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살인마의 코빌사

녹스 사태 그 이후

녹스 사태. 켄터키의 녹스 카운티를 공포와 절망으로 밀어넣은 사상초유 최악의 사태. 그 사태가 진정된지 벌써 6개월. 아직 전부 정리되지는 못했으나 몇몇의 위험구역을 제외하면 많은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좀비들이 한가득 모여 점거하던 오하이오 쇼핑몰이 안전구역으로 변하고, 망가진 차들로 인해 꽉 막혔던 도로가 뚫렸다. 그렇게 고생하며 지나갔던 웨스트 포인트와 루이빌을 잇는 다리 역시 정리됐다. 여러 군인들이 종종 거리에 보이고 사람들은 그것이 익숙해보인다. 사비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루이빌의 중앙, 몇 개월이고 지내온 거점. 뒤뜰에 빌이 꽃을 기르고, 코니가 방 문에 도끼질을 해대며 사비나가 여러 비밀 금고를 만들어 둔 그곳. 사비나는 여즉 그 거점에서 지내고있다. 이제는 거점이 아니라 집이라고 해야 맞겠지.

사비나는 녹스사태가 진정돼고 다시 루이빌에 발 들일 수 있었을 때 생각할 일도 없이 바로 그곳을 사들였으니.

그래, 사비나는 아직도 6개월 전의 그때에 머물러있다. 일평생 가족도 친구도 없이 살아오던 사비나에게 처음 생긴 보금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달그락거리는 부엌의 따뜻한 소리도, 쿵쿵대며 층계참을 오르내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때면 사비나는 빌이 지냈던 방에서 잠을 청하고 코니가 지냈던 방에 들어가 도끼자국을 쓸어보곤 했다. 그러면 그럴 수록 외로움과 애틋함은 커져만 갔으나 멈출 수는 없었다. 사비나는 갬블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니.

사비나의 수치이자 치부였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비나의 고향. 그것이 갬블의 의미였다.

“심심한데.”

사비나가 습관처럼 중얼거리며 소파에 다이빙한다. 쿠션을 팔 사이에 끼운 채 다리를 동당거리며 휴대전화를 연다. 간단한 기본 배경화면. 남들은 귀여운 동물이니 좋아하는 음식이니 한다던데, 사비나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만들 생각도 없었고. 주소록을 뒤적여…. 아니, 뒤적일 필요도 없지. 주소록에는 단 세개의 전화번호만이 존재했으니. 부동산, 빌, 코니. 사실상 두개라고 해야겠다.

키패드를 꾹꾹 눌러 빌의 프로필을 띄워둔다. 전화를 해볼까 말까. 힐끗 시간을 확인한다. 시간은 3시 38분. 한창 목공소가 돌아갈 시간. 동당거리는 다리가 점차 잦아들고, 소파의 팔걸이에 두 발이 걸린다. 사비나의 두 눈이 가라앉고, 초침이 째깍이는 소리만을 만들어낸다. 결국 전화하지 않고 뒤로간 사비나가 다시 코니의 프로필을 띄운다. 먼저 연락하는건 좀 자존심 상하는데. 입술을 삐죽이며 통화 버튼에 손가락을 올리지만, 그마저도 누르지 못하고 다시 휴대전화를 덮는다.

심심하다는거 광고하고 싶지도 않았고, 먼저 매달리는건 폼 안나지 않는가. 코니가 저를 비웃는 것도 싫지만 빌이 저를 더 신경쓰고 걱정하는 것은 더 싫었다. 그들에게 있어 불쌍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떵떵거리며 잘 산다고 생각해주길. 그렇게 돈에 집착했으니 만족하고 산다고 생각해주길….

사비나는 그들에게 있어 동정도 안타까움도 없이 그저 제 잇속만 챙기는, 여전히 얍삽한 놈으로 각인되고 싶었다.


‘오늘 저녁에 같이 밥 한끼 할까? 내가 사겠네.’

빌이 작은 키패드를 더듬더듬 눌러가며 겨우 완성한 문자를 둘에게 전송한다. 집중하기 위해 쓴 돋보기 안경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앞으로 70초. 째깍거리는 초침소리를 정확히 68번 세었을 때, 익숙한 진동소리가 울린다. 사비나였다.

‘좋아요! 6시까지 가게로 갈게요!’

빌이 눈을 접어 웃으며 휴대전화를 조작한다. 그와 동시에 목공소 내의 직원 몇이 코를 틀어막고 화장실을 다녀오겠노라 이야기한다. 많이 피곤한걸까? 20분 쉬고 하자며 빌이 작게 준비된 사무실로 들어간다. 기존에 있던 직원의 절반 이상이 녹스 사태에 휘말려 실종되거나 죽었다. 다행히 살아남고 피할 수 있었던 몇은 다시 와줬지만 나머지는 새 인원을 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새 인원이 들어온 것은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인연은 언제나 환영이었으니. 다만 눈에 익은 이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언제나 빌을 슬프게 만들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

한숨처럼 중얼거린 빌이 휴대전화를 잠깐 내리고 창 밖을 바라본다. 녹스 사태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던 푸른 하늘. 그 때와 다른 것은 더이상 거리에 죽음이 가득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피도, 죽음도, 죽은 이도 없다. 빌은 그 사실이 어느것보도 기꺼웠다.

'ㅇ‘

두번째 진동. 이미 열려있는 휴대전화를 한 빌이 소리내어 웃는다. 오늘을 위해 코니에게는 이주일 전 쯤부터 계속해서 연락을 해뒀기 때문에 쉽게 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 사흘 전에는 차단당할 뻔 했지만, 그래도 결과가 이렇게 좋은데 나쁜 마음 가질 것 있나.

답을 확인한 빌이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대며 잠시 눈을 감는다. 이 평화를 즐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그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울렁이는 느낌에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뜬다. 푸른 바다를 닮았다며 모든 사람이 칭송하던 눈은 그날따라 어둡더라.


일을 끝낸 코니가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와 차가운 바닥에 벌렁 드러눕는다. 녹스 사태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간단한 컨테이너 하우스. 좁아 터져도 있을건 다 있다. 사람 하나 살기에는 그렇게 좁은 것도 아니고. 미친 수수깡새끼는 개지랄을 하겠지만, 코니는 자신을 존나게 성실하고 건실하며 이것에 만족하는 청년으로 생각중이었다. 다른건 몰라도 만족하는 것 만큼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화장실 있고, 부엌있고, 침실있고. 침실에는 낡아빠진 라디오 하나. 침대는 없었다. 깨끗한 바닥이라는 신이 내린 산물이 있는데 뭐하러? 아니지. 신은 시발 한 것도 없고 제가 다 닦은건데 뭔…. 내가 내린 산물이 있는데 뭐하러? 부엌에는 그나마 어제 산 것 같은 냉장고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집 안의 분위기를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아아아아……….”

코니가 긴 한숨과 함께 팔을 휘적여 아침에 널부러놓은 이불을 잡아 끈다. 구겨진 이불은 저를 완전히 덮지도 못하고 상체만을 덮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늙은이가 밥을 먹자고 한 것 같은데. 6시랬나 7시랬나…. 삑삑거리며 휴대전화를 조작해 받은 문자함에 들어간다.

‘6시 30분까지 ◇◇으로 오게. 사비나와 함께 갈테니.’

듣자하니 둘이서는 만나서 오는 것 같았다. 거기에 저를 부르지 않은 미친 배려에 눈물이 날 뻔 했다. 6시 30분…. 고개만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 코니가 다시금 머리를 툭 떨군다. 이제 5시 19분. 한시간은 더 남아 눈을 감을까 하다 상체를 세운다. 시간도 애매하니 그냥 운동이나 하고말지.

그리 생각한 코니가 설렁설렁 일어나 간단하게 씻고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서고 보이는 것은 제가 사는 집과 똑같이 생긴 여러채의 집. 처음 이곳으로 이사온 날에는 제가 미쳐버린 줄 알았으나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늘어져라 하품한 코니가 낡은 운동기구가 몇 설치된 작은 공터에 도착한다. 높이 별로 나뉘어진 철봉 세 개, 윗몸일으키기를 돕는 기구 하나, 벤치 하나. 음수대도 있긴 했지만 거기서 나오는 물을 마시면 녹스 사태가 다시 발발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살짝 뛴 것 만으로도 가장 높은 철봉을 잡기에는 충분했다. 몇 개 하지…. 매달린 채 멍하니 생각하다가 그냥 팔에 힘을 준다. 언제는 그런거 따졌나. 그냥 하는대로 했지. 아마 6시까지는 계속 하지 않을 듯 싶었다.


그렇게 6시 30분. 붉은 전광판이 ‘TONYROMA‘S’ 모양으로 번쩍인다. 새로 생긴 것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은 내부에 사람으로 가득했다.

“와, 사람 엄청 많아요. 앉을 자리가 있긴 할까요?”

사비나가 창문을 보며 고개를 기울인다. 기왕 왔는데 자리가 없으면 어쩌지. 빌은 몰라도 그 미친 모히칸…. 이제 모히칸도 아니지. 그 미친 침팬지가 다른 가게를 찾을 때까지 있을까? 절대 아닐 것 같아 사비나가 한숨쉰다. 빌과 둘이서 밥을 먹는 것도 좋지만, 기껏 셋이서 만나기로 했는데. 만나기만 하면 서로 짖고 부딪혀댔지만 막상 없으니 섭섭해서. 입이 찢어져도 말하지 못 할 생각이나 해고 있으니 빌이 푸근하게 웃으며 사비나의 어깨를 토닥인다.

“걱정말게. 이럴 줄 알고 아까 예약했으니 괜찮아.”

“예약까지 필요해요? 그냥 햄버거나 먹는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셋이서 밥 먹는데 햄버거만 사주기에는 아쉽지 않나. 코니만 오면 바로 들어가지.”

크고 투박한 손이 회색 머리를 쓰다듬는다. 사비나가 입을 우물거리며 시선이나 피하는데, 저 멀리서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인영이 보인다.

“별 지랄염병을….”

쯧쯧거리며 혀를 찬 코니가 그대로 지나치려다가 우뚝 멈춰선다. 코니가 인생 살며 본 인간들 중, 이것과 유사하게 생긴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으니까. 이 늙은이랑 비슷한 놈이 하나 더 있으면 더 큰일이다. 진짜 말 그대로 염병할 세상이 실현될테니까.

“왜 오자마자 욕질이야?”

“너도 있었냐? 더 말라비틀어져서 못 봤네. 이제 종잇장이라고 불러줄까?”

사비나가 그대로 코니의 정강이를 차려 했으나, 빠르게 눈치 챈 빌이 사비나의 양 옆구리를 잡아 번쩍 들어올린다.

“자, 들어가지! 레니가 그렇게 맛있다고 추천해주더군. 젊은이들이 많이들 좋아한다고 말이야.”

“빌!! 이거 놔봐요. 놔봐요!!!”

그렇게 사비나는 레스토랑의 정문에서 내려져 빌에게 양 손이 꽉 잡힌 채 구금되듯 끌려갔다. 지독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무표정을 유지하던 입매가 비틀려 올라가 끌끌대는 웃음을 흘려보낸다. 이새끼, 이전에도 저렇게 웃었구나. 사비나가 으르렁거리며 코니를 물어 뜯으려 했지만 빌이 막아서 레스토랑에 들어가기도 전 쫓겨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왁자지껄한 레스토랑의 내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음을 알려주는 듯 한 깨끗한 바닥이나 벽, 새것같은 테이블과 의자 따위가 셋의 시선을 잡아끈다.

사람 존나게 많네. 그것이 코니가 느낀 첫인상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입 밖으로 냈어도 모자랐겠지만 요즘은 구태여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답답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그것이 코니의 성장이었으니.

“먹고싶은거 있나? 립이 그렇게 맛있다고 하니 간단하게 콤보로 시킬까 하는데.”

자리에 앉은 빌이 자연스럽게 메뉴판을 코니와 사비나가 보기 편하도록 펼쳐놓는다. 코니는 턱을 괸 채 감흥도 없는 표정이었으나, 사비나는 두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빌과 코니를 곁눈질한다.

“뭘 훔쳐봐? 좀도둑이었던거 그만 광고해라. 신고해버린다.”

“빌, 저 이런데 처음와봐서요….”

코니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사비나가 빌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그런 사실을 말하는 것부터가 쪽팔려서 미칠 것 같았지만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다. 저 침팬지는 해봤자 놀리고 말 것이고, 빌은 아무렇지도 않을테니. 그래도 역시 부끄러워 입이 꾹 다물리는데, 예상대로 빌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그런가? 한마디 할 뿐.

“그럼 사비나는 이걸 시켜서 나랑 함께 나누어 먹으면 될 것 같군. 메인 메뉴는 뭐가 좋겠나?”

사비나가 빌의 손 끝에 걸린 메뉴를 찬찬히 읽어본다. 디너 콤보. 오늘의 수프 하나, 클래식 감자 수프와 샐러드, 메인 메뉴 두 개. 사비나가 다리를 살살 흔들며 베이비백립과 새우튀김을 고른다. 빌이 좋다며 활짝 웃고 코니에게로 메뉴판을 건네준다.

“코니 자네는 다른 걸 시켜먹는 것이 편하지? 나누어 먹으면 성도 안 찰테니 말이야. 부담가지지 말고 고르게!”

“부담 가지겠냐? 오늘 늙은이 지갑 털러온건데.”

“허허, 그래. 그래야지.”

빌이 환하게 웃고, 가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던 커플 둘이서 넋을 놓고 빌을 보는 시선이 느껴져 사비나는 등받이에 몸을 맡긴다. 200cm에 달하는 거구가 종잇장같은 사비나를 완전히 가려준다.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거까지.”

코니가 성의없는 손짓으로 메뉴판을 빠르게 짚는다. 시즐링 리바이 스테이크, 치킨 앤 립 콤보, 감자튀김까지. 빌은 순순히 모든 메뉴를 시키고서 뉴욕 스테이크까지 추가했다. 주문을 받던 직원이 콤보는 양이 정말 많고 고기 위주의 식사라 배가 많이 부를거라며 걱정어린 조언을 해줬지만 빌은 그저 알고있다며 끄덕일 뿐이었다. 순식간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의 직원이 그럼 이대로 내어오겠다며 후다닥 도망간다.

놀고있네. 코니가 중얼거리며 혀를 찬다. 사비나는 무언의 동의를 했다.

“자, 그럼 나올때까지 이야기나 나누지. 둘 다 잘 살고있나?”

“못 살건 뭐있는데? 그 좆같은 좀비새끼들이 없으니 길바닥에서 자도 살아지는데.”

“그건 맞는 말이지. 사비나는?”

“훗…. 빌, 저 부자예요.”

코니가 질린 얼굴로 저 뻔뻔한 낯짝을 바라본다. ‘위대한 개츠비’의 제이 개츠비가 닉 캐러웨이에게 처음 인사하는 꼬라지를 영화화 한다면 꼭 저럴 것 같아 헛숨을 내쉬었다.

“부자인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른 의미지 않나. 코니 자네도. 사람이 누워서 잠만 잘 수 있다고 해서 잘 사는게 아니고.”

“또 시작이네…. 내 인생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됐냐?”

빌이 웃으며 그렇다면 다행이라고 대답할 때, 사비나는 장난으로라도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제 인생 최고의 나날은 그 때였는걸. 그렇다고 곧이 곧대로 말했다간 이 분위기가 산산조각 날 것이 뻔했다. 어쩌면 저를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볼지도. 사비나는 그것이 죽는 것보다 싫어 씩 웃는 것을 택했다.

“저는 행복하게 살자고 돈을 긁어모은거잖아요. 당연히 잘 지내고 있죠! 먹고싶은 것도, 사고싶은 것도 전부 하고 있어요. 빌은요?”

“나 역시 잘 지내고 있지. 참, 레니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 했었나? 세상에, 같은 학교 같은 반이었는데 생존자 캠프에서 마주쳤다더군! 듣기로는 올리비아가 레니를 한 번 구해줬다고 해. 어찌나 고마운지…. 그래서 이전에 식사자리에 초대했는데 정말 밝고 귀여운 아이였어.”

그 후로도 빌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올리비아가 붉은색에 가까운 주홍색 머리를 가지고 있고 녹빛을 머금은 눈이 다정하며 콕콕 박힌 주근깨가 사랑스럽다는 것, 레니가 올리비아를 너무 사랑해서 등교를 한 시간 일찍 하는 것, 아내인 베티(베아트리스)역시 올리비아를 아껴 매번 올리비아 몫의 도시락을 챙겨준다는 것까지 들었을때 따뜻한 식전빵이 나온다.

“아, 메뉴가 나오기 전 나오는 식전빵이군. 대부분 레스토랑에서는 에피타이저 이전부터 준비해 줄 때가 많아.”

빌이 코니에게 두 개, 사비나에게 하나를 주고서 버터를 그들 가운데에 놓는다. 친절한 빌의 설명에 사비나는 어쩐지 간질간질한 기분이 된다. 코니는 익숙한 듯 빵을 찢어 버터를 찍은 후 입에 넣는다. 빌의 설명과 코니의 실전 행위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사비나가 따뜻한 빵을 쪼개어 반을 빌에게 건넨다.

“빌도 먹어요. 하나는 너무 큰 것 같아요.”

그리곤 빌이 무어라 하기도 전에 후다닥 버터에 빵 조각을 찍어 입에 넣어본다. 따뜻한 빵에 버터를 발라먹으면 이렇게 맛있다는 것을 이제야 안 사비나의 두 눈이 동그래진다.

“허허…. 맛있나? 이런 빵에는 부드러운 생크림도 잘 어울려.”

정말요? 사비나는 촌스럽게 되물어볼 뻔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언젠가 빌이 만들어준 조잡한 케이크가 꽤 맛있었던 것 같아서. 이전에도 몇 번 먹어본 적은 있었지만, 느끼하고 달아서 그리 와닿지는 않았었는데. 왜 그건 그리 맛있었는지….

사비나가 처음 먹어보는 식전빵을 즐길때, 코니는 익숙하다 못해 지겹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빵을 뜯어먹는다. 흥, 곱게... 자라지는 않았지. 존나 험하게 자란 도련님이라 이건가. 사비나에게 건네받은 반쪽짜리 빵을 먹는 빌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뭐…. 빌은 언제나 그랬으니까.

그렇게 각자만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주문한 음식이 차례대로 나오기 시작한다. 닭고기가 들어간 묽은 수프와 따뜻한 감자 수프. 사비나는 빌이 고를 때까지 기다렸지만 빌 역시 사비나가 고를 때까지 기다려서. 그 미묘한 떠넘기기가 존나게 불편해진 코니는 제가 고르지도 않은 감자 수프를 끌고가 한 입 먹는다. 맛있었다.

“야! 그걸 니가 왜 처먹어?!”

“뭐야? 차려놓고 건들지도 않길래 그대로 박물관 가는 줄 알았는데.”

“니 제삿밥이 되고싶냐?”

“아, 그래. 제사인지 나발인지 그거.”

“난 괜찮으니 코니 먹게. 그럼 여기 오늘의 수프를 사비나가 먹으면 되겠군! 괜찮지?”

“이씨... 저야 괜찮은데요…. 나눠드실래요?”

빌은 웃으며 거절한다. 사비나는 정말로 적게 먹어도 괜찮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사람이지만, 그렇기에 사비나가 많이 먹기를 바랐다. 본디 아이들은 많이 먹고 많이 자야하니까. 이제 함께하지 못하니 이렇게라도 많이 먹여야지. 빌이 품은 비밀을 모르는 사비나는 힐끗 눈치를 보며 먹기 시작한다. 따뜻하고 맛있었다.

그렇게 소소한 잡담이나 나누며 천천히 나오는 음식을 받아 테이블에 늘어놓는데, 사비나의 생각보다 더 많고 큰 요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아직 빌과 제가 시킨 콤보 메뉴만 나왔다고 하는데, 저 자식 아까 이것저것 시키지 않았던가? 이제야 사비나는 점원의 걱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 … … ... 테이블 자리가 부족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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