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미션

FF14 WoL 서사 정리용 │ 효월의 종언 6.0 스포일러

- 삽화는 사랑하는 지인이 그려주었습니다💚

처참하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다쳐본 적은 없었다. 전신의 핏줄이 비틀리기라도 한 듯 온 몸이 연신 경련을 일으켰다. 간신히 침을 삼키고 호흡을 고르는데도 입도, 혀도 말을 안 듣고 뻣뻣했다. 전신을 베고 지나간 자상의 고통은 머리를 마비시키는 두통에 묻혀 희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시선을 내려 뿔이 있었던 자리를 곁눈질로 확인한다. 말 그대로 부서졌다. 엉망으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른 한 쪽은 약간 금이 갔을 뿐 깨지지는 않았다. 어떻게 움직이려고 하면 몸이 연신 한 쪽으로만 기울었다.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고, 들리는 족족 이명이 되어 안 들리는 것보다도 못하다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 지긋지긋한 남자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고서야 깨달았다.

남자의 유언과도 같은 말은 사실 제대로 듣지 못했다.

소원 들어줬으니 이제 좀 조용히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입을 열기만 해도 머리가 너무 아팠던 탓이다.

딱 기절하기 좋을 만큼 정신이 아득해진다. 감각이 붕 뜨기 시작했는데도 고통은 선연했다.

머리 뿐만이 아니라, 등이……정말 너무나도 아프다.

다른 상처들은 말 그대로 마비된마냥 옅게 느껴지는데, 이 아득함 속에서도 아픔이 느껴지는 상처라면 제정신일 때는 도대체 얼마나 아픈 건가 싶었다.

누가 불로 지지고 때려도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정말, 너무 아팠다. 아프다는 소리를 입밖으로 내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몸이 이 지경인데도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도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아득한 고통에 정신을 놓기 직전, 결국 핑핑 도는 시야를 견디지 못해 눈을 감았다.

그저 돌아가고 싶었다. 그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한 명 한 명에게 해 줄 변명은 충분히 준비했으니까, 일단 돌아가서…….

…….

처음 라그나로크로 전송된 모험가는 시신이라 해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처참한 꼴이었다. 치유 마법을 쓸 수 있는 이들이 모조리 달려들었다가, 야슈톨라가 앞서 막아 사람들을 물리고 역할을 나눴다. 당황하기로는 마녀도 마찬가지였지만 거의 패닉 상태나 다름없는 몇 명을 말리기 위해서는 어른답게 선을 그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몸에 남은 상처들로 어떤 무기에 베인 건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연상 작용으로 누구의 짓인지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항상 어떻게든 살아 돌아오던 사람이라고 방심했던 건 아니었다. 서로 언제나 경계하며 의연하게 생각해왔음에도 동료의 마지막을 하필이면 이곳에서, 이 순간에 목도하게 될까봐. 그게 하필 이 순간이 될까봐 저도 모르게 숨이 턱 막혔다.

기적을 강하게 염원한 덕분일까. 돌아가며 치유 마법을 걸어준 게 효과가 있었는지 그는 오래 가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는 게 정확할지도 모른다. 입 모양으로만 간신히 움직여 말하고, 약간의 움직임만으로도 표정이 시시각각 구겨지는 게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갔다. 웬만하면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간단한 이야기들을 손짓과 발짓으로, 입 모양을 읽을 수 있도록 신경써서 전했다. 우리 모두가 아이테리스에 무사히 도착했으며 이 세상은 이제 괜찮다고. 이 별은 드디어 종말을 이겨냈다고.

시간을 들여 그 짧고도 확실한 진실을 전해줄 때까지 모험가는 묵묵히 들었다. 오만상을 쓰고도 알아듣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이해한 끝에 찡그린 얼굴 위로 희미하게 미소를 올린다.

동료들이 마주 웃어주기도 전에 다시 기절했지만, 다행히 알리제는 다시 울지 않았다.


유례없는 중상에 대해 그 누구도 입을 함부로 열지 않았으나 한결같이 희망을 믿고 기다렸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줄 알았던 타타루는 모험가의 상태를 확인하자마자 심호흡을 하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부터는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네 명도 맡아봤는데 한 명이 어렵겠냐고. 눈물이 당장이라도 흘러넘칠 듯 그렁그렁했지만 누구보다도 단단한 목소리였다.

아우라족의 월등한 재생능력에 대해서는 유우기리를 보아서 알고, 모험가를 보아서 이미 잘 알았다. 그럼에도 등의 거대한 자상만큼은 큰 차도가 없었다. 출혈이 멈췄을 뿐 피부는 여태까지의 상처들에 비해 훨씬 느리게 아물어갔다. 이쯤되면 이게 올바르게 나을지도 확신하기 어려워 보였다. 타타루도, 쿠루루도 잠든 모험가에게 묻고 싶었다. 많이 아프냐고, 어떻게 아프냐고. 눈을 뜨지 않는 사람에게 시도할 수 있는 치료의 가짓수는 한계가 있었다. 흔적이 남은 채로 나아가는 상처를 바라보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고통스럽지만 않길 바랐다.

도착 후 정신이 들기까지는 일주일, 면회가 허가된 건 두 달이 흐른 뒤였다. 그 사이에 종말을 이겨낸 사람들은 고통을 보듬고자 또 한 번의 별빛축제로 서로를 위로했다. 어느 때보다도 엄숙한 축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해가 넘어가기까지 깨어나지 않는 영웅의 부재를 축제에 발걸음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터다. 그러나 모두가 그저 희망을 갖고 기다릴 뿐이었다.

상처 때문인지 의식이 없던 일주일은 고열로 사경을 헤매 또 한바탕 고생을 했다. 하도 혹독한 귀환을 치른 탓에 눈을 뜬 날에는 결국 타타루와 쿠루루 두 사람 모두 모험가 앞에서 울어버렸다. 눈 뜨자마자 우는 사람을 또 봐버린 모험가는 그저 쓰게 웃었다. 아직도 덜 자란 뿔에서 소리로 전해지는 고통이 힘겨웠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들을 말리고 싶진 않았다.

한 달이 지나자 전신의 부상은 거의 아물었다. 하지만 뿔과 등의 커다란 상처만큼은 유독 오래 걸렸다. 뿔은 평생을 걸쳐 조금씩 길어지던 것이 중간부터 박살나 도로 자라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두통은 많이 사라져서 절반 가량 자라났을 무렵에는 면회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우스웠던 면회객은 다름 아닌 로로리토의 부하였다. ‘어째서인지’ 상회를 통해 당신의 선물을 전해달라 했다고, 익숙한 보석상의 이름이 새겨진 상자를 전달하고는 휑하니 돌아가 버렸다. 상회가 ‘괜히’ 맡은 수고에 대해 웃어주고 싶었는데. 모험가는 그가 돌아간 후에야 상자를 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상자에는 홍옥 산호가 담겨있었다. 편지도 없이 도착한 선물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모든 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저 기뻤다.

“이거, 흉터는 남겠네.”

등에 약을 바르고 치유술을 걸던 쿠루루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깨어난 뒤로 보다 다양한 약을 쓰며 상처를 치료해 보았지만 결국 극적인 변화는 딱히 없었다. 고통만 줄어들었을 뿐, 사선으로 등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자상은 칙칙한 색으로 물든 채 그 자리 그대로 남을 모양이었다. 최적의 순간을 놓친 걸까, 아니면 무슨 수를 써도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까. 형태만으로도 끔찍했는데 베인 당시에는 도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생각만 해도 쿠루루는 절로 암담해졌다. 이 모든 것에 자신의 책임 역시 무겁게 자리한다. 상처를 볼 때마다 목 끝까지 메이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아프지는 않아?”

“이제 딱히.”

대화를 해도 될 정도로 회복된 모험가는 평온하게 대답했다. 깨어난 직후에는 한밤중에도 고통이 올라와 진통제를 삼키고 자고, 동그란 방석따위를 등에 받쳐 자고, 참아보려고 스스로 치유술을 걸다가 의사에게 들켜 호되게 혼이 난 적도 있었다. 다행히 진통제를 몇 번 바꾸고 나니 이제는 그냥 누워서 자도 괜찮을 정도였다.

“그래도 진통제 먹어서 그런 거잖아. 끊어도 된다고 할 때까지는 계속 먹어야 돼.”

“요즘은 하루 한 알로 줄었는데 슬슬 괜찮아지지 않을까…….”

“당신 상처는 절대 얕은 게 아니야. 아무리 회복력이 좋다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쿠루루는 또 다시 손을 멈춘다. 

모험가는 말없이 고개를 반만 돌려 등 뒤의 쿠루루를 바라보았다.

“쿠루루.”

“…응. 알아. 그래도 마지막까지 내 마음도 이해해줬으면 해.”

작은 손이 다시 상처 위에 약을 문지른다. 부위가 넓다 보니 한 번 바르는 것도 일이었다. 모험가가 다시 앞을 보자 작게 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치료가 끝날 때까지는 절대로 사과하지 말라니…나한테 가혹하지 않아?”

“나도 네가 왜 그래야 했는지 아니까.”

모험가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쿠루루가 택한 방법이 더할나위없이 샬레이안 사람답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 몇 년 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선택지를 골라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의를 위해 보다 적은 것을 포기하거나 감수하는 길을 걸었다. 그런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새삼스럽지도 않다. 오히려 어떻게 제노스같은 인물에게서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는지가 놀라울 뿐이었다. 실제로 그는 정말로 약속을 스스로 기억한 채 쫓아오지 않았는가. 비록 처음 마주했던 당시에는 왜 하필 그게 저 녀석인지에 대한 지긋지긋함이 앞섰지만……거기까지는 쿠루루도 어쩔 수 없는 영역이었다.

다만 결코 가벼운 문제도 아니고, 책임감이 강한 그의 성격상 상처를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할지도 잘 알기에 차라리 모든 걸 치료 이후로 미뤘다. 사과 뿐만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대화에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할 테니. 그 시점에서 이미 많은 말을 대신한 거나 다름없음을 쿠루루도 안다. 감정이 앞선 사과보다는 이성적인 대화가 둘 사이에 보다 도움이 될 테니까. 이 유예기간동안 쿠루루는 스스로를 위해, 모험가를 위해 말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진 셈이었다. 의사가 있음에도 쿠루루가 치료 지원을 자처한 이유였다.

“교수 면담이라도 잡는 기분이네.”

그래서 쿠루루는 그냥 웃었다. 등에 약이 꼼꼼히 발렸나 확인한 뒤에야 약통을 덮는다. 여기서 언젠가 색이 옅어져도 이 상처는 흔적으로 평생 남아있을 것 같았다. 여태까지 한 번도 모험가의 몸에서 아물지 못한 상처를 본 적이 없던 입장에서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이렇게 큰 흉터가 남다니.”

“뭐 어때…누가 볼 것도 아니고.”

“보고 안 보고의 문제가 아닌 걸. 당신의 무심함도 가끔 지나치지 않나 싶어. 응?”

“…어쨌든 안 아프면 됐잖아.”

사실 봐도 뭐 어쩔건가 싶다. 약이 모조리 흡수된 걸 확인한 쿠루루가 침대에서 내려오자 모험가도 끌어안고 있던 베개를 내려놓고 셔츠를 도로 걸쳤다. 처음에는 약이 흡수될 때까지 기다리느라 엎드려서 끙끙 앓아야 했는데, 뿔 때문에 구멍이 나서 커버를 교체한 베개만 일주일 사이 다섯 개였다. 안 되겠다 싶어 즉각 흡수되는 약으로 바꿔 이제는 치료 후 옷을 바로 입어도 괜찮은 정도가 되었다.

“아직 나가면 안 돼?”

창문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던 모험가가 말했다. 모르도나의 하늘은 드물게도 며칠째 맑았다.

“선생님 말로는 이제 괜찮을 거랬어. 걸을 때는 좀 어때?”

“…가끔…옆으로 걷기는 하지만, 전만큼은 아니야.”

“그럼 망자의 종소리 안에서만이라면…가볍게 산책하고 와. 걱정되니까 한 명 쯤은 꼭 같이 데리고 가야 돼.”

“알았어…….”

대답을 하는 모험가의 목소리가 점점 나른하게 늘어졌다. 짐을 정리하던 쿠루루가 문득 그를 돌아본다. 모험가는 어느 새 수마에 젖은 얼굴로 창문 너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끝도 없이 뻗은 수정의 첨탑이 그 시선의 끝이었다. 쿠루루는 느릿느릿 눈을 감는 옆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 조용히 방을 나섰다. 나가고 싶을 정도로 좀이 쑤신다 해도, 여전히 조금만 움직이면 잠이 오는 모양이었다.

“쿠루루. 고생 많았어요.”

“야슈톨라.”

홀 테이블에 앉아있던 야슈톨라가 쿠루루를 반겼다. 어딜 다녀왔는지 테이블 위에는 책이 또 가득 쌓였다. 자기 몫의 차를 마시며 그가 쿠루루를 향해 손짓했다.

“같이 한 잔 해 줄래요? 모처럼 좋은 찻잎이 생겼는데 아무도 없지 뭐예요.”

정말 아무도 없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갖다놓은 건지는 몰라도, 테이블에 마련된 찻잔은 이미 따라둔 야슈톨라의 것을 포함하여 두 잔이었다. 빈 잔을 바라본 쿠루루는 실소를 터트리며 잔이 놓인 자리에 몸을 앉혔다.

“고마워. 사양않고 마실게.”

야슈톨라가 손수 잔을 채워줬다. 홍차의 붉은 빛깔이 찻잔 안에서 물결친다. 마침 따뜻한 차가 절실한 참이었다. 눈을 감고 음미하듯 천천히 넘기자 힘이 들어가 빳빳했던 어깨가 녹아내리는 듯 했다. 한숨과 함께 쿠루루가 잔을 내려놓자 야슈톨라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요?”

“잠들었어. 아직은 계속 졸린가봐…….”

“그래도 깨어있는 시간이 더 늘어났나 보죠? 한 달 전에는 30분만 깨어있어도 기절하던 사람이었는데.”

“후후, 그러게. 회복이 엄청 빠른 건 맞아. 신기할 정도야. 아마 그만큼 자서 그런 거겠지.”

평소에도 못 자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유독 오래, 자주 잔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잠이 오는 약을 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걱정도 됐다. 통상적인 환자들에 비해 오래 자는 것도 사실인지라 주치의와 의논도 했었는데, 일주일 간 자고 일어날 때마다 부서진 뿔이 눈에 띄게 자라난 걸 보고 더 걱정하지는 않게 되었다.

“나가고 싶은 모양이었어. 선생님도 이제 가벼운 산책까진 괜찮다 하셨고. 정말 많이 좋아졌지?”

“타타루가 그 말을 직접 들었다면 정말 기뻐했을 텐데요.”

그가 쉬는 날에는 밖에 나가기 어지간히 싫어하던 탓에, 타타루가 몇 번인가 들들 볶아 얼굴이라도 비추는 게 그간 돌의 집에서 보이던 풍경이었다.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데 며칠동안 얼굴도 못 보는 건 심했어용. 하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는 타타루 앞에서 모험가는 나름 이해한 듯 입만 꾹 다물고 있었다고 했나. 그런 모험가가 밖에 나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좀이 쑤신다니……. 애석하게도 정말 기뻐해 줄 타타루는 근래 돌의 집 정리 작업에 시달려 일찍 자러 간 참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산책이라도 하고 오라고 했어. 호위 겸 누가 같이 가 주면 좋을 텐데, 하필 나는 내일 진료가 끝나는대로 잠시 위리앙제랑 상의할 게 있어서…….”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그 사람이 동행자를 찾으면 하던 일도 내던지고 돌아올 사람들이 줄을 섰으니까.”

면회도 하루 한 번 한 명 뿐이고, 시간 자체도 짧은 터라 다들 돌의 집으로 돌아왔다 하면 미명의 방을 기웃거리기 바빴다. 나갈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는 건 이제 다들 알 테니 앞다투어 돌아올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한 쿠루루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이따가 슬슬 링크펄로 전할까 하는데, 내일 우르르 몰려 나가는 건 아닌가 몰라.”

“그러면 그 사람이 들어가자고 할 걸요. 부담스러우니 다 가라면서 말이죠.”

무표정 위로 눈빛만 질색 할 그 특유의 표정이 벌써부터 선하다. 미안한데, 그냥 들어가면 안 될까? 그런 말도 하면서. 똑같은 생각을 한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묘한 미소가 번졌다.

“내일이 기대되네요.”

“말은 그렇게 해도, 야슈톨라도 내일 따라 나갈 거지?”

“어머, 당신도 얘기가 끝나면 위리앙제랑 같이 와요.”

“후후……생각난 김에 지금 연락할까.”

쿠루루는 웃음을 터트리며 결국 링크쉘에 손을 올렸다. 곧 모든 동료들과 이어져있는 연락망을 통해 모험가의 회복 소식이 퍼지기 시작한다.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온 산크레드와 그라하를 시작으로, 그리운 동료들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하여 앞다투어 한 지붕 아래로 모여들었다. 분명 외출 계획은 내일이라고 전했는데도 참지 못하고 모여든 이들의 얼굴은 어쩜 그렇게 다들 한결같은지.

그들은 여전히 내일을 기대한다. 차를 마시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웃을 수 있다.

그 사실이 그토록 기꺼웠다. 새삼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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