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있었다.

08. 이별 준비

제천독자

제천독자 by 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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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숨소리가 이제 고르네. 이 정도면 호흡기는 더 필요 없겠어요. 대신 호흡이 조금이라도 불편해지거나 가빠오면, 바로 콜 눌러주시고.”

“네, 주의할게요.”

“환자분, 아시겠죠?”

“…네.”

“말 많이 하면 안 돼요. 흥분하지도 마시고요. 지금은 고개만 끄덕이세요, 네. 이상 있으면 또 봅시다. 아니야, 이제 보지 말잔 뜻이에요.”

 

제 할 일을 끝낸 의사가 미련 없이 돌아섰다. 마침내 그토록 소원하던 호흡기를 뗀 김독자가 몇 번 콜록거렸다. 그리고 손제천을 슬쩍 보면서 히히, 하고 웃는다.

 

“왜 이렇게 바보처럼 웃어.”

“어, 어쩌라고…. 너, 넌… 나 좋, 아하잖, 아.”

“하긴, 그건 그렇지.”

 

그러자 다시, 히히 하고 웃는다. 손제천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노란 손수건을 꺼내 김독자의 목에 예쁘게 매 줬다.

 

“이, 이건… 왜?”

“혹시 몰라서. 자꾸 기침하니까, 목을 좀 따뜻하게 해두면 좋지 않을까 싶더라고.”

“다, 다른… 색, 은 어, 어, 없어?”

“없어. 지금 너무 귀여워서, 내가 다 없앴어.”

“어, 어이 없, 네….”

 

따뜻하게 목을 둘러싼 천이 어색했는지 몇 번 매만진다. 이 따뜻함이 목 안까지 파고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작 몇 마디 했다고 벌써 목이 아팠다. 눈치챈 이수경이 목캔디를 내밀었다. 김독자는 희미하게 웃으며 사탕을 집으려다, 몇 번 헛손질했다. 머쓱한 마음에 손을 내려놓는다. 아, 하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수경이 사탕을 입으로 직접 넣어줬다.

 

“아, 아직… 이, 이, 익숙지 않, 아서……. 괘, 괜찮아지겠, 죠.”

“…그럼, 물론이지. 그거 뭐 별일이라고.”

 

이수경이 김독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긋 웃는다. 입 안의 사탕과 함께 눈알을 데구르르 굴렸다. 김독자의 왼쪽 눈이 텅 비어서 한 박자 느리게 굴러갔다. 순간 가슴을 파고들었던 통증이 제법 찌릿했지만, 손제천은 아무 내색 하지 않으며 조금 볼록해진 김독자의 볼을 콕 찔렀다.

 

“나, 어머니랑 아침 먹고 올게. 책 읽고 있을래?”

“휴, 휴대폰…줄, 래?”

“그래. 유중혁이랑 한수영이 너 깨면 연락하랬는데, 그냥 독자 네가 하는 게 더 좋겠다.”

“응, 그, 그, 그럴, 게. 갔, 다와.”

“미안, 금방 다녀올게.”

 

고작 삼십 분 밥 먹으러 가는 걸로도 염병이다. 아마 한수영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김독자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금세 집중하기 시작했다. 손제천은 미련스러운 시선을 남기다 이수경에게 등짝을 한 대 맞고서야 걸음을 뗄 수 있었다.

 

 

***

 

 

“유중혁, 게임 안 끄냐?”

“한 판만.”

“한마디 해, 김독자.”

“주, 중혁이… 너, 게, 게임…계, 속…할 거, 야?”

“…”

“키보드 소리 다 들려 미친놈아.”

“…지금 껐다.”

 

식사를 끝내고 나서 두런두런 이야길 나누며 복도를 걷는데, 문득 병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어떤 소리인지 머리로 분간할 새 없이 문을 벌컥 열자 김독자가 휴대폰을 보며 웃고 있었다. 반갑게 손을 흔든다.

 

“아. 제, 제천이…왔다.”

“손제천 하이!”

“늦었군.”

 

보아하니 타자 속도가 느려진 김독자를 위해 단체로 전화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시끌벅적한 소릴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심장이 먼저 내려앉았었다. 굳은 표정을 풀고 김독자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협탁 서랍에 놓인 카메라를 챙긴다.

 

“통화하고 있어. 끝나면 전화해?”

“어, 어, 어디… 가는, 데?”

“휴게실 가서 사진 정리 좀 하려고. 점심 전까지는 통화 끝내야 해.”

 

손제천이 웃으며 애교스럽게 말했다. 김독자도 히히 하고 웃으며 고갤 끄덕거렸다. 뭐지? 너무 귀여운 거 아닌가? 홀린 듯이 다가가 뺨에 쪽쪽 입을 맞춘다.

 

“손제천… 애정행각은 나중에 하지 그러나.”

“그래 미친놈아, 이거 스피커폰이라고…”

“김독자가 귀여운데 나보고 뭐 어떡하라고.”

“아 짜증나 진짜.”

 

너무 무리하지는 마. 김독자의 귓가에 작게 소곤거리곤 병실을 나온다. 등 뒤로 많은 소리가 들렸다. 한수영이 툴툴대고, 유중혁도 기가 찬다며 맞장구쳤다. 그리고 그저 웃기만 하는 김독자까지 모두, 지나치게 소중한 시간의 한 자락이었다. 손제천은 제 손에 들린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사진, 정리할 수 있겠지. 다 보고 나서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다 제 뺨을 꼬집고 헤헤 웃는다.

 

“울면 안 되지. 독자도 안 우는데.”

 

김독자가 기댈 수 있고, 맘껏 어리광 피울 수 있는 든든한 상대가 되는 것. 그것만이 지금의 손제천이 목표하는 바였다.

 

“어머니, 저 휴게실 가 있을 테니까 필요하시면 부르세요.”

“별일이야 있겠니? 다녀오렴.”

 

이수경이 손에 들린 종이 뭉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학계에 보고된 뇌종양 치료 사례에 대한 논문이었다. 최근 그는 김독자와 비슷한 사례가 어떻게 완치되었는지에 관한 것들을 조사하느라 정신이 통 없었다.

 

환자분의 경우엔 치료를 꾸준히 진행해도 서너 달, 그보다 더 길다 해도…

 

휴게실에 도착하자마자 시원한 음료수를 하나 뽑아 자리에 앉았다. 카메라를 켜고 앨범 버튼을 눌렀다. 상하좌우 꾹꾹 누르며 맨 처음 찍었던 사진으로 이동했다.

 

카, 카메라…?

응.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 이번에 샀어.

사진…, 벼, 별로, 안 찍고… 싶, 은데.

…예쁘기만 한데. 너 여전히 예뻐 독자야.

거짓말, 하, 하지 마.

아니야.

진짜로, 거짓말 아닌데.

……너, 너, 너무, 자주 찍, 지마.

당연하지. 오 분에 한 장 정도면 어때?

많이 봐줬다, 십 분에 한장.

모, 몰라.

 

투닥거리던 때가 꼭 어제처럼 선명했다. 팩하니 토라져 창밖을 보는 게 웃겨서 사진을 찍었더니 두 대쯤 맞았던가. 하여튼 첫 사진은 그때였다. 버튼을 꾹 누르자 다음 사진이 나왔다.

 

나 호, 혼자 말고. 가, 같이…, 찍을까?

응?

너랑, 나, 나랑… 같, 이.

좋지. 울 독자, 여기 보세요.

 

낑낑대며 무식하게 한 손으로 잡고 셀카를 찍었다가 잔뜩 흔들린 사진이 나왔다. 그걸 보고 김독자는 한참을 웃었다. 몇 번을 더 시도한 끝에 괜찮은 사진을 건지고, 이수경에게 부탁해 또 몇 장을 더 찍었다. 그다음에는 이수경과 김독자를 앉혀놓고 셔터를 눌렀고, 마지막으로는 삼각대를 세워 세 명이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흐으.”

 

사진을 넘기다 보니 친구들의 첫 방문 날에 찍었던 것도 있었다. 김독자는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리고 있었다. 지금은 다 굳어서 할 수 없는 그 포즈를. 손제천은 큰 손으로 제 눈두덩이를 꾹 누르며 울음을 억눌렀다. 진정이 좀 되면 다시 버튼을 누르고, 또 눈물이 날 것 같으면 갖은 쇼를 하며 애써 울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도통 진도가 나가질 않아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기계적으로 버튼을 누르며 사진을 휙휙 넘긴다. 그렇게 넘어가는 한 장 한 장이 다, 손제천에게……

 

“울, 면…, 안 되는데. 진짜, 윽, 울면…….”

 

김독자의 사진이 비치는 작고 네모난 유리 위로 동그란 눈물이 톡톡 떨어지고 부서졌다. 바다 가고 싶어, 제천아. 아파트 복도에 내놓은 생수가 꽁꽁 얼었던 한겨울이었다. 이번에는 어디 가고 싶은데? 손제천이 물었다.

 

음…. 동해?

그럼 올해 여름에는 그쪽으로 갈까?

근데 남해 쪽도 가고 싶어.

뭐가 문제야, 다 가면 되지.

하긴, 그런가? 그럼 올해는 동해 쪽으로 가고, 내년엔 남해로 가자.

그래, 그러자.

 

“흐, 으……독자야….”

 

그때 바로 갔어야 했다. 김독자가 가고 싶다던 그 모든 바다를 전부 다녀왔어야 했다. 손제천의 온몸에서 후회가 진득하게 흘러나왔다. 온 얼굴을 축축이 만들고 발치를 적셨다.

 

손제천은 김독자보다 고작 세 살이 많았다.

 

어른스러운 척 견뎌보려 하지만, 기댈 수 있는 품이 되어주기 위해 애쓰지만, 겨우 서른두 살이었다. 김독자와 함께 할 수많은 미래를 그렸다. 내년엔 어디를 가고, 내후년엔 뭘 하고. 하나하나 손으로 꼽으며 장난치던 게 바로 얼마 전이었다.

 

김독자가 쓰러지고 난 후로 꽤 시간이 흘렀어도 하나 괜찮아진 감정이 없었다. 도저히 무뎌질 수 없는 고통이었다. 매 순간 아팠다. 웃어도 울어도 괴로웠다. 어떻게, 왜, 왜….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고 외쳐도 들리는 메아리 하나 없었다.

 

“그래도, ……사랑해.”

 

딱딱한 액정 위로 환하게 웃는 김독자가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구나, 넌. 카메라를 쥐고 오열했다. 끝내 사진은 정리할 수 없었지만 울음이 빠져나간 자리에 분명 또렷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

 

 

“…덜 울어보겠다며?”

“마음대로 안 되네요.”

“어쩌겠니. 울고 싶으면 울어야지.”

 

병실이 조용했다. 웃고 떠드느라 지쳐서 잠든 것 같았다. 마지막 수술이 끝나고, 김독자는 잠이 많이 늘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처럼 순하게 잤다. 까만 눈동자를 사랑한 손제천에게는 꽤 섭섭한 일이었지만, 깨어있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오롯하게 제정신으로 있기 위한 김독자 저 나름의 노력이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한 번도 그렇게 여긴 적 없었다.

 

이수경은 노트북까지 가져와 두들기고 있었다. 옆에 놓인 종이 뭉치가 한가득한데도 모자란 듯했다. 빼곡하게 들어찬 점보다 더 작은 글씨를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보는 사람이 더 지칠 정도였다.

 

“어머니도 좀 쉬세요.”

“내가 어떻게… 할 줄 아는 거라곤 이런 것뿐인데.”

“…그래서, 성과는 좀 있어요?”

 

종이를 대충 치우고 털썩 소리가 나게 앉는다. 이수경이 얄밉다는 듯 흘겨보다 다시 침착하게 글씨를 읽어 나갔다.

 

“지금까지는 없구나. 그래도 하나쯤은 있겠지. 찾기가 쉽지 않아도……”

“…사진 보실래요?”

“응?”

“사실 저도 못 했어요, 사진 정리. 근데 여기 보면…”

 

잔뜩 지친 어깨를 도닥여 주며 카메라를 쑥 내민다. 이수경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사진을 넘겼다. 그러다 끝내 붉어지는 눈시울을 감추지 못하고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어머니, 저는… …”

 

손제천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펑펑 울던 이수경이 고개를 젓는데, 손을 꽉 쥐며 한 자씩,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어쩌면 이수경이 더 잘 알고 있었을 사실을 재차 새겨주며 그도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아무리 부정하고 애써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세상에는 참 많았다. 슬프게도 그랬다.

 

 

***

 

 

“깼어?”

“…몇,”

“두 시간. 얼마 안 잤어.”

 

김독자의 눈동자가 안도로 물든다. 손제천이 천천히 그를 일으켜 앉혔다. 가만히 몸을 맡기고 제 손 아래 놓인 누군가의 손바닥 위를 간질거리며 킥킥 웃는다. 마음이 사르르 다 녹았다. 이렇게라도 함께할 수 있다면……. 손제천이 김독자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있지, 독자야.”

“…응?”

“내가 부족하지만,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

“… …치료, 그만할까?”

“…”

 

항상 다정했던 목소리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왜? 김독자가 작게 입을 벌려 묻는다.

 

“한 번도, 네 생각을 제대로 들어보려 한 적이 없었어. 괜찮냐고 줄곧 묻기만 하고, 한, 한 번도……”

 

미안함에 절로 고개를 떨군다. 착실한 대답에 김독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꿈같은 목소리로 찬찬히 답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들이 구름처럼 병실을 떠다녔다.

 

“제, 천아. 나, 나는…… 바, 다가 보고 시, 싶었어.”

“…”

“너, 너랑 손, 을 잡고… 하, 하얀 모, 래를… 밟으, 면서 거, 걷는 게, 조, 좋았, 으니까…….”

“…”

“그, 치만…… 이, 이젠, 좀… 느, 느, 늦었, 으려나.”

 

구름처럼 모인 말들이 비가 되어 추락했다. 손제천이 퍼뜩 고개를 들고 다급히 말했다.

 

“하나도, …하나도 안 늦었어.”

 

때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가령, 죽을 날을 받아놓고도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김독자를 위해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손제천의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꾸역꾸역 울음을 참는 손제천에게 그가 희미한 웃음을 짓는다. 괜찮아, 나는. 꼭 그런 웃음이었다.

 

“나는 안 괜찮아. 우리…우리, 바다를 보러 가야 하잖아, 독자야.”

“…”

“해안가를 따라 걸으면서, 바닷물에 같이 발 담그고. 응?”

“…”

“아냐, 그러지 마…”

 

제발, 독자야.

 

그렇게 나를 보지 마.

 

지금의 네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를, 그렇게 따뜻하게 바라보지 말아줘.

 

억지로 견뎌낸 슬픔의 파도가 손제천의 눈 흰자위를 새빨갛게 물들인다.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끝에 선 채 붙잡을 것이라곤 깡말라 뼈밖에 보이지 않는 손이 유일했다. 함부로 세게 쥘 수도 없는 그 손이 서서히 그의 손아귀에서 힘없이 빠져나간다. 김독자가 고개를 들고 슬쩍 천장을 바라본다. 하얗네. 일그러진 표정을 감추기 위해 손제천이 고개를 푹 숙였다.

 

“김독자.”

 

그러다 이름을 불렀다. 독자야, 김독자… 그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세 글자를 한참이나 곱씹었다. 천천히 고개를 든다.

 

“내가, 바다를 가져올게.”

“… …뭐?”

 

손제천이, 웃었다. 그래서 김독자는 울었다. 너무 예쁜 웃음이었다. 티끌 한 점 없이 무척이나 환하고, 밝은.

 

“네가 말한 모든 바다를, 내가 가져올게.”

“…제, 제천아.”

“기다려줄래?”

“…”

 

어이가 없어 말문이 다 막혔다. 대체 바다를 어떻게 가져온다고, 왜 그러는 거야. 너는 항상 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만 해주려고 하는 거야. 쏟아내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런데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입을 떡 벌리고 눈만 깜빡였다. 손제천이 씩 웃었다. 몇 년을 봐도 심장 떨리게 잘생긴 웃음이었다.

 

“금방 다녀올게.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다녀올 테니까, 기다려줄래?”

“내, 가… 괘, 괜찮다고 말, 하면…, 아, 아, 안…갈 거야?”

“괜찮을 리가 없잖아.”

“…”

“너, 안 괜찮잖아.”

“… …”

“그러니까, 다녀올게.”

 

김독자가 서서히 얼굴을 흉하게 일그러트린다. 엉엉 울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 가리지 않고 다 흘려대며 아기처럼 울었다. 펑펑 쏟아냈다. 나 안 괜찮아. 사실 하나도 안 괜찮았어, 제천아. 바다 보고 싶어. 살고 싶어. 죽기 싫어. 나 아직 스물아홉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너랑 고작 5년 만났는데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해. 나 진짜 하나도 나쁜 짓 안 하고 살았어. 착하게 살았단 말이야. 군대에서 담배 배웠던 거 때문에 그런가? 근데 그거, 남들 다 하는 건데 고작 그걸로 벌 받는 거면 왜 나만 벌 받는 건데. 왜, 왜 나만……. 두서없이 쏟아지는 말들이 고스란히 손제천의 눈물로 흘렀다. 왜 하필 나야? 치료도 받기 싫어. 아프고 무서워. 김독자가 그토록 꽁꽁 감춰왔던 날것의 진심이었다. 다리가 내 마음대로 안 움직여, 제천아. 팔도 제대로 들기 힘들어. 눈은 이미 하나가 안 보이고, 어쩌면 귀도 안 들리게 될지도 몰라. 너랑 헤어질 걸 그랬나 봐. 널 붙잡지 말걸. 있잖아, 나만 힘들고 싶어. 나 하나만 아프고 싶어……

 

김독자가 상체를 크게 휘청거린다. 거친 숨을 밭으면서도 끝까지 손을 더듬거려 손제천을 붙잡았다. 그 뒤로도 김독자는 아주, 아주 많이. 정말 많이 울음을 토해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깊이도 감춰두었던 감정 모두가 모조리 단어로, 문장으로 바뀔 때까지.

 

 

***

 

 

눈이 벌겋게 부은 채로 다시 호흡기를 매달고 누운 김독자의 이마에 오래 입 맞췄다. 사랑해. 손등 위로도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정말로, 사랑해. 괜히 손깍지도 한 번 꼈다가 놓는다.

 

“다녀올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손제천은 뒤돌아 걸어 나갔다. 이수경에게는 이미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우는 듯 웃는 얼굴로 치기 어린 용기를 응원해줬다. 휴대폰을 켜서 연락처를 뒤진다. 어라, 아직도 차단 안 풀어 놨구나. 머쓱한 기분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 중혁아.”

“왜.”

“다름이 아니고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울 일이 생겨서. 혹시 너랑 수영이가 오늘부터 독자 좀 봐줄 수 있을까?”

“…얼마나 걸리는 일이지?”

“글쎄.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끝낼걸.”

“뭔 짓을 하길래… 어쨌든 최대한 빨리 와라. 김독자는 너 없이 오래 못 견디니까.”

 

그리곤 전화가 뚝 끊겼다. 하여튼, 지고는 못 사는 새끼. 손제천은 픽 하고 실소를 흘렸다. 한수영에게는 유중혁이 알아서 전달할 것이다. 셋이나 있으니까 괜찮겠지. 메모장에 줄줄이 적힌 목록을 눈으로 훑어내렸다. 단출한 짐 몇 가지를 재차 확인하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날씨 좋네.”

 

 

***

 

 

잠에서 깨기가 무섭게 잔뜩 부어서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병실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무언가 불안한 건지, 그저 살피기만 하는 건지 짐작할 수 없어 당황한 이수경이 김독자를 불렀다.

 

“독자야?”

“…어, …엄, 마. 제, 제천이는… 갔, 어요?”

“그래, 오늘 아침에 갔어. 연락은 못 받는다더라. 대신 금방 오겠대.”

“…”

“왜, 엄마는 싫니?”

 

토라지듯 말했다. 김독자가 눈을 흘긴다.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듯 서운함이 잔뜩 묻어난 어투로 대꾸했다.

 

“그럴, 리가 어, 없잖, 아요. 당연, 히… 아, 니죠.”

“장난 좀 친 거야. 표정 풀렴.”

“…근, 데 오, 오늘… 날, 짜가,”

“7월 24일. 이제 창문을 열어둬도 덥지?”

“…그, 그러, 게요……. 바, 람이… 많이, 더, 덥네요.”

 

작게 열어둔 창문 틈으로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고 있다. 손제천도 함께 느끼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다에 가고 싶다는 말은 너와 손을 잡고 싶다는 말이었어. 함께 걷고, 웃고, 뜨겁게 서로를 껴안은 그 여름이 그립다는 말이었어, 제천아. 입술을 작게 달싹거리다 이내 입을 다문다. 머지않아 그가 가져올 바다가 기대됐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 보는 희망이라는 감정이었다.

 

“아 참, 좀 있다 수영이가 온대.”

“그, 그…그래, 요?”

“응. 그리고 중혁이는,”

“걔, 는… 아, 안 되죠. 이, 이제…막, 이름 나, 날리기 시, 작 해, 했는데.”

 

김독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유중혁이 들었다면 펄펄 뛸 말이었다. 그래서 대신 이수경이 핀잔을 줬다.

 

“안 되긴, 수영이랑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다던데.”

“대, 대체 어쩌, 려고…”

“다 큰 성인들인데 그런 것쯤은 알아서 하지 않겠니. 걱정도 많구나.”

“…”

 

저 하나만 생각하면 좀 좋아. 이런 순간에조차 저보다 친구를 먼저 걱정하고 있는 아들이 참 바보 같았다.

 

“너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더는 네 몫이 아니란다.”

“…고, 고마…워요.”

“아냐. 뭐 좀 먹을래? 배고플 텐데.”

“이, 이따가… 애들 오, 오, 오면… 다, 다 같이 먹, 어요.”

“…그럴까?”

 

김독자가 떨리는 손을 들어 이수경의 손등 위로 살포시 얹는다. 도닥이는 손길이 서툴렀지만, 무척 다정했다. 그 애한테서 배운 걸까. 눈가가 뜨거워졌다.

 

어머니 저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해요.

독자를 보내줄 준비를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요.

 

손제천은 이수경의 손에서 카메라를 거둬 가며 대신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받아들이길 거부하는데도 끝까지 굽히는 법이 없었다.

 

있죠…, 사진을 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번도 독자가 괜찮지 않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는 거. 괜찮을 리가 없었을 텐데.

……

그러니까 우리도 노력해보기로 해요. 독자… 잘 보내줄 수 있도록.

 

무른 줄만 알았던 녀석이 어느새 그만큼이나 단단해져 있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얼마나 못났는지. 나이를 한참 더 먹은 어른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반대쪽 손으로 김독자의 뺨을 매만진다.

 

“엄마가, 많이 미안해 독자야.”

“…”

“약하게 낳아줘서, 오래 떠나 있어서, 말 한 번 제대로 건네질 못해서…참, 항상 많이 미안했어.”

“…”

“그런데도 이렇게나 잘 자라줘서 고맙구나.”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이 그간의 세월과 고생을 짐작게 했다. 김독자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하며 할 말을 겨우 고르는데, 이수경은 괜찮다는 듯 그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말해야지, 말해야지 하면서도 한 번도 여태껏 말해주질 못했어. 이제 와 이러는 게 어색하지만……”

“…”

“사랑해.”

 

김독자의 눈이 커졌다. 낯간지러운 그 말에 손끝이 저릿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수경의 눈에서 눈물이 투두둑 떨어졌다.

 

“사랑한다, 내 아들.”

“… …아.”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정말로. 너무너무 고마워 독자야…”

 

이수경이 웃는다. 눈물 가득한 얼굴 구석구석이 다 빛이 나도록 환하게 웃었다.

 

그는 이제 준비를 마쳤다.

 

더는 쓸모 하나 없는 글자들만 쳐다보느라 가장 소중한 것을 볼 시간을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기로 했다. 매일매일 사랑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외워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늦은 깨달음인 만큼 더 노력할 것이다. 손제천이 일주일 만에 모든 바다를 담아오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이수경도 그렇게.

 

“뭐야, 김독자 기분 좋아 보이네? 앗, 어머니.”

“수영이 왔니? 앉아 있으렴. 너도 같이 밥 먹자. 어차피 나가서 도시락 사 오려고 했거든.”

 

이수경이 서둘러 눈물을 훔치고 생긋 웃었다. 한수영은 눈치 빠르게 아무것도 못 본 척 철없게 행동했다.

 

“아싸, 저는 불고기 든 걸로 사주세요! 아 맞다, 유중혁도 오 분 있다가 도착한댔는데.”

“중혁이는… 시판 도시락 안 먹지 않니?”

“굶겨도 돼요.”

“그래, 그럼 수영이 네 것만 사 올게.”

 

서둘러 자리를 떴다. 아마 꽤 오래 안 오시지 않을까. 한수영은 덜 닫힌 문을 마저 닫으며 생각했다. 그러다 침대 옆으로 쪼르르 가서 냉큼 물었다. 손제천은? 김독자가 히히, 웃는다.

 

“맨날 껌딱지처럼 있더만.”

“바, 바…바다. 가지러 가, 갔어.”

“뭔 소리야?”

 

뜻 모를 소릴 하며 또 히히, 하고 웃었다. 한수영은 더 묻기를 포기하고 침대 위로 쭉 몸을 엎드렸다.

 

“야, 바다 하니까 생각났는데. 오티 갔을 때 기억나냐? 너랑 나랑 유중혁이랑 몰래 나와서 불꽃놀이 했잖아.”

“…”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다음날에 세 명 다 사이좋게 감기 걸려서 드러눕고 막 그랬잖아. 선배들이 쟤네 미쳤다 하고.”

 

김독자도 잠시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오티 날 밤, 다들 쓰러진 틈을 타서 몰래 빠져나와 불꽃놀이를 했었다. 한수영과 짜고 유중혁을 먼저 바다에 빠트리고, 곧바로 김독자가 빠지고, 마지막으로 한수영이 붙잡혀 와서 거의 던져졌다. 세 명 다 쫄딱 젖은 채로 한참 놀다가 제대로 못 말렸더니 결국 나란히 감기에 걸렸었지. 맞아, 그런 추억이 있었다.

 

“또 가자, 바다. 손제천 빼고 우리끼리.”

“언제 가자는 말이지?”

 

어느새 도착한 유중혁이 문가에 비스듬히 기대 서 있었다. 한수영은 깜짝아! 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눈을 샐쭉하게 뜨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언제가 됐든, 가면 되잖아.”

“그럼 나는 남해 쪽이 좋다.”

“엥? 제주도 갈 건데?”

“나, 나는… 동, 해.”

“접자, 그냥. 우린 안 되겠다.”

 

한수영이 진지하게 한 말에 유중혁이 웃음을 터뜨렸다. 서둘러 표정을 갈무리해 보지만, 이미 들통난 지 오래다. 건덕지를 잡은 한수영이 죽어라 놀리기 시작하고, 김독자는 웃다가 같이 꼬투리가 잡혀서 놀림당했다. 또 가자, 바다. 무심하게 툭 던진 한수영의 그 한 마디가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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