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3-1=0
제천독자
세 번째 수술 날짜가 잡혔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방사선 치료를 꾸준히 받는 상태에서 항암치료와 웬만한 임상 치료 방법까지 모두 동원했다. 상태가 악화되는 것 하나를 막기 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효과는 없었다. 김독자는 이제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가끔은 손제천을 잊었다.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겁을 먹고 싫다며 발악했다. 이수경을 보고는 엄마, 엄마. 아이처럼 부짖으며 울었다. 그러다 가끔 정신이 드는 날이면 쇠약해진 몸으로 힘없이 돌아누워 혼자 있기를 원했다. 한 날은 다 곱아든 왼손을 쥐락펴락하다 근처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집어 던졌다. 제 옆에서 잠시 쉬느라 엎드려 있던 손제천을 잠든 줄로만 착각하고 미안하다 울먹인 적도 있었다. 손제천과 이수경의 속이 점점 타들어 갔다.
수술 이틀 전 밤, 김독자는 새카만 어둠 속에서 천천히 눈을 끔뻑거렸다. 점점 제 의지를 이탈하는 몸뚱어리 중에서 유일하게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이었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제, 제천아.”
“응, 왜? 뭐 갖다줄까?”
냉큼 손제천이 튀어나왔다. 김독자는 작게 킥킥 웃었다.
“내, 내 휴, 대폰 좀 가, 가, 갖다…줄래?”
“어, 응. 잠시만……여기.”
“고마, 워.”
손제천이 휴대폰을 내밀고, 김독자가 팔을 뻗어 더듬거린다. 도통 어둠이 익숙해지질 않아서 곤란했다. 든든한 팔뚝을 붙잡았다. 그 순간 손제천이 푸스스 웃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자 변명하듯 귀여워서 웃은 거야, 덧붙인다. 그러더니 잠시간 부스럭댔다.
“불 좀 켤게, 눈부셔도 잠시만 참아.”
스위치를 누르자 금세 하얀 빛이 병실 구석구석을 물들인다. 김독자는 잠시 눈을 감고 빛에 적응하기 위해 애를 썼다. 다시 천천히 눈을 뜨자 손제천이 휴대폰을 내밀고 있었다.
“이 밤에 뭐 하려고?”
“내가…, 대, 대, 대본…써, 줄 테니까… 유중, 혁이랑 하, 한수영 한테 전화, 좀, 해줘.”
“...응.”
메모장을 켜서 투박한 솜씨로 타자를 친다. 곱은 손가락이 잘 움직이질 않아서 오타투성이였지만, 말을 하는 것보단 훨씬 빨랐다. 고작 여섯 줄 내외의 문장을 쓰는 일인데도 신중을 기하느라 목덜미에 땀이 맺혔다. 손제천은 보송보송한 수건을 가져 와 땀을 닦아주었다.
“다, 다 썼…어. 이, 이대로 읽, 던가…, 유, 유, 융통성을, 좀. 바, 발휘 해…보던가.”
희미하게 웃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건넸다. 눈으로 잽싸게 글을 읽고는 손제천이 환하게 웃는다. 내가 말하는 재주는 좀 있지. 그의 휴대폰에도 저장되어 있는 김독자의 가장 친한 친구들.
김독자는, 서서히 준비하고 있었다.
바르르 떨리는 손가락을 능숙하게 감추며 통화 버튼을 누른다. 제일 먼저 유중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지 않았는데도 금세 전화를 받았다.
“손제천?”
“형이라니까.”
“이 밤에는 무슨 일로 전화했지?”
“독자 때문에.”
“안 그래도 그 자식, 최근에 연락이 전혀 없더군.”
손제천은 쓴웃음을 삼켰다. 무뚝뚝한 음성 너머로 걱정과 애정이 느껴졌다. 들을 수 없는 김독자만 한껏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하고 있었다.
“너 내일 뭐 하냐?”
“약속이 하나 있긴 한데…”
“그거 깨고 와. 모레에 독자 수술 들어가니까.”
“뭐? 그게 무슨,”
“궁금하면 성운대병원 오고, 싫음 말고! 끊는다.”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정말로 가차 없이 전화를 끊은 뒤 유중혁의 번호를 차단하는 모습에 김독자가 히히, 하고 웃다가 핀잔을 준다.
“내, 내가… 어, 어, 언제 그, 렇게 마, 말하랬냐?”
“융통성 발휘하라면서? 이제 수영이한테 전화한다.”
“아, 알았어. 근, 데 유, 유중혁은…”
“걱정 마. 올 거야. 네 친구잖아?”
그 말에 안심한 듯 웃는다. 누군가 가슴을 콕콕 바늘로 쑤시는 것 같았다. 애써 웃으며 김독자의 머리를 매만진다. 뒤이어 한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중혁과는 달리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야만 했다. 신경질 가득한 목소리가 버럭 화를 냈다.
“뭐야 이 씨……. 어? 손제천? 또 염장 지르려고 전화했냐?”
“유중혁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이 싸가지 대체 뭐지?”
“어쩔? 평소 행실을 돌아보세요, 아저씨.”
이 어린노무시키들이…… 손제천이 이마를 부여잡고 이를 꽉 깨물었다. 김독자가 입을 꾹 막고 킥킥거렸다. 이따 전화가 끝나고 나면 김독자에게도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연다.
“하여튼 내일 뭐 해?”
“갑자기? 내일? 내일…… 잠시만.”
부스럭, 부스럭. 우당탕탕. 정신 사나운 소리가 몇 번 들린다. 엥? 이건 뭐지? 한수영의 당황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어. 별거 아닌 거 하나. 근데 왜?”
“그럼 그 약속 깨. 궁금하면 성운대병원으로 오고. 유중혁한테도 말해놨으니까 둘이 맞춰서 일찍 와.”
“뭔 소리야 지,”
이번에도 냅다 전화를 끊었다. 꼼꼼하게 차단까지 걸었다. 그러자 누구 친구 아니랄까 봐, 아주 집요한 구석이 있는 유중혁과 한수영의 콜라보로 김독자의 휴대폰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흘긋 김독자를 살피는데, 마냥 웃고만 있을 뿐 딱히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천재 미소녀’, ‘중혁이’. 번갈아 가며 이름이 뜨는데 바라만 보고 있다. 그래서 손제천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 참. 아까 한수영이 저를 욕하는데 아주 포복절도하고 있었던 연인을 향해 투정을 부리려 손제천이 눈을 슬쩍 세모꼴로 떴다. 한마디 하려는데, 김독자가 싱긋 웃는다.
“걔, 네들 와, 왔을 때, 나…… 제, 제정신 아, 니면, 그, 그냥… 너, 너, 너희끼리 밥, 이라도 머, 먹고 와. 아, 알겠지?”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맞는 말인데, 전부 이미 알고 있는 건데도 김독자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모든 말이 손제천을 동요케 했다.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물었다가 따라 싱긋 웃는다.
“김독자…, 혹시 애인 맞아 죽는 꼴 보고 싶어?”
“…”
“괜찮아. 다른 누구도 아니고 유중혁이랑 한수영이잖아.”
“…나…… 많, 이, 휴, 흉하지?”
“왜? 정 그러면 나도 머리 밀고 올까?”
김독자는 이걸 다른 누구도 아닌 손제천에게 묻는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깨달았다. 비쩍 마르고 눈은 움푹 들어가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음울한 기색이 가득한 사람에게 고작 한다는 말이 머리카락 때문이냐고……. 사랑으로 깨끗이 닦인 눈동자를 바라보면 반짝반짝. 온전히 자신만이 비쳤다.
“…해, 해 봐. 어디 하, 하, 한 번…”
“알았어, 안 밀게….”
그래도 손제천이 머리를 미는 건 좀 다른 문제다. 김독자가 음산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손제천은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아, 절대적으로 이 얼굴을 사수해야지. 평생 귀염받으려면 잘해야지. 그런 마음가짐이 절로 들었다. 좀 쭈그러져 있나 했더니, 금세 기운을 차리고 헤헤 웃는다. 그래서 김독자도 같이 얼굴을 마주 보고 히히 웃었다.
***
“괜찮아?”
“응. 오, 오늘은 좀… 저, 정신, 이. 마, 맑네.”
“그러니까. 너무 좋다. 이제 나 슬슬 내려가서 애들 데리고 올게.”
“버, 벌써? 아, 아, 안 왔을, 것…같은, 데.”
“아냐, 지금 아홉 시니까 분명히 와 있을걸. 나 늦었다고 한 대 맞을지두…. 그래도 얼굴은 피해서 맞고 올게.”
“자, 잘 갔, 다 와.”
나름 밝게 웃으려고 애쓰며 손 흔드는 김독자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뒤돌아섰다. 안 그런 척해도, 기대하고 있는 게 티가 났다. 하여튼, 귀엽긴! 가벼운 발걸음으로 1층 로비를 향해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 어두운 기운이 잔뜩 흘러나왔다. 다들 참 잘생겼고 예쁜데, 정말 왜 성격이 저 모냥일까. 제 애인의 단둘뿐인 친구를 스스럼없이 욕하며 팔랑팔랑 다가갔다.
“일찍 왔네?”
“죽을래? 밤새고 왔거든? 빨리 사정 설명 안 하냐?”
“손제천 네놈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오 분이나 늦었다.”
“음, 일단 올라가서 설명해줄게.”
밤새웠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지 한수영의 앙칼진 눈 아래로 시커먼 기색이 죽 돌았다. 짜증으로 불안을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침착해 보이던 유중혁도 팔짱을 끼고 바닥을 탁탁 발로 치고 있었다. 손제천은 7층 버튼을 누르고 휴게실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칠 층입니다.
손제천은 휴게실에 있는 음료수를 자연스럽게 두 개 꺼내 각각 건네줬다. 정작 저는 물 한 컵을 받아 홀짝이더니 의자를 꺼내 털썩 앉는다.
“앉아 봐. 다 설명해줄 테니까.”
***
“…구라 치고 있네.”
“구라 아닌뎅. 제천이는 슬퍼!”
“미친놈인가……. 김독자 어딨어? 보나 마나 장염 이딴 걸로 디비져 있겠지.”
한수영이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장난스럽게 말했다. 한껏 꾸며낸 목소리가 한 톤 높았다. 김독자가 벌써 두 번의 수술을 견뎠고, 내일은 생사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수술의 하루 전날이라는 사실이 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보다 더 거짓말처럼 들렸다. 유중혁은 작게 입을 벌리고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손제천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김독자의 상황을 마저 설명했다. 뇌에서 인지 능력과 감정조절을 담당하는 부분의 손상이 커서, 잘 얘기하다가도 갑자기 기억에 혼란이 오거나 충동적으로 구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으니 너무 놀라지 말라고 덧붙였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의연하게.
“있지, 얘들아. 두 번째 수술 끝나고 나서, 독자가 한 달 넘게 눈을 못 떴거든.”
“그만하라고!!”
“이번에는…. 이번에는 얼마나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래서……”
목소리가 미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한수영이 들고 있던 캔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바닥과 부딪히며 시끄러운 파열음을 낸다. 작은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비명이 나올 것 같았다. 개자식…. 내내 침묵하던 유중혁이 겨우 짜내듯 내뱉은 말이었다.
“너희 부른 거, 나 아냐. 난 그냥 전화만 한 거고. 그러니까…”
“……”
손제천이 두툼한 손으로 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그러다 씩 웃는다.
“독자 앞에서 너무 많이는 울지 마. 아, 그리고 못생기게 웃을 거면 웃으면 안 돼.”
“지랄…. 하여튼 그 얼빠 새끼.”
어느새 한수영은 울고 있었다. 그 유중혁조차도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는다. 누구 하나 섣불리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러다 유중혁이 한수영의 어깨를 툭 쳤다.
“그만 울어라, 한수영.”
“…싸패세요?”
“눈이 다 부었군. 김독자는 못생긴 거 싫어한다.”
“천재 미소녀에서 이미지 변신한 거야. 청순가련으로.”
“되지도 않는 소리 그만해라.”
“꺼져. 야, 손제천. 뭐해? 김독자 보러 가자.”
“…그래.”
말만 들으면 용감한 전사가 따로 없었다. 당당히 걸어가다 말고 바닥에 떨어트렸던 캔을 슬쩍 주워서 눈두덩이에 굴리는 모습을 걸리지만 않았다면, 정말로. 손제천은 웃음을 참느라 눈물이 다 났다. 슬쩍 본 유중혁도 입꼬리 끝이 삐뚜름하게 올라가 있었다. 한수영이 주먹을 깍 쥐고 둘을 두들겨 팼다.
“나 먼저 들어가서, 독자 상태 한 번 보고 나올게.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작게 소곤거리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김독자는 휠체어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기척에 퍼뜩 고개를 돌린다. 이내 눈썹이 팔자로 뚝 떨어졌다.
“제, 제천아. 애들 아, 안 왔어? 기, 기, 기다리, 다가…온 거야?”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음성이었다. 더 헐을 것도 없던 손제천의 가슴이 또 한차례 무너진다. 흘낏 옆을 보자 한수영이 입을 틀어막고 간신히 울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티가 날 정도로 이를 꽉 깨문 유중혁이 한수영의 어깨를 감싸고 천천히 두드린다. 한수영, 울면 안 된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제천은 성큼성큼 병실로 들어갔다. 김독자의 비니를 조금 더 꼼꼼히 씌워주고, 옷매무새를 정돈해줬다. 전부 다 티 나지만, 김독자가 보이기 싫어하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가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한수영 똥 싸고 온대.”
“야!!!!!”
나직한 그 한마디에 말 그대로 한수영이 병실로 발사됐다. 우렁차게 소리치고 멱살을 틀어쥐었다. 손제천이 설렁설렁 두 팔을 올렸다. 아이고, 한 번만 봐주세요. 무심하게 말했다. 문득 정신을 차린 한수영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김독자는 깜짝 놀라 입도 못 다물고 있었다. 어설프게 멱살을 놓았다. 제 옷을 탁탁 털고 머리카락을 귀 뒤로 슥 넘기며 생긋 웃는다.
“음……, 그러니까… 김독자, 안녕?”
“한수영, 미친 건가? 갑자기 그렇게…… 오랜만이군, 김독자.”
한수영의 뒤로 경악을 금치 못하며 빠른 걸음으로 유중혁이 다가왔다. 그러다 김독자를 발견하고 다시 표정을 갈무리했다. 최대한 멋있는 얼굴을 했다. 손제천은 울상을 지으며 자기야 혼내죠. 이딴 말만 내뱉었다.
“……어, 아, 안녕. 둘, 다… 이, 일찍 왔, 네?”
“난 밤새고 유중혁한테 잡혀 왔어.”
“한수영 네가 게으른 거다. 마감은 일찍 일찍 하라고 하지 않았나.”
“시발…… 네가 천재 미소녀 작가의 고충을 알기나 해? 원래 새벽에 삘이 오는 법이거든?”
“대체 그런 얼토당토않은 별명은 왜 매번 붙이는 거지? 그것도 네 입으로?”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도 변함없이 투닥대는 모습이 한결같았다. 김독자가 바람 빠지는 소릴 허, 하고 냈다. 그 작은 소리에도 두 사람이 귀신같이 싸움을 멈추고 김독자를 빤히 바라본다. 그러다 유중혁이 먼저 침묵을 깼다.
“왜… 좀 더 일찍 연락하지 않았지?”
“어?”
“입원한 지가 언젠데, 왜 연락 한 번을 않았냐고 묻는 거다.”
“유중혁이 너 걱정했대.”
“한수영.”
“내 말이 틀렸냐? 근데 이건 나도 좀 궁금하네. 왜 진작 연락 안 했냐? 진짜 완전 섭섭…”
“…보… …주기, …서.”
아주 작게 입을 달싹거리며 대답한다. 개미보다 더 작은 소리였기에 한껏 신경을 곤두세워도 잘 들리질 않았다. 김독자가 몸을 움찔했다. 갑자기 속에서 욱하고 치받는 게 있었다. 그러자 손제천이 따스하게 등을 쓸어주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 김독자가 천천히 고갤 든다. 두 사람과 눈을 맞췄다. 간신히 지은 미소가 얼굴에 만연했다.
“보, 보여, 주기… 시, 싫었, 거…든. 휴, 흉하잖아.”
손제천은 등을 쓸어내리던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만큼 세게 쥐었다. 김독자가 지금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다들 알 수 없을 것이다. 김독자가 원치 않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말을 덜 더듬기 위해 몇 번이고 숨을 고르는 모습에 손제천은 그만 도망치고 싶었다. 반면 한수영은 눈을 깜빡이다가 팔짱을 끼고 흥, 비웃는 소릴 낸다.
“뭐래, 바보냐? 원래 넌 우리 셋 중에서 제일 못생긴 역할인데.”
“음, 그건 맞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가만있던 유중혁이 얄밉게 한 마딜 더 덧붙였다. 둘이 아주 죽이 척척 맞았다. 손바닥을 짝 소리가 나게 마주치면서 낄낄거리더니 이내 한수영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치사하게 수술 전날에 불러서 화도 못 내게 해….”
“미, 미안.”
“됐어. 사과하지 마. 근데 병실에 누구 더 와?”
“오, 오후, 쯤… 어머니, 가 오, 실 거야.”
“그럼 나 그때까지만 잘래.”
대번에 침대 위로 몸을 던진다. 야, 침대 좋다? 매트리스를 팡팡 치더니 정말로 자기라도 할 셈인지 몸을 뒤척였다. 유중혁이 그런 한수영을 덜렁 들어 다시 제자리로 옮겨놨다.
“한수영, 실례다. 나이를 허투루 먹었군.”
질세라 다시 침대로 돌아간다. 엄청 빨랐다. 자석이라도 붙었나. 손제천은 신기한 마음으로 하는 꼴을 지켜봤다. 나른히 누워 기지개를 쫙 켜더니 꽃받침을 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김독자를 쳐다봤다.
“김독자, 되지?”
“아, 안 된, 다고…해도. 자, 잘, 거 잖, 아.”
“오, 캐해석 만점.”
엄지를 척 날리고 낄낄 웃는다. 유중혁도 낮게 소리 내 웃었다.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친구들의 모습에 김독자도 슬쩍 마음을 풀었다. 곤두세우던 신경을 가라앉혔다. 한수영은 당장이라도 잘 사람처럼 굴더니 침대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김독자 옆으로 보조 의자를 끌고 오더니 종알종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유중혁이랑 못 놀겠어.”
“이하동문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이렇게 꾸준히 재수 없는 것도 재주다….”
미간을 짚으며 제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에 히히, 웃음이 새 나왔다. 유중혁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냉장고를 뒤적여 과일을 꺼내오더니 알아서 깎고 있었다. 그중 태반이 한수영의 입으로 들어갔지만 말이다. 그러면 유중혁이 또 핀잔을 주고, 한수영이 대거리를 하고……
히히.
대학교 때 처음 만나서 지금껏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거의 유일한 친구들이었다. 자리를 잘 안 내주는 김독자의 몇 안 되는 마음 곁이었다. 그들은 일부러 밝은 척을 하기보단 그저 언제나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있었다. 김독자가 그러길 원하는 걸 잘 알았으니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김독자는 웃었다.
손제천은 한발 물러서서 그 모든 풍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기억은 모두 그의 몫이었으니까. 얼마 전에 산 카메라를 찾아 재차 셔터를 누른다. 제일 먼저 눈치챈 한수영이 턱 밑에 브이를 갖다 대고, 유중혁도 과도를 든 채 얼떨결에 미소 지었다. 그리고 김독자는.
찰칵.
찰칵.
…찰칵.
몇 장을 찍고서 카메라를 내렸다. 볼일이 끝나자마자 한수영은 다시 온갖 이야길 시작했다. 과묵하기로 소문난 유중혁도 저들 사이에서는 제법 수다쟁이가 됐다. 손제천은 눈치채지 못하게 살금살금 병실을 나섰다. 복도로 나오자마자 이수경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어머니? 반사적으로 부르자 이수경이 쉿, 하고 검지를 제 입에 가져다 댔다. 옆자릴 두드린다.
“좀 일찍 왔는데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책이나 읽고 있었단다.”
“…저도 셋이서 놀게 하려고 그냥 나왔는데.”
“독자한테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야. 내심 걱정했거든. 사회성이 좋은 편은 아니잖니?”
“어머니…….”
아무렇지 않게 심한 말을 한다. 저것이 어머니……. 물론 손제천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김독자의 인간관계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좁고 깊은 면이 없지 않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잠시간 책을 넘기는 소리가 들리다 멈췄다.
“친구들한테도 말했니?”
이수경의 목소리가 낮았다. 아무도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깊고 고요했다. 손제천은 눈을 뜨지 않고 가볍게 대꾸했다.
“아직은요.”
“…그래.”
멈췄던 손이 다시 책장을 넘긴다. 팔락, 팔락 넘어가는 종이 소리가 평화로웠다.
생존율은 솔직히 말해서, 높지 않습니다.
…괘, 괜찮, 아요.
환자분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의, 의, 의지요? ……저, 저는…
언제나 살고 싶었던걸요. 작게 웅얼거리던 목소리. 귓가에 폭죽보다 큰 소리로 들려오던, 포탄처럼 깊이 박혀버린 그 목소리가 손제천을 꽉 끌어안았다. 하하하. 벽 너머로 맑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수영의 것이 제일 컸다. 유중혁도 호탕하게 웃었다. 개중에는 김독자의 것도 섞여 있었다. 손제천은 천천히 몸에 힘을 풀었다. 단단하던 입매가 조금 올라갔다.
모순적이게도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
아침부터 들이닥쳤던 그들은 점심까지 깔끔하게 비우고 다시 붙어 앉아 있다가 6시가 다 되어서 돌아갔다. 그마저도 안 가겠다고 침대 프레임을 잡고 버티는 한수영을 유중혁이 질질 끌고 나갔기에 가능했다. 실은 유중혁도 가기 싫은 티가 났다. 계속 흘낏흘낏 뒤를 돌아보며 김독자를 의식했다.
“김독자! 또 올게!”
“연락 안 하면 죽…때리겠다, 김독자.”
아주 오랜만에 말을 많이 한 터라 목이 부은 느낌이 들었다. 떠나는 친구들에게 손을 살래살래 흔들어주고 병실 문이 닫히자마자 마른기침을 토해냈다. 온몸을 괴롭게 들썩이며 뱉어낸 기침에는 핏덩이가 섞여 있었지만 김독자는 아무렇지 않게 입가를 훔치며 희미하게 웃었다. 착하게 살았던 게 도움이 좀 됐나. 오늘만큼은 온전한 정신으로 있고 싶었다. 혹시라도 수술이 잘못되었을 때 친구들이 추억할 자신이 슬픈 모습이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이번에는 부디 오래 잠들지 않게 해주세요.
신이든 무엇이든,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누군가를 상정하며 간절히 빌었다. 제천이가 많이 울어요. 그리고 한수영이 사실 굉장한 울보거든요. 중혁이가 우는 건 상상이 안 되지만, 혹시라도 안 울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리고, 엄, 엄마도. 그렇게 많이 우실 수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차라리 몰랐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을 만큼 가슴이 아파서……. 감았던 눈에 힘을 준다. 인상을 찌푸리며 눈꺼풀을 꽉 닫았다. 저 사실 어두운 거 되게 싫어해요. 혼자 있다는 느낌도 싫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꼭 일찍 깨워 주시기예요. 일방적인 바람에 가까웠지만 내뱉고 나니 후련한 기도를 끝내고 벌렁 뒤로 드러누웠다. 타이밍 좋게 문을 열고 들어온 손제천이 곁으로 와 자연스럽게 손을 가져갔다. 에궁, 목 아팠지. 물줄까? 아무렇지 않게 깨끗한 천으로 손을 닦아주며 다정히도 물었다.
“제, 제천아.”
“응?”
“이, 상하게… 오, 오늘은, 기, 분이… 되, 게. 좋은, 것 가, 같아.”
“오랜만에 친구들 봐서 그런가? 병실은 답답하니까.”
김독자의 뺨에 스치듯 입 맞추며 눈을 곱게 접어 웃는다. 그런가 봐. 진작 부를 걸 그랬네. 아쉽다는 투로 말하며 어깨를 으쓱인다. 제 뺨을 쓰다듬는 손을 가져가 습관처럼 만지작거린다. 그러다 손바닥에 난 상처를 발견하고 약하게 비명을 질렀다.
“소, 손바닥… 왜, 이래?”
“어? 아……. 꽃 다듬다가.”
“…거, 거짓말.”
다 티가 나는 거짓말을 김독자가 용납할 리 없었다.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결국 손제천이 비장의 무기를 쓴다. 침대 옆에 쭈그리고 앉아 불쌍한 표정으로 김독자를 올려다봤다.
“…넘어가 주면 안 돼?”
“……아, 앞으론… 이, 이, 이러지, 마. 알겠, 지?”
김독자가 졌다. 그 표정만 나오면 항상 백발백중으로 패했다. 마음이 사르르 녹곤 했다. 하여튼 그 얼빠 새끼. 갑자기 손제천의 귀로 환청이 들렸다. 벙싯 웃으며 김독자를 꼭 껴안는다.
“응, 조심할게. 절대절대! 안 그럴게.”
“차, 착하다…”
눈 밑이 거뭇거뭇했다. 힘없이 웃는 모양새가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보였다. 무척이나 힘을 낸 하루였으리라. 손제천은 김독자의 이마를 쓸어주고 천천히 눕혔다. 이제 코 잡시다. 못내 사랑스럽다는 듯 이마에 쪽쪽 입을 맞추곤 환하게 웃었다.
“잘, 자, 좋은 꿈 꿔.”
순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금세 스르르 잠에 빠진다. 저는 언제나 살고 싶었던걸요. 그 목소리가 오래 귓가를 맴돌았다. 신이 아니어도 좋으니, 부디 제 기도를 듣는다면 이 소원만큼은 이뤄지게 해주세요. 김독자의 뼈밖에 남지 않은 손을 조심스레 잡고, 손제천은 아주 오래도록. 아주, 긴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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