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바치] 남겨진 기록

좀비 아포칼립스au | 썰 기반 | 노래 틀고 읽어 주세요

https://youtu.be/EI8RQw5u9EA?si=9D3Ov7X77SYpMudk

1. 오늘 말이야, 이사기랑 갔던 쇼핑몰에서 나올 때 조금 위험했었잖아? 내가 생각하기에는 왠지 그때였을 것 같아. 엄청 정신없어서 전혀 몰랐는데, 나, 실은 이사기가 무기 점검할 때 눈치챘거든. 팔에 상처가 났었어. 깊은 상처는 아니라 붕대로 감싸면 티도 안 날 거고 숨기는 거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은데…. 우움~ 조금 고민이 되네. 물린 상처…겠지? 아아~ 진짜 곤란하네. 확실하진 않으니까 우선 이사기한테는 비밀!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매일 조금씩이나마 적어볼까 해. 뭐, 아니면 아닌 거니까~

아, 슬슬 이사기가 찾을 것 같아.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또 봐~

2. 이사기한테 비밀이 생겼다는 거 왠지 조금 두근두근해~ 영화 속의 스파이나 첩보 요원이라도 된 것 같고? 그도 그럴 게, 사람들이 좀비처럼 변하고 이사기와 만난 이후로 줄곧 같이 있었잖아? 그런 이사기한테 말 못 할 일이 생겼다는 게 뭔가 새로운 기분이야. 앗, 이사

3. 어제는 갑자기 이사기가 들이닥쳐서 급하게 숨기느라 증상도 못 적었어! 근데 괜찮아~ 오늘까지도 별다른 이상은 못 느끼겠어.

그런 것보다, 오늘 옮긴 새로운 아지트 엄청 넓고 좋아~ 사각지대도 있어서, 이 일기 몰래 숨겨둘 곳도 벌써 찾아놨다구.

4. 식량 걱정만 없다면 그냥 이사기랑 매일 이렇게 안에서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오늘은 문득 생각나서 이사기한테 치료제가 나올 것 같냐고 물어봤는데,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고 했어. 응, 이사기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그렇게 믿을래.

5. 5일차도 무사해~ 물린 게 아닌 걸까? 그냥 어딘가에 스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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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증상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어. 사실 좀비가 되는 기분은 어떤 걸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말이지~ 슬슬 쓰는 것도 지루해~ 우움…. 뭐~ 그거면 됐나? 가끔 생각날 때 일기 정도만 쓰고, 쓴 건 나중에 완전히 안전해지면 이사기한테 보여줄래.

8. 들어 봐 이사기! 내가 방금 엄청 엄청 대단한 걸 찾았어! 축구공 말이야~! 터져서 너덜너덜하긴 한데, 창고에 있던 테이프로 막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오늘 낮에는 가는 곳마다 허탕에 쓸만한 것도 찾지 못해서 이사기가 엄청 우울해했지? 내일은 더 좋은 걸 찾을 거라고 말했더니 금방 기운 차리긴 했지만, 다음에 또 이런 날이 있으면 서프라이즈로 꺼내서 보여줄래~ 지금은 비밀이야! 이걸로 벌써 비밀이 두 개나 생겨버렸네. 금방 얘기해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9. 예상대로 이렇게 저렇게 했더니 공이 쓸 만해졌어! 원래는 서프라이즈로 보여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바로 꺼냈더니 이사기가 엄청 반가워했어~! 듣기로는 이사기도 축구부였다고 해서 언젠가는 이사기랑 축구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었는데, 역시 이사기는 대단하더라~ 기대한 대로야! 그리고 새로운 아지트 체육관이잖아. 여기 엄청 넓어서 매일 축구하며 지내도 재미있을 것 같아~

그런데 이 상처, 되게 얕은데 낫지를 않네.

10. 아, 뭐지? 오늘 컨디션이 영 안 따라줘서 조금 위험할 뻔했어. 다행히 별일은 없었지만 조금 이상하네. 이런 적은 없었는데.

11. 푹 자니까 괜찮아졌어! 어쩐지 엄~청 졸리다 했더니 피곤했나 봐. 그리고 오늘은 이사기랑 간 마트에서 운 좋게 햄버그스테이크를 발견했어! 완전 럭키~ 이사기는 식량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면서 많이 안 먹으려고 하는 것 같길래 그냥 패스해 줬어~ 오랜만에 먹는 고기라서 이사기도 엄청 신나 보였어. 식량이야 더 찾으면 되고!

12. 어쩐지 매일 일기 쓰는 게 습관이 됐네~ 오늘도 이사기랑 축구를 해서 엄청 즐거웠어~! 이사기랑 원래 아는 사이였다면 어땠을까? 같은 축구부였다면 매일 재미있었을 텐데. 오늘은 너무 열심히 놀았더니 일찍부터 졸려.

이거 쓰는데, 뭔가 눈이 조금 부옇네. 잘 때가 됐나 봐…. 잘 자, 이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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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상하게 졸려…. 자고 싶어서, 평소처럼 잤는데 일어났더니 이사기가 엄청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어. 하루를 꼬박 잤대.

15. 낮에는 영 틈이 안 나서 이사기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쓰고 있어. 이사기가 부쩍 걱정이 많아진 것 같더라구. 미묘하게 몸이 축축 처지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 원래는 어땠더라?

이사기도 걱정하니까 내일부터는 조금 기운 내볼까~

16. 오늘은 또 멀쩡해서 이사기랑 나갔다 왔어. 밖에서 생존자 무리를 만났는데, 한 시간도 안 지나서였나, 무리 중 한 명이 변해버렸어. 갑자기 무슨 일인가 했는데, 원래 상처를 입은 사람이었다나 뭐라나. 변해버릴 걸 알면서도 버리지 않았다나 봐.

17. 있잖아, 이사기. 나 역시 조금 이상한 것 같아.

18. 지금까지 썼던 내용을 쭉 읽어봤는데,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부터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렇지? 분명 처음에는 몸 상태를 기록하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좋아, 초심으로 돌아가 볼게. 일단은…. 반쯤은 눈이 안 보이는 것 같아. 반투명한 하얀 막이 앞을 가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어떤 날에는 또 괜찮아. 생활하는 것도 숨기는 것도 전부 ok인데, 거울이 없어서 겉으로도 티가 안 날지는 잘 모르겠어. 이사기가 말을 안 하는 걸 보면 분명 괜찮다는 거겠지? 그리고 종종 무지막지하게 졸려. 가능하면 일어나 보려고 하는데 잘 안돼~ 이사기랑 나가려면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데, 이걸 쓰는 지금도 밤이라서 조금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가장 최신 증상은 몸의 감각이 둔해지는 것 정도이려나? 나도 모르게 손에 든 걸 놓쳐서 이사기가 눈치챌까 봐 조금 신경 쓰이긴 하지만, 아직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이사기, 이사기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를 버릴 거야?

분명 예전에 비슷한 대화를 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 뭐라고 했더라, 서로 버리고 가자고 약속했었나? 응, 그랬던 것 같네. 그때 이사기는 별일 없을 거라고 말했었는데….

19. 또 밤이야, 이사기. 축구하고 싶은데, 깨워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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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이사기는 일부러 나를 안 깨우는 것 같아. 깨워줘도 좋을 텐데.

나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사기에게는 절대로 비밀로 하겠지만… 오늘은 조금 물어보고 싶네.

23. 안 돼. 안 돼, 안 돼. 싫어. 어째서? 평소처럼 자다가 깼을 뿐인데, 나 정말로 이상해졌나 봐. 이 체육관에 창고가 딸려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아니었으면 나, 자고 있던 이사기를…. (지워져있다.)

이사기, 나 이제 네 옆을 떠날 때가 됐나 봐.

24. 식량을 구해오지 않은지 꽤 오래 지났는데, 이사기가 나가자는 말을 안 해. 분명 식량이 떨어져가는 것 같은데. 내가 자는 사이에 혼자 나갔다 오는 걸까? 위험할 것 같은데, 내가 자는 사이에 스스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몰라서 차라리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아아~ 모르겠어. 머리가 잘 안 돌아가~

…나, 사실 며칠째 별로 배고프지 않아서, 이사기가 내 몫까지 먹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이거 이상한 것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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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손에서 점점 힘이 빠지네~ 어떻게든 이것만은 계속 남기려고 했는데 앞으로는 글씨를 쓰는 건 무리일 것 같아. 이사기의 앞에서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고 있는데, 얼굴 근육을 어떻게 쓰는 지도 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거울이 없어서, 깨진 유리창 파편을 챙겨놓고 웃는 연습도 했는데, 그러다 손을 베였어. 분명 베였을 텐데, 아프지도 않고 피도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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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삐뚤빼뚤하지만 꾹꾹 눌러 쓴 글씨로 쓰여 있다.) 머지않은 것 같아서, 내일은 이사기한테 나가자고 할 생각이야. 이사기랑 축구 한 번 정도는 더 하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인사는 미리 할게.

잘 있어, 이사기.

고마웠어,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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