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지아스/타브아스] 스폰
가내집밥연성 / 아스타리온 시점 / 거슬리는 게 있어도 넘어가 주길 (어딘지 알기 때문... /계속 쓰는즁
아스타리온은 그랬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봐, 이번에도 그랬잖아.
타브가 제게 첫눈에 반했다는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다. 제 감정에 둔한 아스타리온은 그 감정을 카사도어를 죽이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
지금 생각해 보면 타브는 마냥 착한 놈은 아니었다. 약자들에게는 자비롭고 호구 같았지만 제 심기를 거스르는 자들에게 무기를 겨누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으니까.
‘달링, 우리가 자선 사업가인 줄 아는 거야?’
‘아스타리온, 얘는 애잖아! 우리한테 이 정도는 금방 구할 수 있는 돈이야.’
발더스게이트 길목의 어린애를 보고는 지나치지 못하고 몇 푼 쥐여 주는 타브에게 못마땅한 얼굴로 타박을 늘어놓으면 타브는 잔뜩 울상을 지으며 저를 설득하고는 했다.
‘아, 얘 말투가 너무 띠꺼운데? 죽이자.’
‘돈은 많은데. 나한테 돈 뜯어 가는 게 재수 없어. 죽이자.’
그러고는 곧 말투가 마음에 안 든다며 발더스 게이트 어딘가 악마를 모시는 상점 주인을 죽이기도 했다. 모두 타브가 위험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타브의 그런 점을 좋아했다. 호구지만 마냥 호구는 아닌 뭐랄까, 호락호락하지 않은 바보랄까.
그게 다 바알 스폰의 영향이었을까? 아니, 편견인가?
아스타리온 안쿠닌. 타브가 싫어하는 유형의 엘프 그 자체. 그래서 타브가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솔직히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나는 타브의 유일한 예외였으니까.
저를 보면 강아지처럼 달려와 쫑알거리며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갔고, 거르족에게서 자신을 감싸줬으며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 일들을 해줬다. 대체 어디에서 타브를 무서워해야 하는 건데?
전투에서 피를 보고 흥분하는 타브와 자신을 보며 꼬리를 흔드는 타브를 보고는 카사도어를 죽일 전력으로 써야겠다.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렇게 사용했고.
몸을 내어주고 무기를 얻는다. 다를 것 없다. 이게 평범한 나고, 내 생존 방식이다.
그런데, 왜.
‘아스타리온, 우리의 사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왜, 그날 밤의 일을 되돌리고 싶다고 말하러 오셨나?’
‘아니, 너만 괜찮다면 너랑 만나보고 싶어.’
‘달링, 무슨 소리야? 그날 너는 최고의 밤을 만끽했고 나는 카사도어를 죽일 전력을 얻은 거야. 그거로 끝. 두 번은 없어.’
그 순간 충격으로 얼룩진 타브의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정말 몰랐을까? 내가 연기를 너무 잘했던 걸까, 타브가 순진했던 걸까.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희망을 놓지 못했는지 타브는 매번 나와 마주칠 때마다 말을 걸었고, 밤마다 피를 내어주고는 서커스에서 연애점을 보자며 들떠서 자신을 끌고 가기까지 했다. 당연히 거절했지만.
옆에서 누군가가 한 번쯤 봐줘도 되는 거 아니냐고 한마디 했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그럴 기분도 아니었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타브와 틀어져 카사도어의 성 근처에도 가지 못할까 봐 계속 거절했었다. 이제 와서 후회된다. 카사도어 그 개자식을 죽이고 와서라도 한 번쯤 봐둘걸.
뭐, 조금 더 변명 하자면 그 당시에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나만 바라보는 수많은 뱀파이어 스폰들을 어찌해야 할지, 진정한 자유를 어떻게 만끽해야 할지,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죄책감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으니까.
그리고 세바스티안. 우여곡절 끝에 카사도어의 성에 들어가 세바스티안을 만났을 때는 타브가 성밖으로 나가버리면 어떡하나 했다. 예상과 다르게 질투하면서도 타브는 나름 어른스럽게 대화를 풀어갔다. 덕분에 일이 잘 해결됐지. 올챙이 문제도 그렇고. 이 모든 일은 타브가 없었다면 해결할 수 없었을 거다.
네더브레인을 해치우고 도망치듯 자리를 뜨고나서 위더스의 연회에서 내가 타브를 어떻게 대했더라?
“뻔뻔하군.”
너를 무기로 쓰려고 내 몸을 이용한 거다. 너랑 연애점 같은 거 치고 싶지 않다. 이런 얘기 다 해놓고 연회에서 뻔뻔하게도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포도주에 대한 불평을 늘어놨다.
하지만 이건 나도 할 얘기가 많지. 세바스티안과의 일들을 타브에게 들켰다는 수치심, 책임져야 할 수많은 스폰들이 생겼다는 압박감, 승천을 막지 말라며 보였던 추태. 그 일들이 내가 타브를 받아들이는 것을, 타브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을 막는 벽을 쌓게 했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이제 타브가 내게 정떨어졌을지도 모르니 거절당할 바엔 다가가지 말자고. 그래서 끝까지 타브를 잡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보냈다. 그게 나와 잘 맞는 결말이기도 했고.
“그래서, 갑자기 이 생각을 왜 하게 됐더라?”
“아, 환생.”
환생이란 건 생각도 해본 적 없다. 엘프의 수명이 원체 길기도 했고, 한번 살다 갔으면 됐지 새 인생을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안그래도 지긋지긋한 인생. 그런데 환생이라니.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번에는 다른 직업을 가져볼까.
[워락]
후원자고 나발이고 200여 년간 누군가에게 묶여있었던 몸이면 더 자유로운 직업을 선택할 법도 한데 왠지 모르게 자꾸만 워락에 눈길이 갔다. 변경의 검이 어떤 꼴이 났는지 봤으면서도.
바드 좋잖아. 얼마나 자유로워? 아름다운 말도 얼마든지 내뱉어줄 수 있다고. 눈길을 돌리고 싶어도 누군가 몸을 조종하는 것 처럼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젠장! 알았다고! 할게 하면 되잖아!”
마음먹었으니 그깟 후원자 골라주겠다고.
“어디 한번 나와 봐.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당장은 너희들이 내 마음에 들어야 할 거야.”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이자 어디선가 익숙한 향기가 풍겨왔다.
“잠깐, 이게 무슨, 달링?”
그럴 리가 없다. 평범한 드래곤본이었던 타브가 어떻게 후견인이 된다는 거야?
“... 온! ...려?”
“뭐, 뭐라는 거야?”
심각할 정도로 끊기긴 했지만 타브의 목소리가 맞았다.
“달링, 너라도 어쩔 수 없어. 내 후견인이 되고 싶다면 성의를 보여 봐.”
생각지도 못한 자의 등장이었지만 예외는 없다.
“...”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아무래도 이런 내 후견인이 되기 싫은 거겠지.
“네가 원하는 선택을 해.”
“하,”
그렇게 끊기더니 왜 이런 말은 끊기지도 않고 잘 들리는지. 이러면 다른 놈들은 들어볼 것도 없지 않나?
“달링, 내가 너를 선택하면 너랑 만날 수 있어?”
환생까지 했는데 이번에는 욕심 내봐도 괜찮겠지.
***
“아스타리온. 오랜만이야.”
“달링, 어떻게 워락의 후견인 자리에 오르게 된 거야?”
“글쎄, 그건 잘 모르겠는데? 바알의 힘 때문인가.”
“포기했잖아. 그거 때문에 죽다 살아났으면서.”
“나도 추측해 본 거야. 뭐, 이렇게라도 봤으니까 된 거 아니야?”
“네가 나한테 어떤 힘을 줄 수 있느냐가 문제지!”
“레인저의 명중률...?”
◇ 아스타리온이 싫어합니다.
“반갑다고 생각도 안 하고 너를 선택한 내 잘못이지 어쩌겠어.”
◇ 타브가 싫어합니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타브를 선택한 뒤부터 알 수 없는 충동이 들었다. 무언가 이성을 좀먹는 듯한...
죽이고 싶다.
“아스타리온. 나는 타브가 아니라 더지야. 언제쯤 알아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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