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2

실장님

2024.11.22

1-

2024.11.20

실장님이 사라졌다. 가게 콜폰은 2024.11.19까지 접속함 이라고 적혀있다.

실장님이 도망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실장님이 사라졌다고 말해야한다. 실장님은 사라진거다..

아침부터 이상하게 하루종일 기분이 안좋았다. 사실 이틀전에 실장님에게 연락이 왔었다. 다친 손은 좀 어떻냐고. 그때 내가 좀더 오래 쉴것처럼 말했는데 어쩌면 실장님은 그때 가망없음을 느끼고 사라져버린게 아닐까. 그때 제대로 말할걸. 손은 다 나았다고.

출근을 위해 네일샵에 들려서 손톱을 바꾸고 가게에 연락을 했다. 내일 출근하겠다고. 분명 아무리 바빠도 이런건 금방 읽는데 답장이 없었다. 너무 이상해서 가게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오늘 가게에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다.

여전히 이유없이 기분은 불쾌했고. 집에 들어갔는데 사장에게 카톡이 왔다. 실장이 도망갔다고. 너 돈빌려준거 없지? 라고… 나한테 정말 아무말도 없었냐고. 혹시라도 연락오면 자기한테 꼭 말하라고. 사장의 그런 말에서 나를 영원히 실장님의 것으로 정해놨다는 기분이 들었다. 영원히 나는 외부인이고 남의것이고 그리고 앞으로는 나랑 연락하는건 아닌지 의심할거고… 그게 뿌듯하면서도 이루말할수없이 서러웠다. 실장님은 나를 또 놔두고 가버렸으니까.

여태 실장이 매일 내가 없으면 굶어죽는다고 자기는 다 포기하고 도망갈거라고 자살해버릴거라고. 10년가까이 그 말을 들을때마다 엄살이라고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굶고있는지. 정말 다 망해버린건지 몰랐다. 언니들은 항상 저사람이 우리보다 더 오래살거라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꾸준히 실장님을 걱정해왔다. 우리는 좋은 시절을 같이 보내고도 힘든일도. 나쁜일도. 전부 같이 겪었잖아.

날 두번이나 버리고 갔잖아!!!! 웃으면서 그랬잖아 세번은 버리지 않겠다고. 꼭 나만이라도 데리고 가겠다고 했잖아!!!!! 어떻게 그럴수있어!!! 내가 매일 그랬잖아 나 버리지말라고 갈거면 나 데려가라고 어디로도망갈건지라도 말해주던지 도망가고싶다고 알려줘야지 냅다 버리고 도망가버리면 난 어떻게하라고 난 어떻게하라고!!!!!!!!!!!!!!!!!!!!!!!!!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너무 두렵고 불안하고. 몸이 바스라지는것같다. 어릴때로 돌아가 엄마아빠한테 버려진 기분이 든다. 그냥 내가 다 잘못했다고 무릎꿇고 싹싹 빌면서 제발 나 버리지 말라고 용서해달라고 앞으로 더 잘하겠다고 진짜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용서해달라고 붙잡고 울고싶다. 그렇게 울고싶은데 이미 실장님은 사라져서 그것도 못하고 나 혼자 울어야한다. 나 혼자서 서운함을 느끼며 의미없는 눈물을 흘려야한다. 제발 이게 다 꿈이면 좋겠다. 자고 일어나면 꿈이었다고 전부 거짓말이라고. 영원히 돌아오길 영원히 영원히 바라고 기다리기만 해야하는 사람이 내 인생에 또 늘어났다고? 장난치지마 이런 장난 재미없어 실장님 내가 잘할게 이제 그만하고 나와…

실장님의 계좌로 천원씩 송금하며 메세지를 적었다. 이건.. 뉴스에서 봤다. 나 이런거 처음해봐… 바보같은데 눈물이 났다. 너무너무 슬프고 서럽다. 나도 이젠 돈이 없어서… 천원씩밖에 못보내… 갑자기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나는 로또에 당첨되면 실장님이 도박을 못하게 가둬놓고싶었어.

나는 지나간 날들을 생각하며 한참을 울었다. 아기때로 돌아간것처럼 소리내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겨우 울음소리를 억눌렀다.

잠든 너를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풀지못하게 묶어서 네가 모르는곳으로 버리고싶다고. 돈이 많았다면 너를 비행기에 태워 미국에 버렸을거라고. 그런 말을 하는 부모님을 마주볼때마다 느끼던 두려움. 새벽까지 일하느라 오지않는 부모를 기다리며 차가운 집에서 나오지도 않는 티비와 라디오를 틀어놓고 무서워서 잠이 안온다는 동생 옆에서 무섭지 말라고 내가 온갖 헛소리를 할때. 사실 나도 무서웠어. 엄마아빠가 이번에는 진짜로 나를 버린건 아닌지. 아니면 어디서 죽어버린게 아닌지. 그게 전부 나때문은 아닌지. 매일새벽 너무 무서웠어. 그런데 실장님이 도망가고싶다고 죽고싶다고 그럴때마다.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어. 사실 실장님이 나한테만 만원을 더 떼가는거 알고있었어. 왜냐면 냉장고에 언니들이 남겨놓은 돈이랑 갯수가 나랑 다르잖아. 나는 그래도 괜찮았어. 그렇게라도 실장님이 조금 더 늦게 천천히 사라졌으면 했어. 실장님이 계속 내 실장님이었으면 했어.

그냥 슬퍼. 나는 이제 쓸모도 없고 도움도 안되는구나. 계속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생각하고있는데 잘못된 질문인건 나도 알아. 내가 바보같은것도 알아. 잘못된 감정을 잘못된곳에서 반복해서 느끼고있다는것도 알아. 그래도 나는 실장님이랑 있을때 가장 안전하고 행복했어. 그리고 최고였잖아.

너무 서러워서 감자한테 전화해서 말했는데. 그때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감자는 바보라서 내가 울면 따라서 울어버린다. 다른사람들한테 정주지 말라고. 전부 자기한테 달라고. 그리고 자기 말고는 아무도 믿으면 안된다고 그 말을 듣는데 더 눈물이 났다.

그치만 실장님이랑 나는 도넛맨도 같이 이겨냈잖아… 이겨냈다고 하니까 조금 이상한데.. 치웠잖아? 그건 더 이상한데… 여튼 우리는 단속도 여러번 이겨내고 죽은 손님까지 조사받았잖아! 어떻게! 어떻게!!!! 나도 그 수많은 사건동안 그냥 불어버리고 놔버리고 사라지면 편했어! 그런데 모두가 실직할까봐 걱정돼서! 다른 수많은 사장실장언니들의 당장의 생계가 걱정돼서 참고 조사받은거였는데!!

어쩌면 도박을 한것도. 도박을 끊지 않은것도. 계속 빚을진것도. 실장님 잘못인건 아닐까? 그것마저도 좋은 실장의 해야할 일에 들어가는건데 안해버린거잖아. 모두를 놔두고 사라졌잖아… 이렇게라도 미워하고싶은데…

뭐라도 탓하고싶어서 감자에게 네탓이라고 했다. 너때문에 내가 행복해서 우리 가게가 망해버린거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아무거나 내뱉고싶었다. 네가 귀여운 탓에 우리 가게가 망해서 실장님이 사라지고 가게가 없어졌어!!

앞으로 가게 방들은 어떻게되는거지? 다른 언니들은 나오나? 사이트는? 출근부는? 예약은 누가받아? 콜폰은 어떻게된거지? 가게DB는? 다른가게로 옮기면 내가 블랙걸은 애들 또 만나야하는데. 그것보다도 내가 다른가게 가도 내 손님들은 모르는거잖아? 난 어느가게로 가야하는거지? 이참에 그만둬버릴까?

이런생각으로 알바몬을 보며 울다 잠들었다.

꿈에서는 납치를 당해서 감금당한채로 윤간을 당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억지로 음식을 먹였고 나는 울며 제발 토하게해달라고 강제로 먹은 뻑뻑한 반죽이 된 음식들을 토하고싶은데. 나오질 않는다고 제발 물을 마시게 해달라고 물을 마시고 토하게 해달라고 울며 헛구역질을 하는 꿈이었다.

2-

2024.11.21

잠에서 깨자마자 가게 사이트에 들어갔다. 언니들이 올라와있다. 누군지도 몇살인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그 사이에는 나도 있다! 아 역시 꿈이었던거야..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콜폰 번호도 텔레그램 아이디도 바뀌어있었다. 전부 꿈이 아니었구나…아니 어쩌면 전부 꿈이다. 그래도 출근할수 있다는 꿈.

가게는 실장님에게 돈을 빌려준 개빡친 깡패들. 사채업자들(같은 말을 두번 쓰다)이 몰려와서 전부 뒤집어 엎어버렸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사장의 오늘 출근하지말고 잠깐 기다리라는 메세지를 받고 도망갔다.

연락이 오지 않아서 가게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모든 글이 내려가있었다. 연락처까지도.

우리 가게가 사라졌다… 우리 가게 닫음… 창녀 실직함…

우리 가게 사라짐. 영원히 사라짐… 영원히…

실장님이 일을 너무 크게 벌려서 사장도 어떻게 못했다고했다. 사장도 그냥 도망가서 울었다고. 자기도 돈 잃었는데 가게까지 잃어버렸다고. 실장님 잡히면 죽여버릴거라고…

사장은 다른 가게에 말해줄테니 당장 내일부터 거기로 가라고했지만… 그치만… 모르겠다…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아 차라리 이렇게 혼란스러울때 어버버 하고 들어가서 그냥 적응해야하는데. 모든 고통에 스스로 나를 떠밀고 내던졌던것처럼.

오늘은 하루종일 다른 가게들… 선택지? 과연 이게 선택지가 맞는가… 무의미한 생각들만 하다가 멍때리다가 고통스러워하다가 울다가 이 모든게 어째서 현실이지? 왜 꿈이 아니지? 라는 생각만 했다.

그저 실장님이 어디선가 잘 도망갔길. 죽지 않기를. 잘 지내길.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자고. 그리고 가끔 나를 떠올려주고 나를 꼭 데리러 와주면 좋겠다. 나를 꼭 되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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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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