, 그녀의 것을 철저히 존중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녀의 담당이었는지는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녀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것, 그녀가 굳이 자신의 기억을 할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가 아닐 테니까.

“질 수도 있었다는 뜻이지. 한 끗 차로 아슬아슬했었어.”

라모누는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털어낼 뿐, 그것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남자도 무언가 의미가 담긴 말이 돌아오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라모누는 어디까지나 레이스에 미쳐있을 뿐, 가장 빠르게 달리고 싶다거나 가장 멀리 발을 내딛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는 성향은 아니다. 과거의 기록도, 미래의 목적지도 개의치 않는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메지로 라모누가 신경쓰는 것은 현재뿐이다.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도 본질적으론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눈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었다. 미래와 과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사람들의 눈동자는 결국 그 귀기를 공유하기 마련이다.

“당신의 색채 말이야, 오늘따라 탁한걸.”

그래서 라모누는 그녀의 트레이너에게서 평소와 다른 점을 숨쉬듯 눈치챌 수 있었다. 화가가 하는 일이 으레 그렇기 마련이다. 팔레트의 색을 가장 맑게 유지하고, 필요한 것을 찾아내 배합하여 가장 미려한 작품으로 다듬어내는 게 그들의 역할이다. 라모누도 다르지 않다.

트레이너와 우마무스메라는 차이점은 있지만, 그들이 삶을 대하는 방식은 같다. 밖에서 보기엔 커뮤니케이션이 결여된 듯 보여도, 안에서는 비할 데 없이 단단한 결속으로 묶여 있다.

“어떤 이유에서라고 생각하지?”

“늘 필사(必死)로 달려야 하는 것은 당연. 사랑은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며, 오로지 내가 표현하기 나름이니까. 승리의 규모를 재는 건 본질을 외면하는 행동이야, 트레이너.”

“네가 따라잡힐 수 있었는데도?”

남자의 눈에 별다른 메시지가 담겨 있진 않았다. 레이스의 일착을 놓친다는 것이 자신의 우마무스메에게 족쇄로 여겨지진 않는지 의례적으로 확인할 뿐이었다. 실제로 그런지의 여부는 사실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전략을 수정할 필요성은 없었다.

“내 애정에 견줄 만큼 강렬하고 찬란한 시선으로 레이스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병주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법이야. 드물긴 해도 일어날 리 없는 일은 아니지. 전혀.”

“나로선 네 패배가 상상이 안 가. 개인적 감상이지만.”

라모누는 슬쩍 오른쪽 입꼬리를 밀어올렸다. 그녀는 만족스러울 때 언제나 그렇게 웃었다. 무의식적인 습관인 것 같았다. 웃음소리 한 마디 없었지만, 그 작은 제스처가 그녀가 적잖이 문답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석양이 지평선 너머로 저무는 걸 태양의 패배라 하진 않지. 여전히 태양은 당신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중 가장 거대해.”

메지로 라모누는 가끔 뜻모를 말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그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실패하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다. 누군가 비법을 물어본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된다’. 요즘은 그게 어렵다. 그는 그것을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하곤 했다.

“그저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 중에서일뿐, 시야 안에 들어있을 것 중 가장 큰 건 아니잖아.”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거리 너머에서 편린으로 스쳐지나가는 파장까지 포함한다면야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멀리 떨어진 것이⋯⋯ 당신에게 어떤 실제적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남자의 푸른 눈이 느긋하게 감겼다 도로 뜨였다. 나른한 시선이 여전히 정면에서 겨눠지고 있었다. 변함없이 눈이 부셨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눈이 멀 일 없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그는 잠시간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었다.

“관심 없어. 내겐 태양이 중요하니까.”

“후후⋯⋯. 나 말이야, 요즘 천문학을 공부할까 생각 중이야. 당신 때문에.”

이번에는 그가 웃을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자신이 어떻게 웃는지 알지 못했다. 꽤 오랫동안 소리 내서 웃어본 적이 없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것과 궤가 같을 터다. 아쉽게도 그의 우마무스메는 이런 사소한 질문의 답을 갖고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그래서 그 호기심을 머릿 속에서 치워버렸다. 답은 구하고 싶어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테니까.

“숙제 늘리는 거야 내 전문이지. 알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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