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의 키타로/논커플링

늪에 어찌 무지개를 띄우겠습니까 그건 무리입니다

묘타로+묘즈키.

※후세터 글을 약간 손본 버젼입니다

※원작 스포일러 및 날조 설정에 주의해주세요


(마음이 올곧군.)

꿈에서인지 현실에서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때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칭찬하는 척 헐뜯거나 대놓고 비난하는 어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듣고서 기쁜 마음이었다는 감각은 없다. 그저 하늘은 푸르고 번개는 번쩍이고 바람은 불어오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전달받은 듯한 덤덤한 감각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다. 덤덤하다.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 애초에 그런 것을 섬세하게 감지할 마음이 없었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더 내려갈 곳이 없으면 고인다.

단지 그 정도인 이야기다.

성가신 것은 그러한 ‘정체’를 자각하는 의식의 존재였다. 좀 더 신중하게 표현한다면 의식의 존재 유무보다 의식이 존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그렇다, 나는 ‘나’의 윤곽을 인지하고 있다) 주변 풍경 속으로 좀체 동화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혹은 동화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어느 쪽인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단지 얇은 막 같은 윤곽이 계속해서 흐늘흐늘하게 계속 존재할 뿐이다. 그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고 윤곽 바깥에도 특별한 것은 없는데도. 그렇다면 이 막은 뭘 위해 있는걸까. 마땅한 의미를 부여받기에는 너무 하찮다.

(마음이─)

둥실둥실, 흐늘흐늘한 의식 한 귀퉁이에서 그 말이 계속 떠오른다. 텅 비어있는 공간에 촛불 하나를 키면 그 불빛이 사방에 넘쳐나는 것처럼 일렁인다. 하지만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말인가. 이제와서는 올곧다는 말의 의미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비유하는지도 흐릿하다. 작은 테두리 안에 갇힌 작은 돌멩이. 그렇다. 나는 분명 그 정도의 존재다. 6음절 정도의 말도 분명 작은 돌멩이 하나의 무게일 것이다. 어쩌면 돌멩이조차 아니겠군. 그렇다면 이건 그냥 물거품이다. 거대하고 거대한 물 속의 둥근 거품 하나.

(올곧군─.)

작다. 한껏 부풀어오르지도 못하는 말이다. 어째서 이 말만을 기억하는 것일까? 인과도 추억도 아닌 형태만이 남아있어서야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다. 터트려 버릴 수도 없다. 빠져나갈 수 없는 테두리 속에서 영원히 헤매는 구체일 뿐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았을텐데. 비눗방울의 윤곽이 터지듯 한순간에 풀려나가서 형태를 잃고 인과를 잊었더라면 이렇게

이렇게?

이상하다. 분명 아까까지는 하나의 거품만이 있었을텐데 지금은 뭔가 다른 게 느껴지고 있다. 촛불만 켜져 있던 방에 무언가의 그림자가 지고 있다. 낡은 벽에 형태가 생긴다. 그걸 좇는 것처럼 뭔가가 움직인다. 마치 깊속이 묻혀있던 어떤 것을 캐내듯이 가슴이, (어라?) 가슴이 조여들듯이 아파서 괴롭다.

그렇다. 괴롭다. 나는 괴롭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그저 괴롭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애초에 조금 전이라는 건 어느 정도의 시간이었지?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인지하던 자신은 아주 찰나의 존재같기도 하고,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긴 시간 너머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감각이 이상하다. 관념이 이상하다. 논리가 파탄났다. 두서를 알 수 없는 감정만이 무너져내린 둑의 물길처럼 소용돌이쳤다. 맑아지는 일 없이, 그치는 일 없이, 다만 나를, 한결같이 괴롭게 만들고 있다.

지금은 알 수 있다. 지금이라면 그 말의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게 무슨 소용인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마음이 올곧다고? 그것이 어쨌다는 것인가. 설령 마음이 구불구불하든 네모난 형태이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다. 물론 올곧은 형태여도 마찬가지다. 주위 만물은 그저 흘러가고 형태를 잃고 맥없이 빠져나가 사라지는데 윤곽에 지나지 않는 내가 무엇을 하란

….

…….

잠깐만.

들린다. 뭔가가 들린다. 귀를 기울인다. 그렇다, 나는 귀가 있다. 더듬어 나아갈 수 있는 손과 눈과 입과 코가 있다. 다리도 있다. 다만 지금 다리는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닌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이런 형태의 생물이다. 떠올랐다. 인간이다. 나는 인간이라는 대분류안에서 인간의 형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소리를 안다. 이건 나보다도 훨씬 작은 아이가 우는 소리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르고 그저 소리 높여 혼자 온 힘을 다해 울고 있는 아이의 목소리다. 아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애타게, 절실하게.

─가엾게도.

가엾게도, 가엾게도. 손을 더듬는다. 더듬더듬 나아간다. 흘러가는 풍경을 거스르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솔직히 힘들고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나아가야 한다. 남아있는 의식을 전부 집중시켜서라도 해내야 한다. 할 수 있다. 이제 조금만 나아가면 닿는다. 어떤 식으로든 닿을 수 있다. 저 어린 것을 안아줄 수 있다.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다. 이번에는 버리고 도망치지 않는다!

(마음이─ ─.)

이번만큼은 이번에야말로 나는

(이러니─)

나는 그 아이를

(그대는 사로잡히는 게야─.)

“아저씨.”

…….

“아저씨죠?”

…….

…?

손을 잡혔다. 내가 뻗은 손인데 잡혔다. 이제까지는 손을 뻗으면 아이가 내 품으로 뛰어들어왔는데. 아니, 실제로는 어땠지? 내가 붙잡았던게 맞나? 거꾸로 내가 붙들리는 쪽이었나?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 이 감각이 이렇게나 생경하진 않을거야. 애초에 나는 왜 여기에 있지? 당혹스러울 정도로 머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팔에 압박이 느껴지는데 그게 통각인지 뭔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일단은 서늘, 한 것 같다. 그리고 숨쉬기가 힘들다. 몸도 무겁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마치 깊은 물 속에서 단숨에 수면 바깥으로 나왔을 때처럼.

…수면 바깥이 뭔데?

“뭐하는 거예요?”

이상하다. 무엇도 걱정하거나 경계할 필요는 없을텐데 등허리에 차가운 기운이 흘렀다. 내 앞에 있는 것은 그냥 작은 아이 하나인데 어째서지? 합당한 이유를 찾을 사이도 없이 몸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는 무수한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저건 뭐야? 무서워. 이상해. 싫어. 멀어지자. 도와줘요. 저 말을 귀담아 듣지 마세요. 신경쓰지 마세요. 마음에 담지 마세요. 그냥 우리가 말하는대로 해주세요. 우릴 지켜주세요. 우리는 계속 당신이랑 있고 싶어요. 우리를 버리지 마세요. 물살에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있는 힘을 다해 꽉 붙들어주세요. 이 테두리 안에 계속 머무르게 해주세요. 미─

“그게 당신의 새 이름인가요?”

…나.

“온 몸에 그렇게나 원혼들을 담아 놓다니. 그걸로 신 행세라도 하고 싶었어요?”

나는,

나, 나는, 나는.

“게다가 전부 다 어린 아이들이잖아.”

내가.

“그러고 있으면 즐거운가요?”

비가 내린다. 번개가 내려친다. 묘지의 공기는 그렇잖아도 습하고 끔찍하다. 몰아치는 바람에는 그 결 하나하나마다 칼날이 달린 듯했다. 나는 그걸 온몸으로 받아내며 축축하고 기분 나쁜 흙 아래에서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보기만 했던 게 아니다. 나는 아이의 정체를 짐작하고는 공포에 질려서 도망쳤다. 물과 흙 속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가 대체 어떻게 될 지도 모르면서 집의 현관문을 잡아채 열 때까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면 뭔가가 내 윤곽을 잡아찢기라도 할 것처럼.

“미후치水淵님.”

아이들을 줍는다 물에 빠져죽은 아이들을 격류에서 마지막 숨까지 놓쳐버린 아이들을 그러모은다 작은 넋들이 바다 속을 떠도는 해초처럼 손끝과 다리와 몸의 윤곽 안으로 감겨들면 그걸 소중하게 소중하게 끌어안고 여기저기를 헤매였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속삭이고 깔깔 웃고 즐거워하고 가끔은 자신들이 당한 슬픔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어하고 뭔가가 일어나고 나는 그걸 막지 못하고 사람이 다쳐서 울고 슬퍼하고 비명을 지르고 그것이 기쁘거나 보람찬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래도 버리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함께 있어주고 싶어서 그것만이 이 윤곽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언제까지든 해주고 싶어서

“아니면 이렇게 불러주는 게 더 나을까요?”

하지만 사실은 전부 늦어버린 이야기였던 거구나.

“미즈키 아저씨.”

테두리가 벌어진다. 이제까지 흐늘흐늘하긴 했어도 끊어지는 일은 없었던 윤곽에 틈이 생기면 내용물이 터져나오는 것은 필연이었다. 만약 안에 아무것도 없었더라면 테두리가 끊어지든 어떻든 달라지는 것은 없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이미 그런 존재가 아니다. 안에 무언가를 담고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담고있다. 덕분에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木는 물水 속에 잠기다 못해 바닥을 잃고 늪淵이 되어버렸다. 완전히 이어지지 못한 선으로 넘치는 것들을 전부 그러모으고 싶어도 그러지도 못할 지경이다.

거센 빗소리가 들린다.

내게서 쏟아져나가는 것들의 비명이다.

“당신, 마음이 올곧네요.”

내 손을 잡고있는 아이가 말한다. 언젠가의 말은 이 아이가 한 것일까? 하지만 저 표정을 보아하니 아닌 것 같다. 다른 이가 내게 한 말을 주워들었는지도 모르고 애초부터 그 말 자체가 나를 향해 나온 게 아닌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얼마나 우스운가. 수면에서 반짝이는 것이 거기에 반사된 햇빛인줄도 모르고 냅다 강으로 뛰어든 꼴이다. 심지어 거기서 가득 주운 것을 물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과연 마음이 올곧다. 올곧게 어리석어서 언어도 마음도 생각도 한 방향으로만 나아간다. 낮은 곳을 향해서 흐르는 물이 제 스스로 방향을 틀지 못하듯이.

“그들을 위해서 울고있는 건가요?”

그래. 나는 슬퍼. 이제까지도 슬펐지만 아마 지금이 가장 슬플거야. 너에게는 들릴까. 들리지도 않을까. 이 비통한 외침이, 찢어지는 듯한 절규가, 이유도 모르고 존재와 인과를 다시 잃고 싶지 않다는 애원이. 나에게는 들려. 전부 들리고 있어. 할 수 있다면 모든 틈새를 틀어막아서 다시 주워담고 싶을 정도야. 그런데 그럴 수 없어. 벌어진 틈이 너무나 절대적이기 때문만은 아냐.

“진짜 웃기네.”

네가 내 손을 잡고있기 때문이다.

“당신.”

따라서 그 묘지의 풍경이 전혀 다른 장소와 시간 속에서 다만 정확한 대칭성을 가지고 부활한다. 쏟아지는 절규와 몰아치는 공포와 어쩔 도리 없는 무력감이 그 자리에 기꺼이 증인으로 나타났다. 중심 되는 자리에 재판관의 자격을 가진 죄책감이 모습을 드러내면 모두가 그 앞에서 예를 갖춘다. 거기에 감도는 서늘함과 엄숙함이 곧 내게 부여된 업보일지니.

“나를 위해 운 적은 있었던가…?”

없다.

결국 인과응보다. 보지 않았던 것으로 하고 도망치려 해도, 늪처럼 다가오는 모든 것을 끌어안으려 해도 이미 벌어진 일은 수습되지 않는다. 다만 일어난 사건으로서 계속 존재하며 내 뒤를 쫓아온다. 어떤 때에도 꺾이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끝끝내 내 목덜미를 잡아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처럼. 그렇기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관계는 이미 역전되었다. 힘의 우위도, 상황을 제어할 제어력도 저쪽의 것이다. 이어진 판결에 순응하느냐 아니면 순응하지 못하느냐 정도가 나에게 허락된 최대한의 반응 범위겠지.

“아저씨.”

아아, 인식이 낮아진다. 단순히 크기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던 감각과 논리가 비어서 바닥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얼마나 많은 부분을 그 아이들에게 의탁하고 있었던 것일까? 모든 것이 전부 덜어내진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끊어진 윤곽과 작은 공기방울 하나가 남을 뿐이다. 그건 웃음이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하찮고 무익하고 투명하고

“뭐 할 말 없어요?”

…….

“없어요?”

그래도 만약 거기에 어떤 식으로든 형태를 입힌다고 한다면

억지로라도 의미를 짜맞춘다고 한다면

“…….”

너 말야, 너 말야.

키타로.

“듣고 있어요.”

나처럼은 되지 마라.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들을 수는 없다. 마지막 남은 한 줌의 아이들조차 거의 흘러나가서 바닥에서 위를 겨우 올려다보는 듯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허나 아무래도 좋다. 이제는 됐다. 네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결론을 내리든 그건 너에게서 나온 것이지 결코 나를 통해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결국 마지막 말조차 사족이었다는 셈이지만 나 같은 자에게는 그 정도가 적당하겠지.

“…무슨 그런

끝은 들리지 않는다. 윤곽이 무너진다.

마지막까지 손을 잡아준 것만은 기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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