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타이어보다 싸다!

헴프혁명 by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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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속어 많음 ※


타인의 시선에서 나는 자존심과 수치심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어떤 대가를 받아야 내 가치가 오르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내 몸을 지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처먹지도 말고 새끼만 까다 뒤지라고 아가리 퇴화한 하루살이마냥. 타오르는 빛을 쫓다가 가로등 전구 안에 수북하게 죽어있는 그것들 말이다. 몇몇 조류나 육식 곤충의 끼니 쯤의 가치를 가진, 그마저도 짐승 입맛에도 맛대가리 없는… 강변을 걸었다. 산책로에 널브러진 그 등신 천치같은 것들을 즈려밟으면서 계속 걸었다.

나의 가치를 낮추지 말라는 말들은 들어보면 하나같이 다 똑같았다. 돌아오는 게 없는데 계속 퍼주지 마라. 남이 너를 함부로 대하게 허락하지 마라.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나는 모든 사람을 저자세로 대했다. 그리고 타인이 나를 상처 주고 해치는 것을 곧잘 허락했다. 그들의 눈에 내 모습은 비굴하고 초라했을 것이다.

매일 몸을 더듬고 귓속말을 하던 사람, 첫 만남에 평생 함께할 것처럼 안기던 애정결핍 걸린 살사람, 무서울 때 내 품에 달려왔던 사람, 아내에게 이혼당한 뒤로 내게서 가족을 찾던 사람, 등하굣길 같이 하자며 끈질기게 쫓아오던 사람, 볼 때마다 애인이 있냐고 묻던 중년의 사람, 헤어지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던 사람, 매일 밤 전화해서 죽고 싶다며 한 번에 약을 털어 먹던 사람, 돌아오지 않는 진심에도 사랑을 숨기지 못했던 사람. 나를 좀먹어 사는 것을 멈추지 못했던 사람들. 가여운 사람들. 값싼 누구라도 필요한 사람들. 누구라도 붙잡고 소리치지 않으면 미쳐버릴 사람들. 내가 버리고 온 사람들.

나를 헐값에 내놓는다. 살갗은 숨기지 않고. 꾸역꾸역 허겁지겁 그것들의 심장을 처먹고. 비겁하게 게워낸다. 헤픈 년, 멍청한 년, 자존심도 없는 년, 쉬운 년, 수치심도 없는 년.

나는 그렇게 잘만 살았는데. 안타깝게도 근본부터 공주보단 무수리가 잘 어울리는 그런 년이다. 값어치 없는 사람. 아쉬울 것 없는 이에겐 계륵 같고 굶주린 사람에겐 약에 쓰려고 찾는 개똥 같은 사람. 누군가 나를 치고 가도 내가 고개를 숙였다. 호객행위가 무서워 음식 하나 맛보지 않고 앞만 보며 저잣거리를 쏘다녔고 거절을 못해서 누가 말을 걸면 죄송하다는 비명과 함께 전속력으로 달렸다. 싫은 말을 정말 뱉지 못 했고 이런 날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연하긴 하다. 거절 당하고 싫은 소리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보통 없으니까.

몸값은 어떻게 올리는 거지. 나를 쉽게 내어 주지 않으면 되는 건가. 심신이 미약하고 굶어 죽은 귀신같은 저 사람들을 뒤로하고? 그렇다면 가치가 있다는 건 역시 그런 거잖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 프리미엄이 붙는 삶. 몰가치한 것들은 감히 다가오지도 못하는 영역. 사람들은 이런 영역 안에 자신을 넣고 정제된 건강한 이득만 취할 수 있단 말이야? 미쳐버린 사람들을 봐도 왜 미쳤는지 궁금해하지 않아?

천박하다. 참으로 천박하다. 솔직히 좆같다. 가치를 얻으려면 다른 누군가를 반드시 쓸모없는 병신을 만들어 놔야 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모든 순간에 똑같이 필요하고 동등하게 가치 있다면 가치라는 단어조차 필요 없겠지. 우주 어딘가에선 오늘도 늙은 별이 지고 새로운 별이 또 하나 떴을 것이다. 그럼에도 밤하늘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고요한데. 세상의 평화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을 죽이고 패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마트를 가고 시장을 가도 멍들고 울퉁불퉁한 과일은 볼 수 없듯이 그렇게 선별되어 버려지고 으깨져서. 사람들은 열매가 어디까지 못생길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나는 내 가치를 알았다. 저렴하고 쉽다. 대단한 가치를 지불하지 않아도 아무나 나를 공공재처럼 쓸 수 있고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그것이 내 가치인데. 그게 내 자존감을 해친다고 느낀 적도 없었는데. 싸고 헤프고 머저리같은 이 삶이 좋은데. 자꾸만 내 값을 불리려 한다. 나를 동전 한 닢 쯤 주고 산 사람들이 나를 금괴만큼 불리려 해. 씨발 다이소나 끊고 오라지… 저렴함의 미학을 너네도 이미 알잖아.


가끔 미친 듯이 화가 날 때가 있다. 이유는 없었다. 온몸이 터질 것만 같은 응축된 분노와 슬픔이 찾아오는 날. 스스로 뺨을 번갈아 내리쳐 보는 날. 콘크리트 벽에 연신 머리를 박아대고. 내가 버리고 온 사람들이 떠오르는 날. 내가 가진 티끌만 하고 또 비대한 생존 의식에 몸서리 쳐지는 날. 밟힌 바퀴벌레같이. 내 값을 온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목이 잘려도 한참을 버둥거렸던 그 꼬라지가. 지난 날의 한계와 무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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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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