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튜버

My Pleasure

hye by 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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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시간 때우기 최고라는 SNS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새로운 주제가 피드를 채웠다.

 

'절친이 사람 죽이고 오면 숨겨줄 것임?'

한 1.5초 고민했을까, 아메는 그대로 스크롤을 올려버렸다. 절친이라는 단어에 떠올린 존재가 4명이나 있었지만 애초에 성격이 나쁜 애들도 아니고, 막 돌아다니면서 살인할 애들은 더더욱이 아니고. 애초에 절친들이 인간이 아닌데 이런 고민 따위 할 필요도 없었다. 


했어야 했다. 이런 미친— 다들 인간이 아니니까 오히려 이런 고민을 더 해야 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SNS에서 그냥 넘기지 말고 5초라도 고민해볼걸. 현관문 너머에 보라색 머리카락으로 다 가려지지 않은 목덜미가 전부 피로 붉게 물들어있는 절친-을 넘은 애인-의 모습을 보고 이런 생각이 먼저 든 나도 제정신이 아니겠지. 

아, 인간 따위 쉽게 없애는 너를 손에 넣은 나는 인간이 맞을까.

 

 My Guilty Pleasure

시간 여행자 생활 XXX 년에 탐정 생활 XXX 년. 도합 인간의 평균 수명을 뛰어넘은 경력자의 눈썰미로 다른 쓸데없는 질문은 필요 없었다. 

"시체는 어떻게 했어?"

쇼파에 앉은 아멜리아 앞의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몸을 한껏 웅크린 채 바닥만을 응시하던 이나니스는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몸을 크게 떨었다. 이나의 몸에서 나온 피라고 하기엔 너무 건강해 보였고, 또 몸을 뒤덮은 얕은 피 아래에는 그 어떤 상처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이 피는 남의 거라는 거겠지. 

"... 게 아니야."

"뭐라고?"

"내가 한 게 아니라고!"

XXX 시간 동안 한 집에 살았던 아메도 처음 들어 깜짝 놀랄만한 크기의 목소리로 소리친 이나는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소파 위 아메를 쳐다보았다. 몇시간 만에 마주친 얼굴은 누가 봐도 방금 사고치고 온 강아지 같은 표정이었다. 흐트러진 호흡에 없는 초점마저 흔들려 보일 정도로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시선,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는 몸과 이나의 발언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이나가 아니면—

고대 신이겠지. 아메의 정곡을 찌르는 반응에 이나는 다시 고개를 숙여 바닥을 응시했다.

 

"진짜 내가 한 게 아니야..."

"그래서, 시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올린 이나의 표정에는 '정말 물어볼 게 그것뿐이야?'라는 듯 쓰여있었다. 숨겨줄 생각으로 물어본 건 아니었는데, 영생을 너무 착하게 순수하게 살아온 이나에게 너무 상상치도 못한 행동이었나보다. 

"없애버렸어."

"없애? 어디 갔다 묻어버리기라도 한 거야?"

어차피 지금 눈앞의 살인자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꾸려낸 그 어떤 발전된 전산 시스템에도 니노마에 이나니스의 흔적은 없다. 지문이 발견될 리도, DNA, 발자국, 목소리, 용의자 - 누가 157cm 소녀 등을 뚫는 촉수를 보고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 그 무엇도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걸 이나 본인이 모를 리는 없다. 

"존재를 없애버렸어... 그런 게 있어."

와. 인간으로선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다. 이나 옆의 책의 도움을 받았을까- 여기까지 생각해내었을 땐 더 이상 알아선 안될 것 같았다. AO-chan 이라는 귀여운 이름만 붙여뒀을 뿐이지, 저거 마도서잖아. 

살인에서 그치지 않고 존재를 없애버릴 수 있다는 정보도 이미 아메의 인간의 두뇌엔 한계치였다.

 

"그럼 뭐가 문제야? 누군지도 모르는 인간을 죽였지만 - 여기서 다시 한번 크게 몸을 떠는 이나의 모습에 말을 가려 해야겠다고 450년째쯤 다짐하는 아멜리아였다 - 네 의지는 아니었던 거고. 근데 그게 딱히 조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시체도 흔적도 없어졌고.

"시간..." 

"응?"

"시간 좀... 돌려주면 안돼?"

피투성이가 된 채 애인의 집에 찾아온 이나는 죄책감에 가득 차 있었다. 사제의 몸을 앗아가 인간을 죽이곤 죄책감을 비롯한 수많은 감정들은 한때 인간이었던 소녀에게 던져두고 사라진 것이겠지. 

이나의 애원 섞인 목소리에 고민 따윈 없이 찰칵- 소리와 함께 시계를 돌렸다. 딱히 애원하지 않았어도 아메는 이나를 위해서라면 시계쯤이야, 쉽게 돌릴 수 있었다. 미리 사건의 발생을 막는다면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이나는 기억을 잊을 것이며, 아메 본인만 입 다물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에 행복한 커플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시계침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공허한 거실을 가득 채웠다.

 


"그럼 뭐가 문제야? 누군지도 모르는 인간을 죽였지만 - 여기서 다시 한번 크게 몸을 떠는 이나의 모습에 말을 가려 해야겠다고 450년째쯤 다짐하는 아멜리아였다 - 네 의지는 아니었던 거고. 근데 그게 딱히 조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시체도 흔적도 없어졌고."

"시간..." 

"응?

"시간 좀... 돌려주면 안돼?"

"근데 이나, 그거 알아?"

"아, 안된다는 거..."

"아니, 우리 이 대화, 58번째라고."


다섯 번째 시도가 실패했을 때, 아메는 리셋을 할 때마다 한쪽 팔에 작은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열다섯 번째 때엔 아무리 과거로 돌아가도 이미 정해진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했고, 마흔 번째부터는 실패한 감이 느껴지면 더 이상 노력도 하지 않고 시계를 돌렸다. 

이나 앞에 상처를 낸 팔을 들이대자 이나는 깊게 상처들을 들여다보았다. 아래서부터 올라가는 상처는 며칠, 몇 달에 걸쳐 아물어가는 상처의 박제라도 되는 마냥 아메가 돌아간 58번의 시간을 보여주기엔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 당연히, 이나의 입장에서 어제까지의 아메의 팔은 오래된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으니. 

이런 힘을 얻었음을 깨달아놓고 아무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애인의 모습이 부럽기도, 신기하기도 했지만 더 놀라운 건 죄책감에 저렇게나 사로잡혀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아무도 알지 못할 거라며 옆자리 아이의 시험지 답안을 탐내던 학생의 죄책감의 수천 배는 될 것 같았다. 아무한테도 걸리지 않을 텐데도.

 


시간여행이라는 것을 손에 넣었을 때, 인간보다 위대한 존재들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겨우 인간이라는 존재에 아무 반항도 하지 못하고 무릎 꿇은 모습들이 얼마나 짜릿할까. 그런데 어쩌다 보니 권력은 무슨, 친구라는 존재를 4명이나 만들어버렸고 심지어 그 중 한명과는 연인의 관계까지 이루어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목적도 다 잃게 만드는 사랑이란 감정은 진짜 바보 같다. 

권력을 처음 얻어서 수많은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 같았던 생각은 버린 지 오래였다. 이미 그보다 소중한 것들을 얻었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그 누가 애인인 고대 신의 사제가 피를 뒤집어쓴 채 제 앞에 무릎 꿇은 모습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58번동안 시간을 되돌리며 떠올린 것이 있었다. 이나의 "실수"를 막고 모든 일을 없었던 것처럼 만들 수 있었다. 아무리 고대 신이라도 화신의 물건이 그를 이기지 못할 리 없었다. 아멜리아 입장에선 약간, 휴지 풀어놓은 강아지 같달까. 

여러개의 타임라인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꿀 수 없다면 시간 선의 일부를 없애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론상, 가능했다. 그런데도 왜 안 하고 있냐면, 왜 없던 일로 만들지 않고, 왜 모두에게서 없던 일로 만들고 본인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닌, 눈물로 엉망이 된 채 무릎 위에 누워 잠에 든 애인의 머리카락만 쓰다듬어주고 있냐면—


"너 진짜 성격 더럽다."

"뭐? 나쁘다도 아니고 더럽다니. 불쌍한 인간한테 말이 좀 심하시네, 시간의 감시자님."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히히- 소리를 내고 웃은 아멜리아는 손에 쥐어진 시계와 커플링을 어루만졌다. 

"원래 인간이 제일 나쁜 놈들이라고 하잖아." 


"미안해, 과거로 되돌아가도 미래가 바뀌지는 않아. 그렇지만 내가 여기 있을게, 이나. 네가 한 짓이 아닌 거, 나는 이해할 수 있는 거 알잖아. 그 어떤 다른 인간도 이해하지 못하는 걸, 나라면 믿을 수 있잖아, 그렇지 이나?"

니노마에 이나니스는 인간이 맞는가? 그렇다면 왓슨 아멜리아는? 

"조금만 기다려, 이나. 조금만. 다 괜찮아질 거야." 

"...고마워, 아메." 

조금만 기다리면 다 괜찮아 질 거라는 거, 확신할 수 있었다. 이나니스의 미래는 아메의 손에 있었으니. 

"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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