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

정육식당의 퉁명스러운 요리사가 맨발로 도망간 남자 애인을 기어이 찾아내서 쥐구멍 같은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고, 호사가들이 떠들어댔다. 그놈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바닥에 어항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궤적을 만들었다.

형원에게 한쪽 손목을 붙잡혀서 끌려가는 무영은 자주 비틀거렸다. 손목을 죄는 악력이 약해지지 않기를 맹목적으로 바라면서 다른 팔로 껴안은 어항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러는 동안 형원은 앞만 보고서 재우쳐 걸었다. 그러나 무영이 중심을 놓쳐 휘청거리면 잠시 멈추기를 반복했다. 궁상맞게 씨발 신발은 또 짝짝이로 신어 가지고. 하기사 어항을 들고 도망칠 정신머리를 가진 놈에게 어울리는 꼬락서니지.

정말로 사라질 배짱조차 없으면서 찾아내 달라고 생떼를 부려서 가뜩이나 숨이 막히는 동네를 쥐잡듯이 뒤지게나 하고… 먼지와 습기로 꾀죄죄한 몰골을 보면 울분에 숨통이 막힐 것 같아서 형원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너에게 못 해준 게, 그래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뭐가 있냔 말이다. 

설탕물을 입힌 토스트를 몇 개나 만들어서 먹인 것도, 마장에서 딴 푼돈을 고스란히 간식비로 쓰는 것도, 더러운 맨션의 닭장 같은 방에 더부살이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 것은 전부 형원이다. 그런가 하면 무영은 광둥어도 못 해서 사람이 모인 곳에 가면 입을 다물고 샐샐 웃기나 하는 주제에 한시도 형원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응석을 부린다. 무영이 하는 것이라고는 하루에 두 번 금붕어 먹이를 주는 것과 일을 마치고 들어온 형원이 베란다에서 담배를 물면 기다렸다는 듯 성냥을 긋는 일이다.

이렇게나 덜떨어진 무영이 형원에게 제공하는 효용은 오직 부드러움이었다. 곱슬기가 많아 폭신한 머리카락과 무른 피부는 무영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것이 부여하는 이 촉감 때문에 형원은 이방인을 자신의 집에 들여놓음으로써 파생되는 모든 부담을 감내하기로 한 것이다.

형원은 현관문이 뒤에서 닫히는 소리가 나기도 전에, 무영의 밑단이 뜯어진 티셔츠를 말아 올렸다. 몸에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아도 무영은 고분고분하다.

 “들어가.”

 그는 무영의 몸을 비좁은 욕조에 구겨 넣고서는 목덜미를 누른다. 뒤통수 위로 미지근한 물을 들이부었다. 곱슬머리가 푹 젖으면서 한순간 숨이 죽는다.

“어지러워.” 

 그 중얼거림을 끝으로 무영은 더 말하지 못했다. 불시에 입을 틀어막혔기 때문이다. 형원이 무영의 턱을 붙잡아 올려 입술을 맞댔다. 질끈 감은 눈과 떨리는 속눈썹을 망막에 새기면서 형원은 무영의 입안에서 혀를 끄집어냈다.

‘형, 금붕어는.’

‘시끄러워.’

‘나 숨 막혀….’

그러자 숨이 모자랄 때까지 무영의 덜미와 귓바퀴와 뺨을 배회하던 형원의 손이 무영의 목을 콱 움켰다. 맞물려 있었던 입술이 쩍 떨어진다. 목울대 바로 아래를 엄지로 압박하자 무영의 벌어진 입과 눈가가 축축해졌다.

‘나도 그래.’ 

매일 물속에 있는 것 같다고. 상대습도 백 퍼센트의 날씨가 이어지면 아가미가 있어야 살 수 있을 것 같다. 형원의 손아귀 안에서 맥박이 펄떡펄떡 뛰었다. 이번에는 무영이 반항하지 않는다. 마치 죽여달라는 것 같다. 아니, 형원이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무력한 척하는 것 같다. 영악하기 그지없어서 형원은 손아귀 힘을 푼다. 무영이 한참 기침을 하면서 훌쩍거렸다. 무영의 생존방식이 참 가증스럽기도 하고 가여웠다.

가책감이 고개를 든다. 형원은 모가지를 조르는 동안 흘러내린 앞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 넘기더니 비누를 문질러 거품을 냈다. 손을 씻고 나서 무영의 머리칼과 몸에 비누칠한다. 만져지는 살갗이 부드럽다. 사실 목을 조를 때도 실컷 느껴졌다.

바로 어젯밤, 형원에게 어항을 선물했던 남자가 이 집 문을 두드렸다. 무영이 의심 없이 문을 열어줬다. 이 맨션에서 그렇게 확인도 하지 않고 문을 열어선 안 된다고 주의를 더 줬어야 했나. 사실 마주칠 때도 됐다는 게 형원의 생각이었다. 무영을 데려오기 전부터 그 남자는 비정기적으로 형원을 만나러 왔으니까. 엄밀히는 교제하는 사이도 아니고. 이렇듯 형원은 매사 무심했다. 아무튼 남자는 무영을 보더니 싱겁게 웃고는 금붕어 먹이만 놓고 돌아갔다. 그래서 무영은 형원이 말해준 적 없는 금붕어 어항의 출처를 알 수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매일 그렇게 밥을 챙겨줬다니.

시무룩해진 무영은 형원에게 담뱃불도 붙여주지 않았다. 무영은 말수가 적지만 그렇다고 말을 신중히 고르는 편은 아니다. 더구나 밤새도록 형원이 말해주지 않은 그의 연애사를 상상하면서 토라져 버린 탓에 오늘 아침 기어이 형원의 신경줄을 끊어놓았다. 

건방진 새끼가 뭐라도 된 것처럼 까불고 있어.

아침에는 그렇게 말했지만, 지금 형원은 무영의 몸에서 바깥의 더러움을 한 겹 벗겨냈다. 욕조 물이 찰랑거리고 형원이 한숨을 쉬었다. 이무영에게는 알려줄 것 투성이다. 우선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문율을 빨리 체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형원 자신에 대해서는 알려줄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날 아침,

무영을 매몰차게 대한 뒤 일터에 온 형원도 당연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정말 성가신 일이다. 이렇게나 기분을 잡치게 하는데도, 나는 너를 먹인다고, 이렇게……. 형원은 작업대 위에 두툼한 고깃덩어리를 올려놓는다. 그것을 잠시 살펴보더니 차갑고 미끄덩거리는 표면을 눌러본다. 이내 칼날이 고기를 푹 파고들었다. 익숙한 솜씨로 부드럽게 살을 갈라 절단한 뒤, 뼈와 힘줄과 불필요한 지방을 제거한다. 

반나절 동안 숨 한 번 안 돌리고 주방과 냉동창고를 오가던 형원은 손님이 몰려드는 시각 직전, 고무 앞치마 차림으로 뒷골목으로 나가 연초를 물었다. 옆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와 불을 당겼다. 그다. 어젯밤에 그렇게 돌아갔으니 다시 온 것이 의외였다. 가게 앞에서 기다릴게. 남자는 형원이 담배를 다 태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렇게 말했다.

퇴근 후, 형원은 어느 카페에서 남자와 마주 보고 앉았다. 그에게선 알싸한 향수 냄새가 났다. 남자가 앙증맞은 은색 집게로 각설탕 세 개를 밀크티 잔에 차례로 빠뜨린다. 같은 음료를 앞에 둔 형원은 설탕을 넣지 않는다. 잠시 침묵하자 낡은 쇼케이스 냉장고에서 나는 냉매 흐르는 소리가 끼어든다.

“그 사이 새 애인이 생겼을 줄은.”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

형원은 티스푼으로 찻잔을 휘젓는 중인 그의 왼손 약지에서 반짝이는 반지에 대해 말한 셈이다.

“하긴, 나는 당신을 외롭게 하니까.”

“개소리.”

“하지만 좋아하지? 당신을 외롭게 만드는 사람들을.”

남자의 직업은 비행기 기장이다. 그는 형원이 가보지 못한 세계에 도달해 봤다. 형원이 평생 가볼 일 없을 곳들을 예사로 오갈 것이다. 그래서 남자에게는 언제나 낯선 공기가 묻어있다. 먼 이국들의 문화가 그의 피부 아래 겹겹이 스며있고, 그 정도 견문과 교양을 갖춘 인물은 적어도 형원이 아는 한 이 성채에 없다. 남자는 장거리 비행을 하면 먼 이국에 며칠을 머물며 휴식한다. 그래서 금붕어를 기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죽은 걸 가르고 뼈를 바르는 법만 알지 생생하게 살아있는 걸 돌보는 법은 몰라. 남자가 처음 어항을 가져왔을 때나 들었던 생각이 지금도 불쑥 튀어나온다.

“어려 보이던데, 몇 살이야?”

“……열여덟.”

“나보다 심하네.”

“금붕어 물갈이 방법이나 제대로 알려줘.” 

그 말에 남자가 웃는다. 이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일 것이다. 그렇게 집에 돌아왔는데 무영이 없다. 금붕어 어항도 없다.


깨끗해진 무영은 약간 차분해졌다. 그리고 자길 죽였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침대에 잘도 누웠다. 형원은 이야기에 능하지 않다. 그래도 형원은 자신을 외롭게 만들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목에 빨갛게 손자국이 남은 무영은 말없이 기다렸다. 바보 같은 놈. 이 무법지대에 있는 인간들의 과거사 같은 건 궁금해하지 않는 게 미덕인데도.

형원이 이 섬에 와서 처음부터 성채 안에서 산 것은 아니었다. 알다시피 법이 없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나 이곳에서 산다. 그전에는 실업학교에서 토목을 배웠는데,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아서 가진 것을 조금씩 덜어내다 보니 지금이 됐다. 그래서 도망쳐 온 뒤로,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을 추려봤다.

 

형원의 초기 적응을 도와준 후견인은 아편굴을 관리하면서 경주용 비둘기도 길렀다. 그가 애지중지 키운 비둘기는 경주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비둘기가 우욱우욱 울 때마다 형원은 짜증이 치밀었다. 씨발놈. 그래서 두 번째 애인을 만들었다. 그는 술집 가수인 동시에 문신사였다. 밤새도록 노래를 하고 들어온 그는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라고 조언하고는 곯아떨어져 버렸다.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자꾸 형원의 허리에 잉어를 새기고 싶다고 간청하는 게 징그러워서 헤어졌다. 삼합회 조직원이었던 애인은 개중 나았다. 그는 형원에게 꽤 헌신적으로 굴었는데, 어느 날 배에 칼이 꽂힌 채로 발견됐다. 이미 딱딱하게 굳은 뒤였다고 한다. 형원은 남자를 사랑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그랬다면 그 칼이 형원의 심중에도 꽂혔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행기 기장이었던 애인은 정말이지 무책임해서 이 어항과 금붕어를 남겼다. 그의 전언이 형원의 살짝 쉰 목소리를 통해 무영에게 전해진다. 수조를 정기적으로 청소해야 하고, 필터를 넣고 제때 환수해 주어야 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붕어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산소포화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무영이 형원을 끌어안는다. 무영의 깨끗한 몸에서는 비누 향이 난다. 형원은 심장에서 무언가 부드럽고 따끈한 기운이 퍼지는 느낌마저 든다. 내 영혼은 더럽다. 더러움의 척도를 상처 입은 빈도로 정하자면, 아마도. 네 것은 그저 더러워질 기회가 적었던 걸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의 굴곡을 맞물려있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라고 형원은 생각한다. 

정확히는, 그는 자신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지닐 수 있다고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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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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