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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쟁] 그 선곡은 망하지 않았다

가비지 캠퍼스 사운드 au / 대학교 밴드 소모임 하는 지상즈+ 준수&재유

Macross Galaxy by 쉐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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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쟁 합작 참여했습니다.

https://www.postype.com/@everymoment-of-junjaeng

처음 내게 왔던 그날처럼

모든 날 모든 순간

함께 해

서정적인 건반음과 함께 부드러운 노랫소리가 끝을 맺었다. 그리고,

“아, 씨발…….”

노래를 마친 재유가 마이크를 스탠드에 꽂기가 무섭게 손목에 찬 갤럭시 워치를 보던 준수가 갑자기 욕을 내뱉었다.

“뭐꼬? 갑자기 욕을 하고.”

“씨발, 하…….”

준수는 가타부타 설명을 붙이는 대신 기타를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며 휴대폰에 도착한 메시지를 재유에게 보여주었다. 준수와 태성이 속해있는 과의 단체 톡방에는 ‘공태성 학우의 중도 휴학’ 소식과 함께 ‘재도전✊💪’ 이라고 적혀있는 그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가 캡쳐되어 올라와 있었다. 재유도 이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았기에 절로 얼굴이 굳었다. 두 사람의 표정이 심상찮아 보이자 상호와 다은은 악기를 두고 일어나서, 희찬은 기타를 어깨에 멘 채로 다가왔다.

“왜요, 함 보자. 또 먼 일인데요?”

“하, 그 씨발 새끼, 어쩐지 지각할 때마다 수능 때 마킹을 잘못해서 대학 레벨이 어쩌고 지랄을 하더라니 기어코…….”

“엥? 뭐요? 그니까 이 햄 지금……”

“봐, 내 말이 맞제. 그 햄 기미가 영 이상한 게 반수한다카면서 빤스런할 거 싸이즈 나온다 안캤나. 여친이 연세대람서.”

상호의 말에 재유는 한숨을 쉬고 준수는 쓰레기통을 걷어찼다. 텅! 구겨진 악보 용지와 아이스크림 막대가 바닥을 굴렀지만 준수는 개의치 않고 천장을 보며 또 욕을 했다.

“아니, 지가 수능을 어떻게 보든 대학을 옮기든 상관없는데 이따위로 똥 뿌릴 거면 밴드를 애초에 왜 들어왔냐고 씨발놈이…….”

“…….”

그거야 너랑 뒤지게 싸운 것 때문이겠지…….

성준수를 포함한(놀랍게도 그는 자기 객관화가 아주 안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이 밴드, ‘지상 최강’은 사실 동아리도 뭣도 아닌, 그냥 소모임의 형태로 굴러가는 밴드였고, 따라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응 너 하나 빠져봤자 우리 다 망해~ 꼴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교양 영어 수업에서 같은 조가 된 재유와 준수가 음악이라는 큰 주제로 발표를 준비하다 어쩌다 보니 공통 관심사가 밴드인 것을 알게 된 것부터였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실천력 덕에 밴드나 함 할래. 어디 들어가긴 귀찮은데. 라는 말이 나온 시점에는 이미 서로 주변을 수소문해 악기를 약간이라도 다룰 줄 알면서 타 밴드에 들어가지 않은 녀석들을 물색해둔 뒤였다.

동아리에 비해 소모임은 고인물이랍시고 비효율적인 군기를 잡는 선배들 같은 사람이 많지 않아 인원 컨트롤이 쉬운 편이었다. 덕분에 고정된 연습 시간에 스케줄을 억지로 맞추는 대신 다 같이 스케줄을 맞춰 연습을 할 수 있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거기에 근본 있는 동아리들이 으레 갖고 있는 정기적인 모임 같은 것도 없었으니 얼마나 자유로운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밴드 활동을 하면서도 시간을 뺏기지 않고 남는 시간에 강압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연습해서 공연을 올릴 수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 그랬다는 얘기다.

실제로 소모임은 동아리보다 구린 점이 훨씬 많았다. 단적으로 방금 말한 장점부터가 시간이 안 맞으면 그냥 영원히 연습을 할 수가 없다는 치명적인 오류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습 시간 한번 잡으려면 이날은 과제, 이날은 본가 가는 날, 이날은 봉사활동, 이날은 과외, 이날은 알바, 이날은 데이트……씨발. 그런 식으로 달력을 넘기고 넘겨 기적적으로 잡히는 날짜는 다음 달 셋째 주 금요일 저녁 뭐 이딴 식이었다. 6명은 생각만큼 컨트롤하기 쉬운 인원도 아니었으며 6인의 시간이 기적적으로 모두 비는 시간을 구하는 건 존나 어려웠다.

게다가 지원비는 어떤가? 동아리는 학교 차원의 지원이 나오지만 소모임에 그딴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나마 학생회관에서 운영하는 아무도 모를 소모임 지원 프로그램을 상호가 물어와서 겨우겨우 쥐꼬리만 한 회비로라도 연습비에 보탤 수 있는 게 고작이랄까. 그나마도 초반엔 재유와 준수의 주머니에서 연습비가 나가다가 그들의 지갑 사정상 회비 아니면 폐부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 생긴 지원 프로그램이니, 어찌나 다행인지 몰랐다. 덕분에 연습실을 대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모일 때는 멤버 중 아무나의 과 건물이나 라운지를 눈치 보며 사용하는 유목민 생활에 익숙해져야 했다.

거기에 악기를 본격적으로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체르니 30 돌파한 놈 같은 류도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레벨로 쳐서 데려왔으니 실력이 괜찮을 리도 없었다. 공연용 세트리스트도 결국 그 실력으로 그나마 커버가 될 만한 쉬운 곡들로만 채워야 했다. 

……근데 이 모든 걸 알면서도 툭하면 빠지더니 그게 탈주각이었다고? 

준수의 혈압이 대폭발 직전인 와중에, 드럼 스틱을 휙휙 돌리던 다은이 정적을 깼다.

“그래서 우리… 공연할 수 있는 거 맞음?”

“…….”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태성의 자리가 빵꾸나도 그럭저럭 새 사람을 구할 필요까진 없는 보컬이라는 점일까. 노래는 실용음악과인 재유를 비롯해 다른 멤버들도 얼추 하는 편이었다. 다만 이제 악기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신경 쓰이는데 거기에 노래까지 동시에 해야 해서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놈들이 징징댈 게 눈에 선하긴 했지만…….

하지만 당장 어제도 사정사정해서 과외 일정을 바꾸고 온 준수에게 그런 여유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하, 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공연은 무슨……. 하, 차라리 잘됐네.”

그러고는 걷어찼던 쓰레기통을 바로 세우고 구겨진 종이 뭉치들을 하나씩 쓰레기통 안에 던져 넣으며 딱딱하게 말했다.

“씨발, 공태성 그 새끼만 바쁜가? 나도 존나 바쁜데 억지로 시간 쥐어짠 거야. 실습이 몇 개고 논문이 몇 갠데……. 시간 굳어서 좋네. 니들도 바쁘던데 걍 할거하러 가.”

“네? 형 그럼…….”

“해산이다. 다음 달에 잡힌 연습도 없는 걸로 하지 뭐? 정 하고 싶으면 기말 끝나고 방학 때 연습해서 내년 연초에 공연을 하든가.”

“…….”

“난 씨발, 당분간 악보 쳐다보기도 싫어.”

메고 있던 기타를 케이스에 집어넣는 준수를 재유는 그저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결국 분위기에 눌린 1학년들도 준수를 따라 주섬주섬 악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려뒀던 기타를 갈무리하던 희찬이 다소 아쉬운 듯 말을 걸었다.

“그럼 우리 진짜로… 올해 공연 안 해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공연을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되는 거였다면 누구든 선뜻 대답했겠지만,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여건과 점점 예민해져 가는 분위기를 견디기는 조금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찬은 자신이 조금 더 잘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 번 더 목소리를 냈다.

“악기를 새로 구하는 것도 아이고…… 셋리에서 태성햄 곡 빼고 우리가 각자 한 곡씩만 더 부르거나 하는 식이면 개않지 않나?”

“…….”

준수도 희찬의 의견이 그럴듯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공태성과 세상에 대한 살의가 너무 강한 나머지 타인의 의견이 입력되지 않는 상태였을 뿐이다. 결국 재유가 희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 일단 정리들 하고 오늘은 집에 가라. 주말 동안 찬찬히 함 생각을 해보자…….”

상호 역시 준수 쪽을 살짝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태론 뭘 결정하면 안 될 것 같긴 해요.”

모두가 의견 일치를 본 부분이었다.

***

그렇게 공태성이 빠진 지상 최강의 멤버들은 다 같이 묵묵히 연습실 정리를 하고 나왔다. 재유가 에어팟을 두고 왔다며 다시 연습실로 들어가자 멀대 같은(취미로 농구하다 만난 놈들이라 다들 키가 컸다) 네 사람은 연습실 건물 옆 골목에서 서성거리며 그를 기다렸다.

‘씨발, 존나 담배 말리네…….’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준수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알코올이든 니코틴이든 발암 물질의 힘이 절실했다.

‘어차피 스트레스야말로 1급 발암 물질이니까 이 상황에선 별 상관없지 않을까? 하.’

지도교수가 들었다면 뒷목 잡고 쓰러질 이딴 말도 안 되는 정신 승리까지 할 정도로.

하지만 비흡연자의 주머니에 담배가 있을 리가 있나. 그는 주머니가 허전할 것을 알면서도 손을 찔러넣었다가 괜히 짜증을 냈다.

“야, 야. 담배 있냐?”

“아뇨…….”

“하……. 그래, 앞으로도 피지 마.”

“네…….”

꽁트 같은 대화가 마무리되는 순간 등에 베이스를 멘 재유가 건물 바깥으로 나오며 준수의 어깨를 툭 쳤다. 

“아, 재유. 맞다 연습실비는…….”

“내가 냈으니 신경 쓰지 말고 집에들 가라.”

“뭐? 재유 니가 왜…….”

“신경 쓰지 말라니까.”

“야, 진재유.”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다은의 자취방에서 족발을 시켜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보자는 이야기를 하던 삼인방은 뭔가를 감지하고는 빠르게 인사하며 사거리를 지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연습실 옆 골목에는 준수와 재유만 남았다. 재유가 낮게 웃으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거 뭐, 몇 푼이나 한다꼬.”

아무렇지도 않게 손끝에 걸린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재유가 대답했다. 준수는 잠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재유의 손에 들린 라이터를 빼앗고 입에 물린 담배를 채갔다.

“밥이나 먹으러 가지?”

“아, 알았다. 내 딱 한 대만 피고.”

“싫어.”

“뭐라노.”

안 돼도 아니고 싫어라니, 금지의 표현이라기엔 조금 웃기지 않나? 가끔 준수가 이럴 때마다 재유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와, 니는 되고 내는 안 되나.”

“뭐?”

“니 아까 아들한테 담배 있나 물어보지 않았나.”

“……그게 들렸어?”

“참나. 니 순 내로남불이네?”

“……아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대놓고 말을 돌리는 준수를 보며 재유는 소리 내어 웃었다.

***

주기적으로 연습실 이용료와 부원들의 간식비가 빠져나가는 통에 그들의 지출 관리는 원만하지 못했다. 게다가 재유는 최근에 작곡용 맥북까지 새로 장만하는 바람에 연습실비까지 통 크게 결제한 것 치고는 별로 멋지지 않은 통장 잔고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준수도 모르지 않았다.

때문에 결국 둘은 암묵적 합의를 통해 정문 근처 김가네에서 김밥을 사서 자취방으로 향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입맛이 까다롭지 않고 서로의 형편을 잘 아는 덕에 허세 없이 같이 밥을 먹기가 좋아 자주 밥을 먹곤 했다. 자연스럽게 라면을 끓여와 김밥 옆에 두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지금처럼.

참치김밥의 꼬다리 부분을 입 안에 넣으며 재유가 준수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묵묵히 라면을 면치기하던 준수는 소주잔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재유가 건넨 잔에 자신의 잔을 짠 맞대주고는 입에 소주를 시원하게 털어 넣었다. 재유도 따라서 첫 잔을 입에 털어 넣고는 물었다.

“니 진짜로 바쁜데 시간 억지로 내감서 나온 거였나?”

“아, 그거…….”

“내 보기에 니 스케줄은 올 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그럼 애초부터 무리였던 거 아이가? 밴드.”

한가해 보이는데 거짓말하는 거 다 안다는 뉘앙스가 아니었다. 애초에 둘은 룸메이트라 서로 스케줄을 꿰고 있어 그런 거짓말은 통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그보단 오히려 연초부터 바빴는데 지나치게 무리한 게 아니냐는 걱정의 말에 가까웠다.

“그래 힘든데 뭣 하러 한다 그랬노?”

준수는 대답 대신 잔에 소주를 다시 따라 마셨다. 그리고 이어진 열정적인 면치기 덕에 라면은 이제 국물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입 밖으로 대답을 뱉는 대신 자꾸 무언가를 입안에 집어넣기만 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뭐…… 당사자 앞에서 얘기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니까.

“니가 하자고 했는데 어떻게 안 하냐고.”

어? 얘기해버렸다.

입 밖으로 마음의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온 것을 반 박자 뒤에 깨달은 준수가 깜짝 놀라 재유를 보았다. 재유 또한 동그란 눈을 크게 뜬 채로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오, 미친…….’

자신이 주둥이 컨트롤이 어려울 정도로 취했음을 자각하며 준수가 자책하는 동안, 재유의 얼굴은 놀란 표정에서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바뀌어있었다. 말없이 소주잔을 아슬아슬하게 가득 채워 원샷하고 난 그는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약간… 속상해 보였다.

빈 소주병들이 두 사람 옆에 굴러다니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기 싫고 시간도 빠듯한데 내 때문에 억지로 하고 있었다는 거가? 내는 그런 줄도 모르고 눈치 없이 굴었네…….”

반병쯤 마신 준수는 안 그래도 열이 오르기 시작한 얼굴에 갑작스럽게 열이 더 치솟는 것을 느꼈다.

‘아, 뭐지. 이거 아닌 것 같은데.’

비록 자신의 주둥이는 잔뜩 취해 신뢰를 잃은 상황이긴 했지만 어쨌든 정정은 해야만 했다.

“바쁜 것도 맞고 니가 하자 그래서 한 것도 맞는데…… 싫은 걸 억지로 한 건 아니거든?”

다만 재유의 어이없는 표정은 그대로였다. 무슨 등속 운동으로 움직이는 로봇처럼 미지근하게 식은 라면 국물을 떠먹은 그는 또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시간도 없는데 내가 하자캐가 했다매. 그게 어떻게 억지로가 아니게 되는데?”

준수가 이번 잔을 채우는 것을 마지막으로 빈 병이 하나 더 추가됐다. 이제 준수는 억울함까지 느끼고 있었다.

“아니, 진재유. 자꾸 말꼬리 잡을 거야? 니가 하재서 같이 하는 게 어떻게 억지로야, 내가 너랑 같이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재유는 귀를 의심했다.

‘점마가 방금, 뭐?’

재유는 술이 센 편이라 아직 컨트롤이 힘들 정도로 취하진 않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술기운에 좀 감정이 격해진 정도일까. 그마저도 방금 들은 말 때문에 완전히 다 깨버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어느샌가 얼굴이 벌게진 준수는 자신의 잔과 상대방의 잔을 동시에 채우면서 계속해서 억울한 표정으로 주절거렸다.

“그래서 씨발, 기왕에 하는 거 있어 보이게 구색 좀 갖춰서 하려고 했는데 공태성 그 새끼가 초를 쳐놔서 하… 남은 인원으로라도 어떻게든 하면 좋긴 하지. 근데 아깐 솔직히 존나 야마가 돌아서…….”

준수의 한탄은 계속 이어졌지만 이제 재유의 귀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 정도까지 열과 성을 다하는데 억지로 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정말 진심이었다.

‘그니까 시간 없는데 쪼개서 같이 밴드를 해준 게 내 때문인데 이래 진심이라고…….’

자각한 순간 갑자기 심장이 튀어나올 기세로 뛰는 것 같았다. 재유는 저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올렸다. 기분 탓이 아닌지 심장이 방망이질 치는 것이 손바닥에 어렵지 않게 전해져왔다.

“재유. 재유?”

“어? 어어.”

“뭐하냐, 듣고 있어?”

“아, 아니. 미안타. 술을 묵어가 그런지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어가…….”

“뭐? 봐봐.”

준수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다들 눈치채고 있었겠지만 이쯤에서 공식적으로 밝혀보자면 그는 의예과에 재학 중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그냥 의예과 학부생이라는 신분을 가진 혈중 알코올 농도가 면허취소 수준인 꽐라일 뿐이었기에 돌팔이나 다를 게 없었지만.

아무래도 술 먹고 심장이 빨리 뛴다는 환자(도 아니지만)의 가슴에 소리를 듣겠답시고 귀를 대는 의사는 없지 않겠나.

흡, 졸지에 준수의 머리를 가슴에 품게 된 재유가 숨을 들이켰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는 별개로 심장은 더욱더 거세게 뛰었다.

‘아냐. 이거는 술, 술 탓이다…….’

재유가 주문을 되뇌는 동안 발생한 또 다른 문젠 그거였다. 소리를 들어보겠답시고 재유의 가슴에 귀를 댄 준수가 그 심장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술이 깨버린 것이다.

‘씨발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아무리 취했기로서니 어떻게 이런 남사스러운 짓을? 자기가 들이대 놓고 자기가 너무 놀란 나머지 준수는 잔뜩 얼어붙어 딱딱한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렇게 시선을 들어 재유를 올려다보는데 그 얼굴이 너무너무 빨갰다. 그리고 그 표정이…….

‘아. 진재유가 술을 좀 먹는다고 얼굴이 빨개졌었나?’

술 탓이라고 준수는 모를 거라고 다짐하던 재유 역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대뜸 제 허리를 콱 붙잡고는 가슴팍에 귀를 댔다가 별안간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하얗고 잘생긴 얼굴에 서린 놀란 표정이…….

‘임마 언제 이래 다시 하얘졌지. 술 깬 게 아니고서야.’

그렇게 팔을 뻗어 목을 감싸고,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받치고, 누가 올라가고 누가 내려가고,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혹은 동시였는지 모르겠지만, 입술이 맞붙었다.

놀랍다면 놀랍게도 이것은 두 사람에게 모두 첫 키스였는데, 솔직히 그렇게까진 로맨틱하진 않았다. 라면에 소주를 마시다가 원룸에서 추리닝 바람으로 하는 첫 키스가 뭐 그리 황홀하겠는가. 그래, 그렇게 대단하지 않은 한순간도 입술을 떼는 순간 그대로 과거가 되어버릴 테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더…….

“하아, 하아,”

“하아…….”

그렇게 기세만 보면 몇 시간이고 이어질 것 같던 키스는 호흡이 딸려서 그만두었다.

“키스 한 번만 더 했다간 숨넘어가겠네.”

두 사람의 공통된 감상이었다. 어쩐지 키스 한 번 했다고 이젠 부끄러움이고 뭐고 다 날아간 느낌이 들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재유의 목에 매달려 있던 준수는 힘을 빼고 그대로 재유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준수의 머리통을 놓고 양손으로 뒤쪽 바닥을 짚은 재유는 어이가 없어서 허허 웃었다.

“이 지금 무슨 상황이고.”

“나도 몰라. 더 설명해야 돼?”

“아이다, 됐다…….”

그렇게 둘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술이 깨서 다시 원래대로 하얘진 얼굴로 준수가 덤덤하게 먼저 말을 꺼냈다.

“정희찬 말대로 한 곡씩 더 하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아니면 뭐… 좀 더 연습해서 내년에 부원 더 모아가지고 아예 정식 동아리가 되어도 상관없고. 밴드 프로그램 같은 데 나가면 실적 생기니까 지원금 타기도 쉽지 않겠냐고 기상호가 공고 몇 개 주워 왔던데.”

“니 바쁠 텐데 괘않나.”

“그러는 너라고 안 바쁘냐? 내 스케줄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알았다. 생각해줬더니 되게 뭐라 하네.”

그제야 준수도 피식하며 웃음소리를 냈다. 재유의 마음이 조금 더 편해졌다.

“그때쯤 되면 이딴 어중이떠중이 셋리는 싹 다 갈아엎어야지, 씨발. 무슨 선곡을 실력에 맞춰서 하냐고, 곡에 맞춰서 연습해가지고 실력을 쌓아야지, 장난하나.”

“하하, 니는 진짜, 진심이네. 이런 아를 두고 내가 아까 뭔 소리를 한 거고?”

재유가 큰소리로 웃었다. 노래하는 애들은 다 이런가, 그 웃음소리가 듣기 좋아서 준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재유의 웃음이 잦아들고, 다시 평소의 차분한 톤이 이어졌다.

“그래도… 내 곡은 걍 유지할란다.”

“네 곡이면 ‘모든 날 모든 순간’? 그거 네 취향도 아니잖아.”

“하이고, 그걸 아는 사람이 그걸 추천했나. 셋리에 그거 넣자고 한 거 니인 거 기억하제?”

“아니, 그건 아는데… 그건 급하게 실력에 맞춰서 세트리스트를 짜서 그런거고! 이젠 아니잖아.”

“아, 알았다, 알았다. 뭐 이래 정색을 하노? 놀리지도 몬하겠네.”

재유가 또 웃는다.

‘계속 웃네.’

술이 들어가서일까, 마음 놓고 웃는 재유의 모습은 정말이지 낯설고, 중독성이 있었다. 거기에 전염성도 있는지 성준수 본인의 입꼬리도 슬며시 올라갔다. 그 잘생긴 입꼬리를 손끝으로 찔러보며 재유가 물었다.

“니 근데 진짜로 그걸 내한테 추천한 게 쉬워서, 그냥 그거뿐이가?”

“…그건 무슨 말이야?”

“…아니 뭐, 아님 됐다.”

“야, 진재유.”

“하하하하…….”

그렇게 웃는 진재유 얼굴이 좋아서, 약간 억울한 듯 올려다보면서도 입꼬리가 말려있는 성준수 얼굴이 좋아서, 둘은 또다시 같은 생각을 했다.

“함 더 해도 되나?”

“…이번 거는 양치하고 나서 어때.”

“니 진짜 응큼하네. 어디까지 물고 빨라 그러노? 주디 다 헐겠다?”

“아! 진재유!”

쿵. 무릎에서 준수의 머리통을 자비 없이 내려놓은 재유가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준수도 벌떡 몸을 일으켜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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