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로에리] 말 없는 연가

스터디 2회차 - 2차창작

로그모음 by 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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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사람이 하루 종일 잘 수가 있을까? 에리카는 사람이 기본 10시간을 꼬박 잠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게 그저 신기했다. 이 남자는 침대에서 하는 활동이라면 뭐든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꼼지락댔다. 평소의 에리카라면 제 성질대로 뒤집어 엎고 답답한 품을 뛰쳐나갔을테지만, 빡빡한 일정을 겨우 마치고 밀린 잠빚을 갚는 사람에게 모질게 굴기란 어려웠기에 애써 짜증을 눌러 참았다.

“더 자…”

아니, 잠이 안 온다고요. 애초에 지금은 한낮인데요. 기상과 취침 시간이 비교적 일정한 바른생활소녀 프란츠 에리카는 낮잠을 잔 적이 거의 없었으므로, 졸리지도 않은데 아무것도 못 하고 남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는 것이 제법 고역이었다. 가뜩이나 가만히 있는 것을 못 견뎌하는 성미인데 여기에 남의 애착인형 노릇까지 하라니, 부아가 치밀어 심통만 났다. 이럴 거면 그냥 다른 여자를 안고 주무시라니까요? 같은 불평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일전의 사태를 떠올리고 이도 저도 못하고 답답한 숨만 내뱉었다. 그도 그럴것이, 평소의 이여로는 예민했지만 잠을 못 잔 이여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예민한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이 목표한 바가 있어 잠들지 않는 건 괜찮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컨펌이 늦어져 마감이 딜레이된다든가, 재료의 입고 지연으로 일정이 변동된다든가 같은 사유로 계획이 변경되는 것에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최근의 일정은 선박 사고로 인한 입고 지연에, 쓸데없는 것으로 트집을 잡고, 소통까지 잘 되지 않는 의뢰인 때문에 그는 금방이라도 누구 하나 잡을 것 같은 흉흉한 기세로 작업실에 박혀 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천하의 에리카도 한 수 접고 눈에 띄지 않게끔 굴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세상에서 자는 걸 제일 좋아하는 인간이다. 일정이 얼추 마무리되자마자 12시간을 내리 잤고, 일어나서 식사와 목욕 정도를 하더니 또 잤다. 어제도 장장 10시간을 잤는데 오늘은 여기에 낮잠까지 추가됐다. 에리카는 이 모든 게 이해가 안 갔지만 이여로가 평소에도 베개에 머리만 댔다 하면 부드러워지는 성질머리와 나긋한 성격으로 바뀐다는 게 제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중인격이야?

그러니 이여로가 잠든 틈을 타 품을 벗어나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쉽게 비유하자면 슈뢰딩거의 이여로 상태랄까. 지금 잠든 이 남자를 건드리면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했던 예민함이 폭발할지, 어쨌든 눈을 붙였으니 그냥저냥 넘어갈 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평소의 에리카라면 전혀 신경쓰지 않았을 테지만 요즈음은 뭐랄까, 쓸데없는 다툼은 피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후자였음 좋겠는데, 포르르 한숨을 쉰 에리카가 제 팔자를 탓하며 다시 한 번 뒤척일 때였다. 톡, 어떤 느릿한 움직임이 제 등을 토닥이는 게 아닌가. 규칙적인 리듬을 갖고 토닥이던 손길은 10초도 안되어 빠르게 느려졌지만, 잠들었나? 싶을 때쯤 다시 손이 움직였다. 아주 느리게. 계속. 끊길 듯 말듯.

“….”

도망치고 싶다.

졸려서 죽을 것처럼 굴었으면 그냥 편하게 푹 자면 될 걸, 고작 저 따위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걸까. 내가 잠들거나 말거나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뜬 눈으로 안겨있든 같이 잠들든 그냥 당신 품에 가만히 안겨 있으면 된 거 아니냐고… 가끔씩 이런 식으로 그의 애정을 확인할 때마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이런 애정이 익숙해지면 좋을텐데. 정말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고, 그래도 괜찮다는 걸 나 스스로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결론은 하나였다. 몇 번이고 되물어봐도 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도 에리카는 가끔 생각하곤 했다. 어떤 가능성을, 어떤 예외를… 하지만 그것은 형태를 갖춘 무언가가 되기 전에 사라졌다. 왜냐고? 확인하기도 전에 도망치길 택했으니까. 점토 반죽을 아무렇게나 상자 안에 집어넣고, 침대 밑 깊숙한 곳 어딘가에 처박아 잊어버렸다고 우기는 아이처럼 굴었다. 시간이 흘러 상자를 열어도 반죽이 어떤 형상을 빚었는지 알 수 없도록. 언젠가 열어보더라도 그 안에는 새까만 곰팡이와 벌레 같은 것들이 잔뜩 엉겨붙은 쓰레기만 나오게끔. 그렇게 되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이여로는 상자를 찾아서 꺼내 열라며 재촉하지 않았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제일 궁금해하는 주제에, 동시에 뭐가 나올지 두려워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상자가 열릴 일은 없겠지.

에리카는 묵직한 돌을 삼킨 기분으로 눈을 감았다. 생각이 잠잠해질 때까지 잠이나 실컷 자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한 숨 자면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다 사라지겠지, 그나저나 잠들락 말락 하는데 자꾸 등 두들기니까 거슬리는데 이 사람 언제 제대로 잠드는 걸까…

하지만 에리카가 까무룩, 정신을 놓은 뒤에도 느릿한 자장가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프란츠 에리카는 제 캐릭터가 아닙니다 (상대 오너님: ?)

지각해서 퇴고를 못했어요 ㅜㅜ 비문 있어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죄송

보고 싶었던 거: 낮잠 자면서 따끈.하게 오후 햇살 받으면서 폭닥폭닥한 모습

결과물: 둘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

이번주 주제는 낮잠이었답니다 여행 일정 때문에 1주차에 이은 대지각 쑈쑈쑈

공백 포함 2500자 정도 되는데 이것밖에 안돼? 싶어서 신기

다음주부터는 다른 페어로 써볼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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