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히오바치
여름은 언제나 덥다.
시원한 물을 마셔도,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온갖 방법을 써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남아있는 계절이다. 이런 날씨에 축구를 하면 땀이 배로 나는 건 물론이거니와, 피부도 탈 수밖에 없었다.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도 날씨가 한몫했다. 이런 여름에는 언제나 텐션이 올라갔는데, 올해만 유난히 더워진 것 같았다. 7월의 어느 날이었다.
“히오링…, 더워…….”
미칠 듯이 해가 쨍쨍한 날씨에 견디지 못하고 히오리 등에 엎어지며 말을 건넸다.
“쪼매만 참아라. 시원하다고 생각하믄 시원하다.”
“뭐야, 그게…. 물이라도 줘….”
그 말에 히오리는 손에 들고 있던, 이슬이 맺힌 물병을 나에게 넘겨주었다. 물을 마셔도 더운 건 여전했다. 히오리의 손을 자세히 보니 봄보다 피부가 까매져 있었다.
“히오링…. 피부 탔네. 나는 하얀 편이 더 좋은데.”
“어쩔 수 없재. 여름이니까.”
“으응….”
이 대답을 끝으로 나는 물병에 들어있는 물을 한 번 더 들이켰다.
오늘도 방과후에 연습을 해야했다. 폭염주의보면 하루 정도는 빠져도 되지 않나…. 에어컨을 틀어도 밖에서 비춰오는 햇빛 덕에 땀이 났었다.
나를 배려해 반으로 찾아온 히오리와 같이 도시락을 먹었다. 그 후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하니까 흔쾌히 히오리는 매점에 가자고 하였다. 매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하나 골랐다. 소다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히오리에게 말을 꺼냈다
“히오링, 점심시간 남았는데 축구 연습할 거야?”
“아…. 아니. 피부 안 타려면 점심엔 쉬어야재.”
“히오링이 그런 곳에도 신경 쓰는구나…!”
내 말을 들은 히오리는 재밌다는 듯 웃어보였다. 더위가 가시는 듯한 웃음이었다.
교실로 가는 복도에서 함께 걷고 있었는데, 예비종이 울렸다. 히오리는 이동수업이라며 이따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가버렸다.
아, 더워. 교실로 얼른 들어가야지.
올해 여름은 전혀 텐션이 올라가지 않았다.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았고(원래도 그랬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축구 연습도 빠지고 싶었다. 얼른 집에 가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가만히 누워있고 싶었다. 이런 계획을 짜면 히오리가 억지로 축구 연습을 시키긴 하지만. 매년 여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올해의 여름은 제발 끝났으면 좋겠다고 매일같이 속으로 빌었다.
마음 같아선 째고 싶었지만 히오리가 혼낼 게 뻔하니까, 힘든 몸을 겨우 이끌고 벤치로 걸어갔다. 벤치에 다다르자마자 힘없이 털썩 누웠다. 그늘에 벤치는 조금이나마 시원해서 잠깐 눈을 감고, 시원함을 마음껏 누렸다. 눈을 뜨니 무언갈 바르는 히오리가 보였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히오리에게 물었다.
“히오링! 뭐 바르는 거야?”
히오리가 내 물음에 고개를 돌리며 뒤를 돌아보고 입을 열었다.
“선크림. 피부 타니께.”
“아……. 응.”
히오리가 전에도 선크림을 발랐던가? 라고 하면 대답은 “아니”였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히오리에게 피부가 탔다고 했었다. 그 말에 신경 쓰는 건가? 히오리도 귀여운 구석이 있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서 뒤에서 안고 싶었지만, 괜한 체력 낭비니까 빠른 걸음으로 뛰어가서 히오리를 껴안았다.
“히오링도 내 말에 신경 쓰긴하는구나! 하핫.”
그 뒤로 히오리는 매일 선크림을 바르고 다녔다. 7월이 지나고 8월이 시작됐다. 8월은 7월보다도 더 더웠다. 여름방학만을 기다렸다. 이 여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제서야 깨달았는지 8월에는 축구부 연습을 쉰다고 했다. 진작에 쉬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라도 집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쉴 수 있다. 히오리와 보는 시간은 줄어들겠지만….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데도 졸리다. 엎드려서 눈을 붙였다.
“바치라. 일어나라.”
누군가 날 깨우는 기척에 잠에서 깨버렸다.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키니 보이는 건 히오리였다.
“으음…. 히오링…….”
“늦었으니께 얼른 도시락 먹고 매점이나 가재이.”
“응….”
도시락을 다 먹고 나서, 의자에서 일어나고 기지개를 쫙 켜며 히오리와 교실 문을 나섰다. 교실 안과 교실 밖의 온도는 천지 차이였다. 복도에도 에어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소다 맛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소다 맛이 제일 시원해 보여서 더울 땐 항상 소다 맛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단순한 이유였다.
히오리와 같이 하교하고 있을 때였다. 오늘따라 유독 더운 것 같은 날씨가 밉살스러웠다.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로 쉴 곳이 없나 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멀지 않은 곳에 나무 아래에 있는 벤치가 보였다.
“히오링. 저기 벤치에서 앉아 있다가 가면 안 돼?”
“많이 힘드나? 이런 건 잘만 찾네….”
“헤헤…. 얼른 가자. 히오링!”
나무 아래에 있는 벤치는 시원했다. 음…, 지난 달 날씨 같다고 해야 하나. 시원하다고는 느꼈지만 내가 느끼는 더위를 이겨내진 못했다.
“아. 모르겠다. 그냥 히오링 무릎에 누울래—.”
가지런히 모아져 있던 히오리 허벅지에 누웠다. 몇 분 동안 눈을 감고 조용히 있다가 잠에 들어버릴 것만 같아서, 눈을 떴다.
밑에서 보는 히오리는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가늘고 긴 속눈썹에, 햇빛을 받아 더 맑아 보이는 머리색과 눈동자. 그늘에 있어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기만 해도 더위가 가셨다.
“히오링이랑 있으면 시원해지는 느낌—!”
히오리는 내 말에 고개를 숙이며 웃어 보였다. 네 웃음만 보면 무더운 여름도 견딜 수 있을 거 같다. 여름이 계속되어도 상관없었다. 언제까지나 네 미소를 볼 수 있게 해줘.
좋아해, 네가 있는 여름도. 너와 함께 하는 여름도. 히오리 요우,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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