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윙크
말이 없어서 티가 안 나 그렇지, 진재유는 성격이 급한 편이었다. 4교시가 늦게 마치면 미리 와서 같이 급식 먹자고 기다려 주는 게 용할 정도. 그럼에도 신발 끈이 풀려 런닝 늦게 출발할 때 옆에서 우두커니 서 있어 주는 것. 이미 잘 준비는 다 해 놓고 룸메이트가 불을 끄기 전엔 잠들지 않고 꼭 잘 자라는 말을 해 주는 점. 재유는 그런 성격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이런 관찰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리고 관찰한 바를 되새길 정도의 기억력을 옵션으로 요구한다. 이렇게 어려운 일인데도,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인데도, 성준수는 진재유를 좋아하는 게 아주 쉬웠다고 생각했다. 인생에서 가장 쉬웠던 일이라고. 눈을 깜빡이는 것보다도.
무중력 윙크
아버지의 눈은 특이했다. 엄청나게 새카맣고 꽤나 길쭉해서 가만 보고 있으면 대체 시선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눈이라 그랬다. 준수는 어릴 때 아버지를 마주보다가 그런 눈을 자주 손가락으로 찔렀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우하하 웃으며 다른 사람한테 이런 장난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아버지는 눈을 찔리면서도 눈을 절대 감지 않았다. 문득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머니에게 귓속말로 “아빠가 눈을 안 감아.”라고 말했고 어머니는 심드렁하게 “원래 그런 생물이야.”라고 대답했다. 준수는 그 대답을 듣고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을 깜빡였다.
조금 더 자란 뒤, 아주 평범한 저녁 시간에 아버지가 말했다.
“사촌이 죽었다네.”
아버지의 가족을 준수는 본 적이 없었다. 아빠도 사촌이 있어? 물었을 때는 아버지가 감지 않은 눈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준수는 본 적 없겠지만. 어머니는 그럼 다녀와, 준수도 데리고. 라며 식사를 마쳤다.
“준수도 갈래?”
“어디 가는 건데?”
“장례식.”
“어느 동네에서 하는데?”
“어릴 때 아빠가 살던 데. 자주 못 가는 곳이야. 한번 가 볼까, 준수도?”
“응.”
그다음 날, 준수는 아버지와 하늘을 날아 우주로 갔다. 우주를 날아가는 동안은 주변이 모두 컴컴했다. 아버지의 눈 같았다. 준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생각했다. 아빠의 눈이 그렇게나 까맸던 건 아빠가 우주에서 와서구나.
아버지의 동네에서 모든 사람들은 눈을 감지 않았다. 그들은 감지 않은 눈으로 눈물을 흘리고 위로를 하고 인사를 했다. 아버지의 사촌이라는 사람의 배우자도 눈을 뜨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죽은 이의 얼굴은 눈이 꼭 감겨 있었다.
지구로 돌아오는 길에 준수가 물었다.
“아빠도 죽어야 눈을 감아?”
“어… 아빠도 회사 가서는 눈 잘 깜빡이지. 근데 진짜 감는 건 죽어서 감는 거야.”
“그럼 아빠 잘 때 눈 뜨고 잤어?”
“응. 아빤 그래서 너희 엄마 자는 거 보고 죽은 줄 알았다?”
“엄마는 아빠랑 같은 사람이 아니야?”
“엄마는 지구 사람이니까.”
“그럼 난 어떤 사람인데?”
아버지는 우주 공간에서 준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대답했다. 너는 눈을 감는 법을 아는 사람이지.
아버지가 했던 말대로, 다시는 우주를 날아가는 일은 없었다. 준수는 평범하게 지구 사람의 생체 기능을 유지하며 살아갔다. 아빠는 집에선 눈을 깜빡이지 않지만 사람들이 있는 바깥에선 지구 사람들처럼 눈을 자주 감았다 뜨곤 했고, 그런 풍경은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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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지구, 대한민국 고삼의 스트레스를 준수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입시는 사람의 여유를 갉아 먹었다. 하루하루는 무척 빠르게 지나갔다. 가족이 없는 부산까지 혼자 내려와 공을 튀기며, 준수는 악몽에 시달렸다. 좁디좁은 숙소에서 남자애들 땀 냄새 발 냄새를 다 맡아 가며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악몽을 꾸다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면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재유를 보게 되었다. 재유는 눈을 가볍게 감고 다리 한쪽을 이불 밖으로 내놓은 채 숙면 중이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잠도 금방 드나.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불을 끈지 겨우 15분이었다. 경기 하이라이트 하나만 보고 잘까…… 생각하며 잠금을 풀 때였다. 아버지에게 카톡이 왔다.
아들 지금 자나?
이런 문자에는 답장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귀찮은 일에 휘말릴 징조이기 때문이다. 준수는 애써 무시하고 알림창을 지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기 할 말을 늘어놨다.
부탁이 있는데
근처 산에 천문대가 있지?
아빠네 사람이 거기에 불시착 했다네
좀 가서 도와줄 수 있을까?
아빠네 사람…… 준수는 아버지의 회사 동료가 왜 불시착을… 까지 생각했다가 아버지가 외계인임을 떠올렸다. 아 맞다. 그럼 불시착한 건 아주 어릴 때 잠깐 봤던 그런 사람이겠구나. 준수는 몇 초를 고민하다 지금 당장? 이라고 물었다. 시간은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혹시나 잠이 다시 들까 싶어 팔로 눈을 가리고 1분을 버텼으나 잠은 역시 오지 않았고 준수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수 어데 가노……”
잠 기운이 가득한 재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수는 멈칫하며 대답했다.
“잠… 잠 안 와서 산책.”
“혼자?”
“어.”
“잠만…… 내도 갈게.”
오지 마. 딱 잘라 말했어야 했지만 재유가 하품을 하면서도 상체를 벌떡 일으키기에 입이 다물렸다.
“넌 자.”
“이 시간에 어델 혼자 가는데?”
“내일 아침 연습도 있잖아.”
“내일 연습 없다이가.”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러나 여기서 더 수상해 보이면 안 된다. 준수는 재유와 함께 조용히 현관을 나서며 어떻게 하면 재유를 떨어트려 놓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아빠는 지금 당장 천문대에 올라가 보라고 했는데…… 그런 걸 보면 꽤 위급한 상황일 것 같았다. 외계인의 객사에 숟가락 얹고 싶지 않아서 주머니에 넣은 손이 벌벌 떨렸다.
몰래 천문대로 가는 길을 검색하며 재유와 편의점으로 향했다. 온 김에 야식이나 쫌 먹으까. 과자 코너에서 기웃대는 재유를 두고 잠시 아버지에게 카톡 했다. 천문대 근처 어딘데? 있어, 보면 알 거야. 아니 그렇게만 말하면. 사람 한번만 살리자 아들.
하아아……. 깊은 한숨이 나왔다. 아니, 애초에 사람이긴 하셨던가? 준수가 액정에 짧은 손톱을 탁탁탁 두드리며 고뇌하고 있는 동안, 재유는 매대 사이에서 감자칩을 쳐다보고 있었다.
“…재유.”
“어?”
“나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그래.”
준수는 침착한 척 편의점 밖으로 나와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당연히 아무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 지금 아빠한테 전화 해봤자 카톡에서와 똑같은 소리를 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씨발 좆같은…… 준수가 슬리퍼를 한 짝 씩 툭툭 벗었다. 그리고 속으로 카운트를 셌다.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땡. 준수는 천문대 가는 길이 있는 야산 산책로 쪽으로 달렸다. 동네에는 밤늦게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급하게 슬리퍼를 들고 맨발로 달려가는 준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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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초능력은 눈을 감지 않는 것만은 아니었다. 우주를 아주 빠르게 날아가도 괜찮게 펼쳐지는 보호막이나, 간단한 물체 정도는 손 안대고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염동력. 초등학교 농구단에서 뛸 때 슛이 들어가지 않아 짜증내던 준수에게 아버지는 위로랍시고 말했었다.
“아빠가 공 넣어줄까?”
그리고 거실 한복판에 둥둥 떠다니던 농구공. 준수는 그 농구공에 책을 던져 떨어트렸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등짝을 때리며 그런 말 하지도 말라고 호통쳤었다. 그런 초능력이 있었으면 나는 이미 조던이거나 코비거나 암튼 그런 거였겠지. 초등학생 준수는 초능력을 부려 림에 몇십 몇백 번 공을 넣어버리는 자신을 상상했다. 어쩐지 그런 생각을 하니 짜증이 나서 일부러 아버지에게 공을 세게 패스하기도 했다. 그런 능력이 있었더라면 나는 농구를 하지 않았을 거야.
몸이 훨씬 더 많이 자란 뒤에도 준수에겐 당연히 그런 능력이 생기지 않았다. 직접 공을 튀기고 던져 넣으며 초능력이 생기길 바라지도 않았다.
코치와 감독이 제일 많이 하는 잔소리는 역시 “공 똑바로 안 보냐!”와 “공 끝까지 봐!”였다. 어떤 날은 유독 그 잔소리들이 오랫동안 머리에 남아 있었다. 휴식 시간에도 공을 만지고 쳐다봤다. 옆에 앉아 이온음료를 마시던 재유는 공을 와 그렇게 째려보는데? 하고 물었다.
“그냥, 공 끝까지 보라길래.”
“그렇게 말하면 조금 반항아 같다.”
“그런 거 아니야.”
“근데 경기 중에 내도 모르게 공 말고 사람 머리 붙잡을 때도 있다이가.”
“난 아직 그런 적 없는데.”
“경기 영상 보다보면 가끔 막 머리통 붙잡고 있는 선수 있더만.”
막, 이래 붙잡고. 재유가 준수의 손에 있던 농구공을 붙잡고 우습게 따라했다. 하하하… 맥빠지게 웃던 재유는 다시 앞을 쳐다봤다. 준수는 그런 재유의 옆 얼굴을 봤다. 기운이 가라 앉은 재유의 얼굴. 그날따라 앞으로 말려 있던 재유의 튼튼한 어깨. 재유는 멍하니 코트 끝의 백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드는 생각인데…… 그냥 눈 안 감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 절대 놓치는 일 없게.”
누구보다 공을 오래 만지는 재유가 그렇게 말하고는 뒤로 벌러덩 누웠다. 눈을 감고 있었다. 준수는 재유의 감은 눈을 보고 그 속에 있는 눈동자를 농구공으로 상상했다. 동그란 눈에 가득 차 있는 농구공.
그 뒤로 재유는 종종 말했다. 그때 눈이라도 안 깜박였으면 조금 더 좋은 곳에 공을 넘길 수 있었지 않을까. 준수는 위로가 서툴어서 해줄 말이 딱히 없었다. 그래도 너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능력이 좋은 포인트 가드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딴 건 딱히 위로의 언어가 아닌 것 같아 늘 말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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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대 앞으로 100미터. 화살표가 보였다. 준수는 숨을 헉헉 내쉬며 핸드폰의 플래시를 켰다. 천문대가 아니라 천문대 근처의 어디라고 했으니 이제부터는 표지판을 따라갈 수 없었다. 준수가 핸드폰을 이쪽 저쪽으로 비췄지만 빛에 걸리는 것은 울창한 나무뿐이었다. 후우우…… 숨을 길게 뱉으며 준수는 입을 열었다.
“저기요?”
“니 뭐하는데?!”
몸을 휙 틀었다. 플래시 끝에 걸린 것은 잘 모르는 외계인이 아니라, 잘 아는 지구인 재유였다. 재유는 방금의 준수처럼 숨을 헉헉 몰아쉬며 손바닥으로 플래시를 가리고 있었다. 준수가 급히 손을 내렸다.
“재유?”
“니는 거짓말 하면 다 티난다, 모르나?”
뭘 속이려고 그래 빨리 달리는지…… 재유가 짜증스럽게 중얼댔다. 준수는 할 말이 없었다.
“따라왔어?”
“기록 잴 때보다 빠르게 뛰데? 죽는 줄 알았다.”
“근… 데 안 따라와도 됐는데… 미안.”
“급한 거 아이가. 빨리 하고 가자.”
급한 거 맞고 빨리 하고 싶은 것도 맞는데 네가 알면 전우주적으로 곤란해지지 않을까 싶은데…… 준수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대고 있을 때, 숨을 다 고른 재유가 주머니에서 제 핸드폰을 꺼내 플래시를 켰다.
“뭐 찾으러 온 건데, 후딱 찾고 자러 가자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재유의 불빛에 준수는 곤란하게 턱을 긁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불시착 비행물체를 찾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눈을 감지 않는 외계인이 악 눈 부셔, 하고 비명을 질렀기 때문이다. 외계인은 아버지처럼 눈을 감지 않은 채로 고통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비행물체 안에 치료물품이 있으니 문만 열어 주면 자신이 꺼내겠다고 했다. 준수는 순순히 비행물체의 문을 열어줬고, 외계인은 초능력으로 그 안에서 치료물품을 둥둥 떠올려 꺼냈다. 이거 진재유한텐 뭐라 설명하냐, 머리를 굴리며 슬쩍 재유를 봤더니 재유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을 뿐 엄청나게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외계인은 준수의 손을 맞잡고는 정말정말 고맙다며 인사했다.
“아버님하고 많이 닮았네요.”
“제가요?”
“네. 아무튼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아버님께도 인사 전할게요.”
외계인은 이제 다시 비행물체에 올라타 보겠다고, 다른 사람에겐 들킬 일 없으니 걱정 말고 돌아가 보라고 했다. 재유는 외계인에게 깍듯하게 허리 숙여 인사했고 준수는 고개를 까닥였다. 재유가 먼저 수풀을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준수는 재유의 뒤를 따라 걷다가 멈춰 섰다. 낑낑 대며 비행물체에 올라타고 있는 외계인이 보였다. 잠시만요, 도와드릴게요. 준수가 다시 외계인에게 돌아가 그의 다리를 잡아 올려줬다. 아이씨 되게 무겁네… 그가 퉁, 비행물체 안에 안착했다.
“친절하기도 하네. 뭐 보답해줄 만한 게 없어서 미안해요.”
“그런 거 말고, 하나만 물어 봐도 돼요?”
“네.”
“제 어디가 아빠랑 닮았는데요?”
준수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길쭉한 눈. 거의 항상 웃고 있는 표정. 남들에게 좋은 말을 자주 해주는 다정한 습관. 대체 뭐가 닮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아버지의 등짝을 자주 때리던 어머니와 닮았을 텐데.
외계인은 문고리를 잡고 웃으며 대답했다.
“눈이 닮았어요.”
문이 닫혔고, 곧 비행물체는 눈앞에서 투명해졌다. 꽤 멀리까지 간 재유가 준수, 안 오나? 자빠짓나? 하고 외쳤다.
“어어, 지금 가!”
준수는 재유가 밟아 눕혀 놓은 수풀을 그대로 밟고 등산로로 빠져나왔다.
숙소로 가는 길에 준수는 재유를 유심히 쳐다봤다. 아무 말이 없었다. 먼저 말을 꺼내야하나 싶어, 속으로 이야기를 정리했다. 우리 아빠가 사실 외계인인데, 아까 산에 있던 그 사람하고 같은 행성 사람이거든, 그래서 어떻게 연락이 닿았나 봐, 여기에 불시착했는데 마침 내가 근처에 있으니까…… 도대체 이런 걸 누가 믿냐? 나야 태어날 때부터 외계인 아들이었다지만. 재유는 그저 성준수가 드디어 미쳐 돌았구나, 라고 생각할 것 같은 이야기였다. 준수는 정리했던 말들을 우웩 토해버리고 싶었다.
“어, 준수.”
“왜?”
“니 피난다.”
“피? 어디?”
“발에! 뛰다가 뭐 밟은 거 아니가? 우짜노. 편의점 가자.”
“별로 안 아픈데…”
“저 앉아 있으래이, 내 금방 갔다 오께.”
재유는 손가락으로 길가의 벤치를 가리키며 건너편의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나 괜찮다고! 재유의 등에 대고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웬 피가 나. 선 채로 슬쩍 발을 들어 보니 정말 빨갛게 피가 나고 있었다. 발바닥에 물집 잡힌 적은 여러 번 있었으니까, 운동할 때도 별 문제 없을 것이다. 와중에 아주 현실적인 생각이었다.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던 준수를 보고 재유는 잔소리했다. 앉아 있으랬잖아, 니 말 진짜 안 듣네. 팔을 붙잡힌 준수는 억지로 벤치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재유는 준수 앞에 꿇어 앉아 반창고의 포장을 깠다.
“발 들어 봐라. 이거 붙이고 가자.”
“내가 할게.”
“빨리.”
쪽팔려. 엉거주춤 발을 들어 올리자 재유의 따뜻한 손가락이 발바닥에 닿았다. 간지러웠지만 꾹 참았다. 반창고를 꾹 눌러 붙인 뒤 준수의 발을 슬리퍼에 얌전히 내려준 재유가 손을 바지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고마워 재,”
“니 피 빨간색이네?”
파란색일 줄 알았는데. 재유가 벌떡 일어났다. 준수는 멍청하게 어? 하고 되묻기나 했다.
“니도 아까 그 사람처럼 외계인 아이가.”
“나는… 아니야.”
“말을 와 저는데? 가자.”
“아니 난 외계인 아니야. 진짜로.”
재유는 훌쩍 걷기 시작했다. 준수는 허겁지겁 슬리퍼를 신고 재유의 뒤로 따라 붙었다. 그리고는 아까 정리했던 말들을 다시 엉망진창으로 섞어 말하기 시작했다.
“난 외계인은 아닌데, 그러니까, 우리 아빠가… 우리 아빠가 외계인인데 나는 아무튼 아니고. 우리 엄마는 그냥 한국인이야, 지구 아시아 한국인. 나는 완전 외계인은 아니라서 아까 그 사람처럼 초능력 같은 것도 없고, 그냥 평범한 지구 인간이야. 아까 그 사람은 우리 아빠랑 같은 행성에서 왔는데, 하… 사실 나도 잘 몰라.”
씨발 내가 지금 뭔 말을 하고 있는 거냐. 더 못 믿게 생겼잖아. 절망에 가까운 짜증으로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러뜨렸다. 앞서 가던 재유가 갑자기 멈춰 서서는 뒤를 돌아 준수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근데 뭐가 좀 다르나? 내 눈엔 똑같아 뵈던데.”
“어… 별로 안 다른 거 맞아.”
“맞나. 피도 파란색 아니고?”
“아닐걸.”
“그럼 뭐가 다른데?”
하늘에서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동시에 두 사람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재유가 눈을 깜빡였다. 준수는 재유의 눈 아래에 점점이 박혀 있는 흐릿한 주근깨들을 보다가 조용히 답했다.
“그 사람들은 눈을 안 감아.”
“눈?”
“어. 죽어서만 감는대. 다들 이상하게 긍정적이고… 아까처럼 물건을 손 안 대고 띄우기도 하고.”
“그거 신기하데. 그럼 그 사람들은 농구 잘 하겠다.”
킥킥. 재유가 농담하곤 웃었다.
“네가 더 잘해.”
준수는 정색하고 대답했다. 재유가 아… 글나? 하고 머쓱해 했다. 아니, 너한테 뭐라 한 게 아닌데.
“너 가끔 눈 안 감고 농구하고 싶댔지.”
“내가 그랬나?”
“모른 척 하지 마.”
“맞나……”
“어. 근데 아까 그 외계인 봤지?”
“뭘?”
“불시착한 거 봤잖아. 눈을 계속 뜨고 있는데도, 뭐 잘못 봐서 떨어졌잖아.”
눈을 감지 않는다고 해서 늘 최고의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본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눈 하나 안 감는다고 해서 쉬워지는 건 없다. 눈을 감지 않는 외계인이어도, 물체를 둥둥 띄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세상의 전부가 쉽게 되지는 않는다. 준수가 이 긴 말을 더듬더듬 해낼 때, 재유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급한 성격이라도 준수의 말을 끝까지 다 들어줬다. 그건 준수가 좋아하는 재유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농구는 거기 사는 누구보다 네가 더 잘 해.”
크흠. 준수는 말을 애매하게 마무리 지었다. 상처 난 발바닥이 간지러웠다. 재유는 그제야 킬킬 웃어줬다.
“그러게, 맞나?”
“응.”
“말 뿐이래도 고맙데이.”
“사실인 거야, 말 뿐인 게 아니라.”
“알겠다. 빨리 가자.”
재유가 다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준수는 그 뒤를 열심히 따라 붙었다. 가로등 불빛에 언뜻 언뜻 보이는 재유의 동그란 머리와 단단한 어깨. 준수는 일부러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최대한 오랫동안, 잘 지켜보려 노력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똑바로 보려고 애썼다.
✦
그날 이후로 재유는 공을 더 유심히 봤다. 준수에게 패스할 때 공이 얼마나 공중에 떠 있는지를 속으로 세어보기도 하고, 준수가 넣은 공이 림 주위에 얼마나 맴도는지를 숨 멈추고 지켜보기도 했다. 그 찰나에는 눈을 감지 않았다.
어떤 날은 준수의 공이 무엇 하나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럴 때면 준수가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어차피 쉬운 건 없다고, 초능력 한두 개쯤 생긴다고 해도 세상은 나에게 함부로 너그러워지지 않는다고.
눈을 깜빡이는 순간 겨우 들어가는 준수의 공에 2점의 점수가 올라갔다. 라인에 걸쳤나… 아쉬워하는 준수가 다시 코트 중앙으로 달려갔다.
“쟤네가 스크린 하면 나 줘.”
준수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였다. 재유는 준수가 말한 상황에서 준수에게 공을 패스했다. 손에 탁, 감기는 농구공의 돌기. 준수는 폴짝 뛰어 오르며 팔을 뻗었다. 아주 잠깐의 무중력이었다. 그날은 경기에서 이겼다. 겨우 3점차였다. 발바닥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올 때쯤엔 이미 밤이 되어 있었다. 경기 리뷰는 내일 할 테니 다들 어서 일찍 자라고 감독은 말했지만, 준수는 또 잠이 오지 않았다. 누워서 손가락만 매만지다가 조용히 일어났다.
“또 외계인 구하러 가나?”
“아 깜짝아.”
옆으로 누운 재유가 준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준수는 몸만 돌려 어둠 속 재유의 얼굴을 찾았다.
“그런 거 아냐.”
“그럼 또 잠 안 오나?”
“먼저 자, 잠깐 바람 쐬고 오게.”
“같이 가자.”
“이번엔 외계인 아니거든, 진짜.”
“외계인 같은 거 하나도 안 궁금하다.”
내 겉옷만 입고. 재유가 일어나 겉옷을 잡아들었다. 준수는 재유를 기다리며 몰래 발바닥을 반대쪽 발목에 부볐다. 간지러웠다.
숙소에서 나와 근처 공원 농구 코트 앞에 앉았다. 늦은 시간이라 아무도 없었다. 굴러다니는 농구공이 있어 자연스럽게 만져봤으나 바람이 빠져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녹색 바닥에 나란히 앉았다. 둘은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별똥별도 안 떨어지는 하늘인데 열심히도 봤다. 그때 재유가 입을 열었다.
“내가 접때 그 외계인 만나고 뭔 영상 하나를 봤거든.”
“안 궁금하다더니.”
“토 달지 마라.”
“응.”
“뭐 우주선이든 위성이든, 뭐 하나 날려 보내고 돌아오는 데에 쓰는 에너지가 엄청 나다데.”
“그래?”
“어. 그래서 천문학적이라는 말이 생깃나… 암튼 돈도 말도 안 되게 들더라고.”
무중력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건 아주 많은 힘이 든다고, 물리학적으로 어쩌고 저쩌고 하던데 사실 그런 어려운 이야기는 기억이 안 난댄다. 재유는 다만, 그 외계인들이 눈을 감지 않는 것이 떠올랐다고 했다.
“로켓도 석유 이마이 써 가 앞으로 가는데, 눈 한번 감는 건 얼마나 힘들겠노?”
“…암스트롱이 달에서 눈 감고 찍은 사진 없냐?”
“우주에서 잠깐 사는 거 말고, 영영 거서 살던 사람들은 힘들 수도 있겠다, 싶더라.”
“그런가.”
무중력 상태의 공간에서 눈을 깜짝이는 건 어쩌면 스스로 중력을 만들어 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재유가 땅바닥에 구르던 바람 빠진 공을 림으로 던졌다. 공이 림을 통과하기까지 아주 찰나. 재유의 눈동자가 위로 솟은 것을 쳐다봤다. 모든 것이 공중에 잠시 멈춘 아주 순간에, 준수는 눈을 깜빡였다.
아, 사실 되게 힘든 일이구나, 눈을 깜빡인다는 건. 중력을 거스르고 뛰어오르는 것처럼, 중력이 없는 상태에서 눈을 끌어당겨 감는다는 건. 재유가 했던 말이 진짜처럼 느껴졌다.
바람 빠진 공이 툭, 거칠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재유는 구르다 마는 공을 괜히 발로 차내고 준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드가서 자자. 준수는 재유의 손을 맞잡으며 생각했다. 아직 나온지 얼마 안 됐는데. 하여간 성격 진짜 급하다. 그 급한 성격으로 공중에 오랫동안 공을 띄우는 재유가 늘 신기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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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나의 뿌리’라는 제목의 학습지를 나눠줬다. 첫 번째 질문의 대답으로는 준수의 이름과 가족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다음엔 ‘우리 가족은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요?’라는 질문이 있었다. 식탁에 앉아 있던 준수는 그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옆에서 초능력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아버지에게 다시 물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했다고 써야 돼?”
“음… 아빠가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했을 때부터라고 써야지.”
“그게 시작이야?”
“응. 눈을 깜빡일 만큼 사랑한다고 했을 때부터.”
그때 싱크대에서 비눗물이 튀었고, 아버지는 또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얻어들었다. 아버지는 그러면서도 웃고 있었다. 눈을 뜨고 있었지만 분명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눈을 깜빡일 만큼이 얼만큼인데?”
“죽을 만큼.”
아버지는 준수에게 대답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튄 비눗물을 닦았다. 공중에 비눗방울이 떠올랐다가 터졌다. 준수는 학습지에 글자를 적었다. 아빠가 엄마한테 죽을 만큼 사랑한다고 했을 때. 어린 준수는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며 자신이 쓴 글자를 꼼꼼히 읽었다. ‘죽을 만큼’을 지우고 ‘눈을 깜빡일 만큼’이라고 고쳐 썼다. 시작과 더욱 잘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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