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해해야만 곁에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
유키야마 토우키는 추운 것을 싫어했다. - 한 친구는 그런 이름을 가지고 추운 걸 싫어하는 것도 재주라고 웃으며 말했다.- 얼마나 추운 것을 싫어했냐면, 겨울에 훈련하러 나가기 싫다는 이유로 평생 해오던 축구를 냅다 그만둬버릴 정도로는 싫어했다. (물론 그런 이유만으로 그만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꽤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니, 토우키... 다시 생각해봐... 야외 훈련이 그렇게 싫으면 최대한 줄여볼 테니까."
"우~음"
엄하다고 소문이 난 감독이 그리 부탁하는 모습을 보며 토우키는 잠깐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이다, 금방 다시 입을 열었다.
"싫어용. 그만둘래용."
그렇게 주목받던 여자 축구 선수, 유키야마 토우키는 프로 데뷔도 전에 은퇴했다.
축구를 그만둔 뒤로 처음 맞는 새 학기는 의외로 흥미진진 했다. 아침 훈련이 없으니 일찍 반으로 들어와 반 친구들과 일찍 말을 트니 친구가 여럿 생겼고, 그 친구들이 떠들고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하루 정도는 훌쩍 지나갔다.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며 토우키는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어갔다.
그러나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어간다는 것이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뜻은 아니었기에, 토우키는 수업 시간을 비롯한 남는 시간에는 창밖을 바라보며 지내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축구부의 연습이었다. 흔들리는 붉은 머리, 선배로 보이는 부원들을 합쳐도 제일 빠른 속도. 모든 것이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다리를 바라보다 지그시 눈을 감고 친구가 신나서 떠들던 에이스, 치기리 효마를 떠올렸다. 아마 방금까지 바라보던 그가 치기리 효마일 것이다. 천천히 눈을 뜨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꼭 기다리라는 친구의 목소리가 귀에서 울리는 것 같았지만 고개를 저어 떨쳐냈다.
"아... 거기서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치기리 효마는 펜스 너머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팔짱을 꼰 채로 저를 바라보는 그는 아는 사이기는 커녕 스쳐 지나간 적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치기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자세히 뜯어보았다. 그을린 피부에, 꽤 중성적인 외모인지라 한순간 남자로 인식했으나 이내 눈에 들어온 치마에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넌 누군데?"
"나? 어, 축구 고수?"
그는 치기리의 퉁명스러운 목소리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이죽거리며 그리 능청스럽게 말하고는 작게 "유키야마 토우키, 1학년이야."라고 덧붙였다. 치기리는 그 모든 요소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나서 훈수를 두는 것으로 모자라 제 질문에 농담으로 맞받아치기까지.
"아 그래? 그럼 한판 뜰까?"
치기리가 짜증을 숨길 생각조차 않는 말투로 그리 말하자 토우키는 잠깐 눈을 크게 뜨고는 이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치기리 효마는 결과에 승복할 수 없었다. 벤치에 늘어져 숨을 몰아쉬는 제 곁에 서서 이온 음료를 들이키는 토우키의 치맛자락을 바라보며 방금 토우키가 뱉은 말을 곱씹었다. "무승부네." 무승부, 무승부라니. 치마를 입은, 진심으로 상대하지 않은 게 느껴지는 상대에게, 라코스테 축구부의 에이스인 내가.
"어때, 좀 믿겠어? 축구 고수라는 거?"
그러니까 내 훈수 좀 들어라~ 라며 웃으며 저를 내려다보는 토우키의 시선을 외면하며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한 번의 원온원으로 안 좋은 인상이 바뀔 수는 없었다.
그 뒤로도 토우키는 종종, 아니, 거의 매일 치기리를 귀찮게 했다. 처음에는 성가시다며 무시하던 치기리도 점점 토우키에게 익숙해져, 원온원이 끝난 후에 몇 마디씩 잡담을 나누는 정도로는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그 날도 토우키의 제안으로 가볍게 연습을 하다 방심한 탓에 공을 빼앗긴 치기리를 놀려대는 토우키를 노려보고는 짧게 변명하던 중이었다. 그때 펜스 너머에서 누군가가 토우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토우키, 화이팅~!"
펜스 너머에서 토우키의 친구인 듯한 학생이 이쪽을 보며 그리 소리쳤다. 평소처럼 적당히 반응하는 토우키를 상상하며 그에게로 시선을 돌린 치기리는 제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고마워!"
평소의 이죽거리는 얼굴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한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그리 대답하고 있었다. 누나가 보던 순정만화에서 나오던 학교의 왕자님이라는 역할과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치기리는 그에게 자신이 모르는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자신이 왕자라는 그 단어를 연상 해냈다는 것에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나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토우키를 불렀다. 토우키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치기리를 바라보았다.
치기리가 부상을 입은 후에도 토우키는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서 이런 것이라고 참견을 하지도 않았고, 에이스가 아니게 된 자신에게 실망하지도 않았고, 그저 평소와 같은 어조로 한마디.
"원온원 언제부터 할 수 있어?"
생각하던 것과 다른 반응에 치기리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하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날카로운 말투로 꺼지라고 답했다. 토우키는 그 말을 듣고도 딱히 상처받지도 않은 듯 머리를 긁적이곤 입을 열었다.
"점심은 니네 교실에서 먹자. 오늘 덥더라."
그리 말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뒤돌아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치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는 밥도 먹지 않은 채 보건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이 끝난 뒤 같은 반 학생이 토우키가 한참 동안 치기리를 기다렸다는 것을 전해왔다. 치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방과 후에 당연하다는 듯 귀갓길에 함께한 토우키도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만 따라다니겠냐는 치기리의 질문에 토우키는 원온원이라고 답했다. 오랫동안 묶여있던 다리로 잔디 위를 달렸다. 다리를 묶어둔 사슬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골을 넣을 때마다 토우키가 저에게 맞춰주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분했다. 원래도 느끼고 있던 실력의 차이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제, 됐지? 그만 따라다녀."
무승부가 아닌 승부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승부에서 승리했다. 그 사실이 더욱 괴로웠다. 토우키의 어설픈 배려와 위로가 엉망이 된 가슴에 따갑게 스며들었다.
"아니? 계속 따라다닐 건데?"
"뭐라고?"
"너, 분했잖아. 아직 진심으로 축구 포기 못한 거 아냐?"
"그건,"
벤치에 앉은 채로 저를 올려다보는 토우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토우키의 올곧은 시선을 받고 있으면 자신조차 모르는 자신의 내면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아져 부끄러워졌다.
"나랑 하는 축구는 점점 재밌어질 거야. 다리 부상 같은 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네가 스스로 축구가 재밌다고 말할 때까지 따라다닐 거야."
각오해, 나 잘 안 질리는 타입이거든.
노을이 진 하늘이다. 토우키의 머리와 반대되는 색의 빛깔이 머리칼 사이로 스며들어 녹아가는 것 같았다. 오늘의 노을빛은 아름다웠다. 중요한 말을 해야 한다는 긴장감에 괜스레 그런 착각이 든 것 같기도 했다. 치기리는 작은 목소리로 토우키를 불렀다. 토우키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치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포기할 이유를 찾으러 블루록에 갈 거야. 아마 이대로라면 나는 평생 축구를 놓지 못한 채로 애매하게 살아갈 테니까, 완전히 포기할 수 있도록. "
치기리의 말을 들은 토우키는 한참 말없이 치기리의 눈을 바라보았다. 치기리는 토우키의 앞에 서 있노라면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열등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토우키는 자신보다 거대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치기리는 그의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토우키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좋아해, 네가 하는 축구뿐만 아니라 너를."
"난 아마 네가 축구를 그만둔대도 너를 계속 좋아할 거야. 자신도 우스울 정도로 네가 좋아."
"하지만, 너는... 아마 날 잊지 못할 거야. 나랑 한 축구를 잊지 못 할 거야. 너는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갈 거야."
유키야마 토우키는 확신에 찬 눈을 하고 그렇게 말했다. 치기리 효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는 눈앞의 왕자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이하로는 잡설정입니다 결제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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