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戀
아주 오래된 누군가와의 이야기
현무는 그런 생각을 한다. 죽음이라 함은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그녀는 자신의 삶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며 감정이 결여된 것에 뜻을 두지 않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현무는 스스로 물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정원의 가장자리 쪽에 있는 연못 물에 빠지는 소리가 정원에 크게 울린다. 연못에 서서 그대로 몸을 맡기듯 빠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임에는 틀림없지만 현무에게 있어서 그것은 아무래도 좋을 일이였다.
차가운 물이 현무를 감싸고,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 감각이 느껴졌다. 위를 올려다보면 수면에 빛이 닿아 마치 보석처럼 일렁이며 반짝이고 있었다. 오직 파랑과 햐양만이 눈 앞에 보이는 이 순간. 그녀는 그 풍경이 꽤 예쁘다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가라앉으면서 생기는 연못 속 물의 흐름에 몸을 맡겼고 잠시 눈을 감았다. 아마도 그러려고 했을 것이다.
“……. 콜록.”
강제로 물에서 건져올려진 반동, 혹은 물을 먹은 영향으로 짧은 기침을 내벹던 현무는 급작스래 반전된 풍경에 느릿하게 눈만 깜빡였다.
물 특유의 투명하고 아름다운 파랑이 아닌 하늘만이 가지는 흐린 듯 옅은 파랑과 물감이라도 잔뜩 칠한 것 같은 구름의 하양. 그리고 마치 세상이 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식겁하는 표정으로 흠뻑 젖어서 숨을 몰아쉬는 남자까지. 아까의 그 고요한 경치와 크게 다를 것은 없었지만 그 남자의 존재로 인해 자신이 뭔가 큰 잘못이라도 한 모양새가 된 기분이었다.
“갑자기 무슨 짓이세요!! 다른 시종들이 보기라도 했어봐요. 얼마나 놀랐는지나 아세요?!”
“내가 뭘. 죽기라도 할까봐 그래?”
“연왕님!!!”
남자가 소리를 지르자 손은 저절로 귀로 향해 귀를 틀어막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람. 일어나서 남자를 빤히 바라보는 와중에도 일말의 변화 없이 무표정인 그녀와 다르게 남자는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건지 심호흡과 함께 이런저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면서도 걱정 가득한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현무의 입장에선 그가 그토록 걱정하고 화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애시당초 화를 내는 것이 맞간 한걸까?
꽤 오랜 시간 혼자 떠들던 남자는 결국 그녀가 전혀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인지 고개를 저으며 현무를 빤히 바라보았다. 서로 눈을 마주하고, 잠깐의 침묵이 어색함과 함께 맴돌았다. 짙고 옅은 색이 공존하는 푸른 눈, 그리고 그 눈에 비춰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 남자는 방금까지 자신이 그 연왕에게 스스로 물에 빠졌던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모두를 걱정시키는 일인지 떠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까맞에 잊어버린 채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 예쁘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한테 보통 인간은 죽니 어떠니 하더니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얼굴이라도 붉힐 줄 알았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뭐…. 너도 한 얼굴 하네. 새로 온 시종이야?”
현무의 말을 자르는 듯한 발언에 남자는 잠깐 굳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현무는 흥미가 가는 것인지 얼굴을 가까이 해 빤히 바라보았고 남자는 그런 그녀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같이 빤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자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현무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볼 수 있었다.
마치 낮과 밤의 하늘을 연상하는 듯한 짙음과 옅음이 공존하는 푸른 눈동자, 마치 강 위의 안개와도 같은 탁한 흰색의, 굽이치는 긴 머리. 분명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할 터였음에도 그 표정이 어딘가 공허하다고 느껴졌다. 거기까지 의식하기 시작하자 물에 젖었던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마저도 의식이 되자 저절로 얼굴이 홧홧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얼굴에 티가 나는지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뭐야? 그렇게 빤히 바라보고. 또 생명이 어떻니 하면서 따지려고 그러는건가?”
“그…. 그런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게….”
“……. 됐어. 딱히 궁금하지도 않으니까 그냥 말하지 않아도 돼.”
“…. 네?”
“말 안해도 된다고. 따질거면 따지고 말거면 말라는 의미잖아.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솔직히 관심 없어.”
“관심 없다니….”
현무는 남자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믿을 수 없다는 그 표정이, 어째서 그렇게 말하냐는 눈빛이 전부. 본래 그녀는 타인은 물론 자신에 대한 것도 하등 관심이 없는 왕이었다. 딱히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유독 자신에게 이런 반응을 보이는 남자가 이상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왜 이렇게까지?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작게 피어났지만 이윽고 관심을 껐다. 그런 의문을 가진다고 해서 해결될 것도 아닐 뿐더러 굳이 그 의문을 해소하고자 상대에게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알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보통 궁금해하지 않나요?”
“난 딱히.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이해를 안 하고 말지.”
“그럼……. 외롭지 않으세요?”
“……. 외로워?”
고개를 갸웃한 채 바라본 남자는 현무의 입장에선 다시금 잘생겼다는 감상이 나올 법 했다. 밀밭보단 짙은 연갈색의 머리와 오묘하게 느껴지는 보라색 눈동자. 그리고…. 외롭지 않냐는 말에 그제서야 그녀는 그가 자신을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묘하게 그 얼굴을 바라보던 현무의 입에선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 왜 내가 외로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거야?”
“그거야…. 다른 사람을 이해함으로서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진다고 저는 생각하니까요. 이해가 없으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없잖아요.”
“굳이 알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인간은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가는걸요. 연왕님께서 저희와 같이 지내시는 것과도 같죠.”
“내가 너희와 지내는 거랑, 인간들끼리 같이 살아가는 것이…….”
“적어도 제 생각에는요.”
“……. 너, 이름이 뭐야?“ 한참 생각하던 현무의 대답은 그러했다. 무표정 속에 감춰진 그 옅디 옅은 미소는 그 남자의 이름은 한담이며 몇일 전에 들어온 새로운 시종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난 그 이후 이야기를 이어가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 현무의 모습은 다른 시종들이 보기엔 확연히 달랐다. 평소에도 그다지 세상사에 관심 없는 공허한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의 그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시종들의 의견이었다. 더 멍하고, 다른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았지만 그 이유는 시종들은 물론 하물며 현무 본인조차도 알 수 없었다. 물론 그 변화를 바로 알아차린 이는 거의 없었으나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음? 이번엔 좀 다르군.”
“내가? 왜, 내가 또 눈처럼 사라질까봐 그러는거야?”
“아니…. 오늘은 연 같기에.”
“연? 하여간…. 알 수 없는 말이네. 마저 이야기나 계속 할까?”
현무의 말에 청룡은 그저 끄덕일 뿐이었다. 변화에 기민한 청룡에게 있어서도 그녀의 변화는 생경한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그는 아니었지만 그 변화의 이유와 변화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그녀는 언제든지 사라져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눈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연은 그가 보기에 가장 적절한 변화였다. 실에 연결되어 하늘에 떠다니는 연처럼, 지금의 그녀는 그 존재를 누군가 붙잡고 있었기에.
한담과 현무의 대화는 종종 이어졌다. 물론 한담이 현무에게 일방적으로 다가가 말을 거는 쪽에 가까운 모양새였지만 현무는 딱히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와 대화할 때면 항상 평소와는 다른 조금 은은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으며 표정에 변화가 없는 것은 변함없었지만 기분이 묘하게 좋은 것은 확실했다.
“연왕님, 연왕님의 즐거움은 있나요?”
“글쎄. 죽어가는 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난 다음, 그 평온한 표정을 보는게 나쁘지 않더라. 뭣하면 내가 너도 마지막에 지켜봐줄까?”
“연왕님께서 봐주신다면 최고의 영광이죠.”
거창한 이야기들은 아니였다. 그저 시시콜콜한 잡담일 뿐. 그럼에도 현무에게 있어 한담의 말이 지겹지 않았고 한담 또한 현무가 종종 자신의 말에 응해주며 보이는 모습이 좋았다. 만약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 두 사람의 대화는 분명히 언제까지고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한담이 죽었다라.”
참으로 담백한 한 마디였다. 무언가 다른 반응은 없을까, 라며 자기들끼리 수근대던 시종들도 놀랍도록 무덤덤한 그녀의 반응에 아연실색하면서도 그녀 답다고 생각했다. “결국 한담도 페하에게 있어선 하등 상관없는 인간이었네.” 나지막히 중얼거린 시종장의 말에 시종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잠시 생각에 빠진 듯 하다가도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현무에게 말을 걸 생각은 하지 않았다.
“……. 당연하지. 결국 그도 인간이니까.”
시종들을 물리고 나서야 현무는 짧게 말을 내벹었다. 분명 아무렇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속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평소라면 금새 사라질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사라질 생각을 않았다.
썩 좋지 않은 기분에 현무는 고개를 들었다. 아마 이 의문은 영영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가 죽은 이유도, 자신의 마음이 심란한 이유도, 사라지지 않는 수많은 의문들도.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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