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믿지 않는 아이에게

마릴린 로판AU

푸른잔향 by R2d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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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se3frfGSvw?si=aK7oXTPTykrS0cv7

물오름 달 열아흐레

이렇게 날짜를 표기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다. 일반적으로 표기하던 날보다 의미 있어 보이고 예뻐 보이지 않나? (종이에는 무엇을 적을까 고민했던 것인지 펜으로 힘을 주어 종이를 누른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쓰는 마지막 글일지도 모르겠다. 두려움과 스스로 직면할 때가 된 거야. 신이 나를 가엽게 생각하신다면 무언가는 해주시겠지. 죽음이 두려우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두렵다. 하지만 피해갈 수 없는 일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 평생을 외롭게 살아왔으니 마지막조차 외롭게 보내더라도 감내해야 하는 일인 거야. 그저…. 그래 모두가 나를 잊지만 않아 줬으면 해.

이것은 그가 생에 쓰던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것이었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은 자의 두려움이 무엇이었는지, 직접 알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신에게 축복을 바라고 있었던 것일 거라 본다. 하지만 정해진 운명을 거스른다….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미 정해진 운명이 있었음에도 그는 그것을 거스르게 되었다, 결과는 죽음으로써 맞이하게 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신은 언제나 그랬듯이 생명을 사랑하였고, 안쓰러운 그의 영혼을 다른 차원으로 보내주었다. 

Marilyn Aurora le Klaus Manon (마릴린 오로라 르 클라우스 마농).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이름을 부여받은 아이의 붉은 적안은 멀뚱히 제 앞에 있는 자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남자는 무엇이 그리 기쁜 것인지 눈물까지 흘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Klaus Manon(클라우스 마농)백작 눈앞의 있는 남자는 그런 작위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그리고 클라우스 마농 백작의 유일한 자식이자 딸, 그의 영혼은 그곳으로 보내진 것이다. 심지어 이름과 미들네임은 신관들은 모두 전해 들을 정도로 공식적으로 신이 부여해준 이름으로, 세상이 뒤집힐 정도의 일이었다. 신이 직접 이름을 부여해주는 경우는 일명 `신의 아이`, 황실, 신관들 빼고는 여태껏 사례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최초의 존재가 된 것이다. 게다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힘을 지닌 자. 영혼을 그대로 옮기다 보니 이전의 삶에서 가지고 있던 능력도 함께 옮기게 된 것이었다.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나 된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 세상의 관심을 일제히 받게 되었다.

사랑받는 삶은 너무나도 이상했다. 단 한 번도 가족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행복한 유년기가 있었느냐고 고민할 수조차 없는 존재하지 않는 기억들. 이곳에서는 정말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작은 바람을 가졌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지독히 가부장적이고 여성들에게 억압적인 사회. 이전의 삶을 살았던 영혼이 이런 곳에 적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매번 수업은 빼먹고 기사들의 수련장으로 달려가기는 일상이며, 한번은 사내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겠다고 이야기했다가 여러 하인이 붙어 혹여나 혼자라도 잘라버리지 않을까 감시까지 하였다. 사교계에 데뷔할 나이가 되니 걷는 법, 식사하는 법, 춤추는 법, 사교계의 어법…. 등등. 새장 속의 카나리아밖에 되지 못하는 이런 삶은 질리기만 하였다. 그 누구도 그의 검술에는 대항하지 못하며 치유의 희귀한 능력. 사내로 태어났다면 가문의 뒤를 이어받기에 완벽한 후계자였지만 이곳에서는 남자만이 가주의 자리를 받을 수 있어 기회조차 얻지 못하였다. 오히려 혼기가 되니 남자들은 그와 그의 가문을 결혼으로 이어받기 위해 가식에 싸인 편지들, 선물들만 주기 일쑤.

신의 아이더라도 힘도 없는 여인이지 않은가. 여자가 그리 드세어 그 누가 데려가겠는가? 아하하! 나라면 데려가 줄지도 모르는데 어디 한번 아양이라도 떨어보지 않겠는가?

역겨운 인간들. 이 세상은 오히려 전 세상보다 더 썩어 빠진 곳이라는 것을 그는 겨우 깨달았다. 처음으로 가져본 가족이었기에 조금은 노력해볼까 하였지만, 결국에는 의미가 없었던 일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전처럼 그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가? 사내의 목에는 시린 감각이 드리운다. 쨍그랑! 그 모습을 목격한 가까이 있던 하녀는 접시를 떨구고 주변 사람들은 일제히 침묵과 두려움, 역겨움의 눈으로 그 장면들을 바라보고 있다. 많은 이가 모인 파티에서 이런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지만,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내뱉는 저 사람의 말 같지도 않은 것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기분이 더럽지 않겠는가? 샹들리에의 빛이 곳곳에 부서지며 끝에는 그가 쥔 검날에 비추어진다. 

누가 데려가 달라 하였나? 여인은 힘이 없다고 누가 말하던가? 어디 이 검날이 그대의 목을 어디까지 꿰뚫나 나의 힘으로 확인하여볼까?

이것은 그가 제국의 최초의 여황제이자 가장 많은 이들을 숙청한 이의 이야기 서막이 될 터이니. 이름도 기억하지 않아도 될 그 사내의 목은 신호탄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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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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