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マン、浪漫!

番外特異点:ムーンライト

번외특이점: 문라이트

1.5부 신주쿠 이후 시점, 애니메이션 문라이트/로스트룸, 프로토 아서 체험 퀘스트 스포일러 〇


長い夢を見た。とてつもなく暖かくてずっとその場所にいたいくらいのいい夢。

ボクは人間になり、親友も作り、そして愛する人にまでも出会えた。

ああ——、なんて幸せ者だろう。

無論、彼女と巡り会うことはできなかったが、それはそれとて悪くなかった。

何にせよ、自分の恋心に恵まれるのは選ばれた人のみだし、ボクはそのような人ではないんだから。

ただの脇役で、今までできなかったことをやったことで十分さ。

そう強く思っていた。いつまでもこの長い夢が見られるようにと、祈りながら。

로마니 아키만이 없어진 지 일 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신전에서 돌아온 뒤, 츠무기는 한동안 그의 마이 룸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나 특이점이 완전히 수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방문을 열고 평소와 비슷한 하루를 보냈다. 오전에는 식사를 마친 후 도서관에서 역사책 등을 열람, 점심 식사 후에는 몇몇 서번트들과 함께 시뮬레이터를 통한 훈련. 저녁 식사 후에는 간단한 메디컬 체크. 그 후 취침. 개중에는 소야 츠무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스태프들도 있었다.

그러나 소야 츠무기가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이, 아주 미약한 미소를 얼굴에 내거는 일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절대 그 말에 동조하지 못했다. 원래대로 돌아왔냐, 라고 묻는다면, 그래. 원래대로 돌아온 것은 맞다. 그러나 시간 신전, 혹은 바빌로니아 이전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마치 선배를 처음 봤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아요.”

그래, 마슈 키리에라이트의 말대로였다. 원래 츠무기는 말수가 적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면, 지금은 더욱 알기 힘들어졌다. 타인이 그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메디컬 체크의 기록에서 뿐이었다. 온갖 수치가 기록된 데이터로 그의 내면 심리를 짐작하는 것. 그와 일 년 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마슈 키리에라이트도 조금 괴짜이나 보호자역을 자처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더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 역할은 마슈나 다 빈치가 아닌, 로마니 아키만의 것이었으니 더욱이.

그렇기에 두 사람은 신주쿠에서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츠무기의 요청을 막을 수 없었다.

평범한 날이었다. 런던 시계탑을 견제하는 한편 지난 일 년 간의 기록을 개변하는 작업에 몰두하는 다른 날과 다를 것 없는 날. 그렇기에 관제실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있지도, 크게 들떠있지도 않았다. 지극히 사무적인 일상이 이어지는 나날, 그런 와중의 하루였던 것 뿐이다. 그런 공기를 가르듯 관제실의 문이 열렸다. 하얀 제복, 길게 내려 땋은 회색 머리. 소야 츠무기였다. 백색 눈동자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다 빈치에게 고정되었다. 그는 관제실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몸만 돌리면 바로 문 밖으로 나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서있었다. 자신은 이곳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마냥.

“문라이트, 잠겨 있나요?”

“문라이트?” 다 빈치는 그것이 무엇인지 떠올리려는 듯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아, 거기라면 딱히? 지금은 들어가는 사람도 없으니 그대로일 거야.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냥… 청소하고 싶어서요.”

“선배, 그러면 저도,”

“마슈는 할 일이 있잖아. 괜찮아. 나 혼자로도 충분해.”

마슈의 말을 가볍게 막은 츠무기는 가벼운 목례와 함께 관제실을 나섰다. 풀 죽은 마슈의 등을 두드리던 다 빈치는 그곳을 둘러싼 소문을 떠올렸다. 문라이트 로스트룸. 몇 번이고 반복된 괴이 현상 탓에 로마니 아키만이 붙인 ‘문라이트’보다 ‘로스트룸’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많이 불리는 공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불길한 예감과 낙관이 동시에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에 고개를 기울였다.

문라이트와 관제실의 거리는 가까웠다. 츠무기는 로마니가 알려준 위치를 기억 속에서 더듬으며 문라이트를 찾았다.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칼데아의 스태프들 사이에 만연했으나 과거, 그 방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던 로마니 아키만은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정말 귀신이 나오는 방이었다면 분명 그는 크게 호들갑을 떨며 음양사, 혹은 엑소시스트로 이름을 날렸던 서번트에게 조언을 구했을 것이다. 츠무기는 명패에 쌓인 먼지를 제 소매로 툭툭 털어내고는 문을 열었다.

츠무기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이곳에서 다같이 쉴 수 있으면 좋겠어. 티 타임을 가져도 좋겠지. 이곳은 칼데아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달빛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니까─……. 과거 어느 날에 담담하게 읊었던 그의 소망을 들어주고 싶었을 뿐이다.

문라이트, 라는 낭만적인 이름과는 달리 방은 창고나 다름없었다. 거의 천장까지 닿아 있는 책장에는 책 대신 비품 이름이 적힌 상자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을 바라보면 천장에는 커다란 창문이 달려 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칼데아의 날씨는 늘 눈보라, 흐림이었으나, 요새는 구름이 걷히고 태양을 볼 수 있는 날이 늘어났다. 지금도 그렇다. 오후로 넘어가는 시간. 낮이 짧은 탓에 이미 뉘엿뉘엿 해가 저물고 있었다. 불을 켜지 않아도 괜찮겠네. 이제 전력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츠무기는 그리 생각하며 몸을 움직였다.

물건은 나름 규칙성을 띠고 정리되어 있었다. 비슷한 종류의 것은 한 곳에 놓여 있었고, 상자에는 익숙한 필체로 물품명이 적혀 있었다. 익숙한 모습을 볼 때마다 누군가 심장을 손으로 꾹 쥐고 있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종종 토할 것 같은 감각에 사로잡히면 츠무기는 잠시 벽에 등을 기대고 몇 번이고 심호흡을 했다. 주먹을 몇 번이고 쥐었다 편 뒤에야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붉게 물들었던 방은 해가 저물며 차차 어둠에 사로잡혔다. 달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둠. 츠무기는 발걸음을 옮겨 문 쪽으로 향했다. 이쪽에 스위치가 있던 것 같던데…….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쪽에 가까워졌다. 불을 켜려고 스위치에 손을 올렸을 때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그 틈새로 복도의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마슈, 저녁은 조금 뒤에,”

갑작스러운 빛에 미간을 찌푸린 츠무기는 빛으로부터 고개를 돌렸으므로 제 앞에 선 사람이 누구인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상대는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츠무기? 여기는 어쩐 일이야?”

스위치를 찾던 손이 멈추었다. 끼익, 문이 닫히고 복도에서 새어 들어오던 빛이 사라졌다. 츠무기는 고개를 돌려 문라이트의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연분홍색 머리카락, 구불대는 머리카락. 다정한 낯과 약간의 의아함을 담은 연녹색 눈동자. 누군가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때린 것 같은 감각에 사로잡히며, 츠무기는 생각했다. 이것이 만약 꿈이라면 지독한 악몽일 것이라고. 지독하게 달콤한 감각을 쏟아부어 더 이상 현실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종류의 악몽이라고. 그러나 그는 이것이 꿈도, 환각도, 멀린의 장난도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몇 시간 사이에 이렇게─ 음,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무슨 일 있었어?”

이런 다정함을 흉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니까.

아까까지는 없었던 달빛이 로마니의 얼굴을 비추었다

夢でもいいから彼に会いたいと思ったことがある

だが、無意識でも彼が「もういない」と分かったからなのか、

彼は私の夢に出てくれなかった。

あなたに伝えきれなかった言葉があるのに。

それがどうしても悔しく、悲しかった。

지금 이 문라이트에는 두 개의 이상 현상이 있다: (1) 로마니 아키만이 이곳에 있다, (2) 달빛이 이 공간에서 유일한 광원 역할을 하고 있다, 는 것. 츠무기는 혼란한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현재 상황을 분석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빛 하나 없이 어두웠던 공간에 로마니 아키만이라는 존재가 들어옴과 동시에 달빛이 가득 찼다. 츠무기는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당황을 갈무리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오늘 훈련 강도가 높았나 봐요.”

그리고 급히 날조한 변명을 내뱉었다. 로마니는 그것을 의심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러면 방에 가서 쉬는 게 낫지 않겠어? 데려다줄까?”

그는 오히려 걱정하는 기색으로 츠무기의 안색을 살폈다. 단순히 훈련 강도가 높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로마니는 이유 모를 위화감을 느낀 것인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츠무기는 확연하게 평소와 다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온화하고 안정된, 평소와 같은 시선이 아니라 오히려 귀신을 본 듯한……. 그러나 미래를 모르는 로마니 아키만은 그 이상의 근원을 찾아낼 수 없었다.

찾아낸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 츠무기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한들, 로마니 아키만은 그것을 캐물어 입 밖으로 꺼내게 만든 다음, 그를 책망할 수 없었다. 그가 숨긴 이유를 납득하고 이해하고야 말겠지. 그렇다면 소모적인 논쟁을 시작할 이유는 없다─ 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안색을 살피느라 살짝 굽힌 허리를 펴고 한 걸음 멀어진 거리를 그대로 좁혔다. 어찌 되었든, 오전 시간 뿐만 아니라 오후에도─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순수하게 기뻤으니까.

“그래서, 이곳에는 어쩐 일이야?”

“로망이 문라이트를 바꾸고 싶다고 했으니까요. 미리 정리해 두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츠무기의 말에 로마니는 시선을 돌려 방 안을 살펴보았다. 자신이 지난번에 왔던 때보다 확연히 정리되어 되어 있었다. 이런, 피곤할 텐데 미안한걸. 가볍게 내뱉은 로마니는 벽 쪽으로 턱짓했다.

“방금 온 사람이 말하는 건 좀 그렇긴 하지만, 조금 앉아서 쉴까?”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은데.”

“의사의 말은 들어서 나쁠 게 없어, 츠무기. 충분한 휴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해.”

로마니는 ‘로망이 그렇게 말하니, 이상하네요.’라는 반박을 예상하며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었다. 그러나 츠무기로부터는 아무 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침묵에 당황한 로마니가 고개를 돌리자,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얼굴을 한 그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데. 로마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츠무기의 얼굴에서 감정이 지워졌다. 아, 또다. 로마니는 꾸욱, 주먹을 말아쥐었다. 츠무기는 먼저 발걸음을 떼었다. 두어 걸음 먼저 걸어가며 뒤를 돌아 로마니를 바라보았다.

“로망?”

“아, 응. 미안,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츠무기의 옆에 나란히 선다. 벽 쪽으로 걸어가 그 근처에 있는 담요를 꺼내 바닥에 깔고, 츠무기의 옆자리에 앉았다. 사람의 온기가 지척에서 느껴졌다. 바닥을 짚은 손끝이 살짝 닿아오자, 그의 머릿속을 괴롭혔던 의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슬쩍 빼려고 했으나 츠무기의 손이 그의 손등 위로 올라왔다. 분명 남들보다 서늘한 체온인데 그에게는 뜨겁게만 느껴졌다. 장갑 위로 느껴지는 감각에 다른 쪽 손을 꼼지락댔다. 치워달라고 하면 미안하다고 하며 손을 내려주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의 욕심은 용서해 줄 거야, 응. 가벼운 자기 합리화를 마친 뒤에야 그는 다시금 웃음을 지어낼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데요?”

“츠무기가 도와준다면 여기도 금방 바뀔 것 같다는 생각? 그랜드 오더가 끝나면 이곳에서 달밤의 무도회를 열 수 있겠구나─ 라고. 하하, 너무 낭만적인가?”

잠시 동안의 정적. 얼마 지나지 않아, “그랬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이 옆자리에서 들려왔다. 츠무기는 고개를 들어 문라이트를 비추는 달을 한 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로마니를 바라보았다. 로마니는 빛으로 인해 투명하게만 보이는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럼, 지금 춤출까요, 로망?”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던 것인지, 로마니는 급히 숨을 들이마시고 말을 이었다. “지, 지금? 츠무기는 훈련 끝나고 정리까지 했던 거잖아!? 피곤하지 않겠어?”

“그렇지만 지금이라면 조금 더 빠르게 달밤의 무도회를 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지금 당장 이루고 싶은 소원은 아니니까. 게다가 지금은 음악도 없고, 나도 그렇지만 츠무기도 춤 같은 건,”

“음악은 없어도 괜찮아요. 춤은…… 춰본 적 있어요, 두 번 정도.”

츠무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마니 앞에 마주 섰다. 달빛을 등에 진 탓에 츠무기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츠무기는 잡고 일어나라는 듯 그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로마니 아키만은 다시금 깨닫는다. 츠무기가 이렇게 행동한다면 자신은 거절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왼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일어났다.

칼데아에서 유일하게 달빛을 받을 수 있는 방, 문라이트. 츠무기는 자연스럽게 로마니의 손을 이끌었다. 이런 춤은 신주쿠에서 춰 본 두 번이 유일하지만, 스텝을 밟는 데에는 어떠한 주저도 보이지 않았다. 로마니는 몇 번 움찔대다 츠무기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달빛에 의해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로마니 아키만은 그제야 생각한다. 오늘 눈보라가 멎었던가? 라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녹색 눈동자가 불안하게 한 번 흔들렸다가, 츠무기에게 향한다.

“츠무기, 오늘은…….”

“네, 달은 뜨지 않았겠죠.”

로스트룸에서 일어난다던 괴이현상은 아닐 것이라는 모호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 춤을 추고 밖으로 나간다면 더이상 그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로마니는 혼란스러운 듯했다. 스텝이 꼬여 츠무기의 발을 살짝 밟은 뒤에야 그는 정신을 차렸다. 로마니는 과거 어느 날, 후유키 시에서 보았던 세이버의 서번트를 떠올렸다. 이 세계에는 있을 리 없는 누군가를.

“그러면 너는 어디서 온 거야?”

“질문이 모호해요, 로망. 시기를 따지는 거라면…… 2017년.”

츠무기는 담담하게 사실을 고했다. 눈매가 조금 일그러지고, 로마니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다. 미래에서 왔다는 말이 거짓말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츠무기는 그에게 거짓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 그의 기민한 이성은 빠르게 정답을 도출해 낸다.

“그곳에 나는 없구나, 그렇지.”

츠무기의 침묵이 곧 정답이었다. 로마니는 하하, 역시 그렇게 됐나, 라며 가볍게 웃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춤을 추고 있었다. 로마니는 스텝을 밟고, 팔을 들어 츠무기의 턴을 유도하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츠무기는 그런 로마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둘 중 누가 휘말린 것인지, 아니면 둘 다 휘말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특이점과 비슷한 상황이라 보면 되려나. 성배의 출현 조건도, 회수하면 이곳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지만.”

로마니는 덤덤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츠무기는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허공을 향했던 로마니의 시선이 다시금 그에게 향했다.

“아니면 성배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칼데아에서 발생한 마력의 잔해가 쌓여 이 공간 자체에 마술이 깃들었다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마력이 스스로 의지를 가졌다?”

“이 방은 로스트룸이라 불리기도 하잖아요. 칼데아 내에서 괴이사건이 일어나기도 하고요. 게다가 로망은 문라이트에서 다른 이들이 많은 것을 즐겼으면 했잖아요. 저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해요.”

요컨대 문라이트에 모인 칼데아 내부에서 발생한 마력의 잔해와 특수성을 갖고 있던 문라이트와 두 사람의 소원이 합쳐져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소리다. 로마니는 한 가지 의문을 입에 담았다.

“내가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츠무기가 그리 생각할 이유는 없지 않아?”

로마니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었다. 츠무기와 많이 친해진 것은 맞으나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 써 줄 의리는 없었다. 게다가 2017년에는 로마니 아키만이 없다면, 많은 것을 숨긴 자신을 미워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아니던가. 로마니의 의문에도 츠무기는 덤덤하기만 했다. 마치 내일 아침 메뉴는 무엇이 좋겠다며 말하는 것만 같은 어조였다.

“그야, 제가 로망을 좋아하니까요.”

“그렇구나, ……응?”

한 박자 늦게 반응이 따라왔다.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가, 이내 하얗게 질렸다. 츠무기는 폭탄을 내던져 놓고는 태평한 낯이었다. 아니, 오히려, 속에 꾹꾹 담아두었던 말을 내뱉은 것마냥 후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기색에 로마니 아키만은 과장 하나 없는 사실임을 깨달았다. 사람은 큰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냉정해진다더니 지금 로마니의 상황이 그러했다. 스텝을 밟던 발을 멈추고, 츠무기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언제부터?”

숨이 턱 막혔다.

“정확한 건 모르지만, 당신이 마지막을 향할 때 깨달았어요.”

“그럼 내가 이런 남자라는 걸 알고도?”

“많은 것을 알게 된 뒤에도.”

로마니 아키만은 울고 싶어졌다. 언젠가 긴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 꿈에서조차 츠무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보답받은 적은 없었다. 츠무기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으며 그는 칼데아의 의료 스탭으로 돌아가 평범한 나날을 보냈다. 그것만으로 만족했는데. 츠무기의 허리에 얹은 손에 무심코 힘이 들어갔다.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만일 이곳에서 있었던 일이 전부 ‘없었던 일’이 된다면 막 자각한 감정을 말해도 될 것이라는 욕망과, 떠날 사람에게 짐을 얹어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상충했다. 로마니는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다가 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네가 계속 칼데아에 있다는 건, 아직 완전한 평화가 찾아오지는 않았다는 소리겠지.”

츠무기는 대답을 회피했다. 로마니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어.” 로마니는 작게 읊조렸다. “미안해, 츠무기.”

로마니의 답에 츠무기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웃어 보였다. 로마니는 그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춤을 추기 시작한 곳과 같은 위치에 멈춰 서있었다. 회색 구름이 달을 가려, 방 안이 차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걸로 충분해요. 로망이 이렇게 대답할 거라는 건, 말을 꺼냈을 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요.” 츠무기의 목소리에서는 일말의 주저도 엿볼 수 없었다. 오히려 후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마음도 전하고, 로망이 바랐던 것처럼 이곳을 달밤의 무도회장으로 만들 수 있었으니까. 이것만으로 족해요.”

츠무기는 그리 말하고 한 걸음 물러섰다. 평소와 같은 얼굴로 돌아온 그는 그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먼저 가볼게요, 로망. 오랜만에 만나서 무척 기뻤어요.”

츠무기는 그 말을 마치고 그대로 문으로 향했다. 문을 살짝 열고 아주 잠시, 그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로마니는 그 자리에 서서 츠무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것을 꾹 참고 츠무기는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그 뒤로 한동안, 문라이트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마슈.”

“아, 선배. 청소는 잘하셨어요? 제가 도울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관제실로 돌아가는 길. 츠무기는 마슈를 발견하고 가볍게 말을 걸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나도 나오지를 않으니 찾으러 갈 생각이었던 듯, 마슈의 손에는 음식이 올려진 트레이가 들려 있었다. 츠무기는 후식으로 준비된 케이크를 잠시 바라보다가 마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달이 예뻤어.”

“네? 오늘은 구름에 가려져서 달이 안 보이던데…….”

“내 방으로 가자. 케이크가 있으니 차를 내올게.”

츠무기는 마슈의 등을 살짝 밀었다. 마슈는 아리송해하면서도 츠무기의 말을 따랐다. 어쩐지 츠무기의 기분이 한결 나아 보인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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