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3/아스타리온 드림/아스타브
발더스게이트3 - 아스타리온 드림 * 스토리 진행 중인 어느 날.
일전에 그를 입만 산 친구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상황을 적당히 얼버무리기 위해 한 말이었으나 농담이었냐 하면 진담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스타리온을 앞에 두고 바드는 역시 그게 꼭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대체 이게 얼마 만에 쉬는 건지. 함정도 해체해, 상자도 열어, 미믹도 처리해, 일정은 강행군이지, 지금도 해골바가지처럼 손뼈가 우둑거린다니까?”
”그래, 그래. 지금이라도 쉬니 다행이지.“
”이것 봐, 이 손을 좀 보라고. 여기 보여? 손톱은 금 갔지, 끝에 거스러미도 까지고, 핏기도 싹 가신 이 손을 보라고. 한 번만 더 이렇게 무리하면 팝콘마냥 버석버석해질거야.“
”핏기는 원래부터 없었잖아.“
”물론 내 피부가 좀 하얗긴 해, 그렇지만 퍼렇게 돋아있잖아.“
”그것도 원래부터―“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내 애써 기른 손톱이 망가지고 있다는 거지.“
파티 리더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날카로운 눈꼬리가 매섭게 올라가 있었다. 그 성토에 맞서 바드는 간단하게 일축했다.
”평소에 손톱을 너무 날카롭게 기르니까 금방 부러지지.“
”그게 바로 매력 포인트라고! 사냥도 할 수 있으니까 실리성도 겸하는 기능인 거지. 물론 네게서 날마다 피를 받아가고 있긴 하지만, 그것만 먹고는 못 사니까.“
반박하는 그의 콧대가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그에겐 오기를 부리거나 강해 보이고 싶을 때마다 고개를 쳐드는 버릇이 있었다. 안 그래도 키도 큰 주제에. 바드는 가벼운 한숨으로 그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래, 알았어, 안 됐네. 이제부터 안 부러지게 잘 손질해.“
”성의 없는 사과에 몸 둘 바를 모르겠는걸. 당연히 그럴 거야.“
쏘아붙이는 아스타리온의 목소리에 토라졌다는 기색이 한가득 배어있었다. 기분을 안 풀어주고 이대로 놔둔다 해서 오늘 밤 피를 안 마시러 오진 않겠지만은, 그의 탓을 하고 있으니 듣는 입장으로선 영 뒤끝이 좋지 않았다. 귀찮음과 떠밀린 책임감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던 바드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네, 기다려봐.“
”응? 왜? 아니, 뭐, 그래.“
이유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뒤로하고 바드는 저 멀리 놓아둔 제 배낭을 뒤지러 갔다. 배낭을 뒤적이다 얼마 안가 돌아온 그의 손에는 작은 병이 들려 있었다. 그 사이 거스러미를 정돈하고 금 간 손톱을 조심스럽게 잘라내던 아스타리온은 바드의 손에 들린 병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갑자기? 아까 안 한 진심 어린 사과의 선물, 그런 거야?“
”그렇다고 치자. 자, 손.“
”뭐, 손? 왜?“
바드가 손을 내밀었다. 아스타리온은 의심스럽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머뭇거리며 그 위에 창백한 손을 얹었다. 바드가 그의 손을 요리조리 돌려보자 그는 더더욱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떠들기 시작했다.
”음, 내가 깜짝 선물은 또 좋아하는 성격인데 말이지, 이건 어떤 종류의 깜짝 선물인지 당최 모르겠거든.“
”별거 아냐. 왜, 무서워?“
”아니, 설마. 내 말은, 그냥… 무슨 장난이냐는 거지.“
”응, 금방 끝나.“
그의 호들갑을 적당히 한 귀로 흘리며 바드는 하얀 손 위로 병의 내용물을 적당히 덜어냈다. 유분과 점성을 가진 반투명한 오일이 그의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더 붉은 손이 받아 손등 위로 문질렀다. 거기에 놀랐는지 손을 빼려던 아스타리온은 퍼지는 향에 미간을 찡그린 채 코를 킁킁거렸다.
”뭐야, 이게? 피부 보호용 오일?“
”응, 마사지 오일.“
적당히 오일을 펴 바르면서 바드가 말했다. 퍼렇게 핏줄이 불거진 두 손이 적절히 매끈거리자 바드는 아스타리온에게 손을 펼 것을 요구했다. 무슨 상황인지 혼란해 하면서도 순순히 다섯 손가락을 펴자 바드는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에 각각 손을 얽었다. 기묘하게 손가락으로 손을 붙든 모양이 되었다. 자유로운 것은 바드의 두 엄지손가락뿐이었다.
”뭐 하려는 거야? 마사지?“
”응, 그냥 그거야.“
더 대답하기 귀찮았던 바드는 금방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두 엄지손가락이 허연 손을 군데군데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약간 리듬을 타듯이 손목 즈음부터 해서 손바닥의 단단한 부분을 누르는 손길에서 이런 마사지에 제법 능숙함이 돋보였다. 아스타리온의 눈이 의심에서 오? 제법, 하는 놀라움을 거쳐 고통으로 일그러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잠깐, 악, 아파!“
”손님, 손이 많이 굳으셨네요~ 참으세요~“
손바닥의 움푹 팬 곳을 강하게 누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아까 아스타리온이 말했던 ”우두둑하는 소리“가 정말로 나기 시작했다. 손을 주무르고 있는 바드에게도 들릴 만큼. 종일 악기를 다루면서 굳은 손을 직접 풀던 경험으로 무장한 바드는 날렵한 손가락들을 쥐고 마음껏 실력을 뽐냈다. 아스타리온은 처음 찾아온 고통에 손을 빼려 했지만 손가락이 얽혀있어 실패했고, 아픔을 호소하던 일이 분이 지나며 괴악한 뼛소리가 사라지자 찾아온 시원함에 혼란에 빠졌다. 손을 뺄 것인가, 말 것인가. 무섭게 나던 소리가 사라지자 바드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어때, 좀 낫지?“ 하고 그를 보는 눈에 자신감이 돋보였다. 아스타리온이 당황하여 ”어? 어, 뭐.“ 하고 어물거리는 사이 반응에 만족한 바드는 자연스럽게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다른 손을 잡았다. 쥔 손이 기분 좋게 매끈거렸다. 똑같이 손가락을 얽어맨 바드가 숙련된 손놀림으로 엄지손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똑같이 찾아온 고통에 아스타리온이 몸을 비틀었다.
”살살할 수 없어? 손을 부러뜨릴 셈이야?“
”안 부러졌잖아.“
그의 온몸 비트는 항의에도 대꾸하는 목소리는 담담하기만 했다.
”일하고 공부하고 종일 악기만 만지던 학생들끼리의 민간요법이야. 다들 필사적인 곳에서 살아남은 요령이라 잘 듣는다고.“
”그래, 예쁘고 부드러워진 손뼈를 자랑할 수 있겠네! 그런데 난 손뼈까지 부드럽고 싶은 건 아니거든?“
”뼈는 서비스야.“
고통이 지나간 후에는 평안이 온다. 또 몇 분을 격통 속에 보낸 아스타리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과 시원함이 스며든 손을 부여잡고 성을 내었다.
”마사지가 아니라 공격이었단 점에선 깜짝 놀라긴 했어. 그렇지만 점수는 못 주겠네.“
”그치만 이제 안 아프지?“
”오, 지금은 괜찮긴 해. 정확히는 한 번에 몰아서 아팠다는 것에 가까운 것 같지만.“
”엄살은.“
창백하고 거칠던 손은 오일의 보호를 받아 매끈하게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약간 불그스름하게 핏기도 도는 것 같은 것은 착각이리라. 적어도 붓기나 멍이 든 것은 아니었다. 아스타리온이 골을 내거나 말거나 자기 실력에 만족한 바드는 그저 친절하게 웃음 지었다.
”알았어, 손바닥은 됐으니 다시 팔 뻗어봐.“
”똑같은 수법이라면 사양이야. 난—“
”됐으니 뻗어봐.“
바드가 원한 것은 그의 팔꿈치께였다. 팔꿈치 오목한 쪽부터 손목까지 이어지는 근육을 캐치한 그가 팔을 붙들고 꾹꾹 누르기 시작하자 분명 통증이 몰려오는데 통증이 풀리는 신기한 경험이 아스타리온을 짓눌렀다. 누른 것은 팔뚝인데 손목 통증이 낫는다는 신묘한 결과 속에서 아스타리온은 몸을 비틀었고, 바드는 웃었다. ”너, 나한테 원한 있어?“ 라는 말에도 바드는 그저 웃었다. 사심은 없었다. 아니, 정말로. 팔을 놓아주면서 바드가 물었다.
”훨씬 낫지?“
”―글쎄, 어쩌면?“
고통스러웠던 과정이 도움이 됐음을 인정하기 싫은 아스타리온이 또 콧대를 쳐들었다. 그러자 바드는 ”다행이네, 그럼 됐지?“ 라며 가져왔던 작은 병을 챙겨 일어났다.
”필요하면 또 해줄게.“ 하고 웃는 모습은 평소의 쓸데없이 다정한, 모두의 예스맨이었다. 언제나 그를 놀라게 하는 사람. 어색함과 고통의 후유증으로 두 손이 홧홧했다. 아스타리온은 괜스레 두 손을 쥐었다 펴며 당장 오늘 밤에 어떻게 보복할지 길게 난 이를 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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