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
연민의 굴레, 이상적인게 아니라 이상함.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내가 제일 답하기 어려워하는 질문 중 하나다. 이상형이라… 다들 어떤 대답을 할까? 보통 사람들은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배려심 있는 다정한 그런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듯한데… 외모는 어떤 외모가 인기 있을까? 준수한 얼굴에 키가 큰 사람? 모르겠다. 나는 그냥 봤을 때 느낌이 오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거나 대답을 아예 피한다.
내가 사랑에 빠지는 조건은 쉬운 듯 복잡하다. 정확하게는 조건은 까다롭지만 그 조건에 부합하면 금방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일단 가장 큰 전제 조건이 ‘내가 온전히 기댈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에게 스스럼없이 기댄다면 더 좋은 것 같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기댈 수 있는 대상에게 미성숙하고 퇴행적인 면모를 드러내기 때문에. 나는 상대방에게 얼마든지 품을 내어주지만 상대방은 나를 온전히 받아낼 수 없는 그런 관계를 원한다. 내가 기대려 하면 그대로 고꾸라질 것 같은 위태로운 사람이 좋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결핍을 사랑하지 완숙함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 모든 사랑의 출발점은 결국 연민이 아닐까? 연민 없이 시작하고 유지할 수 있는 사랑이란 게 존재하는가? 배우 구교환이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인터뷰 질문에 “애인의 자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짠한 감정“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여러 사랑의 정의 중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는 설명이었다. 연민이란 게 대단한 게 아니다. 사회에서 주로 쓰이는 용례 때문에 시혜적인 시선에서 나오는 적선, 동정이란 느낌의 어감을 주지만 연민은 사랑을 끌어당기는 자기력이자 관계의 연료와도 같다.
어떤 대상의 결핍을 들여다보는 일은 아주 흥미롭다. 상처 위에 가만히 손을 얹으면 마치 사이코메트리처럼 그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보인다. 인간은 고통스러울 때 가장 거칠고 존재가 소란스러워진다. 나의 지난 사랑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왜 너를 깎아가며 관계를 유지하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는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추구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며 내 생각엔 틀림이 없다고 자부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먹고 산다. 그 사람 모르게 존재를 파먹으며 품을 내어준다. 존재를 섭취하는 방법은 간단한데 상대방을 마음 안에 담고 그냥 그대로 삼키면 된다. 단, 여기서 그 사람의 모자람을 채우고 행동을 교정하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조리하지 말고 날 것으로 먹도록 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 탈이 난다. 탈이 나서 슬프고 분노하고 있는 힘껏 미워하고, 미워하다가도 회복되어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는 상대방에게 기대는 것보다 이 격앙되는 감정에 마음을 기댈 때 더 평온한 기분을 느낀다. 오르내리는 감정의 기복이 내 마음을 요람 흔들어 주듯 더욱 잘 달래주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진 감정을 최대한 다양하게 많이 끌어낼 수 있는 대상을 좋아하게 된다. 나는 사랑에서 부차적으로 나오는 부정적 감정을 멸균상태처럼 배제한, 깨끗하게 행복과 설렘만이 주를 이루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면 얼굴은 웃고 있어도 늘 은은하게 슬프고 화나 있다. 그게 마음 속에서 끓었다가 가라앉았다가 넘칠 듯 말 듯 넘나들고 그게 눈물이 되어서 쏟아지는, 몇 번의 웃음에 말라서 보송해지는 두 뺨, 이런 나날의 반복과 분노, 증오, 질투, 원망. 이런 불순물 없는 사랑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 또한 받아들이는 것이 내 사랑의 정의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좌절을 겪어보지 못한 것 같은 사람. 누구를 만나든 아쉬워 본 적이 없으며 일평생 구김살 없이 살아온 사람. 모난 곳 없이 반듯하고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흠결이 없는 사람. 불현듯 찾아오는 상처에 그저 ‘운이 나빴다’라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 정말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상처와 좌절은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갑자기 닥치는 자연재해처럼 찾아오며 그것이 순리이다. 내가 이런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은 상처와 좌절을 통제하고 피할 수 있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고 상처를 피해 자라 엉성하게 단단해진 자존감과 그 오만함이 썩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아서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마음을 기대려고 사랑을 찾고 신을 만들어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며 인정욕구를 채우려 성과주의에 물든다. 태생적 무능함에서 인간은 벗어날 수가 없다. 그 무력감을 온몸으로 체득했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사람은 그 무엇도 무너뜨릴 수 없다.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믿을 수 없고 그래서 오늘도 사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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