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전력] 데이트

“쟤네 뭐하냐.”

배세진이 말했다. 그는 할 말이 참 많다는 표정이었다. 차유진은 그 표정이 퍽 재밌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제가 할게요.”

“아냐, 매번 문대가 차려주는 걸.”

“아니, 됐으니까!”

 

팀내 연장자-최연장자는 배세진이지만 정신적으로나 보이는 모습으로나 최연장자는 저 두사람이니 그렇다고 하자.- 둘이 설거지거리를 앞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두 사람 다 자기가 하겠다고 옥신각신이었다.

 

“That’s cool! 팀 분위기 좋아요.”

 

결국 박문대가 패배해 류청우가 싱크대 앞에 서는 걸 보고 차유진이 말했다. 그리고 다시 TV로 빠져들었다.

 

“이번에 제가 할 테니까 이따 저랑 운동 다녀와요.”

“아까도 갔잖아!”

“하하!”

 

할 말이 없을 때 웃는 것은 류청우의 오랜 버릇이었다. 배세진으로서는 박문대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뭐 씹은 표정일 거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선아현, 너도 저게 쿨하다고 생각해?”

 

배세진은 식탁에 앉아 뜨개질을 하던 선아현에게 물었다. 선아현 역시 자기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가 진작 박문대에게 정리 당한 참이었다.

 

“어, 음, 유진이가 말하는 쿨하다는 건, 음,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서로 돕는 건 좋은 거니까, 그러니까 좋은 게 아닐까요…?”

 

선아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난감한 듯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박문대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류청우의 옆에 서있었다. 배세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설거지를 류청우에게 뺏겨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를 보던 박문대도 결국 포기하고 선아현의 앞에 의자를 빼고 앉았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턱을 괴고 앉은 그가 마치 작은 병아리 같아 선아현은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정말로 속상해보이는 그를 보고 웃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아현은 얕게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위로를 건네었다.

 

“문대야, 청우 형도 좋은 뜻에서 그러는 걸 거야. 오늘 저녁도 네가 준비했는데 설거지까지 네가 하기엔….”

“맞아, 아현이가 내 마음을 알아주니까 좋네. 누구누구씨도 선의를 좀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선아현의 말을 들은 류청우가 냉큼 말을 이어받았다.

 

선의는 무슨. 박문대는 차마 선아현에게는 그렇게 대꾸할 수 없어 입을 다물었다. 류청우가 정말 선의로 그렇게 한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선아현 빼고 모두가 알 것이었다.

 

박문대는 류청우의 말을 무시하고 선아현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무얼 뜨나 했더니 수세미를 뜨고 있었다. 수세미를 보자 박문대는 또 빼앗긴 고무장갑이 떠올라 억울해졌다. 길고 커다란 눈에 감정이 그대로 어렸다. 그 모습이 비에 젖은 강아지 같아 선아현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제 운동 갈까?”

 

설거지를 마친 류청우가 가볍게 목을 까딱하며 물었다. 올 게 오고야 말았다. 박문대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속내를 그렇게 잘 드러내는 편은 아니었던 박문대가 이제는 쉽게 제 감정을 보이는 게 보기 좋았다.

 

“오늘 낮에도 같이 헬스장 다녀왔잖아, 류청우.”

“그건 무산소고 그걸로는 부족해요. 오늘 저녁에 너무 많이 먹었잖아요. 형이 너무 맛있게 차린 탓인데 유산소 해야지.”

비밀이 많고, 겁도 많아 조심스럽기만 하던 친구는 어느새 제 정체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하기 싫은 게 있으면 연상이라는 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물론 져주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건 8할이 청우 형 덕분일 거라고, 선아현은 생각했다.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고, 그가 기댈 수 있게 신뢰를 주는 사람이니까.

 

어쨌든 져주는 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박문대는 질색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수할 거야.”

“어차피 가줄거면서. 데이트라고 생각하면 좋잖아요.”

 

류청우는 웃음기를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데이트라는 말에 박문대의 귀가 새빨개졌다. 친구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선아현은 쿡쿡 숨죽여 웃었다. 얼마 전 이세진의 다그침에 뻔뻔하게 연애 사실을 인정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 않은가.

 

“문대야, 잘 다녀와. 청우형도요.”

 

금새 완성한 수세미를 바늘에서 조심스럽게 빼내며 선아현이 말했다.

 

“복수할 거야. 선아현, 너도. 그리고 청우 형도. 앞으로 맨날 기름지고, 탄수화물 가득한 것만 요리해서 다 똑같이 운동하게 만들 거야.”

“그럼 또 운동가야지, 뭐. 나도 복수의 의미로.”

“맛있는 걸 차려줘도, 풀떼기만 차려줘도 운동 가자는 게 맞는 거야?”

 

박문대는 투덜거리면서도 현관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류청우는 선아현과 눈이 마주치자 어깨를 으쓱하고 웃어버렸다.

 

“오늘도 가요?”

“오냐, 뭐 사다 줘? 아이스크림?”

“네! 문대 형 역시 나 잘 알아요.”

“다녀온다. 류청우, 갈 거면 빨리 와.”

 

박문대는 신발에 발을 쑤셔 넣고 현관에 서서 류청우를 불렀다. 그리고 곧 류청우와 박문대는 숙소 밖으로 나갔다.

 

“쟤네 또 나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와 본 배세진이 선아현에게 물었다. 선아현은 아직 식탁에서 실을 정리하던 참이었다. 그는 배세진에게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원래 생각했던 단어 대신 다른 단어로 바꾸어 대답했다.

 

“네, 데이트하러 간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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