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런 기상호의 일생
가비지사운드 AU 동시에 상호가 양키 동시에 병찬이 경찰
쥐에게 갉아 먹힌 앰프선을 쳐다보니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나머지는 몰라도 다같이 전전전세(너의 이름은 ost, 전율을 일으킴, 기상호 기준) 연주 했을 때는 즐거웠지 않았나. 상호는 덜 자란 머리카락을 슬슬 쓸어 넘겼다. 오타쿠처럼 한 마디 하며 약올리고 싶었는데 그럴 대상들이 사라져 있었다. 상호는 이게 만화였다면 자기 머리 위로 말줄임표가 서른 개는 붙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대학은 가지 않았다. 썩 공부에 뜻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빠른이라 고등학교 졸업 때 친구들이 모여 가는 술자리에도 잘 끼지 못했다. 상호는 아이들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올려대는 ‘서울’이 대체 뭔가 싶었다. 짝꿍도 자기 인서울 했다며 아닌 척 기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서울에 갈 일이 전혀 없던 기상호는 무계획으로 상경했다. 캐리어 하나와, 상호가 가진 것 중 가장 큰 가방을 등에 매고. 가방 안에는 중학생 때부터 쳤던 베이스 기타가 들어 있었다.
만으로 열여덟. 야간 아르바이트도 못하는 상호는 푼돈을 들고 밤 늦게까지 열려 있는 거의 모든 문에 들어가 봤다. 그중 한 군데가 공연장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라 악기 들었네. 세션? 상호는 그 말이 너무 반가워서 그만 되묻고 말았다. 세션이 뭔데요? 만만해 보이고 말았다. 질낮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상호는 스물두 살이 되었다. 서울에서, 혼자.
혐오스런 기상호의 일생
으, 매연 냄새. 병찬이 캐비닛에 섬유탈취제를 왕창 뿌려대며 손사레쳤다. 옆 캐비닛을 쓰는 후배 준수가 그거 냄새 이상한데 좀 바꿔달라며 불평했다.
“그렇게 별로야? 원플원이라 샀는데.”
“안 좋으니까 원플원이겠죠.”
“아까운데 걍 쓰고. 하나 누구 줄까?”
“전 됐어요.”
준수가 냉정하게 거절하며 경광봉을 벽에 걸었다. 병찬도 시꺼먼 마스크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퇴근해보겠슴다, 하며 경찰서에서 나왔다. 올해 지나면 순경도 끝이다. 방금까지 준수와 교통정리를 하고 온 참이었다. 계급이 낮아 이런 노가다에 빠짐없이 동원되었었다. 진급 시험에 잘 붙기만 하면 다음 해에는 준수만 도로 위에 남을지도 모른다. 선배 진짜 약오르네요. 벌써부터 준수가 짜증낼 것이 상상됐다. 킥킥 웃으며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문자가 왔다. [차니 오늘 연습?] 병찬은 [응 이따 전화할게] 답장하고 차에 올라탔다. 뒷좌석에 기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밴드는 경찰고시 이전부터 해왔다. 포지션은 기타. 벌써 5년 정도 되었다. 여자친구는 1년도 사귀지 않았으니 병찬은 여자친구보다 밴드를 더 오래 좋아했다고 볼 수 있었다. 여자친구는 뭔 공연도 별로 안 한다는 밴드가 매주마다 꼬박꼬박 만나냐면서 혹시 종교냐고 이죽였다. 병찬은 실실 웃으며 이거 없으면 나 고시 준비하다 죽었을걸, 장난스럽게 말했다.
기타를 들고 지하실로 내려 가니 죽을상인 애 하나가 있었다. 쟤도 고시생인가? 우리 밴드 무슨 고시생 목숨 구해주기 프로젝트 하는 거였나? 그 애가 병찬에게 꾸벅 인사했다. 병찬이 안녕하세요오 웃으며 받아치고 제 자리에 갔다. 리더 격인 초원이 저번에 말했던 새로 온다는 베이스라며 죽을상을 소개했다.
“아, 저는… 기상호고요. 베이스 칩니다. 잘 부탁드려요.”
“몇 살? 고등학생인가?”
“아 저 제대한지 얼마 안 돼서, 스물둘입니다. 말 편하게 하세요.”
“헐 진짜 어리네.”
자기 소개를 마친 상호가 아직 속살 허여멀건 뒤통수를 긁적였다. 가만히 쳐다보던 병찬은 상호의 베이스를 발견했다. 넥에 살짝 녹이 슬어 있었다. 군대 다녀왔다더니 악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병찬이 상호에게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부터 했어요? 베이스.”
“저 중1 때부터…”
“오, 꽤 오래했네.”
아하하 네 뭐 어쩌다보니.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여전히 뒤통수를 긁었다. 손이 컸다. 키도 컸다. 베이스 잘 어울린다고 생각나는대로 말해줬더니 조금 부끄러워했다. 어린 티가 나서 귀여운 막내 한 명 생긴 느낌이었다.
연습이 끝나고 뒤풀이를 제안했으나 신입인 상호가 거절했다. 그, 제가 야간 알바를 해서요. 아 그래? 뭐하는데? 저 피씨방요. 먼저 가볼게요, 다음엔 알바 빼두겠습니다. 깍듯하지만 사투리 섞인 말투라 다들 귀엽다 귀엽다 해주며 상호를 보냈다. 상호는 베이스를 등에 메고 낡은 오토바이를 몰고 사라졌다. 병찬은 아슬아슬하게 넥이 상호 앉은 키보다 훌쩍 튀어나온 베이스를 쳐다봤다. 뭔가 좀 불안한 애였다. 초원에게 쟤 뭐 사연 있어?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나야 모르지, 오늘 좀 캐볼랬더만. 하는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쩝. 입맛을 다시고 여자친구에게 전화하며 자동차 열쇠를 찾았다. 어깨에 끼운 핸드폰에서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니, 이제 끝? 병찬은 응 이제 들어가려고, 뭐하고 있었어? 화답하며 자동차 문을 열었다. 여자친구의 애교에는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사실 여자친구를 크게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사귀어야할 것 같았다. 직장이 익숙해졌으니 인생에 옵션 한두 개쯤 더 붙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다였는데… 병찬이 여자친구에게 대답하며 도로에 진입했다. 옵션 붙이기에 아직 나는 똥차인가?
오늘의 주요 업무는 관할 구역 순찰이었다. 병찬은 순찰차 조수석에 앉아 휘파람을 불었다. 운전하던 준수가 그건 대체 무슨 노래냐며 성질냈다.
“요즘 밴드에서 연습하는 노래.”
“뭔 노랜지 감도 안 오는데요.”
“너 노래 안 들으면서 뭐 알긴 하냐?”
“알 수도 있죠, 뭐…”
“네 룸메 걔면 몰라도.”
“재유도 모를 것 같은데요. 선배 음악했다는 거 구라 아니에요?”
“넌 구라가 뭐니, 구라가… 선배한테…”
헐 나 그럼 박구라? 병찬이 실없는 농담을 하곤 킬킬 웃자 준수가 썩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서에서 라디오스타 같은 거나 해서 유튜브 올릴까? 재밌겠지. 병찬이 말했지만 준수에게서 대답이 없었다. 왜 또 대답이 없니 우리 준수, 하며 병찬이 은근히 보챘지만 준수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아예 다른 것이었다.
“또 봤어요, 자전거.”
“자전거? 방금?”
“네. 차 돌려서 사진 찍어올게요.”
준수가 유턴했다. 병찬은 휘파람을 그치고 수첩을 꺼내 메모했다. 8월 13일 오후 2시 16분 육교 GS25 근처 자전거 안장 분실. 비상깜박이를 켜두고 준수와 내려 자전거 사진을 찍었다. 자전거는 안장이 쏙 사라져 있었다. 준수가 찍은 사진들을 확인하며 이게 어떤 새끼 짓인지 모르겠다며 욕했다. 날도 더워 죽겠는데 기운 넘치는 미친 새끼 누군지 얼굴 볼 때까지 어디 두고 보자고 중얼중얼 대는 준수를 두고, 병찬은 안장이 사라진 낡은 자전거를 본 다음 주위를 둘러봤다. 현장이 찍혔을 만한 씨씨티비는 없었다. 준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만 돌아가자며 손짓했다.
최근 관할 구역에서 자전거가 사라진다는 신고가 자주 접수 됐다. 대체로 낡은 자전거들이었다. 묶여 있는 자전거들은 안장이 먼저 사라지고 난 다음, 잠금장치까지 싸그리 없어졌다. 한 주민은 그걸 옆옆 동네 고물상에서 발견했다. 고물상 주인에게 누가 이랬느냐 물었으나 자긴 돈만 기억이 난다고, 5천원인가를 줬다고 대답했다. 한두 건이 아니다 보니, 순찰 업무 중 안장이 사라진 자전거가 있다면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준수는 대체 어떤 새낀지 상판 보는 날에 개죽음이라며 벼르고 있었다. 병찬은 조수석에서 라디오 채널 주파수를 돌리며 “좀도둑인데?”하고 말했다. 그러자 준수는 질색하는 얼굴로,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저 경찰 고시에 나왔었거든요? 라며 대꾸했다. 넌 생긴 거랑 다르게 쫌 에프엠이더라… 병찬이 말하자 준수는 원래 그런 사람들이 경찰하죠, 했다.
경찰서로 돌아와서 <자전거 연쇄 절도 사건 증거 목록>을 열어 아까 준수가 찍었던 사진과 함께 문서를 작성했다. 약 2개월 전쯤부터 차곡차곡 쌓인 증거들이 스크롤을 짧똥하게 만들었다.
퇴근이 일러 여자친구와 만나 저녁을 먹었다. 식당에서 나오는데 팔짱을 껴왔다. 병찬은 고개를 삐그덕 돌리며 잠깐 걷다가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여자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을 붙여왔다. 병찬은 한숨을 쉬고 싶었다.
자동차로 여자친구를 바래다 줬다. 여자친구는 대시보드를 매만지며 차도 색이 바래나? 순수한 척 질문했다. 병찬은 어어, 중고차니까, 대답했다. 옵션이라고 생각했던 죄책감 때문에 내치지 못했다. ……근데 너도 나 그냥……키 커서 만나는 거 아니야? 남자친구 경찰이라고 하면 좀 있어 보이니까, 그래서 나 만나는 거 아니냐고. 병찬은 늘 그런 질문을 속으로 뱅뱅 굴렸다. 나 똥차 맞을지도? 중고차의 문을 쾅 닫았다.
연습실로 들어가자 애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있었다. 병찬이 방금까지 꿀꿀했던 기분을 떨쳐내려 부러 더 크게 인사했다.
“다들 뭐하냐!”
“어, 형.”
가라앉은 목소리가 인사했다. 아, 또 여기는 이럴 분위기가 아니셔? 병찬은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고 얌전히 기타를 내려놨다. 모여 앉은 사람들 틈에서 이번엔 울상인 상호와 눈이 마주쳤다. 웃기는 하는지, 이제껏 본 표정이라곤 죽을상 긴장한 얼굴 어색한 웃음에 울상이 끝이다.
“상호가 겪은 일 말하고 있었어요.”
“나이도 어린데 사연이 있어?”
“농담할 정도 아니에요.”
“아, 미안.”
병찬이 사과하고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맞은 편에 상호가 보였다. 민소매를 입고 허리에 셔츠를 묶은 상호가 울상을 하고 있는 것이 어쩐지 차림새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어디 락 페스티벌에서 물총 맞아야할 것 같은데.
“고향이 부산인데, 수능 끝나고 열아홉 살 때 혼자 서울 올라와서 살았대요.”
“아이고. 밑천도 없이?”
“하숙이랑 고시원이랑 다 거쳐가지고… 처음에는 찜질방에서 자고?”
“찜질방, 네.”
“오직 밴드 하나만 보고! 음유시인이 따로 없어.”
“아니, 아니에요, 시인은 무슨… 그리고 부산 말고 양산이요.”
호오, 그렇구나. 병찬은 적당히 흥미로운 얼굴을 비쳤다. 정작 사연 주인공이라는 상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병찬이 오기 전에 이미 한바탕 이야기가 오간 모양이었다. 열아홉에 올라왔는데 군대 다녀온지 얼마 안 됐고 지금 스물둘이면, 실질적으로 서울에서 혼자 산 건 얼추 2년인데. 예전에 보니 알바도 하는 것 같고.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인가? 그리 감탄할 구석이 없어서 병찬이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때도 밴드를 했었는데, 그 미친 놈들이 예?”
“아주 상호 뒤통수를 뻑 치고.”
“이 어린 애를 말이야.”
“저 그렇게 안 어려요.”
“입 다물어, 그럴 수록 불쌍해지니까.”
그래, 중요한 건 뒤따른 사정이었다. 상호는 서울에 올라와서 밴드에 들어갔다. 세션으로 활동하거나 알바로 벌었던 돈을 조금씩 회비 통장에 넣어 그걸로 운영자금을 충당하는 방식의 밴드였다. 지금보다도 어렸던 상호는,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서울에서 자기와 함께 어울리고 있는 밴드가 너무 소중했다. 너무 열렬히 그 밴드를 좋아했다. 열아홉 상호는 낮에는 풀타임으로 뷔페에서 서빙 알바를 했고 밤에는 연습실에 가서 베이스를 튕겼다. 물과 소독제가 자주 닿아 짓무른 손으로도 베이스를 튕겼다. 그런 건 하나도 억울하지 않았다. 모두 상호 본인이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상호가 입대했다. 잘 다녀와라. 이발소에서 머리를 바리깡으로 깎는 상호의 모습을 찍기까지 했으면서, 그들은 연락을 끊었다. 상호는 군대에 있는 동안 여러번 그들을 찾았지만,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허탈한 느낌. 대체 서울에서 뭘했는지, 본인의 시간이 솜사탕처럼 녹아내린 것 같은 느낌. 다시 양산으로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상호는 서울로 왔다. 연습실로 사용했던 폐가에 찾아갔으나 남은 건 고장난 전자기기와 누군가가 버리고 간 쓰레기들 뿐이었다. 상호의 추억은 발자국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상호야, 우린 그럴 일 없어. 이래 보여도 다들 각자 하는 일들이 다 있다.”
“아하하, 네.”
“그래 그래. 우린 목숨 팔아서 밴드하는 거 아냐. 그냥 동아리야, 동아리. 가볍게 생각해.”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맺히기만 한 눈물을 상호가 맨손으로 벅벅 닦았다. 병찬은 일어나 의자를 가져다 두고, 기타를 꺼냈다. 내가 기상호 본인이었으면 좀 힘들었겠다만, 애석하게도 박병찬이라서 큰 감흥이 없다. 어린 애가 마음 고생했겠다. 지금도 충분히 어리다만… 병찬은 기타를 어깨에 걸쳤다. 옆으로 다가와 베이스 줄을 당기는 상호에게 말 걸었다.
“그럼 지금은 생활 어떻게 하는데?”
“네?”
“이 동네 살아?”
“아, 네.”
“나도 이 동네 사는데. 얼마나 살았어?”
“제대한 뒤에 처음 온 거라 몇달 안 됐어요… 한 달 넘었나. 두 달…?”
“형이 삼겹살 맛집 알려줄 테니까 연습 끝나면 같이 갈래?”
“헙. 네.”
연습 시작하니까 집중하세요. 초원이 눈초리를 주기에 병찬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상호가 흘끔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이 정도 친절 정도야 얼마든지 베풀 수 있었다. 구린 과거 같은 건 별로 안 듣고 싶지만.
연습이 끝나고 각자 집에 탈것을 둔 뒤 다시 만나기로 했다. 병찬은 건물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여자친구에게 문자했다. [집 들어 왔당 피곤해서 바로 잘듯] 그리고 화면 잠금. 성의없는 연락이지만 예의는 차렸다.
상호가 주민센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잘 몰랐는데 눈물점이 있었네. 진짜로 눈물이 많은 걸지도. 병찬이 생각했다.
“날 더운데? 그치.”
“열대야래요.”
“어쩐지. 넌 그렇게 살 내놓고 다니면 모기 다 뜯기겠다.”
“괜찮아요. 잘 안 물려요, A형이라.”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거 진짜예요.”
군대에서 봤던 뉴스에 나왔어요. 발끈하는 상호는 조금 더 사투리 억양이 세졌다. 병찬은 그래 네 말이 맞다, 해 주며 앞장섰다.
상호는 술을 마신 티가 안 나는 타입이었다. 병찬만 취하지도 않았는데 벌건 얼굴이었다. 대신 상호도 정신이 좀 풀린 것인지 조금 녹은 말투로 병찬에게 햄, 햄 거렸다.
“친구는 있어?”
“어… 서울에요?”
“어엉.”
“있었는데… 이젠 없다? 고 해야죠.”
아 맞다 밴드 망했댔지…… 병찬이 이건 병신샷! 하며 스스로 술을 따라 마셨다. 상호가 어어 햄 막 마시지 마세요, 하고 집게 든 손을 휘저었다.
“근데도 왜 서울에 있냐?”
“음… 햄… 그… 만화영화 좋아하세요?”
“그냥 뭐.”
“그럼 <너의 이름은> 아세요…?”
“아. 봤어.”
헐. 진짜요. 갑자기 상호가 들뜨더니 나불댔다. 그 영화가요 햄 보셨다시피 영상미가 진짜 죽이거든요 아 물론 음악도 진짜 죽이는데…… 그게 예전에 함 아이맥스에서 개봉을 했었거든요 근데 제가 살던 동네에서는 아이맥스 상영관이 없어가지고 서면까지… 서면 아세요 부산 시낸데… 암튼 거기서 봤을 때 감동 먹고 밴드 드가기로 한 거거든여 근데 아이맥스 풀 스크린 그니까 온전한 아이맥스 스크린은 우리나라에 여 서울에 용산 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암튼…
흥분한 상호를 벙쪄서 쳐다봤다.
“그래서…… 용산에서 영화 볼라고 서울서 살기로 했어요.”
“…그래…… 영화 좋아해?”
술 세 병에도 끄덕 없던 얼굴이 그제야 붉어졌다. 병찬이 어떻게든 묻자 상호가 입을 앙다물고 시원찮게 고개를 끄덕였다. 웃기는 애네…
“형은요?”
다시 형이네. 병찬이 콩나물을 뒤적이며 대답했다.
“좋아하진 않고. 그래도 최근 개봉한 건 다 봤어.”
“어떻게 그래요, 안 좋아하는데?”
상호가 기죽은 목소리로 잘도 말했다. 병찬은 허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여자친구가 있거든. 그리고 콩나물을 우적우적 씹었다. 삼겹살과 함께 어금니에 끼는 느낌이 아주 선명했다.
“여친 있으면 영화 자주 보나 보네요.”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상호야… 골 때리네. 실제로 병찬의 골이 울렸다. 생수를 벌컥 마셨다. 데이트할 때마다 할 게 없어. 재미가 없어. 걔도 나 재미 없을걸. 우리 대신 시간 보내주는 건 영화 스크린타임이 제격이거든. 이런 말들을 순진하게도 저런 말 하는 상호 앞에서 다짜고짜 이야기할 수는 없어서, 병찬은 입가를 싹 닦고 싱긋 웃었다. 상호의 표정이 ‘이 새끼 취했네’였다. 고기를 뒤집는 상호의 팔 아래로, 민소매를 입어 다 보이는 갈비뼈가 있었다. 갈비뼈에는 검은색으로 그려진 기타가… 병찬이 눈을 비볐다.
“너… 타투 있어?”
“아 보여요?”
상호가 흠칫 갈비뼈를 가렸다가 다시 손을 치웠다. 조금 번지긴 했으나 명백히 타투였다. 그렇게 작지도 않았다.
“예전에 했어요… 친구가 연습한대서.”
“친구 없다며?”
“그니까… 예전이요. 전 밴드 멤버들이랑 다 같이 했었는데…”
“아. 미안. 그래도 예쁘네 그거.”
“괜찮아요. 햄도 타투 하나 하세요. 몸 좋은 사람들이 하면 멋지던데.”
“난 타투 못해.”
병찬이 자신의 잔에 소주를 따르고 남은 술을 상호의 잔에 탈탈 털었다. 아 술 떨어졌네. 벨에 있는 소주 버튼을 눌렀다.
“왜요?”
“경찰은 문신 못하거든.”
상호의 집게질이 멈췄다. 직원이 가져다준 차가운 소주를 새로 까 상호의 잔에 마저 채웠다. 짠 하자. 상호가 집게를 곧바로 내려두고 아, 네. 했다. 잔을 부딪히고 술을 넘겼다. 상호의 옆 얼굴이 굳어 있었다.
“여기 맛있지?”
“네. 완전.”
일부러 시답잖은 질문을 하니, 대답하는 상호의 얼굴이 웃는 얼굴이었다. 착각인가.
술을 많이 마셨다. 상호는 그렇게 안 생겨서는 술이 셌다. 햄, 햄 괜찮아요? 컨디션 사다드릴까요? 상호가 물었다. 병찬은 아아뉘. 대답하며 휘청였다. 상호가 병찬을 급히 부축했다.
아이씨, 이렇게 친해질 생각 없었는데... 병찬이 상호의 어깨에 기대어 흐물흐물한 뇌로 생각했다.
기상호는 박병찬의 튼튼한 옆구리를 붙잡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무거운 사람이다.
중학생 때, 상호가 다녔던 실용음악학원에는 머리색이 휘황찬란한 형누나들이 많이 다녔다. 상호는 키가 커서 눈에 띄었으나 게중에선 가장 얌전한 축이었다. 서울에 와서 처음 들어갔던 그 밴드에서도 상호는 가장 얌전했다. 아는 것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당연히 사려야했다. 아마추어 밴드에서 가장 구하지 않는 건 베이스야. 알아, 기상호? 알 리가 있나. 상호는 그러나 고개를 끄덕였다. 밴드에 끼워줬으니 고마워하라는 건지. 베이스는 깍두기 같은 거라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기 마련이었다. 기상호는 깍두기로 밴드에 임했다.
밴드는 공연은 안 하고 허구헌 날 헛짓거리를 했다. 연습하는 척 모여서 담배를 피웠고 차 없는 도로에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했다. 상호의 오토바이도 그때 산 것이다. 이상한 무리에 엮였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밤늦도록 놀아봤다. 그건 상호같은, 객지에 혼자 있는 사람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마냥 휘둘리지만은 않았다. 기대하던 일본 만화영화가 영화관에 걸리면 보러 가자며 아닌 척 떼를 쓰기고 했고 만화 카페에 가서 몇 시간을 죽치다 추가요금이 나올 때도 같이 있었다. 밴드라 해봤자 상호 또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상호는 그들의 배경 같은 건 몰랐다. 말도 안 해줬고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애들은 가끔 도둑질을 했다. 만화카페에서 만화책을 훔친 적도 있었고 피씨방에서 과자를, 슈퍼에서 술을 훔쳤다. 어떨 때는 쇠 꼬챙이로 노상에 주차된 차의 문을 따고 들어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훔쳤다. 돈도 되지 않는 것들을 훔쳐서 중고거래 사이트에 내다 팔았다. 상호는 그때마다 그냥 차를 훔치지… 라고 생각했다. 못 훔칠 걸 알아서 했던 생각이다.
유일하게 동갑이었던 멤버인 희찬은 상호와 단둘이 연습실에 남았을 때 말했다. 상호 니 그냥 양산 내려 가라. 희찬의 사투리는 처음 들었다.
나 부산에서 왔거든. 아 나는 근데 서울로 전학 온 거고… 집도 여 있는데… 상호 닌 아니잖아.
양산 돌아가도 할 거 없는데.
그럼 계속 좀도둑질이나 하면서 살래? 야이씨, 밴드고 뭐고 다 허울이지. 동네 양아치다.
그건 안다.
안다고?
어. 희차이 니 근데 와 나한테 부산 출신이라고 말 안 했는데?
걍… 말하면 니 양산 돌아간다칼까봐.
뭔 소리고.
내도 여서 친구 니삐다.
희찬이 씁쓸하게 웃었다. 야, 호야, 있잖냐, 보통 양아치 짓 하고 댕기면 동네에서 짱이지 않냐? 근데 이 동네선 내가 왕따다. 상호는 희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입을 다물었다. 외롭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써봤자 똑같은 소굴에 굴러 들어갈 뿐이었구나.
상호는 실용음악학원에 다녔을 때의 풍경을 떠올렸다. 갖가지 머리 스타일에 귀 목 팔에 주렁주렁했던 쇠붙이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기상호. 원장 선생님은 말했었다. 원래 학교에서 좀 노는 아들이 밴드하겠답시고 한번쯤 찾아오고 그런다. 상호 니는 아닌 것 같다마는.
아닌 게… 아니지… 않나…? 상호는 오토바이 키를 손 안에서 굴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 뒤 희찬은 아버지에게 붙잡혀 가장 가까운 시일로 입대했다. 박박 깎인 머리에 다들 손을 올려놓고 기념사진을 찍었었다. 희찬은 제대해도 어찌될지 모르겠다며 만남의 기약을 흐렸다. 입대 전날 상호에게만 귓속말로 ‘제대하면 너희 집 찾아가께. 양산 집 주소 몰래 편지로 남기라.’ 말했다. 그리고 상호도 곧 영장을 받았다. 상호 또한 희찬처럼 깎인 머리에 손바닥들이 놓였다. 상호는 군대에서 희찬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양산의 집 주소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나는 그래도 재밌었거든. 다들 인생 시궁창처럼, 양아치 짓 하고 사는 거 알아도 재미있었거든. 양산은 재미 없어.
어른들이 말했었다. 서울에서 눈 잠깐 감으면 코 베어 간다고. 이게 무슨 지역감정 조장하는 개소리래요… 상호는 사람들이 다 개로 보였었는데. 제대 후 돌아간 밴드의 아지트에서 자신이 개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개는 나였구나. 왈왈. 으르렁. 컹컹. 염병할… 그래도 <너의 이름은> 재미있게 봐줬잖아… 씹새끼들아. 희찬에게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또 아버지한테 잡혀갔겠지. 상호는 버려진 앰프를 챙겨 폐가를 나왔다. 그 길로 근처 고물상에 갔다. 4천원을 벌었다. 그 돈을 가지고 걸어걸어 조금 멀리 있는 동네로 가 부동산에 들어갔다. 여기서 제일 싼 월세방 보여주세요. 군대에서 모은 적금을 또, 서울에 들이부었다.
병찬은 다음 연습 때 김밥천국에 들러 김밥 세 줄을 포장했다. 삼겹살 집에서, 그렇게나 취했던 와중에도 기상호의 불쌍한 대사 몇 개가 기억이 나는 바람에…
너 밥은 잘 먹고 다니니?
하루에 한두 끼? 먹어요.
뭐 먹는데 주로?
그냥 편의점 삼각김밥… 컵라면… 피씨방 알바 가는 날에는 알바에 있는 거 냉동볶음밥…
병찬이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이거 완전 물 떠다 바치는 시녀 아닌가? 그런 거만 먹고 산다고 사람이 죽지도 않고, 못 먹고 사는 애 치곤 상호는 키도 컸다. 빼짝 마르지도 않았다. 타투 있던 갈비뼈도 앙상한 게 아니었다. 신경 써줘서 뭐하게… 귀찮은 일 만들게? 자문했으나 답이 나오질 않아 핸드폰을 들어 상호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상호.”
-아, 햄.
“어디냐?”
-저 연습실 거의 다 왔어요.
“밥 먹었어?”
-아직요.
“앞에 2112 차 있으니까 타.”
-예?
“기다린다~.”
예? 햄? 둘하나하나두… 병찬은 전화를 끊었다.
곧 상호가 조수석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어색한 표정이었다. 병찬은 큰 소리로 타! 외쳤다. 베이스를 한 손에 옮겨 든 상호가 차에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김밥 좋아하냐?”
“좋아하죠.”
“먹고 들어가자.”
“어… 감사합니다.”
병찬은 상호와 말없이 김밥을 먹어 치우며 여자친구의 카톡을 읽었다. [퇴근했어?] 무시했다. 상호가 이 김밥집도 이 동네 맛집이냐고, 왜케 맛있냐고 입 가리며 물었다. 병찬은 김밥천국이라고 순순히 대답했다. 아, 그래요? 상호는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꼬다리를 한입에 넣었다.
연습실에서 초원이 사회인 밴드 모임 공연 일자가 잡혔다고 말했다. 엥. 우리 그런 거 나가? 병찬이 악보 파일을 덮으며 얄밉게 물었다. 일년에 한 번 정도는 나가줘야 어디가서 밴드라고 하지 않겠냐며 초원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시야에 들어온 상호는 작게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다른 멤버들이 그런 상호를 보고는 “상호가 고른 곡 하나 무조건 해줄게!”하고 달려 들었다. 둘러싸인 상호가 멋쩍은 듯 웃었다. 가운데에 우뚝 솟아서는. 병찬은 끼어들지 않고 자리를 정리했다.
뭔진 몰라도 기상호는 이런 짓 하는 거 좋아하기는 하나보다, 음악하는 거. 그런 것치곤 베이스 그리 잘 치는 않는데.
상호에게 몇 번이고 밥을 사줬다. 샌드위치 같은 걸 사와서 같이 차 안에서 먹거나 연습이 끝나고 동네 식당엘 데려가거나. 술은 마시지 않았다. 여자친구를 잠시 태워다 줘야 할 일이 있어 함께 탔을 때, 여자친구가 물었다. 차에서 밥 냄새가 나네. 병찬은 밥을 안 먹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여자친구와 저녁을 같이 먹어야 하니까. 응, 준수가 사다달래서. 걔 당직이거든. 후배의 이름을 팔았다. 그 뒤 연습실 앞에서 상호를 태워 도시락을 먹었다. 소고기에 새우튀김까지 들어간 거. 비싼 거. 순경 월급에는 솔직히 분에 넘치는 걸. 상호는 아는지 모르는지 싹싹 긁어 먹었다. 근데도 왜 살이 안 쪄. 밑빠진 독에 물 붓기인가.
조수석에서 먼저 밥을 다 먹은 상호가 악보 파일을 펼쳐놓고 허공에 코드를 짚었다. 그러다 손등으로 입을 슥 닦았다.
“티슈 줘?”
“있어요?”
“대시보드 열어봐.”
“고맙슴다.”
상호가 대시보드를 덜컥 열었다. 정리 되지 않은 짐들이 단번에 내보였다. 안에는 사 놓고 쓴 적도 없는 콘돔도 있었다. 아. 미친. 병찬은 자리에 굳었으나 상호는 아무렇지 않게 티슈만 꺼내고 대시보드를 닫았다. 입을 닦으며 상호가 병찬을 쳐다봤다.
“왜요?”
“아, 아니 더러워서…”
“에이, 다 글쵸.”
“그래?”
“저도 베이스 가방 안에 영수증 많아요.”
난 콘돔 영수증은 없는데… 병찬이 몸을 도로 시트에 푹 누였다. 얘가 뭐 고딩도 아니고, 뭐 그렇게 놀라지. 병찬은 먹다 남은 계란말이를 집어 입에 넣었다.
“아. 어… 음… 햄 혹시 그런 취향…?”
“…움?”
“차에서 하는 거 좋아해요?”
병찬은 혀를 깨물었다. 사레가 들려 쿨럭 대자 상호가 재빨리 티슈를 뽑아 내밀었다. 아, 햄, 미안해요. 농담인데. 머리에 열이 올라 지끈지끈했다. 상호의 큰 손이 코앞에 있었다. 이상하다, 전부. 티슈를 낚아 채 얼른 입을 닦았다. 겨우 물까지 마신 다음에야 진정됐다. 운전석으로 거의 넘어오다 시피 한 상호의 몸을 겨우 피하지 않았다. 하마터면 진짜 피할 뻔했다. 더 이상하지, 그게.
“넌 어린 애가 그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아무럴 이유는 있나… 미안해요.”
“한 마디를 안 지네.”
“버릇 없었나요.”
“아냐, 괜찮아.”
“…우리 친한 거 맞죠?”
계속 그 거리에 있는 상호가 물었다. 병찬은 후우우 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게, 너랑 내가 친한 건가? 친해지기 싫었는데. 차라리 근무복을 입고 왔으면 이런 일 없었을까?
“…그런 적 없어.”
“…우리 안 친하다고요?”
“아니…”
차에서 한 적 없어…… 병찬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애초에 그런 짓을 한 적이 별로 없다, 여자친구랑. 콘돔 깔 일 없었다.
상호가 물끄러미 병찬을 쳐다봤다. 병찬은 상호를 쳐다보지 않았다. 룸미러에 비치는 상호의 옆얼굴만을 간신히 볼 뿐이었다. 어, 눈물점 이쪽 아니었네. 새삼스럽게 깨달았을 때는 상호의 입이 귓가에 와 있었다.
“저 또 궁금한 거 있는데...”
“야.”
“햄.”
그럼 밥 먹고 한 적은 있어요? 병찬이 깜짝 놀라 고개를 틀었다. 상호가 틈을 노리고 입을 맞췄다. 들이미는 힘 때문에 창문에 뒤통수가 부딪혔다. 꽝. 입술 벌리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밥 먹고 해본 적은 있어서 피하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진짜 근무복을 입고 왔었어야 했는데. 병찬이 뒤늦게 후회했다.
떨어진 상호는 티슈를 뽑아 또 다시 병찬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냥 손등으로 슥. 병찬이 느지막하게 티슈를 받아 들었다. 받기만 했다.
“야. 기상호.”
“죄송,”
“매너 없게 굴지마.”
“네…”
“누가 키스하고 바로 입 닦냐.”
키스가 도시락이니. 병찬이 쓰지도 않은 티슈를 비닐봉투에 던져 넣었다. 좀 짜증스러운 행동이었다. 옆에선 상호가 비스듬히 병찬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엔 안 그럴게요, 햄.
다음이 있어? 도시락을 사다 바친 것도, 가르치듯 군 것도 자신이라 꼬리 물지 않았다. 가르쳤으면 복습을 해야하니까. 병찬은 슬쩍 상호의 갈비뼈를 쳐다봤다. 언제 벗은 건지 남방이 내려가 있어 옆구리가 다 보였다. 검은 기타 타투가 여전했다. 넌 좀 모자라. 그게 뭔지도 모르겠는데 모자라. 넌 아냐, 너 그런 거? 내가 채워주지도 못할 것 같은데 괜히 눈치채서… 형이 좀 곤란해. 넌 너무 곤란해.
이제는 상호의 눈물점이 잘 보였다. 하필이면 또 그런 데에 점이 있어서, 사람 신경 쓰이게.
모니터 가득한 폐쇄회로실에서 뚫어져라 화면들만 쳐다봤다. 신호위반, 속도위반 차량들의 번호가 화면 옆으로 주루룩 떴다. 준수는 안 그래도 심한 다크서클이 시커멓게 될 정도로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좀 멈춰 가면서 해.”
“가만히 있으세요.”
“어쭈.”
“선배나 핸드폰 확인 좀 해요, 아까부터 징징 신경 쓰이니까.”
“너도 니 룸메 연락 좀 받아.”
“걘 이해 해요.”
“뭐래.”
“아 빨리요, 지금 또 그러네.”
업무 중에는 연락하지 말자고 한 건 아주 예전이었는데. 어긴 적은 거의 없었는데, 여자친구에게 계속 연락이 왔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카톡 문자 전화 인스타그램 디엠 페이스북 메시지. 안 그래도 밴드 연습하느라 손가락이 남아나질 않는데 무슨 답장을 어디에 몇 개나 해야하는 거지. 생각만으로 손가락이 저렸다. 손가락이 저리면 어제 연습했던 곡의 코드가 생각났고 그럼 기상호의 옆 모습이 생각났다. 거의 눈을 감고 베이스를 치던 상호의 옆 모습이. 저번에 말했던 영화의 주제곡이랬는데 되게 좋아하나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준수가 병찬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이 개새끼 드디어 잡았다.”
“준수야, 여기 순찰차 아니야.”
“이거 맞죠. 아 녹화 따야지.”
“뭐가… 아.”
“자전거 맞죠? 이거?
너 내가 족칠 거야 이 개자식… 준수가 빠르게 모니터의 일련번호를 메모하고 근처 폐쇄회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병찬은 준수가 정지시켜둔 화면을 쳐다봤다. 손으로 가리고 있던 핸드폰에서는 계속 진동이 울렸다.
화면 속에는 사라지는 자전거와 검은 기타 타투가 가득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병찬은 무심코 기상호가 아닐 거라 생각해버렸다.
박병찬은 대학을 자퇴했던 때를 떠올렸다. 누군가가 함부로 닫았던 문틈에 손가락이 끼어 꾸준히 재활을 했었던 시점이었다.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지만 정교한 작업은 힘들 거고, 쓰면 쓸수록 염증이 도질 확률이 높다는 진찰을 받았다. 병찬은 품에 기타를 덜렁 메고서 바닥에 앉아 있다가 자퇴서를 썼다. 한번쯤은 관둬봐도 괜찮지 않나? 전공하던 기타를 때려치웠다. 싫어서 관둔 것은 아니었어서 집에서 가끔 줄을 튕겼다. 학교 후배였던 초원이 갑작스레 객원 세션으로 부른 것은 아주 우연이었다. 가끔 와서 기타 쳐요. 초원은 가볍게 말했으나 병찬은 어쩐지 계속 연습실에 나갔다. 경찰고시를 준비하다가 샤프를 쥔 손이 너무 저리면 또 가서 기타를 쳤다. 그 정도로만 기타를 붙잡고 있으면 마음이 괜찮아졌다. 손가락도 조금은 괜찮았다.
그러나 만족이라는 감정은 아주 찰나에 불과해서, 경찰고시를 몇 번 낙방했을 때야 깨달았다. 아, 나 이거 아직 많이 좋아하는구나. 만족은 사실 갈증의 직전 단계다.
기상호 너는 뭐야? 너는 뭐 때문에 아무도 없는 서울에서 베이스를 쳐? 너는 나처럼 악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잘 하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겨우 자전거나 훔쳐서 팔으려고? 대한민국에서 일년에 도둑맞는 자전거가 몇 대인지나 알아?
연습실에서 불협화음을 냈다. 모두가 병찬을 쳐다봤다. 병찬은 어, 미안. 사과하고 다시 코드를 잡았다. 옆에 서 있던 상호가 병찬의 손을 쳐다보고 있었다.
준수는 몇날 며칠 폐쇄회로실에서 화면을 붙잡고 있었다. 이거 개새끼가 아니라 쥐새끼였어요. 기막히게 회로 끝나는 데에서 사라지곤 다신 안 나타나더라고요. 준수는 프린트 한 옆구리 사진을 모나미 볼펜으로 쿡쿡 찔렀다.
“특정할 게 이거 밖에 없는데… 사람들마다 옆구리 좀 까보라고 할 수도 없고.”
형광펜까지 칠해진 검은 기타 타투가 저화질로 인쇄되어 있었다. 병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준수를 끌어냈다.
“뭔데요?”
“순찰 시간이야.”
“알겠으니까 놔주세요. …요새 기분 안 좋네요, 선배.”
“그런가?”
“여자친구랑 헤어졌어요?”
결국? 준수가 물었다. 병찬은 이젠 잠잠한 핸드폰을 꺼내 내려다보며 어, 그런가 봐, 싱겁게 대답했다. 그럼 그런 거지 그런가 봐는 뭐야… 뒤따라오는 준수가 말했다.
기상호면 기상호인 거지. 기타 타투면 기상호인 거지……
기상호의 좁은 반지하 자취방까지 따라 들어왔다. 계속 마시지 않던 술을 마셔서 어쩔 수 없었다. 차를 끌고 갈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상호가 저희 집 가실래요? 하고 물어 본 것에 힘없는 모가지가 끄덕인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병찬을 부축해 프레임 없는 매트리스에 퉁, 내려놓은 상호가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곤 창가로 기어가 모기향에 불을 붙였다. 이짝에서 모기가 많이 들어 오거든요. 연기 나도 쫌만 참으세요. 병찬은 그제야 이 방엔 에어컨조차 없다는 것을 알았다. 월세 얼마냐고 물어볼까? 아니, 보증금 얼마냐고? 이 동네 물난리 날 때도 있는데 그런 건 알고 반지하 구한 건가? 짐이 없네. 도둑질하는 주제에… 병찬이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느새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온 상호가 왜, 왜요? 하고 물었다.
“아니. 나도 물 좀.”
“드세요.”
“…”
“……내일 출근 해요?”
“내일은 밤에 출근.”
“그럼 자고 가도 되겠네요.”
“너 이번엔 무슨 짓 하려고.”
“무슨 짓 할까요.”
“……넌 집 털겠다고 예고하는 강도 본 적 있어?”
“하하하.”
“뭘 웃어? 이 새끼가…”
말이 막 나갔다. 그러자 상호의 웃음이 뚝 그쳤다. 술에 취해서 생수 뚜껑이 헛돌았다. 옆에 있던 상호가 부드럽지만 빠르게 생수병을 자기에게 가져갔다. 그리고 차분히 뚜껑을 잠갔다.
“햄, 손가락 아프죠.”
“어?”
“다친 적 있어요?”
“어…”
“예전에 코드 틀린 것도 그래서죠?”
그건… 너 때문인데. 병찬이 손을 꽉 쥐었다. 오늘은 아프지 않다. 멀쩡했다. 다만 술에 취했을 뿐이었다. 네가 도둑이라 술을 좀 마셨어. 상호에게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않았다.
“온열 찜질하면 좋대요, 손가락 골절상에는…”
이럴 때 보면 기상호는 너무 착하고 자길 너무 좋아하는 사람 같았다. 병찬은 어, 그래? 하고 벽에 기대 앉았다. 상호 몰래 손을 계속 쥐락펴락했다.
“아프면 불편하잖아요.”
“그치…”
“햄 기타 되게 좋아하는데… 아프면 좀 그렇잖아요.”
“아픈 건 나고 기타 되게 좋아하는 것도 난데 왜 네가 좀 그래.”
“하고 싶은 거 있는데 잘못하면 속상하니까.”
“……”
“……”
“말 짧아.”
“속상하니까요.”
괜히 트집을 잡았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지. 기상호한테 말하지 말고 성준수한테 말할까. 도둑 여기 있다고. 도둑은 밥을 잘 못 먹는데 먹는 거 좋아해. 도둑은 중고 오토바이 몰아. 도둑은 눈물점이 있어. 도둑은 남방을 자주 입고 민소매가 많아. 도둑은 양산 출신이고 아직도 사투리 억양을 써. 도둑은 월수금에는 식당 서빙 알바하고 토일에는 피씨방 야간 알바 해.
“왜 속상하냐고, 네가.”
“왜 저 괴롭혀요?”
“이게 괴롭히는 거야?”
“원하는 대답이 뭐예요?”
“뭐라고 생각하는데?”
“모르죠 저야…… 제가 할 대답은 하나 밖에 없는데.”
“말해 봐.”
“제가 햄 좋아하니까 글쵸…”
도둑은 나를 좋아해.
병찬이 헛웃음을 쳤다. 허허허. 하하하. 킬킬… 갑자기 웃어대니 상호가 당황한 얼굴이었다. 병찬이 상호에게 손짓햇다. 상호는 엉거주춤 병찬에게 다가와서는 매트리스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렇구나…”
“알고 있었잖아요.”
“나는 네가 친한 거랑 좋아하는 걸 구분 못하는 줄 알았지…”
“그럼 왜 저랑 놀아줬는데요.”
“너 진짜 모자라구나.”
“뭐요?”
“나도 널 좋아하니까 그랬던 거잖아. 아는 줄 알았는데, 상호야.”
병찬이 상호를 끌어 당겨 안았다. 싸구려 오이 비누 냄새가 났다. 술 냄새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내가 도둑을 좋아해. 이번엔 옵션으로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근데 기상호 너는 나를 외로워서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잖아.
손을 내려 상호의 옆구리에 집어 넣었다. 몸을 옆으로 살짝 빼내는 것이 느껴졌다. 살짝 튀어나온 살이 있어 손톱으로 눌렀다. 타투를 초보자가 했는지 살갗이 울퉁불퉁했다. 상호가 간지럽다고 몸을 틀었다. 병찬은 상호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쿡쿡쿡 웃었다. 상호는 물음표를 띄운 채 병찬을 마주 안았다.
상호의 어깨 너머로 손톱을 가만히 내려다 봤다. 기타… 있네. 당연히 있겠지만, 너무 확실하게 있네… 상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어린 아이의 숨소리 같았다.
준수는 계속 자전거 도둑을 찾겠답시고 폐쇄회로를 뚫듯이 쳐다봤다. 순찰 때도 안 그래도 날카롭게 생긴 눈을 찡그려가며 골목 사이사이를 관찰했다. 추가 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예민하긴, 짜식이. 병찬이 괜히 장난을 걸면 옆으로 확 비껴선 냉정한 눈빛을 했다. 선배는 직무유기예요. 도둑 잡는 게 우리 일인데 그렇게 나 몰라라 하면 어떡합니까? 쏘아 붙이다가도 어, 재유가 너 밥 주러 왔다, 하면 고개를 홱 돌렸다. 병찬은 그럴 때만 낄낄 웃었다. 속아 넘어간 준수가 머리를 부여잡고 깊게 한숨을 쉬면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때말고는 도둑으로 웃지 않았다.
연습하는 날에는 상호에게 밥을 사줬고 가끔 키스했고 종종 함께 잠들었지만. 어느 날은 괜히 상호에게 너 여기 뻐근하다 하지 않았냐며 기타 타투 위로 파스를 붙였다. 상호는 자긴 재산이 몸 밖에 없는데 아픈 곳이 어딨냐며 바로 파스를 떼어냈다.
“타투 지워요?”
“뭐… 지우면 좋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말이지만 상호가 진지하게 네이버에 ‘타투 제거 시술’을 검색했을 때는 조금,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공연날이 다가왔다. 동네에서 자전거가 사라지지 않은지는 좀 되었다. 여름도 거의 끝나갔고 상호는 민소매를 입지 않았다. 병찬은 압축팩에 들어간 상호의 민소매들을 보며, 모기향에서 불이 안 나서 다행이라고 말해줬다. 그러자 상호는 웃으며 무슨 그런 말을 하냐고 했다.
“형네 집은 다 방염처리 되어 있는데.”
“방염이요?”
“불 잘 안 나는 거어.”
“어… 같이 살자는 건가.”
뒤통수를 긁적이는 상호를 보고 병찬이 웃었다. 일단 공연 끝나고 생각해볼까. 그랬더니 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찬이 공연을 한다는 걸 듣고 준수가 예의상 언제 어디서 하는지는 물어보겠다며 말을 꺼냈다. 병찬은 턱을 긁으며 누구 보여줄 만큼은 아냐, 잘라 대답했다. 평소답지 않게 장난기 없는 병찬을 보며 준수는 순찰차의 문을 닫았다.
“선배, 요즘 뭔가 다른 사람 된 것 같은데.”
“나?”
“예. 알아채서 기분 나빠요.”
“에휴.”
어쨌든 공연장 알려주면 재유하고 같이 보러 갈게요. 준수가 덧붙였으나 병찬은 고개를 저었다.
마침내 공연날이 되었다. 연주하는 건 네 곡. 총 열 팀 중 여섯번째 순서다.
공연장의 백스테이지에서 다시 한번 세트리스트를 되뇌었다. 병찬은 각 곡마다 시작하는 코드를 허공에 짚어봤다. 상호가 골랐던 곡은 G코드로 시작했다.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데 상호가 등을 콕콕 찔렀다.
“왜?”
“파이팅.”
상호가 주먹을 내밀었다. 병찬이 그 주먹에 손 대신 이마를 콩 부딪히곤 순서에 맞추어 계단을 오르는 멤버들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병찬의 뒤엔 상호가 대기 중이었다. 병찬은 상호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상호.”
“예?”
“…이 노래 좋아하지?”
“어, 네.”
“나보다?”
“예? 에, 아니죠.”
“그럼 됐어.”
“뭐가 그래요…”
진짜 이상해. 상호가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지만, 병찬은 웃기만 했다.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무대로 올라갔다. 무대 조명 때문에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상호를 볼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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