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전력] 낙원으로
키워드 : 낙원
젊은 군인 류청우는 배에 올라탔다. 제물포에 정박한 이 기선은 오전 9시에 출발하는 하와이 행 선박이었다. 배는 몇날 며칠을 걸려 그를 ‘하와이’라는 지상낙원으로 데려다줄 터였다.
‘3년…….’
머리 위에서는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었다. 류청우는 따가운 볕에 눈살을 찌푸렸다. 목멱산 아래 위치한 남별영에서도 한여름 한낮에는 군인들의 훈련을 멈추도록 했다. 더위나 먹고 헥헥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3년, 그가 지낼 하와이는 일년 삼백육십오일 한낮에 일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하와이는 춥지도 덥지도 않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 어느 절기든 직업을 구하기 용이하다고. 그는 서울 곳곳에 고시된 광고를 떠올렸다. 설마 타국의 사람들에게 거짓말까지 해서 데려오려고 하지는 않았을테다. 조선이 지금은 승냥이들 떼에 괴로운 처지에 놓여있으나 미국, 그곳은 군자의 나라가 아닌가. 류청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참말로 뜰 수 있다는 말이오?”
“거참, 이미 떠있지 않소? 걱정 말고 아이나 잘 챙겨서 들어가시오.”
“허어, 쇳덩어리가 어떻게 움직인다는 건지, 참…. 관리 양반, 이 배에 너댓 명 타는 것도 아니고 수십 명은 탈텐데 걱정되지 않겠습니까?”
“걱정 말래두! 수십 명이 아니고 수백 명이 타도 거뜬하답디다.”
류청우의 뒤에선 수민원 관리와 한 남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가족이 함께 떠나려는 건지 남자의 옷자락을 자그마한 아이 하나가 꼭 붙잡고 있었다. 수백 명은 거뜬하다는 관리의 말에도 남자는 근심어린 얼굴이었다. 난간 앞에 서 배 아래 찰랑거리던 바닷물을 바라보던 류청우도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이미 계약서는 작성했고 배에도 올라탔다. 게다가 집에 편지까지 남겨두었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는 큰 돈을 벌어 떳떳하게 조선에 돌아올 것이다. 류청우는 멀리 육지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초가집은 새로 들어선 서양식 건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애써 그 위에 낯익은 조선의 풍경을 덧입혔다.
류청우는 그리운 조선을 눈꺼풀 안쪽에 꼼꼼히 담고 지하의 객실로 내려갔다. 커다란 방이 둘, 각각에 문이 둘씩 달려있었다. 류청우는 고민하다 그중에 하나를 열고 들어갔다. 갑판 위에서 시간을 좀 보내다 내려온 탓인지 이미 방 안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낮은 이들과 함께 방을 써야한다는 게 어색한지 연신 헛기침을 하는 양반이 있었고, 잽싸게 자리를 차지하고 널찍하게 공간을 차지한 평민들이 몇 있었고, 이 큰 배에 탔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운지 방의 한가운데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몇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곳을 빼고는 사람들이 전부 있었다. 출입구가 가깝다는 것만 빼면 다른 구역과 비슷할 텐데 사람들은 굳이 좁은 공간에 끼어 있기를 선택했다. 류청우는 이상함을 느끼며 남은 공간에 짐을 풀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사내가 그를 불렀다.
“군인 나리. 이쪽으로 오는 게 어떻소?”'
아까 갑판 위에서 보았던 남자였다.
“괜찮습니다. 이쪽이 더 넓군요. 그쪽이야 말로 이쪽 공간을 더 쓰는 게 어떻습니까?”
남자의 옆에 앉은 부인이 치맛자락을 꼬옥 붙잡았다. 왜인지 두려운 기색이었다. 그녀는 제 아들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군인 나리, 그쪽에 있는 게 누구인지 아십니까? 백정놈의 자식이랍니다. 백정의 자식이면 그 놈도 백정인 거지요.”
좋은 일을 했다는 듯 당당한 말투였다. 그 말에 류청우는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체구가 작은 사내 하나가 다리를 쭉 펴고 옆으로 팔을 베고 누워있었다. 서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한 남자였다. 그 사내가 누워 있는 바람에 사람이 하나 있는 줄은 몰랐던 모양이라 류청우는 생각했다.
백정의 자식. 그 사내를 두고 백정의 자식이라 말했다. 비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모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십여년 전 갑오년의 개혁에 이미 신분제는 없어지지 않았나. 양반도 상놈도 천민도 이제 평등해진 것 아니었나. 류청우는 앞을 바라보았다. 앞에는 양반의 자식과 상놈의 자식이 나란하게 앉아있었다. 공간을 차지한 것은 신분이 아니라 그저 몸뚱어리였다. 류청우는 작은 사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런 불안한 기류에서 쉬이 잠들지는 못했으리라.
‘이 대화도 듣고 있겠구나.’
류청우는 저 사내가 안쓰러워졌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내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산짐승 같았다. 활을 쥐면 귀를 쫑긋거리고 맹렬하게 도망가는, 사냥꾼의 기척에 예민한 산짐승들. 이곳 배에는 그를 도살하려드는 사냥꾼들뿐이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날랜 사냥꾼이었던 류청우는 이곳에서만큼은 사냥꾼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를 대놓고 두둔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조용히 대답했다.
“신경 써주어 고맙습니다. 하지만 당신들 자리를 빼앗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요. 나 같은 덩치가 그쪽에 간다면 필시 비좁게 느껴질 겁니다.”
남자는 류청우의 말에 제 구역을 곁눈질했다. 이미 자리엔 그의 일가족 외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마 남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남자는 류청우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 가족의 곁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최대한 자리를 확보하려는 심산이겠지, 짐작했다.
멀리서 뿌우우, 하고 기선이 한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시끄러운 모터 소리가 시작되었다.
‘정말 떠나는구나.’
서울도 한 번 떠나본 적 없는 그는 며칠 전 처음으로 인천 땅을 밟아보았다. 조계지와 개항장, 조선이면서도 조선 같지 않은 풍경에 놀라 몸을 웅크렸던 게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제 그는 아예 조선을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전국 팔도를 가보기도 전에 이역만리 길을 먼저 떠나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어쩌자고 양인들의 배에 올라탔지. 신미년에 평양을 공격한 이양선도 불에는 쉽게 타오르지 않았나. 이 배도 바다 한가운데에서 불이 붙는다면……. 류청우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했다. 짙은 초록으로 칠해진 천장을 바라보는 건 의외로 도움이 되었다. 그 색은 바다도 불길도 아닌 집 앞마당에 심어진 감나무 이파리를 닮아서……. 그걸 바라보고 있으니 그저 설익은 감이라도 한 입 베어 먹고 올 걸 그랬다는 아쉬움만 남았다.
‘괜찮아, 이미 그곳에 가서 지내는 사람들도 많잖아.’
그가 누운 이곳 지하 2층의 객실에도 사람은 많았다. 무려 100여 명이 탑승한 배다. 그는 무모한 선택을 한 게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3년 뒤에 돌아오면 번 돈은 부모님께 드리고, 얼마는 남겨두고 유람이나 다녀볼까. 그는 애써 설렘으로 두려움과 긴장을 저어 멀찍이 치워 보냈다. 누웠으나 잠이 잘 오지 않아 그는 자리에 누운 채로 눈만 꿈뻑거렸다. 지하의 객실은 볕이 들어오지 않아 밤이 깊어가는지 해가 밝아오는지 시간의 흐름이라는 게 도통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하루 두 끼 끼니를 알리러 일본인 선원이 내려오는 걸로 하루가 또 흘러가는구나 알아차릴 뿐이다. 일단 두 차례의 식사를 모두 마쳤으니 저녁은 지났을 것이다. 아마 밤이겠지. 류청우는 어둠에 적응이 된 눈으로 가만히 주변을 보았다. 앞에서 작은 산짐승 같은 사내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두려워하는구나. 하지만 류청우는 구태여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다만 옆에 누운 남자의 두려움에 안도했다. 너도 나와 같구나.
제물포를 출발한 배는 며칠 뒤 일본에 도착했다. 나가사키에 정박한 배는 3일 뒤에 다시 출항한다고 일본인 통역이 알렸다. 그리고 출항 전에 신체검사가 있다고 예고했다.
‘적합하지 않으면 돌려보내겠다는 거구나.’
객실에는 밤이면 흐느껴 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돌아갈 기회가 생겼다며 기뻐했다. 류청우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돌아가고 싶다고 해도 그가 신체검사에서 통과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계약서에 柳靑祐, 이름 석 자를 적는 순간 운명은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도 있었다. 그의 근처에서 사흘 밤을 보낸 작은 사내는 신체검사라는 말에 눈에 띄게 놀랐다. 무언가 걸리는 것이라도 있나. 만약 사내가 나가사키에서 내리지 않는다면 그로서는 좋은 일이 될 터였다.
‘이 자리에 오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덕분에 편하게 올 수 있었지.’
류청우는 그 보답이라도 할 겸 그에게 물었다. 마침 아침 식사 시간이기도 해서 말을 걸기는 쉬웠다.
“무언가 염려되는 점이라도 있습니까? 안색이 좋지 않아 묻는 것입니다.”
“아니, 큼, 아무 일도 아닙니다.”
놀란 듯 목소리가 높이 튀었다. 그간 대화를 나눈 적이 없기에 류청우가 말을 걸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대답했다. 목소리는 가늘고 맑았다.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듯 했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류청우는 그의 문제를 곧장 알아차렸다. 분명 조선에서 배에 오를 때는 나이를 속였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 배는 하와이에서 노동할 인력을 구하는 배였다. 성년도 지나지 않은 어린 사내를 태워갈 리 만무했다.
‘덩치라도 제법 컸다면 속이는 게 어렵지는 않을 텐데.’
류청우는 제 짐에서 무게가 나갈 만한 물건이 있나 고민했다. 하지만 떠오르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대신 제 몫의 아침 식사에서 밥을 조금 덜어내었다.
“걱정이 없으시다면 식사라도 많이 하세요. 저는 어제 저녁 식사를 많이 해서 그런지 속이 더부룩합니다.”
그리고 사내의 접시에다 옮겨주었다. 류청우의 행동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사내는 당황한 기색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사내가 밥 먹는 걸 멀거니 보던 류청우가 다시 물었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을 안 했군요.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이고 하니, 이름이라도 알아가는 게 어떻습니까?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게 될 텐데. 저는.”
“박, 문대입니다.”
류청우가 제 이름을 밝히기도 전에 남자는 제 이름을 꺼내놓았다. 류청우는 방긋 웃고 끊겼던 말을 이었다.
“저는 류청우입니다.”
류청우, 박문대는 작게 중얼거렸다.
“글자는 글월 문을 씁니까?”
그는 류청우의 물음에 작은 토끼처럼 자꾸만 놀랐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큼, 아뇨, 따뜻할 문에 햇빛 대…….”
낯선 이와 대화를 하는 게 어색한지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따뜻할 문에 햇빛 대. 참 다정한 이름입니다. 어쩐지 햇빛도 없는데 당신 곁에 있으니 따뜻한 것 같더라니요.”
떠나온 계절은 한여름이었다. 더운 게 당연한 계절이다. 다들 더워서 하루종일 땀을 삐질거리고 있지 않나. 객실 안에 가득한 더운 공기에 숨이 막힌다해도 모자란데, 따뜻하다니…….
박문대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에 자꾸만 놀랐다. 백정의 자식에게 이름을 묻는 것도 그렇거니와 다정한 이름이라니. 글을 배우라며 제게 이름을 물었던 신부님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대신 신부님은 달을 가리키며 그를 ‘문’이라고 불렀다. 제 이름은 햇빛이지 달빛이 아니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서양말을 할 줄 몰라 말하지 못했다. 대신 신부님이 건네는 십자가를 받았다. 십자가는 달빛에 하얗게 반짝였다.
박문대는 류청우와의 대화에서 신부님을 떠올렸다. 큰 키에 큰 덩치, 검은 옷을 입고 그를 내려다보던 신부님처럼 류청우도 큰 키에 큰 덩치였다. 밥을 많이 먹으면 그들처럼 커질 수 있을까, 박문대는 류청우가 덜어준 밥을 꾸역꾸역 삼켰다. 주위의 시선이 따가웠다. 류청우는 몰랐지만 주변에선 백정의 자식과 가까이 앉아 대화하는 군인을 다들 흘낏거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박문대만 시선을 알아차렸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조선을 떠나왔지만 조선인들은 제게 백정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는 문득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참아야했다. 눈물이 빠져나가 몸무게라도 줄어들면 큰일이었다.
박문대는 무사히 신체검사를 통과했다. 보따리에 챙겨둔 십자가를 몰래 바지춤에 넣어둔 것이다. 그래봤자 몇 그람 차이는 나지 않았겠지만, 그는 다른 물건도 아니고 십자가인 덕이 크다고 여겼다. 그는 하늘을 잠깐 올려다보았다가 고개를 숙이고 신부님에게 배운 대로 성호를 그었다. 이제 다른 이에게도 감사 인사를 해야 했다. 저를 보고 고민하듯 갸웃거리던 일본인 브로커에게 신원을 보증해준 이가 있었다.
류청우. 객실에서 내내 그의 곁에서 머물렀던 남자이다. 아침에는 잘 먹어야 더 크지 않겠냐는 듯, 제 식사를 나누어준 남자이기도 했다.
박문대는 짐을 챙겨 날래게 객실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자리를 잘 잡아놓고 있으면 남자도 만족할 터였다. 분명 저보다 훨씬 큰 덩치이니 널찍한 자리가 필요할 것이다. 그는 이번만큼은 제 처지가 마음에 들었다. 짐승의 피로 먹고 사는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배에서만큼은 괜찮았다. 역시나 그가 객실 안에 머리를 들이자 경계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처음 자리를 펼쳤던 출입구 쪽의 구역으로 갔다. 그곳엔 이미 한 두 사람이 드러누워 있었다. 그들은 욕을 몇 마디 중얼거리다가 다음으로 류청우가 들어오자 조용해졌다. 류청우는 이번에도 박문대의 옆에 짐을 내려놓았다.
“…나리, 자리 좀 더 쓰셔요. 이쪽이 더 넓어요.”
“글쎄, 자리를 같이 쓰는 건 괜찮지만 좁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나리가 아닙니다.”
박문대는 류청우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류청우’ 이름 석 자를 부르는 게 어색해서 괜히 나리라고 불렀다. 저번에 어떤 남자도 그를 군인 나리라고 부르지 않았나. 그런데 류청우는 제 말을 부정했다.
“저번에 군인 나리라고…….”
박문대는 고개를 들어 류청우를 보았다. 그는 인자한 미소를 얼굴에 띠우고 있었다. 그 미소엔 어딘지 모를 장난기가 서려있었다.
“퇴역 군인입니다. 게다가 양반 출신도 아니고요. 그저 나랏밥을 잠깐 먹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당신처럼 먼 땅에 일꾼으로 가고 있지요.”
“예……. 그렇군요…….”
박문대는 그와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워 자꾸만 고개를 숙였다.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건 아버지, 그리고 서양에서 온 신부님을 빼고는 없었다. 그러니까 멀끔하게 생긴 조선인과 대화를 나누는 건 그가 처음이라는 말이다. 원래 말을 하는 게, 얼굴을 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박문대는 제 짐을 만지작거리다가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는 걸 떠올렸다.
“나리,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아까?”
류청우는 그새 잊은 모양이었다. 친절한 사람 같아 보이기는 했으나, 호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릴 수 있나. 박문대는 왠지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호의를 받은 것 또한 대화를 나눈 것처럼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은인에게 고작 그런 걸로 서운해해서는 안 되지. 박문대가 말했다.
“아까……. 제 신원을 보증할 수 있다고 한 거요. 감사했습니다.”
“아아, 도움이 되었습니까?”
“네, 그 일본인, 저를 돌려보낼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스무 살이 못 되었다 생각하는 것 같았거든요.”
류청우는 짐을 정리하는 척 더 가까이 붙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대화가 들리지 않게 할 심산이었다. 그리고 박문대에게 말했다.
“그럼 제가 당신의 은인인 거지요.”
“예? 예, 그렇지요.”
“류청우. 나리 말고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양반도 아닌데 나리로 불리니 곤란하군요.”
박문대는 놀라 헙, 하고 숨을 들이켰다. 이번에는 정말로 류청우의 얼굴에 장난이 가득했다.
“농입니다. 대신 형님이라고 부르는 건 어떻습니까. 정말로 나리는 아니라서요.”
“예, 나, 아니, 청우 형님.”
* 일단 드랍. 나중에 시간 날때 다시 잇겠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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