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led with the ocean

“맨발도 나쁘지 않죠?”

“간지러운걸.”

“그걸 느끼려고 맨발로 걷는 거죠.”

가볍게 부는 바람에 파도가 잔잔하다. 모래를 밟은 발 사이로 물거품이 몰려들어와 간질이고선 도망간다. 젖은 모래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던 A는 그런 파도가 꼭 장난을 치는 것 같다고, 제 옆의 연인 같다고, 생각한다.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깍지를 끼고. 공기가 더워지면 유독 제게 붙어오는 A 덕분에 B는 지구의 여름이 좋았다. 제 옆에 딱 붙어서 다음엔 어디로 갈지 정하는 모습이 퍽 사랑스럽다.

“그래서, 와보니까 어때요? 숲이랑 바다, 어디가 더 좋아요?”

“어제 갔던 그 공원을 숲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겠지.”

“대충 비슷하다고 쳐요. 센트럴파크 정도면 엄청 크잖아요.”

주먹구구식의 설문조사에 B가 웃음을 참지 못한다. 너랑 같이 가면 어디든 좋다니까, 식의 대답에 답답한 건 오직 A뿐이다. 뭐든, 어디든, 등의 단어를 몇 개씩이나 금지하고 나서야 방법을 찾았다. 결국 A는 스무고개 하듯 일을 쉬는 날마다 연인이라면 들릴법한 곳들을 다니며 B의 취향을 알아가는 중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난 바다가 좋군.”

저도 바다가 좋다고, 앞으로 바다에 자주 오자는 A를 바라본다. 둘의 걸음은 산책하는 것치고도 한참 느려서, 네 걸음쯤 걸으면 파도가 다시 다가와 걸음을 재촉한다. 저 멀리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만드는 물장난에 푸른 빛 바다가 산산이 부서진다. 여유로운 B와 A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부산한 바다가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왜 좋은지는 안 궁금해?”

“음, 내가 좋아해서요?”

“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야.”

B가 고개를 숙여 A의 머리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바다는 깊고 해는 높아서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깔은 참으로 다양하지. 아름답기로 유명한 바다들은 꼭 에메랄드와 같은 빛깔이 보여. 그게 꼭 너의 눈빛 같아서 좋아. 해가 떠 있든 달이 떠 있든 그 빛을 반사하는 파도의 마루가 별처럼 빛나는데 그게 네 눈에 담긴 반짝임 같아서 좋아. 끊임없이 부는 바람에 따라 부서진 파도가 만든 끝은 네 머리가 떠올라서 좋아. 넘쳐흐르는 고백의 말들을 눌러 담고 B는 짧게 대답한다.

“바다는 네가 생각나서.”

여름 해의 뜨거움이 깊이 스며든다. 점점 더 느려지다 어느새 멈춘 걸음에 B가 A의 앞에 와 선다. A가 바다를 등지게 하고, B는 A의 양 뺨을 감싸 쥐어 눈을 맞춘다. 시리도록 푸른 눈이 B를 오롯이 담는다.

“지구의 어딜 가든 내가 생각나게 해줄 텐데도요?”

“그래도, 네 눈에 담긴 바다가 제일 좋아.”

바다가 좋다는 것일지 A가 좋다는 것일지 모를 말에 A가 먼저 B를 안는다. A를 부드럽게 감싸안으며, B는 본인의 체온이 여름에도 낮다는 것에 또 한 번 만족스러워한다. 저도 B가 좋아요. 품에 안겨 웅얼거리는 A의 대답에 B가 기분 좋게 웃는다. 바닷바람이 둘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흔들고, 파도는 여전히 발끝을 간질인다. 낮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B는 A에게 맹세한다. 파도가 멈추지 않는 한 너를 사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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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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