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보카시
독백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나도 내가 쟤를 좋아하는 줄 몰랐어, 하는 등의 멍청한 말은 듣기에 식상하고 짜증 날 수 있겠지만, 당사자가 되면 정말 당황스러운 법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느긋하게 명상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으니 말이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인지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내 진짜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은 마치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나이기에 한 번 깨닫는 순간, 마치 둑이 터진 것처럼 인지하지 못했던 기억과 감정들이 복잡한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마법 같은 사람, 오지 않을 봄을 기다리던 나에게 여름이 되어준 사람. 멈춘 내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들어준 것 같았다. 노래하지 않고는 사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으면서, 한참을 바보같이 굴었는데도, 결국 날 쫓아와서 함께 노래하자고 한 놈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이제 와 다시 생각해 보니 우스운 것이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건 결국 내가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왜 사랑하는지 구구절절 이야기할 수도 없다. 고백은 물 건너갔다는 소리다. 생각해 봐. 날 왜 좋아하는데 따위의 질문에는 그게 중요하냐는 대답이 튀어 나갈 것이고, 언제부터 좋아했냐는 질문에는, 젠장, 널 사랑한 게 언제부터인지 가도 되지 않는다고, A. 이딴 답변이나 할 텐데.
….
그늘이라곤 옥탑방의 뒤편에나 조그맣게 있는 곳에서, 다른 놈들은 전부 부활동을 하러 갈 동안 나는 너와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내 노래를 듣고 네가 함께 음악을 했기 때문에. 네가 내 인생의 첫 무대를 소개해 줬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 것 같은 놈이기 때문에, 그리고, 숨어든 나를 다시 찾아서, 기어코 함께 노래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에….
가슴께부터 정수리 끝까지 열이 올라 화끈하다. 보나 마나 술에 취한 것처럼 붉어져 있을 것이다. 별 다른 게 아니야. 내가 노래하면 네가 듣고, 네가 노래를 부르면 내가 듣고. 너와 하모니를 부르고, 평생을 이렇게 살고 싶어. 얼마 전에도 했던 생각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와닿는다. A, 너를 사랑해서, 함께하고 싶어.
“A, A가 입고 있는 티, 보카시 니트네.”
“보카시? 아, 따뜻한 원단이지.”
“하하-, 내 말은, 그라데이션이라고. 실 색을 여러 개 쓴 니트.”
“아하…. 난 당연히, B 네가 추위를 많이 타니 원단을 물어본 줄 알았지.”
“내가 추위를 많이…, 아무튼. 보카시를 보면 A 네가 생각 나거든. 그런데 마침 네가 입었길래.”
“… 내 생각?”
“실을 여러 개 쓰다 보면, 정성이 엄청나게 들어가니까. 네 노래 같아서 말이지.”
“… 어어, 고맙네.”
“… A, 지금 노래 칭찬에 얼굴이 붉어진 거야?”
“아니, 아니!”
‘널 보면 방과후의 노을이 생각난다고, 아주 얇은 실로 뜬 보카시처럼.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 했는데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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