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 or FLIGHT

FIGHT or FLIGHT 06

센티넬X센티넬 빵준

삐이─삐이─

갑작스러운 공습경보가 떨어졌다. 성준수와 기상호 사이에 빨간 점이 선연하게 빛났다. 야, 뛰어!!! 성준수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기상호의 등을 떠밀었다. 갑작스러운 밀침에 당황하기도 전에 일단 다리를 움직이는 게 먼저였다. 너나 할 것 없이 전속력을 다해 달렸다. 얼마 뒤, 둘이 서 있던 곳에 미사일 하나가 떨어졌다. 폭발로 인한 반동으로 땅이 크게 울렸다. 그 충격에 바닥에 넘어져 땅을 굴렀다. 아픈 것은 뒷전이었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성준수는 다시 무전기를 붙잡고 외쳤다. 섹터 2-A 구역입니다. 지원 바랍니다. 아까부터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럴 때 제 능력이나 기상호의 능력은 하등 도움이 되질 않았다. 성준수는 차라리 함께 있는 게 전영중이었으면 좀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상황에서 그 녀석 생각이 떠오르는지는 저도 몰랐다.

팔을 들어 코를 가려도 기침이 자꾸만 나왔다. 흙먼지로 인해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어려웠다. 야, 기상호! ㄴ, 네? 시야에 걸리는 것이 없어서 일부러 크게 외쳤더니,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느낌이 좋지 않아. 돌아가자. 기상호는 군말 없이 성준수의 지시에 따랐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긴장을 더욱 늦출 수 없었다. 성준수는 이번만큼이라도 기상호의 능력이 문제없이 발휘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성준수의 손 주위로 얼음 결정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흙먼지 때문에 자연적으로 눈물이 났다. 그럼에도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눈이 된통 뻑뻑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는 그 꼴이 가관이었다. 장소가 노출된 적이야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이번은 상황이 심각했다. 단순히 노출된 정도가 아니었다. 불타고 있지 않은 막사가 없었으며,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정부군의 베이스캠프였던 곳은 격전지가 되어 있었다. 성준수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걸음을 멈추었다가 이내 어딘가로 달려갔다. 가이드 막사가 있던 곳이었다. 근처의 병사를 붙잡고 물었다. 가이드들은? 무사히 후방으로 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성준수는 다시 능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요 며칠 내내 무리했는데 회복 기간이 충분하지 않아 그마저도 어지러웠다. 타오르는 불 때문인지 결빙이 쉽지 않았다. 곳곳에서 쓰러져가는 아군들이 보였다. 초봄의 하늘은 맑은데 그 아래 지상은 아름답지 못했다. 시야가 흐리고 붉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래의 상황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푸른 날.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보고 있자니, 그것이 거대한 창살처럼 느껴졌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지독한 감옥. 달아나도 달아나도 벗어날 수 없는 무간지옥. 그곳에서 들려오는 아비규환.

사상자가 몇 명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성준수는 이곳에서 제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세상에서 단 한 명만 제 죽음을 슬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살아서 돌아가고 싶었다. 코 앞에 닥친 죽음이 두려워도 맞서고 싶었다. 지레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날아온 탄환이 어깨를 스쳤다. 피가 솟구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성준수는 살아 돌아가야 했다.

센터 내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의료 비상벨과는 다른 고저였다. 동일한 높이로 계속되는 사이렌. 센티넬 긴급 소집을 알리는 비상벨이었다. 밥을 먹던 조재석도, 쉬고 있던 박서진도, 수다 떨던 지국민과 전영중도 매뉴얼에 따라 제 1 훈련실로 집합했다. 센터에서 일 년을 조금 넘게 지냈는데, 이런 식으로 긴급 소집된 적은 처음이었다. 상황이 단단히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경우가 자주 있던 것은 아닌지 훈련실에 모인 모두가 웅성거렸다.

곧이어 사령관이 나타나더니 섹터 2로의 긴급 파견 명령을 내렸다. 센터와 도심을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력만을 제외한 전원이 대상이었다. 전영중은 덜컥 걱정이 닥쳤다. 섹터 2라면 성준수가 당장 며칠 전 추가 파견을 나간 곳이었으니까. 그런데도 꽤 많은 인원의 센티넬이 지원을 가야 할 정도라면 상황이 무척이나 좋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전영중은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최악의 경우를 상정했다. 가령, 성준수가 돌아올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섹터 2로 가는 내내 전영중은 불안했다. 도착지가 가까워질수록 그 감정은 제어를 잃고 마구 날뛰었다. 제 몸 아끼지 않고 뛰어들 성준수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져서 더욱 그랬다. 전영중이 지켜본 성준수는 늘 그랬다. 제 목숨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굴었다. 가이딩 없이 약물로만 버텨내면서도 남들보다 무리해서 능력을 썼다. 저번에야 운이 좋아 증폭 상태에 놓였지만, 까딱 잘못하다간 폭주였다. 전영중은 아직까지 폭주한 센티넬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지 못했다. 모르는 것에서 기인하는 공포는 생각보다 컸다. 얼굴 좀 펴라는 지국민의 말에 그제야 제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전영중 너 쫄았지. 그 말에는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성준수가 걱정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어서 그랬다. 제가 왜 이렇게까지 성준수를 염려하는지 본인도 혼란스러웠기에 무어라 해명할 수도 없었다. 전영중은 그저 쫄보라는 오해를 받는 쪽을 택했다.

호버에서 내리니 한눈에 봐도 열세였다. 상부에 지원군 도착을 보고하고 현재까지의 상황을 전달받았다. 지원 나갔던 센티넬 셋 중 둘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영중은 성준수가 그 하나의 범위 안에 들었을지를 가장 먼저 생각했다. 성준수라면 분명 살아남았을 것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영웅병에 가까운 그의 무모함이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태평하게 남 걱정을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각각의 센티넬에게 지령이 내려졌다. 그것도 가장 간단한 상태로. 그렇기에 이것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온갖 암호가 난무하는 전장에서 센티넬에게만 별도의 지시가 내려지는 것은 그들의 특성 때문이었다. 까다로운 시각 자료에 집중하는 일은 센티넬에게 무주의 맹시를 불러 일으켰다. 거기에 더해 무주의 난청까지도. 예외적인 시각적 혹은 청각적 자료는 감각에서 배제되었다. 마치 창밖으로 인조적인 정원을 내려다볼 때 제 모습이 반사된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듯이. 그것은 집중력을 더해주기도 했지만, 한 가지에 몰두한 센티넬이 폭주하는 원인이 되곤 했다. 특히나 이렇게 난장판이 된 현장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배치받은 구역에는 다른 센티넬이 있었다. 모습을 보아하니 이번에 지원 나온 센티넬이 아닌, 꽤 전부터 이곳에서 전투를 치른 듯했다. 전영중은 그에게 성준수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 상황에 성준수에 대해 묻는 전영중에게 의문을 가진 표정을 내비쳤다. 계속 캐묻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 전영중은 더 이상 말을 얹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 끝에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많은 사상자가 생겨서 파악이 어렵더라고요…. 그는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전투는 그 뒤로 며칠간 더 이어졌다. 누가 봐도 진 것이나 다름없는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가장 큰 지역인 섹터 2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봐야 했다. 그 와중에도 성준수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그가 능력을 쓸 때면 선명하게 나타나는 푸른 섬광만 보았어도 이렇게까지 마음이 불안하진 않았을 것이다. 전투에 임하랴 성준수 생각하랴, 신경 쓸 것이 남들의 두 배였던 전영중은 점점 지쳐갔다.

지친 것은 전영중 뿐만이 아니었다. 최우선으로 보호하던 가이드들 중에서도 사상자가 나오면서 가이딩 수급이 부족해졌다. 센티넬들도 빠른 속도로 지쳐갔다. 결국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상부는 뒤늦게야 후퇴 명령을 내렸다. 이미 꽤 많은 사상자들이 나온 뒤였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승리였지 센티넬들의 목숨이 아니었다. 그 사실에 입안이 썼다.

센터로 복귀해 사상자 명단을 꾸렸다. 전사한 센티넬이 꽤 많았다. 장례는 치러졌지만, 이번에도 원중 센티넬의 이름만은 쏙 빠져있었다. 누가 죽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식에 참석한 자는 극소수였다. 나머지는 부상으로 인해 가이딩 및 치료를 받느라 불참한 탓이었다. 조용한 식장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센터의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아 있었다. 이렇게까지 크게 패해 본 적은 처음이라 그랬다. 전영중의 기분도 내내 좋지 않았다. 성준수의 생사를 여태껏 확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숙소는 여전히 비어있었다. 전영중은 새삼스럽게 숙소가 혼자 쓰기엔 참 넓다고 생각했다. 성준수는 제가 들어오기 전까지 이 넓은 공간에서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었을까. 기력이 없어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한참을 멍때리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이주원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마주한 것은,

성준수였다. 전영중은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여기저기 상처가 난 얼굴을 한 성준수가 픽 웃으면서 물었다.

"걱정했냐?"

전영중은 울컥하려는 무언가를 겨우 억누르고 대답한다. 어, 아주 많이.

섹터 2에서의 큰 패배 이후 센터의 분위기는 깊이 가라앉았다. 다른 섹터의 전투에서도 점점 열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패배한 전투 이후 다른 섹터에 지원 보내야 할 센티넬들의 수가 현저히 적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상태가 좋은 센티넬들은 계속해서 굴려지기에 바빴다. 작년까지의 성준수와 다를 바가 없었다. 성준수야 익숙했지만 다른 센티넬들은 죽는 소리를 냈다. 이러다 폭주 상태에 놓이면 책임질 수 있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일반적인 기준을 넘어가는 임무 강도는 생존권과 직결되었다. 일반 군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겠지만 센티넬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정부를 위해 충성하다 죽는 것이 삶의 목적인 센티넬들이었지만, 그들은 전장에서 싸우다 죽기를 원했지 과로로 폭주해 죽기를 원치 않았다. 가이딩을 받더라도 절대적인 휴식 시간은 필수적이었다. 까딱했다가는 폭주해 센터를 날려 먹을 수도 있는 센티넬들이었기에 정부에서도 무리해서 임무를 맡길 수도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은 인력의 문제였다. 반란군에서도 센티넬을 앞세우고 있는 현 상황에서, 좀 더 압도적인 수의 센티넬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센티넬의 수를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센티넬이 자연 발생할 확률은 극히 드물었으며, 계속되어 왔던 원중 프로젝트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성공률도 이미 최대치로 끌어들인 상황이었다. 센티넬을 수급할 방법이 없었다.

딱 하나, 실험 인원을 확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결국 정부는 실험 인원을 확대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현재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원중 프로젝트를 확대하여 더 많은 센티넬을 만들어내는 것밖에는 없었다. 성공률을 높이기 어렵다면 실험 인원을 늘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만큼 많은 실패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센티넬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었다.

원중 프로젝트 연구와 WPC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며 실험 대상자에게 주어지는 지원도 대폭 확대되었다. 길어지는 전쟁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등을 WPC로 떠밀었다. 아이 하나면 온 가족이 편히 살 수 있다는 이기적인 생각들은 WPC가 처음 설립될 때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하지를 않았다. 과도한 지원은 피험자들의 자발적인 선택과 의지를 흐렸으나, 그런 것은 이미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더불어 WPC에서는 새로운 연구도 진행하기 시작했다. 바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 특수한 인공 레우논 개발이었다. 그동안의 실험 데이터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보였다.

만 19세 이상의 피실험자는 모두 실패. 면역 거부 반응이 심하여 레우논 제거 수술을 진행함.

그 이후로 축적된 데이터에 따르면 성인이 되고 뇌가 완성되는 과정을 거치며 일반 뉴런과 레우논 사이에 긴밀한 연결이 생성되며 안정화되었다. 하지만 성인의 경우 이미 안정화된 뉴런 사이에 불완전한 레우논을 밀어 넣다 보니 면역 거부 반응이 심했던 것이라는 지표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안정화된 뉴런만큼 보다 안정화된 레우논 체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성인까지로도 실험 대상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를 위해 센티넬 관리 센터에 있던 이주원은 WPC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레우논 연구에 있어 이주원보다 적합한 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주원은 오랜만에 지하에 방문했다. 전영중과 방을 쓰면서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것인지 제법 안정된 상태를 보인 덕에 지하 방문 횟수가 확 줄어들었다. 가이딩을 받지 않는 것은 여전했지만.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던 지난 오 년을 생각하면 눈에 띄는 발전이었다. 성준수는 오랜만에 숙소를 방문한 이주원을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약도 적당히 먹고 데이터 수집도 꾸준히 참여 했잖아요. 날 선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 출장 가."

"그래서요?"

"나 없다고 너 막 살까 봐 걱정돼서 마지막으로 와 본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저 그래도 요새는 관리 잘해요."

"알아. 아는데도 나는 네가 자꾸 걱정이 된다, 준수야."

"……."

"이상하지. 다 같은 원중 애들인데 너만 아픈 손가락 같은 게. 자꾸 멀리 떠나버릴 것 같아서 그런가."

"저 아직 안 죽어요."

"그래. 아무튼 나 없다고 깽판 치지 말고."

"누굴 깡패로 아시나…."

"상호가 너 무섭다고 맨날 벌벌 떨던데."

"그거야 걔가 현장에서도 얼타니까 그랬고요."

"너 꾸준히 복용하는 약은 내 후임한테 인수인계 해놓고 갈 거니까 또 과다복용 하지 말고."

"아 잔소리하러 오셨냐구요."

"어. 잔소리하러 온 거야. 너 그래도 내가 말해두면 잘 들으니까."

이주원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일장 연설을 늘어놓다가 시간이 다 됐다며 급히 지상으로 올라갔다. 눈치 보며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전영중이 그제야 나와서 소파에 늘어진 성준수를 봤다. 가셨어? 어, 드디어 갔더라. 고생했다. 귀 아파 죽는 줄 알았어.

실험 확대에 대해 모두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알지만 쉬쉬하고 있던 인권과 윤리 문제가 다시금 대두되었다. 그동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시민 단체들도 새로이 나타나 연일 반대 시위를 했다. 전쟁에서도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직 살아있었다. 단지 웅크리고 있었을 뿐.

하지만 그런 요구를 다 들어주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미 연구는 시작되었고, 지원자들은 여기저기서 넘쳐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센티넬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결국 제풀에 지친 시민 단체들은 반란군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반란군의 세력은 점점 늘어났다. 그럴수록 정부에서는 센티넬 연구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했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정부의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던 이들이 반란군의 편에 서자 자연스럽게 정부는 악인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전쟁의 명분을 잃게 될 것을 걱정한 정부는 반란군에게 사회 질서의 혼란을 야기하는 반란 분자의 이미지를 여러 번 덧씌웠다. 결국 전쟁은 프레임 싸움이었다. 누가 더 그럴싸한 명분을 갖다 붙이는가. 누가 더 선한 자의 역할을 맡는가. 정부는 오랜 전쟁과 지속되는 혼란을 반란군의 탓으로 돌렸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제법 그럴 듯한 이유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야 반란군이 내세운 윤리적인 문제는 WPC 건립 이후에 뒤늦게 추가된 슬로건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실험 대상의 확대는 일반인에 그치지 않았다. 정부는 실험의 성공률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방법을 고민했다. 하지만 현재 개발된 인공 레우논의 실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연구 기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백년대계가 아닌 당장의 성과였다. 그리하여 결정된 피험자들은 현 센티넬들의 가족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직계 비속이나 형제자매.

센티넬의 뇌는 신경 조절 물질을 방출하는 광범위한 시스템을 통해 이능력의 사용 및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 이 화학물질들은 대단히 한정적으로 방출되기 때문에, 특정한 때에 특정한 위치에서만 변화가 일어났다. 가이드가 센티넬을 대상으로만 회복 효과를 보이는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였다. 특히 중요한 화학적 메신저가 아틸린이었다. 레우논에서 방출되는 이 물질은 뇌의 영역을 다양하게 변화시켰다. 센티넬마다 그 양상이 다양했다. 드물게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경우는 비슷한 유전 형질을 지녔을 때, 즉 혈연관계에 있는 경우였다. 따라서 아직 발현되지 않은 센티넬의 가족은 잠재적으로 가장 높은 실험 성공 확률을 지녔으리라 추측됐다. 연구 초기부터 이미 밝혀낸 내용이었으나, '센티넬의 일반인 가족의 안전을 보장한다'라는 조건으로 인해 그들은 자연스레 피험자에서 제외되었다. 그 수가 많지 않은 것 또한 한몫했다. 대개 형제자매의 경우 동시에 센티넬이 발현된 경우가 잦았으며, 전쟁고아들은 가족이 아예 없거나 형제가 동시에 WPC에 자원하여 오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조형석과 조재석 형제가 그러했다. 성준수와 같이 여동생을 국가 기숙사에 맡겨놓고 저 혼자 자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한 명의 센티넬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 얼마 없는 숫자라도 긁어모아야 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반발이 거셌다.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피험자로 끌고 가려 하냐며 외쳤다. 강제 징용이나 다름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게다가 실험 대상자의 나이 또한 문제였다. 대상은 센티넬의 직계 비속 또는 형제자매. 이들이 성인인 경우가 논란의 중심이 됐다. 그들을 대상자에서 제외하기에는 불공평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으며, 포함하기에는 새로 개발 중인 신(新) 인공 레우논의 안정성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갑론을박 끝에 정부는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센티넬의 가족을 WPC로 불러들였다. 성인이 된 이들은 추후 안정성 검토가 마무리된 이후로 기간이 유예되었다.

"지금 장난하세요?"

임무 나갔다 돌아온 성준수는 복귀 보고를 마치자마자 센터장실로 쳐들어갔다. 지금은 자리를 비우셨다는 말에도 웃기지 말라며 문을 연신 두드렸다. 성준수의 농성에 질렸는지 스르륵 문이 열렸다. 성준수는 자리를 지키던 경호들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자리를 비우셨다면서요. 그 웃음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들어가 한다는 소리가 장난하냐는 말이었다. 아무리 임무 때문에 여러 섹터 돌며 바쁘게 산다고 하더라도 성준수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았다. 센티넬의 가족은 이유를 불문하고 원중 프로젝트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 말은즉슨, 성준수의 유일한 혈육 성지수까지 그 대상자에 포함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성준수가 어떻게 해서든 지키려고 애썼던 그 여동생마저 말이다.

"성준수 군, 진정하고 일단 앉게."

"지금 제가 진정하게 생겼어요? 안전하다면서요! 국가에서 책임지고 보호해 준다면서요!"

"누구 앞에서 큰소리야, 지금!"

말마따나 성준수는 지금 뵈는 게 없는 상태였다. 제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좆 같은 실험 견디고 왔더니 좆 같이 굴려 먹는 센터가 있었고, 그 안에서 군말 하나 없이 모든 지시를 이행했다. 여동생의 안위 하나 때문에. 그런데 이제 와서 센티넬이 필요하니 실험실 쥐로 쓰겠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성준수는 당장에 센터장이자 총사령관 황주호의 책상을 엎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참고 있다고 생각했다.

"준수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새 호출을 받았는지 꼭대기 층으로 달려온 이주원이 성준수의 팔을 잡았다. 실례했습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며 성준수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힘으로는 절대 끌려오지 않을 성준수였지만, 이주원의 절박한 표정에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겨주었다. WPC로 파견 나갔다고 하더니 지금 센터에 있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성준수가 난장판을 벌여놓을까 봐 걱정된 모양이었다. 숙소까지 내려온 뒤에야 이주원은 성준수의 손을 꼬옥 잡으며 이야기했다.

"너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그래. 진짜 계급 떼고 붙을 거야?"

"아뇨. 그건…, 안 될 일이죠. 죄송합니다."

"그걸 잘 아는 애가 이래?"

"선생님, 실험 총관리자시잖아요. 제 여동생 일 아실 거잖아요. 어떻게 안 되나요?"

"국가에서 예외 없이 진행하라고 명령 떨어졌어. 안 되는 건 나도 어떻게 못 해줘, 준수야."

"저 여동생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굴러들어온  거 아시잖아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어."

"그렇다고 무조건 네네 참는 게 맞는 일이에요?"

"당장에 센터장님도 센티넬로 태어난 아들을 전장에서 잃은 거 너도 알고 있잖니."

"그 얘기가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여기에 사연 있는 게 너 하나니. 그 말에 성준수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이를 까득까득 갈았다. 대상을 찾지 못한 분노가 단전에서부터 끓어올랐다. 당장에 이주원이 앞에 있으니 대놓고 욕은 못 했다. 씨발, 좆 같은 인생. 그 말을 속으로만 짓씹었다. 인생은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저주의 다름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지수도 어릴 적 제가 그랬던 것처럼 주삿바늘을 주렁주렁 달고, 팔에는 멍 자국이 사라질 날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숨이 막혀왔다. 그 꼴은 보고 싶지 않아서 남들보다 두 배로 굴러도 별말 없이 복종했던 것인데. 분노로 손이 덜덜 떨렸다. 봄이 찾아오며 조금씩 온기를 찾아가던 센터 안은 금방 냉기로 가득 찼다. 건물이 성준수의 몸과 함께 떨리기 시작했다. 성준수, 그만ㅎ…. 이주원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성준수가 있는 층 전체가 얼어붙었다. 아마 그 위층까지도. 복도에 놓인 화병이 쨍 소리를 내며 깨졌다. 꽂혀있던 꽃도 바닥에 늘어지는 것이 아닌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곳곳에 위치한 틈새에는 성에가 하얗게 끼기 시작했다. 곧이어 닫힌 문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주원은 급히 어딘가에 호출을 넣었다. 소란스러운 바깥의 상황에 방에 있던 전영중이 얼굴을 내비쳤다. 이주원은 사색이 되어 전영중보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라 소리쳤다. 그러나 초점 잃은 채 번쩍이는 성준수를 마주한 전영중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야, 성준수, 정신 차려. 영중아, 다가가면 안 돼!

넓지 않은 거실 가득 얼음 결정들이 들어찼다. 일제히 후드득 떨어졌다가 치솟기를 반복하며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전영중은 성준수를 여러 차례 불렀으나, 성준수에게는 전영중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방 안에 있던 온갖 잡동사니들이 흔들려 떨어져 부서지거나 망가졌다. 작년에 같이 나가 찍은 사진을 넣어둔 액자까지도.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이주원의 표정은 난처하긴 했으나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은 이곳에 전영중 하나였다.

혼란만이 가득한 곳에서 전영중은 문득 깨달았다. 왜 성준수는 가장 깊은 층에 위치했는지. 왜 홀로 방을 쓰고 있었는지. 왜 이 층에는 우리밖에 없는지, 왜 성준수는 방을 꾸며두지 않았는지. 이곳은 방이 아닌 벙커였다. 오로지 성준수를 가두기 위한.

얼마 지나지 않아 예고 없이 문을 박차고 무장군인들이 들어왔다. 문이 열리자마자 자잘한 얼음 조각들이 복도로 쏟아져 나갔다. 때아닌 강추위에 놀랄법도 한데, 그들은 표정 변화 없이 성준수를 향해 다가갔다. 폭주한 센티넬에게 가까이 가는 것은 제법 위험한 일인데도, 몇 겹으로 무장한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곧이어 짐승처럼 목덜미에 진정제가 박혔고, 성준수는 까무룩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초점 없이 번쩍이던 눈이며 푸르게 빛나던 손끝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그 모든 순간이 슬로우모션 효과를 건 듯 느리게 보였다. 전영중은 세월이 흘러도 그 장면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단 하나도.

이능력고유인자보유자의 신경 발작은 대개 폭주라고 알려져 있었다. 폭주하기 시작한 이능력고유인자보유자, 즉 센티넬들은 주변 자극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자극에 의해 인지 능력의 저하를 겪게 되었다. 인지 능력의 저하는 자연스럽게 본인의 이능력을 의지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심각한 경우에는 이성을 잃고 이능력만을 방출하는 단계까지 가는 이들도 있었다.

폭주한 센티넬의 모습은 초창기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하는 것에 일조했으며 수많은 사상자를 낳기도 했다. 폭주 중의 센티넬이 겪는 정신적, 신체적 피해에 대해서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센티넬 관리 센터가 설립되어 적절한 가이딩을 제공하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폭주하는 센티넬들이 많지도 않을 뿐더러, 그러한 센티넬에 대한 대응 체계가 마련되어 있었다.

폭주라는 것은 비유하자면 물이 든 그릇과 같았다. 센티넬마다 각자 자신이 가진 그릇의 크기는 다양하며, 그것에 맞게 자극을 받아들이고 능력을 사용해야 했다. 본인이 가진 그릇보다 더 큰 자극이 부어지거나 능력을 담아내면 자연스럽게 물은 넘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신경 발작, 폭주였다.

그릇을 비울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가이딩을 통해 강제적으로 덜어내거나, 자극을 줄임으로써 수위가 낮아지길 기다리거나. 가이딩으로 덜어내는 것에도 한계가 존재했기에 휴식 기간은 필수적이었다. 임무에서 돌아온 센티넬이 가이딩을 받은 후 다음 임무를 나가기까지 쉴 기간을 갖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릇을 비울 시간을 주는 것. 성준수는 제가 가진 그릇보다 항상 넘치게 능력을 써댔고, 그릇을 비워낼 시간조차 부족했으니 언제 폭주해도 놀랍지 않았다. 장기 임무를 나가는 횟수는 남들의 배를 넘었고, 험난한 임무를 끝낸 뒤에도 자잘한 일들이 성준수에게 떠맡겨졌다. 본인도 쉬는 것을 원치 않았고, 센터 또한 그걸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센터가 인력난에 허덕인 건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었으나, 지금보다 상황이 나았던 때에도 성준수는 개처럼 굴렀다.

체계적인 대응 단계를 갖고 있는 센터 측에서 성준수가 폭주할 때까지 내버려두었다는 것은 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하지만 전영중은 의문을 가졌다가도 이내 포기했다. 아는 것이 힘이다, 혹은 모르는 게 약이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정답인 경우가 많았다.

눈을 떴을 때는 센터 내부에 위치한 격리실이었다. 정신이 채 돌아오기도 전에 위치를 파악할 정도로 낯이 익었다. 손에는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였나. 이번에도 목숨을 건지다니. 성준수가 기억하는 첫 번째 폭주는 가이딩을 강요하는 센터 때문이었으며, 두 번째는 서현우의 죽음 이후의 감정 동요로 인한 것이었다. 폭주한 만큼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 저 스스로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단단히 묶인 손발과 팔뚝으로 투여되고 있는 진정제가 보였다. 바이털 사인이 그려지는 화면이 보이며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어떠한 자극도 주지 않으려 감각의 정보를 최소화한 공간이었다. 삭막하기 그지 없는 하얀 방. 성준수는 이 공간이 탁상행정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했다. 센티넬들의 우울증 및 공황장애 발병률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공간에 폭주했던 센티넬을 밀어 넣다니. 오감을 자극하는 정보들만 없으면 괜찮으리라고 믿는 멍청한 결론이었다.

이번에도 저번처럼 무지막지하게 진정제를 꽂아 넣은 것인지 뒷덜미가 된통 아팠다. 기억이 드문드문 끊어진 채로 존재했다. 센터로 복귀하자마자 센터장을 찾아가 한바탕 했고, 이주원이 자신을 끌고 나왔다. 그 뒤로 숙소로 돌아갔었나? 혹은 통로에서 그대로 폭주했었나? 거기까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정신을 놓았는지 그 지점이 불분명했다. 장소가 어디든 최악이었다. 통로였다면 분명 유리창 여러 개는 해 먹었을 것이며, 숙소였다면 분명 전영중이 보았겠지. 지금으로서 성준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영중이  현장 지원을 나가 숙소를 비웠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성준수는 일부러 크게 욕을 읊조리며 눈을 깜빡였다. CCTV로 관제실에서 제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었기에 부러 들으라고 그랬다. 폭주한 직후의 센티넬을 보호의 이름으로 감금하는 곳인지라 바깥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밖에서 호출하는 경우에만 대화 시스템 창이 활성화되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금쯤이면 WPC에서 연구원도 성준수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파견나왔을 터였다. 그때에서나 조금 대화다운 것을 나눌 수 있을 것이었다. 그전까지 성준수에게 주어진 것은 길고 긴 무료함과 나태였다. 시간이 다른 곳과는 다르게 흘렀다. 흐르지 못하도록 어둠과 고요가 시간을 짓누르고 있었다.

"영중아, 너 방 옮길래?"

"갑자기요?"

준수랑 계속 쓰는 거 괜찮겠냐는 거야. 엉망이 된 거실을 정리하고 있는 전영중에게 이주원이 물었다. 무장군인들이 쓰러진 성준수를 끌고 나간 뒤부터 분위기가 영 어색했다. 전영중은 묵묵히 방을 치웠고 이주원은 한 구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입을 열어 가장 먼저 한다는 소리가 방을 바꾸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아버지와의 연락을 통해 부탁한 사항이니 아마 이주원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성준수와 방을 쓰겠다고 먼저 나선 것이 전영중이라는 사실을. 아마도 그저 상부의 명령이라고만 생각했겠지. 전영중은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해 적당한 웃음으로 대답을 무마했다.

걱정하는 표정으로 연신 괜찮겠냐고 물어오는 이주원에게 전영중은 역으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준수 말로는 WPC 파견 나가셨다던데, 센터에 계시네요. 그 말에 이주원은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분명히 원중 피험자 대상 확대 소식에 또 폭주할까 봐 걱정돼서 왔는데 역시나네."

"'또'라고요? 전에도 자주 있었어요? 뭐 이상하진 않지만."

"두 번 정도 더 있었어."

그때는 더 했지. 로비에서 폭주한 적도 있었으니까. 이주원은 서현우의 죽음 이후 왜 원중 대상자는 장례조차 치르지 않냐며 분노하던 성준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온 건물이 얼어붙으며 꽝꽝 얼어붙은 유리창들이 강렬한 파열음을 내며 깨졌다. 유리 파편인지 얼음 파편인지 더 이상 알 수 없는 것들이 아래로 흩어져 떨어졌다. 센터는 온통 난리였다. 가이딩을 거부하며 폭주했을 때보다 그 정도가 심했다. 폭주를 거듭할수록 위력이 강해지는가에 대해서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 사건 이후로 성준수는 가장 깊은 곳, 지하의 꼭대기 층에 처박혔다. 숙소라기 보다는 벙커였다. 성준수가 폭주하더라도 위력을 막아낼 수 있는 깊디깊은 지하의 벙커. 상태가 나아지면 성준수를 케어할 가이드를 붙일 생각으로 비워둔 방을 전영중이 꿰차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성준수는 전영중과 매번 싸우는 듯하면서도 신경계의 불안정성이 많이 완화되었다. 그래서 아무도 말을 얹지 않았다. 센티넬끼리 방을 쓰는 것은 처음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임에도.

하지만 언제까지고 전영중을 이 감옥 같은 벙커에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폭주하는 센티넬 곁에 있으면 함께 동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련도가 떨어져 A등급으로 재산정된 성준수였지만, 폭주할 때의 위험도로만 본다면 S급 그 이상을 웃돌았다. 그 말은 전영중도 까딱 잘못하여 폭주하는 성준수에 휩쓸렸다가는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성준수가 아픈 손가락이긴 했으나, 모든 원중 센티넬을 책임져야 하는 이주원에게는 전영중의 안위 또한 중요했다.

"내가 다시 상부에 얘기해 둘게. 방 바꿔 달라고."

"아뇨, 전 괜찮아요."

"너 감응 잘 되는 가이드는 아직 못 찾았지? 그것도 알아봐 달라고 해야겠네."

"괜찮다니까요."

"위층에 숙소 빈 곳 있을 거야. 일단 임시로 옮겨두고…,"

"선생님!"

"……."

"저 정말 괜찮아요. 아시잖아요. 성준수 걔 잘 때도 능력 조절 안 되는 거. 사실 그거 제가 막고 있어요. 저 아니면 센터 또 난리 나면 어떡해요. 그 새끼 저 없으면 능력 질질 새는 보잘것없는 몸뚱아리인데."

"영중아."

"그러니까 일단 좀 더 있을게요. 센터를 위한 일이잖아요."

센터를 위해서. 정부를, 국가를 위해서. 그 말에 이주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을 굳게 다물었다가 이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힘들면 언제든 나한테 얘기하러 와. 원중 애들 죄다 어려서 매일 불만 사항만 가득 받는데 너는 한 번도 얘기를 안 하더라. 전영중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얘기했다. 불만이랄게 있나요. 그냥 묵묵히 버티는 거죠. 그 말을 들으며 이주원은 생각했다. 불만이 있어도 일단 그냥 하는 성준수와 불만을 누르고 그저 제 할 일을 다 하는 전영중. 둘은 참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하다고.

폭주 센티넬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전영중에게도 며칠 간의 절대 안정 휴가가 내려졌다. 그러나 전영중은 성준수가 못내 걱정되었다. 살아있을지, 격리실은 어떤 곳일지, 그곳에서 어떠한 하루들을 보내고 있을지. 이전부터 자꾸 그랬다. 성준수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계속해서 마음이 쓰였다. 그것은 전영중이 어떻게 한다고 하여 멈출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눈에 안 보이면 보고 싶고, 걱정되고, 미래를 그려보게 되고. 언젠가 성준수는 전영중에게 그리 말했다. 살아남으라고. 미래에 오래오래 남으라고. 성준수가 그리 말했을 때 전영중은 성준수의 미래를 기대하고 있었다. 머지 않은 미래에, 그곳에서 펼쳐질 성준수의 삶들을 함께 목격하고 싶었다.

어떠한 감정은 이름 붙여야 더 명확하게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전영중은 그 감정을 동경과 사랑, 그 애매한 사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망해가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을지도 모르는 감정. 연민, 염려, 애정, 존경 그 모든 것을 담은 추상적인 것들의 집합체. 그것을 인지하고 나서야 가슴 한편이 뜨끈했다. 성준수가 사라진 숙소에서 혼자 밤을 보내는 게 이상하게 어색했다. 번갈아 나가는 임무 탓에 같은 숙소를 쓰고 있다 하더라도 마주치지 못한 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밤은 가장 완전한 빛깔로 슬픔을 보여주었다. 전영중을 제외하고 성준수를 아는 모든 이들이 그를 잊은 것 같은 밤. 그 사실이 이상하게 울적했다.

성준수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성준수는 임무에서 돌아왔을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태연한 낯으로 방에 들어왔다. 그 사실에 이상하게 배알이 꼴렸다. 성준수를 걱정한 게 저 혼자만이었던 것 같아서. 성준수는 단 한 순간도 저를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서 말이 괜히 험하게 나갔다. 준수야, 그러니까 상황 판단을 잘해야지. 그렇게 무턱대로 감정 표출하면 뭐 돼? 결국 격리 엔딩났잖아. 너 살아있는 게 기적이야.

전영중이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는 걸 조용히 듣고 있던 성준수는 나직하게 말했다. 너까지 나한테 지랄 좀 그만해.

"지랄? 준수야, 너 걱정하는 거잖아. 지랄이 아니라."

"걱정한다는 사람이 눈 희번덕거리면서 말하냐."

"넌 모르겠지, 준수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내가 어떻게 아는데."

"나 소원권 쓸래. 게임 이겨서 얻은 소원권."

"씨발, 가지가지 하네. 이 상황에서?"

"어."

"…뭔데."

"너 몸 좀 아껴. 다치지 말고 폭주하는 것도 좀 그만하고. 처음도 아니라며."

"다치지 말고 폭주도 하지 않기. 이거 두 개 아냐?"

"준수야, 말장난해? 몸 아끼라는 거 하나잖아."

성준수는 네가 별일이라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금방 수긍했다. 오랫동안 격리실에 있다 왔더니 싸울 힘도 없는 듯했다. 그래, 알겠어. 그게 다였다. 그러더니 데이터 체크 일정이 있어 그전까지 잠시 쉬겠다며 다시 방으로 사라졌다. 답지 않게 흥분했던 전영중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가 지 좋아하는 것도 모르고, 씨발.

이주원은 성준수의 폭주 사후 처리가 끝나고도 WPC로 돌아가질 못했다. 폭주만 잠잠해졌다 뿐이지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어, 준수야. 폭주 후유증으로 온몸이 어딘가에서 구른 것처럼 여전히 욱신거렸다. 환각처럼 따라다니는 고통은 아마 며칠 더 지속될 것이다. 이주원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면서 성준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커다란 스크린 모니터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성준수가 제가 들어주지 못할 부탁을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준수가 재차 이주원을 불렀다.

"안 돼."

"제가 무슨 말 할 줄 아시고요."

"아무튼 안 돼."

"WPC 들어갈 때 계약서 쓰잖아요. 하지만 사실상 신체포기각서인 그거."

이주원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성준수는 눈을 마주한 채로 또박또박 말했다. 제 계약 조건 아시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선생님은 알고 계시잖아요. 남들 죄다 센티넬 발현 후 지위와 부 보장 이딴 거 씨불일 때 저는 여동생 보호해달라고 했던 거. 그 말에 이주원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딴 거 허울뿐인 거 안다고, 국가에서 모르는 체하면 그만이라고, 자기도 안다고, 그럼에도 상부에 한 번 더 얘기해달라 말하는 성준수는 굳건했다. 제 의지를 굽힐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이주원은 그 눈이 정말이지 맹수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물려 죽는다. 가장 뛰어난 센티넬 무리를 만든다는 뜻에서 지은 원중이었지만, 정말로 늑대 새끼를 키우고 있을 줄은 몰랐다.

당장에는 알겠다고 돌려보냈으나 성준수는 센터장을 몇 번이고 찾아가기도 하며 농성 아닌 농성을 했다. 일 많다며 욕은 했어도 하라는 대로 모든 일을 다 해내던 그동안의 성준수와는 확실히 달랐다. 전영중은 성준수가 그 어느 때보다도 멀게 느껴졌다. 자꾸만 정부를 의심하고 불만을 느끼고 항의하는 모습이 불안해서 그랬다. 우리의 뿌리는 이곳에 있는데, 성준수는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이곳을 떠날 사람처럼 굴어서, 그래서 성준수가 더없이 멀었다. 등만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그런 성준수를 붙잡고 물었다. 여동생을 왜 그렇게까지 지켜야 하냐고. 성준수는 뭘 당연한 것을 묻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 뒤에 따라오는 말은 간단하면서도 어려웠다. 내 사람은 내가 지켜야지. 그게 내 정의니까.

그로부터 얼마 뒤, 접전지에 지원을 다녀온 전영중은 유달리 기분이 좋아 보이는 성준수를 마주했다. 제가 알던 성준수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여유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뭐야, 준수 맞아?"

"왜 또 시비야, 씨발."

"갑자기 웃고 있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걸. 다른 애들 불러와?"

"사람 기분 좆 같게 만드는 데에는 정말 재능있다, 너."

"고마워."

"칭찬이겠냐?"

"그래서 무슨 일인데."

"실험 계획 백지화됐대. 전부는 아니고 일단 지수만."

"어쩐 일이래? 너 폭주하다 죽어도 안 물러날 것 같았는데."

"높으신 분들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아. 그래도 임무 예전처럼 좀 더 촘촘하게 나가기로 했어."

"야, 너는…, 에휴 됐다."

자기 몸을 아낄 줄 모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희생하고 말지. 멋있기야 멋있어도 그게 결국 너를 갉아먹는 일이라는 걸, 준수 너는 평생 모르겠지. 인간의 행복은 자유가 아니라 의무의 수용에 있다고 했던가.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어설픈 자유보다는 정해진 의무를 지키며 안정을 얻었다. 그러나 전영중이 보기에 성준수는 그저 살기 위해 의무를 수용하는 이처럼 보였다. 자유를 위해 의무의 시간을 감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것들을 상기할 때면 정말로 성준수가 언젠가는 닿지 않을 곳으로 사라질 것 같았다. 자유를 찾아서 멀리멀리. 의무에 묶인 전영중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얼마 뒤 센터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성준수의 요구로 신(新)원중 프로젝트가 전면 백지화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뒤로 여동생 말고는 다른 가족이 없는 줄 알았던 성준수에게 엄청난 뒷배가 있다느니, 혹은 정부의 계획을 저지하는 것을 보니 반란 분자가 확실하다느니 하는 근거 없는 소문들이 줄을 이었다. 이주원을 들들 볶고 센터장을 매일 보러 갔던 것도 과장되어 성준수에게는 센터 악귀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전영중의 심기가 뒤틀렸으나 정작 당사자는 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남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내가 나로 남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 성준수는 어떠한 시간들을 보내왔기에 저럴 수 있을까. 또다시 전영중의 마음이 일렁인다.

임무가 늘 것이라던 말과 달리 일상은 지나치게 여유로웠다. 상부에서는 이미 몇 차례 폭주 전적이 있는 성준수의 상태를 의식한 것인지 그를 현장에 배치하지도 않았다. 준수야, 너 일한다며. 일을 안 주잖아. 아주 살 판 났네? 전영중, 너 호출. 아이씨.

결국 전영중만 억울했다. 자기 몸 안 아낀다고 걱정했던 게 헛된 일 같아 괜히 머쓱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물론 성준수는 모를 테지만. 성준수는 전에 없이 긴 휴식을 가졌고, 전영중은 상대적으로 바빠 보였다. 가만히 쉬고 있는 성준수도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지만, 전영중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섬세함은 아직 없었다. 그저 당장에 갈 곳 없이 버려진 제 걱정이 애꿎게 느껴졌다.

성준수의 상태가 빠르게 안정되면서 이주원은 다시 센터를 떠나 WPC로 향했다. 그 덕에 잔소리할 사람이 줄어들어 성준수의 얼굴엔 더욱 생기가 돌았다. 늘 눈 아래로 내려오던 다크써클이 조금은 희미해진 것 같기도 했다. 다만 약을 먹는 것이 일정치 않았다. 이주원의 빈자리는 다른 연구원이 대신했는데, 신경 안정제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고만 대답했다. 얼굴 처음 보는 연구원에게 신경 안정제를 만들어서라도 달라고 화를 낼 순 없는 노릇이라 그냥 빈손을 한 채 지하 숙소로 내려오곤 했다. 물론 당장에는 문제가 없었다. 예전처럼 매일 같이 훈련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었고, 정말로 쉬고 있었기 때문에 이능력을 사용할 일이 없었다. 가이딩이 필요하질 않으니, 가이딩의 역할을 대신하던 약도 필요 없었다. 다만 일상적으로 복용할 양이 없었을 뿐이다. 다른 센티넬들이 평소에도 컨디션 조절을 위해 간단한 가이딩을 받듯이. 그럼에도 성준수는 이런 상황이 익숙했다. 이주원은 때때로 성준수가 너무 약에만 의존한다며 일부러 주지 않으려 버텼으니까. 그 끝은 가이딩을 받으라는 잔소리로 이어지곤 했었다. 살다 보니 그런 잔소리가 생각날 때가 있다는 게 조금 우스웠다. 미운 정도 든다니, 진짜인가 보네.

성준수는 어둠이 내려앉은 밤, 눈을 떴다. 자다가도 습격 소식을 듣는 건 지긋지긋할 정도였다. 간만에 주어진 휴가를 지루하게 보내다 오랜만에 나온 임무부터 만만치 않았다. 전쟁에서 얕봐도 될 상황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말이었지만. 늘 그랬듯이 선잠에 든 탓에 빠르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온몸이 아직은 찌뿌둥하니 무거웠다.

하필이면 그믐에 가까운 날이라 사위가 어두웠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조차 시간이 걸렸다. 이럴 때 빛 계열 엘리멘트 센티넬이 있었으면 참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접전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젠 눈도 제법 어둠에 익어 능력을 조준하기가 훨씬 쉬웠다. 밀고 들어오려는 전차의 바퀴가 연신 얼어붙어 움직임을 멈췄다. 그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씨익 지어졌다.

그때였다. 성준수는 한순간에 어딘지 모를 공중에 위치했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중력에 이끌려 아래로 아래로 추락했다. 마비된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풍덩. 큰 소리와 함께 물결이 크게 일었다. 아무래도 반란군 측에 순간이동 능력자가 있는 듯했다. 성준수를 떨어뜨려 죽이려던 차에 능력 조절을 잘못했거나, 혹은 어두워서 위치를 잘못 설정했는지 근처 호수에 떨어뜨린 것 같았다. 무슨 경우이든 간에 운이 좋았다. 위로 헤엄쳐 올라갈 힘도 들지 않았다. 성준수는 물속에서 기이한 고요를 느꼈다. 이 모든 것을 얼려버린다면. 스스로까지 묻어버릴 거대한 무덤을 만든다면. 그 마지막 순간에 생각난 것은 이상하게도 동그란 뒤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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