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십시오 03

해당 포스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아스타리온이 카사도르의 스폰이 되어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희생양을 꼬시며

자신을 치안 판사로 만들어준 옛 연인을 회상합니다.


아스타리온은 생각보다 많은 잔을 티니엘에게 건냈다. 티니엘은 벌써 눈이 반쯤 풀린 상태였다. 이미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카자도르는 이렇게 정신이 없는 사냥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희생자가 울고 소리지르고 공포에 벌벌 떠는 것을 좋아했다. 

"자기, 이제 슬슬 일어설까? 사실 여기 의자 너무 불편하고, 에일은 별로야."

등 뒤에서 엘프송 여관 바텐더가 뜨거운 시선을 보내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아무말 하지 않았다. 다행히 바텐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자신이라면 '네가 여기서 공짜로 마신 에일잔으로 워터딥까지 길을 낼 수 있겠다.'같은 소리를 했을 것 같지만 

"자기 같이 귀여운 사람에게 어울리는 곳을 알아. 그리고 데이트는 이런 누추한 곳에서 하는게 아니잖아? 자기 와인 좋아해?"

아스타리온은 자리에 일어서서 티니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참 정신 없이 수다를 떨던 티니엘은 어딘가 고장난 표정으로 그의 손을 바라봤다. 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티니엘은 아스타리온의 손을 무슨 시체라도 잡는 것처럼 뻣뻣하게 잡고 일어섰다. 얼굴이라도 붉힐 줄 알았는데...생각과 다른 그녀의 행동에 아스타리온은 얼굴에 열이 몰리는 것 같았다. 물론 그에게 몰릴 열기 같은건 없지만. 

티니엘은 그의 손을 무슨 족쇄라도 되는양 잡고 마차에 올라탔다. 아스타리온은 꽤 비싼 마차를 불렀다. 스폰 이전 시절 연애할 때 그가 돈을 냈던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는 항상 남이 사주는 비싼 와인을 마시고 남이 불러주는 비싼 마차를 타고 남의 집 비단 이불 위를 뒹굴었다. 하지만 스폰이 되어 사냥을 할 때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만, 항상 그는 금전적으로 무리를 했다. 사냥감들이 그의 재력을 보는 것도 아니었건만, 그는 일종의 버릇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직 그녀를 위해서 부른 마차를 보자 티니엘은 뒷걸음질을 쳤다. 아스타리온은 순간 짜증이 났다. 

'싸구려도 제대로 못차려 입은 너를 위해 내가 1등급 마차를 불러줬는데.'

티니엘은 평생 밟아도 보지 못했을 커다란 마차를 보고 그녀는 한참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일렁이는 가스등 아래 드러난 티니엘의 손은 온통 터 있었고, 드레스 자락은 진흙투성이였다. 굼뜬 곰처럼 뜸을 들이는 여자가 짜증나서 처음으로 아스타리온은 그녀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여자는 아주 가볍게 그에게 끌려왔다. 벨벳으로 장식된 마차에 온통 그녀의 발자국이 남았다. 아스타리온은 소리가 나게 마차 문을 닫고 마부에게 출발하란 신호를 보냈다.

그는 그녀에게 화가 났다. 그녀는 분명히 도망칠 수 있었다. 그는 그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을 뿐이었다. 그냥 그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문 밖으로 걸어나가면 됐을 일이었는데, 어쩌자고 오늘 한 번 아니 두 번째로 본 남자에게 무력하게 끌려나간단 말인가? 그가 손을 내밀었을 때 그도 알고 있고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로맨틱한 행동이 아니다. 그저 가축이 한 주인에게서 다른 주인에게로 넘겨진 것 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그녀의 새 주인도 아니었다. 지금 그녀의 목줄을 쥐고 있지만 그는 진짜 주인에게 그 고삐를 넘길 예정이었다. 어째서 모든 걸 알고 있는 그녀는 저렇게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가?

"아스타리온,  맞죠? 아스타리온."

오늘은 보름달이 뜬 날이었다. 마차의 창문은 작았지만 엘프인 그에게는 충분한 양의 빛이었다. 티리엘의 창백하지만 흠없이 아기같은 피부와 부르튼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우린 당신 집에 가는 건가요?"

"맞아."

맞다는 말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자르 성은 이제 그의 집이 맞았지만 그는 항상 그 단어가 자신의 혀에서 겉돈다고 느꼈다. 그 집은 카사도르의 집이지 그의 집이 아니었다. 입안의 이물질처럼 그는 자르의 성에서 뱉어졌지만 그럼에도 결국 그곳으로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고마웠어요. 내 말을 이렇게 잘 들어준 사람은 아담말고는 당신이 처음인 것 같아요."

'내가 뭘 잘 들어줬다고? 나는 방금 전에 네가 한 말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나는 빨래를 잘해요. 청소도 잘하고. 다른 집안일도 잘해요 그리고...다른 것도 아마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티니엘이 아스타리온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른 일이 뭔지 그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방금전까지 여관에서 에일을 진탕 마셨는데도 입안이 바짝바짝 탄다. 티리엘이 갑자기 아스타리온의 손을 덥썩 잡더니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정말 좋은 여자가 될 수 있을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나를 당신 집에 두면 안되나요? 내 말은 당신 부인이 되고 싶다는 말이 아니에요. 그냥 내가 당신만의 여자가 될 수 없을까요? 사실 나는 그걸 그렇게 잘하진 못해요. 차라리 메이드로 쓰는게 더 쓸모가 있을 거예요. 나한테 잘해주겠다고 했잖아요, 맞죠?"

'나는 잘해주겠다는 소리 같은거 한 적이 없는데.'

아스타리온은 말없이 티리엘의 손을 떼어내 그녀의 무릎 위에 올려놨다. 그녀는 멍청했지만, 길바닥에서 구른만큼 촉이 좋았다. 조금만 더 눈치가 좋았어도 이럴 일은 없었을텐데. 아스타리온은 생각했다. 아스타리온은 그녀가 걱정하는 것이 뭔지 알았지만, 슬프게도 그녀에게 일어날 일은 그것보다 더 최악일 것이다. 하지만 아스타리온은 그녀의 눈을 쳐다보지 않기로했다.

'그 애는 자기  팔자를 자기가 꼰거야.'

그후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밤의 적막함 속에 마차 바퀴 구르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놈은 자기 팔자를 자기가 꼰 거야. 벌 받을 짓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붉은 공단으로 장식된 사무실에서 아스타리온이 서류를 보안관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스타리온의 머리는 말끔하게 빗어져 보라색 리본으로 묶여 있었고, 입은 튜닉엔 섬세한 자수가 놓여져 있었다. 

"치안판사님 이 자의 처분은 어떻게 할까요?"

"최고형을 내리세요."

"판사님, 발더스 게이트에서 최고형은 교수척장분지형인데 괜찮을까요? 이 남자는 이번에 2번째 걸린 거지만 훔친 건 고작 푸줏간의 고기 한 덩이였어요. 가족이 사흘을 굶었다는군요."

보안관이 말은 안했지만 아스타리온은 듣지 않아도 보안관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있었다.

"발더스 게이트가 마굴 중의 마굴이 된 건 범죄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아서에요, 보안관.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으니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도둑질을 하고 백주 대낮에 사람을 죽여대는 거죠. 치안 판사로서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스타리온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보안관은 항변했다.

"하지만 고작 도둑질 2번한 도둑에게 척장분지형은 너무 과합니다. 곱게 목을 자르는 것도 아니고 살아 있는 사람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 죄인의 눈 앞에서 불태운 뒤 참수하는 형벌이에요. 발더스게이트 사람들이 아무리 살인에 흥분한다하지만 이건 욕먹을 겁니다."

"설마 그 사람이 도둑질을 2번만 했겠어요? 발더스게이트에서 도둑이 도둑질만 했을까요? 그는 도시가 모르는 그가 저지른 죄의 댓가를 한꺼번에 받는거예요."

그러나 보안관의 얼굴은 여전히 떨떠름했다.

"하지만 확실히 과하긴 과하네요. 그리고 척장분지형같은 형벌은 아무래도 가끔 집행하는게 좋죠. 참수형으로 바꾸세요."

형벌을 바꿨다고 해도 여전히 가혹한 처벌에 보안관은 입을 쩍 벌렸다. 그러나 아스타리온은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 아예 등을 돌려버렸다. 그런 그를 보안관은 한참을 쏘아봤지만 결국 고개를 숙이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아스타리온의 모습을 그의 늙은 연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스타리온, 그냥 좀도둑인데 꼭 피를 봐야 할까? 그냥 벌금이나 내게 하지 그래?"

"벌을 충분히 받지 않았으니까 또 도둑질을 한 거죠. 그 사람이 설마 도둑질을 한 번만 했겠어요?"

"하지만 고작 도둑질에 모가지가 날아가다니 너무하잖아. 보아하니 돌봐야할 가족도 있는 것 같던데. 거기다 이미 한 번 걸려서 한 쪽 손목도 없는 상태고. 이미 벌은 받을만큼 받지 않았을까?"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었으면 도둑질을 하지 말았어야죠!! 벌을 받았는데도 도둑질을 하니까 오히려 벌을 내려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딱 봐도 빈털터리던데 벌금 내라고 하면 낼 수나 있겠어요? 그리고 난 이미 표를 팔았다고요."

"아스타리온..."

늙은 그의 연인이 아스타리온의 어깨를 잡았다. 

"하 진짜, 도대체 받지도 못할 벌금을 왜 매기는거에요? 장부 꾸미기라도 하려고?? 그렇게 무르니까 그 나이 되도록 그거 밖에 돈을 못 모은 거잖아요!" 

아스타리온은 매번 무르게 구는 연인의 태도에 폭발했다. 

"자기가 날 치안판사 자리에 꽂았을 땐 원하는 바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나는 자기가 나를 이 자리에 꽂느라 쓴 300골드의 가치를 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자기는 왜 매번 그딴 식이야?"

발더스 게이트는 규모가 꽤 크지만, 그에 비해 공공 예산은 형편 없는 도시였고, 그로 인해 범죄가 들끓는 마굴이었다. 제대로 된 경찰을 꾸릴 형편이 못되어 용병대에 치안을 맡기는 도시에 사법제도가 제대로 되어 있을 리 없었다. 판사가 없어 아예 재판도 못하는 케이스가 부지기수였고, 이 도시의 호전적인 분위기는 사람들이 얌전히 재판까지 기다리게 만들지 못했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범죄 처리를 하기 위해, 엄정한 재판이 필요 없는 범죄 케이스를 담당하는 특별한 판사 제도를 운영했는데, 그것이 치안판사 제도였다. 의회의 승인을 받아 운영되는 이 특별한 제도는, 판사 없이, 배심원도 없이 그냥 치안판사의 재량에 따라 판결이 났다. 별다른 재판이 필요 없는 케이스라는 이유로, 의회의 승인만 받으면 법적인 지식이 전무해도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아스타리온이 그 전형적인 예였다. 대신 법적인 지식이 없어도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가벼운 경범죄에 한해서만 치안 판사가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법전에 명시되어 있으나, 제대로 된 경찰도 없는 도시에서 지켜질 리가 만무했다. 아스타리온은 벌써 살인 강도등의 굵직한 케이스를 처리하고 있었다.

판사에게 줄 돈이 없는 도시가 치안판사에게 돈을 줄 리가 없었다. 발더스 게이트에서 치안판사의 경비와 월급은 범죄자들이 내는 벌금에서 충당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별것 아닌 걸로 칼부림을 하는 것들이 벌금을 낼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범죄와 비리로 얼룩진 이 도시에서 벌금을 비롯한 세금을 제대로 내는 이는 없었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였다. 그러나 아스타리온은 이 지위를 위해 300골드를 냈다. 그럼 그 투자금은 어디에서 회수할까? 

답은 바로 처형 구경을 위한 입장권 판매에 있었다. 전통적으로 형벌 구경은 남녀노소 귀천을 막론하고 매우 인기 있는 구경거리였다. 특히 발더스게이트같이 경제 규모에 비해 즐길 거리가 변변찮은 도시에서는 더더욱 인기 있는 구경거리였다. 가장 비싼 공연 아니 처형은 참수형이었는데, 참수형 중에서도 척장분지형같이 좀 더 자극적인 요소가 있는 처형이 특히 더 잘 팔렸다. 이로 인해 본래 별 것 아닌 걸로도 사람이 죽어나가는 발더스게이트는 공권력에 의해 더더욱 사람이 죽어나가는 막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아스타리온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단지 돈벌이를 위해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아스타리온"

그의 나이든 연인이 다가와 부드럽게 그의 손을 쥐었다.

"나는 당신에게 300골드의 값어치를 하라고 한적이 없어. 그리고 이미 당신은 그 이상의 가치를 내게 주었고. 게다가 이 일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잖아? 진정한 수익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윗놈들(그는 발더스게이트 상류 사회 - 특히 은행가를 싫어했다.)에게 우리 존재를 알리는 거라고."

"당연히 나도 알고 있죠. 그래서 이렇게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강력한 형벌만큼 인상적인게 어딨겠어요? 이번에 은행장이 주최한 파티에 갔는데 거기 있는 사람들이 꽤 우리를 알아보더군요. 거기다 참수형이라도 내리면 광장이 얼마나 사람들로 북적이는데요. 모든 사람들이 우릴 좋아한다고요."

"아 확실히 인상적이긴 했지. 그리고 발더스 게이트에서 살인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악명을 쌓는 건 별개야."

"내 판결은 항상 정당했어요."

"정당한 것과 원한을 품는 건 다른 얘기야. 나는 네가 안전하길 원해."

남자의 이미가 부드럽게 아스타리온의 이마에 닿았다. 

"나,나도 생각이 있어요. 벌써 의회에 경비 증원을 요청했고, 어딜 가든 혼자 다니지 않는다고요!"

 "나도 알지. 근데 발더스게이트의 의회라는게 고작 치안판사를 위해 예산을 증액해주겠어? 거기다 여긴 발더스게이트잖아? 어디서 어떤 살인마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충분히 조심할게요."

아스타리온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의 연인은 그를 끌어안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알아 당신이 충분히 조심할 거. 근데 이번 처형을 무를 수 없다면 그냥 평범하게 손목 자르기로 갔으면 좋겠어."

"싫어요!"

아스타리온은 번개라도 맞은 듯 그를 밀어냈다. 

"왜 항상 당신이 모든 걸 정해요? 치안판사는 나고, 이건 내 영역이라고요! 내가 아무리 당신의 펫이고 이 지위는 당신이 준 거라고 해도!"

"미안, 내 생각이 짧았어. 당신 말이 맞아. 미안해."

남자가 다시 아스타리온을 껴안으려했다. 그러나 아스타리온은 다가오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또, 또 이번에도 내 말을 막으려 하잖아요! 당신은 다정하지만 내 말을 듣지 않아! 내가 항상 이건 위험하다 해도 당신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잖아요!"

아스타리온은 자신이 청새치 선단의 재정관리를 담당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청새치 선단은 항상 아슬아슬하게 움직였다. 이러다 조달한 예산을 다 까먹고 발더스 게이트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고 해도 그는 항상 '고'를 외쳤다. 육지에서 마음 졸이는 건 항상 아스타리온의 몫이였다.

"나도 알아요 내가 나쁜 거! 나쁘다 뿐인가? 심지어 멍청하다는 것도 잘 알아요. 당신이 날 위해서 한 말이라는 것도 다 알아. 하지만...하지만 남의 말만 들으면서 살 수는 없어, 더이상은 싫어요. 더이상 남의 장단에 춤추며 살고 싶지 않아."

 "미안 미안,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어. 이건 당신의 일인데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안되는 거였지. 당신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미안해요. 약속한 대로 나는 그저 당신의 뒤에서 서포트를 할게."

남자가 다시 아스타리온을 꼭 껴안았다. 이번에는 아스타리온은 포옹을 거절하지 않았다. 

다음날 그의 나이든 연인은 선장시절 입고 다니던 갑옷과 레이피어를 꺼내왔다. 

"당신같이 아름다운 엘프에게는 멋진 경호원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지나치게 반짝이는 풀 플레이트는 나이 먹어 자세가 구부정하게 된 그와 극적으로 겉돌았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타샤의 끔찍한 웃음에 걸린 사람처럼 웃었지만 남자는 얼굴을 붉힐 뿐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스타리온은 지금도 생각한다. 그때 그냥 웃어넘기면 안됐다고. 절대로 안된다고 했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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