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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시내로 간다

2024년 7월 20일 드림 60분 합작 제출본 ― 파이널 판타지 7 에어리스 게인즈버러

“오늘, 정말 덥지.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잖아……. 카페, 갈까나.”

그녀 스스로 예견한 바겠지만, 요청은 기각되었다. 듣는 척이라도 해 주면 좋으련만. ‘호위’는 에어리스의 요구사항에 좀처럼 귀기울이는 법이 없었다. 말이야 호위지만, 본질적으로 감시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기 할 일에 충실한 것이긴 하다. 결과적으로 덕분에 이 날씨에 커피도 하나 사올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열 받는 일이지만, 이 정도로 갈무리하고 있는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일 것이다.

“저기~. 듣고 있어? 무시, 안 돼.”

물주전자를 기울이던 손이 그제야 멈추었다. 에어리스는 이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다. 도식으로 그리라면 그릴 수도 있었다. 그녀 눈 앞의 사람이 융통성이라곤 식사 메뉴 정할 때나 발휘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일과에 정해진 흐름이라도 있는 것마냥, 사전에 계획한 스케줄에 맞추어 사는 유형의 인간이다. 당연히 ‘클라이언트’의 불만을 처리하는 방법도 정형화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집 안에 기자재가 다 떨어졌을 때. 중요한 것은 에어리스를 저택 밖으로 - 반경 몇 백 미터라든지 제한이야 있을 것이지만 - 내보내지 않는 데 있다.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은 탈주로 이어질 위험이 있으며, 컴퍼니에서는 그 후 이어질 것들의 뒤처리를 더 이상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에어리스의 삶의 품질이 낮아져도 상관없냐 하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호위 담당에게는 기묘한 분야들의 균형을 맞출 센스가 요구된다. 바로 여기서 ‘곰’의 매력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곰’이라는 것은 에어리스가 멋대로 붙인 것이다. 본명은 모른다. 사실 알 생각도 없고 알려주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결국 신라 컴퍼니의 용역이다. 그녀의 자유를 뺏는 사람이다.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그는 - 베일도 쓰고, 얇긴 해도 갑옷까지 입고 있고, 목소리조차 제대로 들은 적이 없으니 올바른 대명사인지는 모르지만 - 합리적인 편이다. 옛날처럼 집 주위에 군인들이 들락날락할 일도 없다는 점은 특히나 다행이다.

“반창고, 사야 돼. 더 없으니까.”

‘곰’이 특이한 점은, 융통성조차도 규칙을 통해 구분한다는 데 있다. 그 사람의 머릿 속에는 어떤 상황에서 에어리스를 내보내도 되는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기자재를 대리해 구매해와야 하는지, 어떤 경우에 같이 가서 지켜봐야 하는지가 법조문마냥 주욱 적혀 있을 것이다. 손가락을 찧은 에어리스 대신, 그녀의 화분에 알아서 물을 주는 것처럼.

결코 자기가 정한 규칙을 스스로 어기는 법이 없다. ‘곰’은 에어리스의 검지손가락을 바라보다가 옅게 미간을 찡그렸다. 반창고는 분명 내보내도 될 사안이겠지만, 역시 카페 이야기가 영 탐탁치 않은 것이다. 커피 심부름 같은 걸 달가워하는 성격일 리는 없었다. 그래도, 흘려넘길 수 없는 주제가 나와서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게 분명했다.

“여기서 제안! 둘, 같이 사면 될 지도! 커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반창고. 어때?”

그는 어깨만 으쓱였다.

“카페인, 필요하지? 새벽에 화분 파편 접착제로 갖다붙인 거, 알고 있는데. 배려, 받지 않을래?”

에어리스의 귀에 어중간한 톤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경험적으로 더 이상 말릴 수 없다는 판단이 섰음이 분명했다. 말릴 수 있는 수준의 결심이었다면 그녀는 알아서 단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꺾이지도 질리지도 않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물러설 의향이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승리 선언 삼아 어깨를 의기양양하게 으쓱였다.

“그럼 이걸로 결정이네. 나, 요즘은 라테…… 아니, 단 맛보다 쓴 맛이 더 입에 맞는 것 같아.”

‘곰’에게 무슨 커피가 달고 무슨 커피가 쓴 지에 대한 지식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커피 품종을 예시로 들어 설명을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는 으레 그렇듯 출입구에 기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베일 너머의 시선이 설명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쓴 맛을 더 선호하게 된 심적 경위가 있었는지 묻고 있는 셈이었다. 걱정이라기보다는 예상하지 못한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함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리프레싱이야. 이유, 특별히 없어.”

그렇게 말하면 상대는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두 사람은 어쩐지 이런 식으로도 소통에 애를 먹는 법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신라 컴퍼니에서 담당 요원을 교체하지 않는데는 그런 요인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에어리스는 엄연히 명부 상 기재된 VIP다. 귀빈과 트러블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신은? 커피, 어느 걸로?”

‘곰’은 여느 때처럼 감정 담기지 않은 눈으로 에어리스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어느 쪽이든 괜찮다고 말할 것이다. 그게 그 사람이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을 때 으레 하는 대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에어리스도 어느 쪽이든 괜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 취향이라 말하는 것은 그 선택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 정말로 어느 한 쪽이 다른 하나보다 더 낫게 느껴지거나 실제로 낫기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녀가 제시하는 바를 상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에게는 둘 중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의 가치가 와닿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고, 그렇게 살아갈 사람이니까. 주관적 기호를 정하는 것으로부터 한 발짝 일부러 떨어져서, 스스로 정한 규칙과 기준을 우선시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럼 당신, 에스프레소로 하자. 그게 좋겠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에어리스의 호위는 ‘곰’이다. 상대의 입장을 헤아릴 생각 없는 사자도 아니고, 상대와 시선 맞출 생각 없는 기린도 아니다. 먹잇감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녀의 감시자를 표현할 수 있는 동물은 오로지 곰뿐이었다.

황야를 홀로 배회하며,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법을 위협하는 것들에 맞서 싸우는, 기량 출중하지만 늙거나 쇠하지 않은 곰. 세상의 쓴맛을 다 욱여넣은 듯한, 속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는 사람. 고민해본 적 없는 것 아니었지만, 결국 그녀는 도저히 다른 별명을 붙일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을 동물로 빗대는 날이 오더라도, 그 메타포를 다시 쓸 일은 없어 보였다. 에스프레소도 마찬가지다 - 분명 그건 쓴 맛이지만, 그녀가 바라는 쓴 맛은 아닌 것이다.

“슬 나갈까. 석양, 보러 돌아와야지.”

하지만 ‘곰’은 울타리를 만드는 동물이 아니다. 울타리를 부수는 동물이다. 에어리스는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은 언젠가 알아서 그녀를 통제하는 일을 관둘 것이다. 스스로 견디지 못할 날이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그녀는 정해진 그 어떤 일정도 없이 밖에 나가리라.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싶었다. 예를 들면, 햇살.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었다. 예를 들면, 구름.

때가 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적당한 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다. 숲 전체를 협소한 밭마냥 여기며, 꽃을 뭉개는 듯 보임에도 꽃이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대지를 순환시키는 것이 곰의 역할이었다. 당연히, 그녀는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아내려 하지 않아도 되었다. 에어리스는 알고 있었으니까.

자연스레 아는 것이었다. 사실,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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