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15

밴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이 모르고 있었던 음악을 하나씩 들을 때면 다채로운 기분을 느꼈다. 가사에 담긴 뜻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마저 즐거웠으며, 노래에 큰 요소를 담당하고 있는 다양한 악기에 대해서도 흥미가 많았다. 그래서 중학생 시절에 자신과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을 여럿 사귀었다. 점심시간에 다같이 모여 어느 가수나 악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걸로 만족하지 못해 친구들에게 제안했다. 밴드 동아리를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물론 그들은 적극 찬성했으며 일사천리로 밴드 동아리를 결성했다. 동아리를 개설하려면 최소 다섯 명의 인원이 필요한데, 운 좋게도 그를 포함하여 총 다섯 명이 모였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관심있는 악기가 서로 달랐다.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그중에 그는 드럼 연주를 도맡기로 했다. 악기는 네 개인데 그럼 나머지 한 명은 무엇을 담당하냐고 묻는다면, 그 아이는 보컬을 담당했다. 스스로 악기를 다루는 데 소질이 없다고 했지만 노래를 잘 부를 자신이 있다고 해서 자연스레 보컬이 되었다. 역할이 각자 배정된 이후로 그들은 노래에 맞춰 반주 연습을 하거나 새로운 곡을 짜는 데 열중했다. 방과 후에 함께 머리를 맞대며 진지하게 고민하다가도,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학업 스트레스를 푸는 것 또한 그들만의 낙이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이 밴드가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그는 물론 친구들도 간절히 바랐다. 어쩌면 자신들이 만든 곡이 유명해질지도 모른다며 한껏 부푼 마음을 품기도 했다.

“ 옛날엔 그랬었지. 이제 밴드에 남은 건 나뿐이지만. ”

그리고 현재, 그는 혼자 자취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아주 정석적인 회사원. 하지만 드럼뿐만 아니라 밴드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다. 집에서 시끄럽게 드럼을 연주할 수 없으니 드럼 연습실이라도 알아볼 심산이었다. 그래도 역시, 다른 악기와 조화롭게 연주하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었다. 친구들이 자신처럼 여유있는 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네 명의 친구들은 이미 자기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 밴드에서 노래를 제일 잘 불렀던 친구는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으며, 베이스를 맡았던 친구는 일찍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느라 바빴다. 그리고 키보드 담당이었던 친구는 피아노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독일로 유학을 간 상태였다. 피아노 전공이면 좁은 우리나라에서 먹고 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니까.

“ 이렇게 다 흩어졌는데 언젠가 다시 모이는 날이 올까? ”

이러다 할머니 되고나서 만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는 혼자 우스갯소리를 하며 실없이 웃었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 이렇게 현실이 각박하고 힘들 줄은. 그래서 그는 경쟁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숨통 트일만한 공간이 필요했다. 핸드폰으로 드럼 연습실을 검색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아~ 정말. 어떻게 집 주변에 연습실이 하나도 없……. ”

갑자기 그는 우뚝 멈춰섰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 색이 바랜 간판이 눈에 보였다. 생긴 지 제법 오래된 모양새였다.

“ 악기 동호회… 지하 1층……. 지금 열려있을까? ”

그는 출입문에서 한참 기웃거리다가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망설이기만 하면 달라지는 게 없다. 그가 항상 가슴 속에 새기는 문구였다. 만약 문이 잠겨있다면 간판에 적혀있는 번호로 연락해보면 되니까. 그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 문고리를 잡아돌렸다.

철컥.

곧 마주할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걸, 그는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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