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에 있는 하얀 손

주제: 커피


그날은 추운 겨울날이었다. 남자는 시린 날씨에 오늘따라 유난히 붉어진 손을 계속 쓸어내리면서, 적당히 한기를 떨쳐내기 위해 가게에 들어섰다.

가게에는 간판에 고급스러운 금빛 글씨들로 장식했고, 내용을 읽기도 전에 가게 안에는 커피 특유의 향이 이곳이 카페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제야 메뉴판에 시선을 향했다. 

‘에스프레소’, ’도피오‘, ‘마끼야또’, ‘꼰 빠나’ … 등, 딱 봐도 비쥬얼이 고급스러운 곳임을 깨달았던 그는 아차 싶었지만, 가게 안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는 고요함이 먼저 찾아왔다.

혹시 영업시간에 맞지 않은 때에 방문한 걸까, 그런 두려움을 떠나 ‘주문하는 곳’이라 적혀있는 공간에 걸어갔다. 그곳에서 말하라는 듯이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에스프레소 하나요.“ 어떠한 종류인지도 모를 복잡한 메뉴 중 자신이 알만한 이름을 자신이 없는 목소리로 주문하였다. 

’왜 아메리카노는 없는거지..‘ 작게 남자가 중얼거리자. “저희 가게에서는 아메리카노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손님.”  중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 볶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지금에서야 커피콩을 볶기 시작하는 건가 … 정말로?

“이 곳에 처음 방문 하신 건가요? 여기서는 커피만 마시려는 손님은 드물거든요. 의자에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나오는 데만 한참 걸릴 겁니다.”

커피를 볶으면 당연하게도 오래 걸리겠지. 커피에 대해서 무지한 남자였지만 그 정도는 알았다. 퉁명스러운 마음을 표하듯 의자를 길게 끌고 앞에서 앉았다. 팔을 들어보았으나, 이내 손을 내렸다.


“평소에 시계를 차시나 봐요.” 

…도대체 어디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걸까. “네, 오늘따라 좀. 바빠서 두고 왔어요. 늦잠을 잤거든요.“ ”이런, 준비가 급했나 봐요. 늦지 않았더라면 괜찮을테니까..“

”아… 결국 늦었어요. 그래서 사장님한테 혼났내요..“ ”… … …“ ”… … …“

긴 정적이 일어났다. 괜히 이런 이야기를 꺼냈나..라는 생각이 물씬 든 채로 남자는 다리를 작게 떨면서. 다른 주제로 말을 꺼내야지. 라는 결론이 도출되어 입을 여는 순간..

”그렇구나.“ ”많이 불쾌하지 않았더라면 좋을텐데.. 실례가 아니라면 어떠한 일을 하시나요? 사장님께서 나올 정도로 혼나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아, 물류업체에요. 여러 회사에서 나오는 짐들을 옮기는 곳이고.. 소규모의 작은 회사라서..” “무례하네요! 그러면 더 인력을 소중하게 여겨야 할 텐데, 너무한 것도 정도가 있지.” “…그래서 사실. 조금 장난을 쳐두었어요. 하하하.” ”아하하, 잘되었네요. 일 이야기를 좀 더 해주세요. 쉬는 시간은 있는 거죠?“

그외에 또 무슨 말을 주고받았나, 자신의 사소한 이야기. 휴일에 하는 것, 이따금의 취미 같은 사적인 말들을 하면서 깨달았다. 이런 말들을 주고받는게 얼마 만인지. 

생전 처음, 게다가 얼굴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이와 삼십 분 넘게 말을 이어나가는 건 어떠한 기분인가. 불쾌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어느샌가 후련하였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두고, 남자는 이 가게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깨달았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건 이 때문이구나.

대화의 흐름은 조금 느려지더니. 무언가를 따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얗고 긴 손이 뻗어지고, 잔은 내밀어졌다. 에스프레소가 담긴 한 잔.

“주문하신 에스프레소가 나왔습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의아한 채로 남자는 잔을 받아들이려고 하였으나 제 한기가 가시지 않은 손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음… 죄송해요. 이야기해보니까 어디 가야 할 곳이 생겨서요.”“그런가요? 그러면 포장이라도..”“아니에요. 제가 늦어서 장난을 쳐두었다고 하였잖아요. 일부로 사장실 앞에 쓰레기봉투를 쌓아두었거든요. 그게 양이 많아서 커피를 마실 시간도 없을 것 같거든요?” “… 그러세요? 그렇다면 굳이 강요는 하지 않을게요.”

남자는 의자를 끌어서 다시 원래 자리에 두었다. 저 너머의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커피를 받지 않아서 화가 났을지. 이유를 계속 궁금해할지… ‘뭐 저 사람도 하나의 일이겠지.‘ 그런 생각과 함께 자리를 떠나기 직전. 차분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다시는 오지 마세요.”

얼핏 상처받을 수 있는 말이었으나, 남자는 후련한 얼굴로 문을 열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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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이미지 방식으로 짜서 쓰기 시작함.. 내용이랑 시간을 생각하면 2일정도로 잡아두는게 좋을것 같아요.

일단 목표는 어느 사람이 이입해도..!!!!! 할만한, 시점이 조금 멀찍히 있는 글들을 자주 써서 한번 간접적으로 가까운, 2인 이상의 관계를 이어나가는것도 재밌을것 같네요.

커피숍은 고해성사를 하는 유명한 성당 or 사후라고도 생각하기도 했고, 점원은 흔히 심리학적으로 사람에게 다가가는 어법을 노력해보려고 했어요. 남자는 불법적인 장소에서 일하는 인물이라 막연히 생각하였으나..

해석은 나름이겠죠. 아무튼 상상의 여지를 남겨둔 글을 적는건 재밌어요.

작업곡- 양인모의 우아한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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