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넬+스피넬 친부모+푸르슈노+율루스 타로 백업
드림주의 양친의 생존 여부
스피넬이 자신의 부모의 생사에 대해 알게 되는 건 예의 바브일 탑, 갈레말인들의 목숨과 과잉 신앙으로 이루어진 그 종말의 탑 안에서 일거예요. 왜냐하면 스피넬의 양친은 엄밀히 말하면 사망하지 않았고, 생존한 채 탑의 양분이 된, '구속된' 상태이므로 아니마의 소환과 함께 영혼을 잃어 죽음을 맞이했다는 인상에 가깝거든요.
애당초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은 상태로 등장하였으므로 이는 죽음으로 판단하는 것이 적합해 보이며, 이 상황을 대하는 양친의 태도는 그 부친과 모친의 양태가 다소 달라 보여요. '원하지 않으나 내부로 불러들여져 일자리를 얻었고, 그 상황에 희망을 가졌으나 사실상 텔레포로이 탑을 제작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었으므로 이 양친은 본인들이 꿈꾸던 안락한 삶이나 미래 대신 자원으로 쓰였다'는 맥락인터라 외부에 살고 있다면 제국측에서 사람을 심부로 모으기 위해 모종의 정책을 시도해 갈레말드로 불러들여졌을 거에요.
최후의 최후까지 본인들이 겪은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으나, 그 본인들의 사고가 갈레말인들의 선조인 솔 조스 갈부스나 황제를 찬양하는 사고보다 현실에 타협하고자 하는 필부에 가까웠으므로 정신이 장악당하고 뒤엉키는 과정에 절망과 고통을 느낀 듯싶네요.
드림주와 푸르슈노의 관계
우선, 이 스프레드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그래서 푸르슈노가 스피넬을 대체 어떤 인간으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대하는가에 대한 부분이지요. 사뭇 의아하실지도 모르지만, 생각보다 스피넬에 대한 푸르슈노의 평가는 그렇게 혹독하지 않아요. 생각 외로 스피넬이라는 사람이 이제까지 이끌어온 변화나 영향력 같은 것들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며, 그래서 에오르제아의 역사서에 스피넬의 존재와 그 의미가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갖고 있는지도 인정하고, 납득하며, 따라서 개인에 대한 평가 자체는 썩 부정적이지 않단 뜻이에요.
다만 이건 한 개인이 인간관계를 맺을때 타인에게 갖는 호불호의 영역에서의 판단이라기보다, 세계의 역사를 주도하는 그 영향력 있는 존재의 행적과 성취를 평가하는 관찰자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로, 이제 앞으로 말해야 할, 그래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푸르슈노가 스피넬에게 가진 감정이며 태도는 어찌 흘러가느냐, 는 다소 다른 맥락이죠.
푸르슈노는 결코 감정적이지 않아요. 그 무엇보다 완고하고 자신의 판단과 신념을 쉽게 꺾지 않으며, 그것을 뒷받침할 능력도, 이미 그동안 일구어온 성취도 존재하죠. 푸르슈노는 그의 아버지 루이수아의 행보에 반대하고 샬레이안에 남기 선택한 사람이니까요. 다만 그렇기 때문에, 푸르슈노는 자신의 계획이 이상적이며 자식을 위한다고 믿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실행되지 않을 아주 미흡한 가능성마저 고려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스피넬을 썩 적합한 보호자로 판단하기까지 해요.
단, 이것은 위와 마찬가지로 스피넬에 대한 인간적 감정이 배제된 평가라는게 중요하죠. 한 인간으로서 푸르슈노는 스피넬의 행동에 더할 나위 없는 상실감을 느끼거든요. 강압적인 방식을 취하면서까지 그 행동을 자신에게 숙이게끔 종용하고 싶었던 이 고집 센 남성은, 자신이 이미 내세운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는 개념보다, 스피넬이 던진 '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는 개념에 더 크게 상심한 거예요.
그러나 이 합리와 이성과 중용을 추구하는 남성은 그것에 개인적인 사감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충격을 노출하기보다 이제까지와 같은 태도로 알피노와 스피넬을 비롯한 새벽 일행 전반에 선을 긋기를 고수해요.
어떤 의미에서는, 이 모든 효월의 여정 동안 푸르슈노가 자신에게 굽히지 않는 알피노와 알리제를 어느 부분 용인한 데에 스피넬의 존재가 안전장치로 기능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자식 빼앗아가는 도둑처럼 보이기도 하다마는, 지금 상황에서 그 자식들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가 되어줄 존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부모로서의 푸르슈노를 일견 안심시켰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푸르슈노는 아이들에게 선을 그은 효월 내내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사랑하고있으며, 비록 그 과정과 대처가 알피노와 알리제를 상처입혔다는 점에서 아무렇지 않게 용인될수는 없겠으나, 감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자식의 무사를 기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뜻이에요.
푸르슈노는 그래서 처음 스피넬과 대면했을때도 무엇보다 공적이고 사감없는 방식으로 스피넬을 대했을 것이며, 약혼 사실에 대해 통보받았을 때에도 불쾌한 표정으로 그런 용건을 꺼내기에 때와 시간을 고를줄 모른다는 비난을 했을지언정 그 외의 사적인 감상은, 이미 자신이 뱉은 말이 있어 내뱉지 못했으리라는 뜻이에요. 이 부분은 효월의 진행 과정에서도 큰 차이 없이 이루어지는데, 애당초 푸르슈노는 그 자신의 체면과 위치와 성향 탓이라도 노골적으로 스피넬을 적대하거나 비난하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오히려 이 푸르슈노와 좀 더... 인간적인 갈등이랄지, 티격태격한 고부갈등(?) 이 이루어지는건 모든 일이 끝나갈 즈음, 푸르슈노가 알피노를 인정하는 타이밍과 엔딩 이후에 두드러질거예요. 이를테면...
알피노의 성장을 인정하고 그 판단의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한 뒤의 푸르슈노는 이제 스피넬에게 가졌던 '객관적인' 시선 이면의, 이제 정말 인간 대 인간의 '시아버지와 아들의 정혼자' 라는 입장을 대면해야하는 순간이 됐지요. 푸르슈노는 이성적이지만 가족에게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사내고, 스피넬과 알피노의 생활에 ' 더 나아질 수 있는 ', ' 더 좋은 방향'의 조언을 지속적으로 내비추려고하지만 이 사람의 성향상 그건 직접적인 간섭이나 종용같은 '적극적인' 방식은 아니며 아멜리앙스를 통하거나 아니면 알피노에게 넌지시 말을 붙이는 식으로 표현될거예요.
이 상황의 푸르슈노는 스피넬이 못마땅하지만 / 동시에 어느 정도의 고마움과 신뢰가 있으며 / 관계를 개선해야한다는 필요성은 느끼나 / 스피넬쪽에서도 알피노의(화해한) 아버지를 대하는 것 이상의 제스쳐를 보이지 않는(엄밀히 말하자면 스피넬쪽에서도 푸르슈노를 적잖이 못마땅하게 여기기때문에) 서로를 대할때 자존심과 고집을 굽히지 않은 채 애매하게 마찰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에요. 물론 그걸 중재하거나 아무일도 아닌 양 흐지부지하는게 알리제-알피노와 아멜리앙스이고, 스피넬과 푸르슈노는 그 사람들이 요구하는 ' 합의된 친밀감 '정도는 연출해낼 수 있으나 서로를 영 불편하게 여길수밖에 없단 뜻이지요.
이 부분의 고집과 의견은... 이미 서로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음에도 남은 감정적인 앙금과 불편함인 탓에, 아무래도 앞으로도 해소되기 어려운 문제예요. 하지만 그 불편함이 적의나 불쾌감, 상대를 완전히 무시할만한 부류의 문제로는 넘어가지 않고 다른 가족들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한 비즈니스적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단 점이 어떤 타협점이죠. 애당초 서로와 그리 친밀해지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정말로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기도 해요. 방식이 극단적으로 다르고 여전히 비판점은 남아있으나 결국 둘 다 서로의 의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드림주와 율루스의 관계
이 관계에 대해 읽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스피넬이 제국인에게 가진 근본적인 '꺼려짐'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이 사람은 자신의 출신과 과거와 갈레안인에 대한 혐오감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에오르제아에서 이룩한 많은 것에도 비롯하고 자신에게 달려있는 갈레말 제국 출신, 그 병사 출신이라는 꼬리표에 생각이 복잡한 사람이에요.
그러니만큼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갈레말드라는 공간 자체가 복합적인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불유쾌한 장소일 수밖에 없는데, 그곳에서 만난 율루스가 보이는 행보는 아무래도 스피넬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방식이니까요. 그러나 스피넬은 이제까지 에오르제아의 빛의 전사로서 해왔던 방식으로는 이 일을 대응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무거운 구속감을 느끼고 있어요. 실제로 행동에 제약이 걸려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심적으로 자신이 제대로 시도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제국인들도 결국 자신이 겪었던 자들과 똑같은 차별주의자, 그 악습의 연장선일 것이다, 라는 불쾌한 예감과 확신이 스피넬을 옥죄고 있다는 뜻이죠.
그러나 이 관계에선 주목하고 넘어갈만한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데, 그건 율루스라는 캐릭터의 성향이에요. 물론 그는 갈레말 제국의 윗선에서부터 내려온 프로파간다를 신봉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자신의 신념 삼고, 갈레말인의 민족성 및 긍지를 갈레말인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오염되어 받아들인 사람이지만, 동시에 그 프로파간다를 진심으로 수용하는 기저에는 자신의 삶에 떳떳하고자 하는 선한 의지와 자신의 신분인 군인으로서의 자부심, 긍지와 같은 것들이 근본이니까요.
이 사람 자체가 옳다거나, 죄가 없다는 의미라기보다, 이 '기질적으로 선한' 사람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 계급, 사회풍조의 영향으로 위에서부터 내려온 계급의식과 사상을 주입받은 결과가 이 사람의 모습이란 뜻이며, 그래서 이 사람은 자신의 믿음이 기반부터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에 느끼는 배신감과 혼란이 더 큰 부류의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맹목적인 신뢰가 아닌, 옳다고 믿어온 세계였기 때문에 그것의 문제를 알게 되었을 때 더 빠르게 무너지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율루스에게 있어 스피넬의 존재는, 어떤 의미에선 '이 사람을 처리하거나 붙잡는 것으로 이 상황을 변하게 할 수 있는', 자신이 사랑하고 애착 갖는 갈레말이라는 국가의 명운을 바꿀 수 있는 키워드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그 사람의 사상이나, 내면이나, 상황을 보기보단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했던 사람이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던 사람이죠.
그러나 손에 들어온 기회라고 생각했던 건 율루스의 눈에 써져있던 거짓된 이상을 부숴줄 사람이었고, 이 둘의 관계는 그래서 다소 초반부터 극단적인 혐관이라고 하기엔 어려웠을 거예요. 왜냐하면, 율루스는 스피넬을 일방적으로 혐오하거나 싫어한다기보다 '인간이 아닌 병기', '야만인'을 폄하하여 외면하는 방식에 가깝고, 스피넬은 제국인인 율루스에게 가진 편견과 오래된 상처들로 그 상대를 자신이 생각하는 제국인에 맞추고자 하니까요. 서로가 서로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적으로, '악마화 된 개념'으로 보고자 했기 때문에 마찰은 늘 있었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 객관적으로 혐관의 이름을 가질 수 있겠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 둘의 관계는 관계조차 되지 못한 오해와 곡해에 가까워요
그러나 서로에게서 보고자 하는 면만을 끄집어내던 상황은 쉽게 붕괴되고 말죠. 율루스는 스피넬의 존재에, 그리고 알피노와 알리제가 보이는 이해와 포용에 이질감을 가져요. 율루스가 알아온 에오르제아인들 이라는 형체는, 그 야만인들은 이런 '인간'의 모습이 아니니까요.
군인으로서 전쟁에 나가고 갈레말 제국이 확장되는 것을 자신의 긍지이자 삶으로 알았던, 그들의 마도 기계와 점령 아래 피비린내 나던 땅을 갈레말이 외부로 진출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단계로 여겼던 율루스는 그제야 자신들이 믿어온 신념에 의문을 제기할 존재를 맞이한 거예요. 그들은 사람이고, 자신과 다르지 않다면, 이 전쟁 동안 자신이 고수해온 신념은 무엇이 되는가. 율루스는 그 의문에 혼란을 느끼면서,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조금 더 스피넬을 관찰하려고 하고, 알아내려고 하죠.
그리고 인간이 그렇듯, 관찰은 이해를 부르며, 율루스는 스스로의 신념이 잘못된 기반에 있음을 납득하고 포기하게 되어요. 그리고 스피넬이 율루스에게 어떤 '이해'를 가지게 되는 건 그 시점이에요. 그 이전까지, 율루스가 말하는 모든 표현과 자긍심은 스피넬에게 있어 자기 자신이 겪어온 모든 차별적인 발언과 갈레말인들의 우수성을 부르짖는 행위와 크게 다를 바 없었으니까요.
그들이 사람인 걸 알게 된다고 한들, 그 기득권과 '그들의 일상'은 타인의 비극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변하진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스피넬은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드는 연민과 동정을 간추리고 그들의 문제와 죄를 냉정히 보고자 하는데, 이 태도 자체는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으나, 율루스의 변화 이후로 스피넬이 보이는 태도엔 한 가지 큰 차이가 섞여요.
스피넬은, 갈레말인이라는 그 자신에게 있어 가장 끔찍한 인종, 그 사람들에게 가졌던 편견을 내려놓고 '그들 또한 바뀔 기회가 있다' 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거든요. 율루스와 스피넬은 그런 식으로 서로의 사고에 변화를 주는 존재인 거죠. 서로에게 어떤 큰 애정이나 호의나, 깊은 관계성을 가지진 않겠으나, 죄를 깨닫고 변하고자 몸부림치는 율루스의 모습은 스피넬에게 과거의 자신을 연상시키고, 모든 갈레말인들이 율루스와 같지 않겠으나, 누군가는, 그리고 어떤 갈레안 인들은, 어쩌면 이제까지 와 다른 방식으로 그 죄와 책임을 지며 에오르제아의 일원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얻은 거예요. 이건 엄밀히 말하자면 스피넬 개인이 깨달은 부분이라기보다 알피노의 희망과 욕심을 스피넬이 수용하고 납득한,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싶어진 부분이지만요.
그러므로 율루스와 스피넬의 관계는, 그런 류의 이해가 전제된 이후에도 완전히 '친근해지지는' 않으나, 스피넬이 본인의 과거를 밝히고 율루스의 그 긍지에 존재하는 오만함을 지적한다던가, 율루스가 그 또한 수용하고 자신이 앞으로 가질 신념을 재정비하는 과정에 충분한 영향을 주고받을 사이예요. 친구라고 표현하기엔 멀지만, 서로로 하여금 바뀐, 변화를 가진, 어떤 이정표 같은 존재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싶네요. 율루스는 지금 변화의 기로에 놓여있는 사람이지만 아직 벗어내지 못한 갈레말인의 우월성 겸 프로파간다가 내면에 존재하는 사람이고, 스피넬은 그 자신이 감정적으로 납득하지 못해도 이성적으로, 또 알피노의 이상에 맞추어 상대를 수용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존재가 서로에게 자신이 바뀌고자 하는 방향을 계속 일깨우게 될 테니까요.
결과적으로, 이 둘은 서로로 하여금 성장하는, 서로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관계성이며, 이후의 미래에서 서로에게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그것에 자긍심을 갖고 싶어 할 듯해요. 깊게 얽히는 동료나 친우보다 그런 사건의 영향으로 의미 깊은 상대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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