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전력] 나눗셈

 

한때는 그의 애정이 모자라다고 생각했다. 래빈이, 유진이, 큰 세진이, 아현이, 심지어 작은 세진이에게까지 골고루 내려앉는 다정이 내게 닿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애정의 총량이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줄 만큼은 되지 않아서, 그래서 나에게까지는 돌아오지 않는 거라고.

아쉬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가진 애정을 빼고 나누어서 ‘0’이 되어버린 그를 부담스럽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신 생각했다. 그에게 내 몫이 없다면, 대신 내게서 그의 몫을 많이 남겨두어야겠다고. 그의 몫으로 남겨놓은 애정을 그에게 쏟아 붓는다면 언젠가는 ‘0’이 되기 전에 내게도 닿지 않을까.


나눗셈

 

 

 

회사와의 일로 잠깐 바깥에 나갔다가 돌아온 류청우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정겨운 장면을 마주했다. 가운데 작은 반상을 두고 그를 제외한 여섯 멤버들이 옹기종기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 이제 막 식사를 마친 모양이었다. 박문대는 과일을 깎다가 그가 들어오자 잠시 손을 멈추었고, 나머지 다섯은 접시에 과일이 떨어지자마자 주워 먹느라 분주했다. 그 모습에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갔다.

한 번에 6쌍의 눈동자가 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곧바로 몇 개의 입술이 열린다.

 

“형! 여기 앉아요! 문대 형이 과일 깎아요!”

“일찍 왔네? 저녁은 먹었어?”

“청우 형, 고생하셨어요.”

 

몇몇 목소리는 과일을 입에 물고 있느라 웅얼웅얼 입안에서 머무른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자신을 환영하는 목소리에 류청우의 눈이 더욱 휘었다.

 

“얼른 먹어. 나는 밖에서 먹고 왔어.”

“형, 그래도 후식 배는 남겨 놓고 오셨죠?”

“아냐, 너희들 많이 먹어. 너희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아직 사과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혹시 저희 몫을 걱정하시는 거라면 앉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괜찮아. 오늘 회사에서 이것저것 먹고 와서 그래.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

“그래, 고생했어. 류청우, 좀 쉬어.”

 

회사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온 것도 사실이었고, 끝도 없이 일 얘기가 이어져 피곤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멤버들의 다정한 권유를 물리칠 만큼 배가 부른 것도, 지친 것도 아니었다. 다른 속셈이 있었을 뿐이다.

류청우의 말에 앉아있던 멤버들은 더 권유하지 않고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피곤할 리더를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주자는 데에 모두 동의했다. 류청우는 아까부터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속으로 참았다.

 

“맛있게 먹어.”

 

결국 류청우는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멤버들에게 한결 풀린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숙소 가장 안쪽에 있는 그의 방으로 향했다. 팀 내 막내라인에 속하는 차유진과 함께 쓰는 것으로 통일성 없는 아이템들이 곳곳에 놓여있었다. 언젠가 규칙에 얽매여 살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의무라든가 책임감이라든가 하는 것들에 조금은 면역이 생겼다. 그 덕에 이제는 입었던 코트를 대충 의자에 올려두는 짓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었다. 류청우는 겉옷을 벗어두곤 가만히 서서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거실에서 멤버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데뷔 초보다 훨씬 더 돈독해진 분위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익숙해진 것이지만, 류청우는 여전히 이런 분위기가 좋았다. 아늑하고,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그런 분위기에 있노라면 자신도 쉽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곤 했다.

등 뒤에서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스르륵,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진이니? 아, 형이구나.”

 

박문대였다. 류청우는 상대방을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사실 그는 박문대가 들어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모르는 척 굴어보았다. 박문대가 부드럽게 문을 닫고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대충 의자에 올려놓은 코트를 발견하고 들어올렸다. 자연스레 행거에 걸어두기까지 하고는 다시 그에게로 다가섰다. 류청우는 지금도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그런데 앞에 선 남자를 마주하면서부터는 더욱 더 환하게 웃게 되었다. 기쁨을 숨길 수 없었다.

 

“많이 피곤해?”

 

박문대가 물었다. 류청우는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류청우의 얼굴을 살피던 그는 환한 미소를 마주하고 시선을 살짝 피했다. 묘하게 서운했다. 류청우는 냉큼 그의 손을 잡았다. 두 손으로 그의 오른손을 잡고 스트레스볼을 주무르듯 만지작거렸다. 박문대는 손을 빼는 대신 류청우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까치발을 들고 다른 손으로 류청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 밥 먹을래? 어차피 차유진이 주먹밥 먹고 싶다고 해서 야식할 건데.”

“아니, 정말 괜찮아.”

“아, 유진이 꺼 만들면서 겸사겸사 네 걸 하겠다는 게 아니라…….”

 

류청우의 대답에 아차, 싶었는지 박문대가 급하게 말을 바꾼다. 침착하기만 하던 얼굴에 표정 변화가 명확해진다. 류청우 얼굴의 미소도 더욱 번진다.

 

“하하, 응, 알아요. 형이 나 제일 사랑하는 거.”

 

당황과 난처함이 얼굴 위에 떠오르다 말고 다시 가라앉는다. 그를 안심시키는데 성공한 류청우는 아직까지 놓지 않고 있던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얼굴을 쓰다듬어 달라 종용한다. 머리카락 다음은 얼굴이지 않냐는 뻔뻔한 요구다. 한결 편안해진 박문대는 순순히 류청우의 요구를 따른다.

 

“알면서 질투는 왜 해.”

“음?”

 

찬 공기에 닿아 서늘한 얼굴을 한참 녹여주던 박문대가 대뜸 물었다. 어느 틈엔가 박문대는 류청우의 품 안에 포옥 안겨있었다. 류청우는 자유로워진 손으로 박문대의 허리를 제 배 가까이 당겨 놓아주지 않았다. 손길에 녹아드는 것처럼 류청우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가 그의 말에 느리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애들한테 질투한 거 아니야?”

“하하! 내가 뭐 때문에 질투를 해요. 설마 나 빼놓고 밥 먹었다고? 아님, 문대한테 멤버들이 나보다 먼저라고 생각해서?”

 

정곡을 찔렸는지 박문대는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류청우가 박문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산소 대신 제 영혼을 빨린 사람처럼 박문대가 몸을 움찔 떨었다. 류청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 번 깊게 숨을 내쉬고 또 들이마셨다.

 

“형이 이렇게 나한테 와줬잖아. 나 서운해 하지 말라고. 나 진짜 알아. 형이 나 사랑하는 거. 그것도 엄청 많이 사랑하잖아.”

“…알면 됐다.”

 

박문대는 수긍했다. 류청우의 뻔뻔한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류청우가 말한 것처럼 박문대는 류청우를 사랑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박문대는 류청우의 뒷통수를 곁눈질해서 보았다. 살짝 눌린 뒷머리가 오늘 얼마나 피곤했는지 투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정말 피곤해서 그래?”

“음…. 아니.”

 

박문대의 물음에 류청우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그리고 박문대를 안는 대신, 서서 마주 보는 자세로 돌아왔다. 너른 품에서 벗어난 박문대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치를 보는지 입술이 삐죽거린다. 평소의 그 무심한 눈으로 돌아온 박문대가 다시 물었다.

 

“그럼 왜?”

“음…….”

 

조금 전보다 망설임이 길어진다. 박문대는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본다. 앙 다물렸던 입술이 서서히 열린다.

 

“형이랑 이렇게 둘이 시간 보내고 싶어서요.”

 

그리고 배시시 웃는다. 애교를 부리는 게 영락없는 강아지다, 박문대는 생각했다.

 

“멤버들 없이?”

“응, 둘이서만. 힘들어 보이면, 형이 따라 와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상보다 더 뻔뻔한 말에, 박문대는 ‘제멋대로 구는 건 또 야생 늑대 같은데.’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류청우가 강아지를 닮든 늑대와 비슷하든, 박문대는 류청우를 사랑했다. 그러니 류청우의 기대처럼 곧장 그를 따라 이 방에 들어온 게 아닌가.

박문대는 류청우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의 웃음을 본 류청우는 박문대의 손을 잡고 침대 위로 자리를 옮겼다. 침대 위에 나란히 어깨를 붙이고 앉은 두 사람은 그것이 익숙한지 편안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박문대가 말문을 열었다.

 

“정말 안 서운했어?”

 

류청우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고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마침내 나온 말은 류청우를 다시금 웃음 짓게 했다. 류청우는 잡고 있던 손을 슬며시 놓고는 박문대를 와락 끌어안았다. 박문대는 곧 제게 덮쳐질 무게를 예감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응, 하나도 안 서운해. 아, 형 너무 좋아.”

 

류건우, 박문대, 내가 정말 사랑해. 야! 잠깐, 잠깐만. 으응, 형 나는 정말 괜찮아. 아니, 내가 안 괜찮으니까 좀! 건우 형, 잠깐만 이렇게 있을래요.

 

류청우는 박문대가 어린 것들에게 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리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는 ‘류청우’에게는 더 더 더 약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또 이렇게 그를 독차지하고 싶을 때는 약하게 굴 줄도 알았다. 결국 박문대의 승낙이 떨어졌다. 박문대의 손이 사뿐히 류청우의 등에 내려앉아 부드럽게 등줄기를 쓸어내렸다.

 

그래, 박문대가, 류건우가 제 것인데 대체 왜 질투를 하냔 말이다.

류청우는 속으로 킥킥 웃다가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박문대의 턱에 쪽쪽 입 맞췄다. 입술을 턱에 문질렀다가 또 다시 가볍게 부딪치고. 그때마다 등에 내려앉는 손의 움직임도 바뀌었다. 입술을 문지를 때는 척추를 따라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간지럽게 입 맞출 때는 등을 툭툭 두드리고. 작은 장난 하나에도 류청우는 행복했다. 이번에는 류청우가 박문대의 턱에 제 입술을 한참 올려두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할 건데,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류청우는 박문대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머리 위에서 피식,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났다. 박문대는 손을 들어 류청우의 머리카락을 헤집어놓고 물었다.

 

“다 했어?”

“응.”

“그럼 이제 야식 먹으러 가자. 너 안 먹이면 찝찝해.”

 

놀이의 끝이었다.

류청우는 아쉬운 듯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박문대에게 손을 내밀었다. 박문대는 손을 맞잡고 마찬가지로 몸을 일으켰다. 가볍게 두 사람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옷 갈아입고 나와. 먹고 싶은 거 있어?”

“유진이 거랑 같은 걸로. 룸메이트 하고부터 입맛도 비슷해졌나봐. 요즘은 나도 그게 제일 맛있더라. 물론 문대가 만들어주는 거면 다 좋지만.”

“알겠어요. 천천히 나와요.”

 

방문 앞에서 자연스레 동생의 포지션으로 돌아간 박문대는 다정하게 말하곤 방을 나갔다. 몇 마디 안 되는 말에서도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류청우는 박문대의 잔상이라도 남은 것처럼 그가 열고 나간 문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느릿하게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박문대가 안겨 있어서 그런지 옷에서 그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포근하고 달콤한 향기. 체향마저도 사랑스러운 그를 닮았다.

 

문 바깥에서 이런저런 애정이 밀려들어왔다. 달달한 간장 소스와 식욕을 돋우는 기름 냄새, 지글지글 고기를 볶는 소리 등.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애정이었다. 빨리 나가서 도와줘야겠네, 류청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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