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누굴 위해 하는 걸까...
나는 최근 살을 많이 뺐다. 현재 22kg 정도 뺐다. 수치로만 보면 엄청난 노력이 들었을 것 같겠지만 그냥 입맛이 돌지 않는 시기가 온 것을 기회 삼아서 뺐기 때문에 살을 빼는 데 큰 노력이 들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철저한 자기관리 하면 다들 흔히 떠올리는 게 다이어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걸 성의 없게 해냈다. 매일 하루에 2시간 이상 걷긴 했으나 살이 쪘을 당시에도 걷는 건 좋아했었다. 사실상 운동보단 식이로 뺀 셈이다. 이젠 식사량이 서서히 늘고 있는데도 군것질을 끊어서인지 의외로 체중이 다시 찌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다. 애초에 운동선수처럼 운동량이 과다한 게 아닌 이상 일반인이 운동으로 연소할 수 있는 칼로리가 그리 많지 않다. 내 키는 160cm고 체중은 75kg->53kg까지 감량했다. 다이어트를 하고 내 삶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2~3개월에 한 번 하던 월경을 28일마다 칼 같은 주기로 하기 시작했고 아무리 장시간 걸어도 무릎과 발바닥이 아프지 않다. 수시로 턱을 뒤덮던 여드름도 사라졌다. 나는 건강해졌다. 하지만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만인에게 체중 감량을 굳이 종용할 생각은 없다.
뚱뚱한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좋지 못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사회에서 그들은 열등한 외모에 게으르고 한심하며 자기관리를 안 하는 종자들이다. 간혹 성격이 쾌활하고 자존감이 높아 뚱뚱함에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모든 비만인이 이런 성격을 가질 수는 없다. 보통 비만인을 비난하는 근거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기관리의 불성실함인데 이 말인즉슨 자기관리의 영역 밖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한 체중 증가는 용납하겠다는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는 여러 모순이 존재한다. 사람들도 알고 있다시피 살이 찌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며 살이 원래 잘 찌는 체질이거나 복용 중인 약의 부작용, 폭식증과 같은 섭식장애나 그 외 질병으로 인한 합병증 등으로 그 사람의 식습관, 운동량과 상관없이 살이 찌기도 한다. 문제는 사람들에게 비만인의 겉모습만 보고 이 사람이 음식 섭취량이 많고 운동량이 낮아 살이 찐 건지 체질이나 질병 등의 이유로 살이 찐 건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트와이스(twice)라는 걸그룹의 정연이라는 멤버가 있는데 갑자기 살이 많이 쪄서 처음엔 그녀의 영상마다 아이돌이 자기관리도 안 했느냐는 악플이 달렸다. 그러나 얼마 뒤 살이 찐 이유가 목 디스크 수술 후 처방받은 스테로이드로 인한 쿠싱증후군 때문임이 밝혀지면서 대중의 여론은 바뀌었다. 이제 영상의 댓글 창은 대부분 그녀를 응원하고 있으며 살이 쪄도 여전히 예쁘다고 칭찬해 주는 댓글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자기관리를 안 해서 살이 찌는 건 안되지만 아파서 찌는 건 괜찮다는 말은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효용이 없다. 뚱뚱한 몸에 대한 비난은 1차적으로 외관을 보고 이루어지며 그 사람의 사연을 듣는 것은 나중 일이 된다. 혐오는 섬세하게 행해지지 않는다.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판단과 자신의 가치 향상을 위한 배타심으로 만들어진다. 사회에서 외모라는 것은 피상적인 가치를 가지며 그 가치로 사람의 우등함과 열등함을 가려내는 사고방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결국 자기관리 안 해서 살찐 사람만 비난하고 아파서 살찐 사람만 선택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자기관리의 미흡함으로 살이 찐 사람이라고 해도 그것이 그 사람이 비난받을 이유가 되진 않는다. 사실상 욕먹어도 되는 비만인과 지지 받아야 하는 비만인을 구분하는 행동은 비만인을 비하했을 때 외모지상주의라는 비판을 역으로 받게 될 것을 차단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문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선사시대부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장신구, 조각상, 그림 등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미추 의식은 거의 인간사의 시작부터 함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외모지상주의는 사회적 기준의 아름다움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소외시키고 고통받게 하지만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미에 대한 집착과 원초적 본능은 윤리를 바탕으로 한 질책과 교화를 아무리 거듭한다고 해도 완전히 거세시킬 수 없다. 끝까지 안고 가야 할 이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 가끔씩 함께 고민해 보자. 못난 사람을 미워할지언정 그 소외된 존재에게 미움받을 이유를 붙여주는 것으로 도덕적 강박을 채우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차라리 솔직하게 못된 사람이 되어서 그들도 당신들을 미워하게 해 주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미움 받을 용기없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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