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기타

[니키세냐] 안드로이드는 죽음의 꿈을 꾸지 않는다

2021. 01. 03

기억의 조각 by 匿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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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건으로 부상한 사상 검증 문제 이전에 작성된 글입니다.

현재 메이플스토리 장르 창작 및 소비 없습니다.

  • 남매 근친, 사망 소재.

  • <호텔 아르크스> 업데이트 이전에 작성된 글.

  • 제목은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에서 따왔습니다.



 세냐 앵글러는 꿈을 꿔본 적이 없다. 당연한 명제였다. 꿈은 결국 뇌의 전기 신호로 인해 야기되는 어떠한 착각 같은 것이었기에 철저하게 설계된 프로그램을 따르는 세냐에게 꿈이란 단순한 개념에 불과했다. 세냐 앵글러, 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안드로이드가 작동하기 시작한 첫날과 어제는 세냐에게 있어선 아무런 차이가 없다. 세냐의 기억 장치는 아주 뛰어났다. 언뜻 보기엔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게 만들어진 기계. 세냐는 사람들이 자신을 인간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즐겼고 또 인간이라면 즉사했을 법한 치명상을 입고 수리받는 일을 좋아했다. 인간의 피부를 닮은, 아니 닮도록 만들어진 기계 표면 아래 중요한 부품들이 조각나고 바스러지고 전선이 끊어져 제 기능을 못하게 되어도 세냐는 아무렇지 않았다. 되돌릴 수 있었으니까. 설령 수리가 어렵다는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다. 세냐 앵글러는 그렇게 설계된 안드로이드였다. 오히려 티보이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역겹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세냐 앵글러의 폐기가 결정되었다는 소문이 컴퍼니 내에서 돌았을 때 불쾌하다는 티를 팍팍 낸 것도 티보이였다. 아버지의 명령이라는 말이 있었음에도 세냐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머, 인간도 태어나고 죽잖아. 우리도 마찬가지야. 높은 목소리. 높게 프로그래밍된 목소리로 세냐는 그렇게 말했다. 티보이는 달랐기에 괴로워했다. 세냐의 수리 담당. 세냐 앵글러의 동생. 처음부터 끝까지 병기로 철저하게 설계된 ‘세냐 앵글러’라는 안드로이드와 다르게, 티보이는 인간을 좀 더 닮았다. 세냐 앵글러의 피부처럼 보이는 것을 드러내면 차갑고 단단한 기계 조직이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티보이는 아니라는 측면에서 그랬다. 티보이의 피부를 가르면 전선도, 부품도 아니라 혈관이 보였다. 세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흠이 너무 많잖아. 너도 업그레이드 좀 해. 그러면 티보이는 그건 스릴이 없다고 답하곤 했다. 세냐는 그럴 때면 어떻게 했더라. 그러다가 동생이 누나보다 먼저 갈지도 몰라, 그랬던가. 하지만 먼저 가는 것은 세냐였다.

 앵글러라는 성을 나눠 가진 남매는 서로를 끔찍하게 여겼다. 끔찍하게 경멸했고 또 지독하게 아꼈다. 치우쳐진 감정을 품고 두 사람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대했다. 티보이가 세냐에게, 세냐가 티보이에게 품은 감정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평균을 냈다면 두 사람의 그것은 제법 균형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감정은 오롯이 혼자 떠안아야 하는 개념이어서 두 사람, 두 안드로이드, 두 앵글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티보이가 세냐의 수리를 자처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제 의지로 누나의 수리를 맡았다면 세냐는 손 쓸 도리도 없이 진작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다만 앵글러 컴퍼니를 전부 뒤지고 그란디스를 샅샅이 훑어도 세냐를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었다. 아버지조차 손을 댈 수 없었다. 티보이 이전에 딱 한 번, 누군가가 세냐를 고친 적이 있었으나 그 세냐는 가장 빠르게 망가지고 말았다. 부품도 성한 게 없어 전부 새로 주문해야만 했다. 티보이만이 세냐를 완벽하고 온전하게 돌려놓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티보이만이 세냐 앵글러의 상태를 판명할 수 있는 존재였다.

 세냐를 폐기하렴. 네 누나도 이젠 한계인 모양이야. 결국, 정말로 아버지는 두 사람을 모아놓고 그렇게 말했다. 세냐는 그런 말을 듣고도 웃고 있었다. 어머. 제 출력이 좀 부족해지긴 했죠. 시한부 안드로이드는 딱 그 한 마디를 내뱉고 입을 다물었다. 티보이가 보기에 세냐 앵글러는 누구보다도 멀쩡했다. 그것은, 여전히 이 앵글러 컴퍼니에 누나보다 아버지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인재는 없다는 뜻이었다. 세냐 앵글러의 표현을 빌려 ‘이상한 일’을 하는 자신과 달리 누나는 철저하게 명령을 따랐다. 결과만 보면 그러했다. 과정 중에 종종 예상치 못한 일을 벌이기는 해도 컴퍼니 내에서 문제가 되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티보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그 전에 내가 누나의 상태를 점검하게 해 줘. 쓸모있는 부품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네 마음대로 하렴. 따뜻한 답이 날카롭게 돌아왔다.

 세냐는 순순히 정비사의 손길을 따랐다. 수많은 전선을 붙이고, 몸의 어딘가에 달린 잘 알지도 못하는 부품을 확인하는 과정은 세냐에게 있어서 지루하기만 했으나 이것도 끝이라고 생각하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겨우 하나 있는 동생만 표정을 잔뜩 구기고 있을 뿐이었다. 동생은 늘 얼굴이 구겨진 종이 같았지만 오늘은 더 그랬다. 선물로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한두 개쯤 쥐여 줘야 할까.

 “우리 동생,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
 “못생긴 얼굴이 더 못생겨졌어. 한계가 없네.”
 “이해가 안 돼.”
 “어머, 기계면서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다니. 점검은 우리 동생이 받아야겠는걸.”

 세냐는 몸을 일으키며 머리 모양을 가다듬었다. 아리안트의 왕비가 사족을 못 쓴다는 비단을 닮은 부드러운 머리칼이 결을 따라 흩어졌다. 인간의 모발을 닮았지만 본질적으로 달랐다. 세냐는 제가 인간이 아님을, 또 인간이 될 수 없음을 알았고 거기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눈앞의 동생은 아닌 모양이었다.

 티보이는 점검 결과표를 바라보았다. 그가 뒤집어쓰고 있는 모니터 액정에 불쾌하다는 표정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는 다시, 몇 번이고 서류 뭉치를 넘겼다. 그의 누나는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어렵고 복잡한 수치들로 가득 찬 종이였다. 아무리 보아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티보이가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전제하에 종이가 가리키는 바는 명백했다. 그리고 티보이는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누나 부품은, 최상이야. 고장 난 곳 따위 없어. 프로그램에 바이러스가 있지도 않아. 모든 게 제대로라고.”
 “어머. 좋은 일이네.”
 “아버지도 틀림없이 누나 상태를 알아. 아버지니까.”
 “그러시겠지.”
 “근데 폐기라니…. 말이 안 되잖아.”
 “그럼 아버지 결정에 거스를 거니?”

 세냐는 웃었다. 심해의 등불을 박아넣은 두 눈이 빛을 발했다. 세냐는 티보이를 너무 잘 알았다. 동생이었으니까. 인간은 유전 정보를 공유한 집단을 가족이라고 불렀다. 우리에게 유전 정보라는 게 있을까. 우리를 가족으로 묶어주는 것은 아버지와, 비슷한 식별 번호뿐이었다. 그럼에도 세냐 앵글러는 티보이의 누나였으며 티보이는 세냐 앵글러의 동생이었다. 안드로이드에게 가족의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안타깝게도 폐기될 것은 세냐였고 티보이가 아니었기에 세냐는 그런 감정을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인간을 닮아 자유 의지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기계는, 최후의 순간에는 설계자를 거스르지 못하도록 만들어진다. 티보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왕이면 내 전원은 동생이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시끄러워.”
 “지금 폐기해줄 거니?”
 “…시끄럽다고.”

 세냐가 다시 한번 웃었다. 후후, 하는 웃음소리가 티보이를 옭아맸다. 화난 표정이 액정 위에 떠올랐지만 세냐에겐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기계 인간은, 진짜 인간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이상적인 모습으로 설계되기도 한다. 세냐 앵글러가 그 표본이었다. 바다를 녹여 만든 머리카락과 형형하게 빛나는 두 눈은 심해어를 닮아 몹시 아름다웠다. 나긋하면서도 듣는 이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게 하는 목소리는 어딘가 경외롭기까지 했다.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한 지역을 전부 폭파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티보이가 망설이는 건 그저 외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단지 그것이 세냐 앵글러였기 때문에. 그리고 세냐 앵글러만이 그의 유일한 가족이었으므로.

 “마지막인데 얼굴 또 안 보여줄 거야?”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세냐가 속삭였다. 안드로이드들은 기억력이 좋아 티보이도, 세냐가 언제를 재현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때와의 차이라고 하면 지금은 한낱 영상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눈앞에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세냐가 기계로 이뤄진 팔을 들어 그의 얼굴에, 그의 모니터에, 그의 가면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이내 그것을 벗겨내곤 망설임 없이 바닥으로 내던졌다. 둔탁한 소리가 공간을 메웠다. 얼굴과 얼굴이 마주친다. 베일이나 어떠한 가림막도 없이, 날것의 표정이 서로를 향해 있다. 서로만을 바라본다. 세냐는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드문, 백지와도 같은 무표정이었다. 마치 처음 기동 되었던 날처럼. 다만 천천히 손을 남동생의 얼굴에 가져다 대는 것이었다. 그 손은 인간을 모방했지만 그 체온은 절대 인간과 같지 않았다. 같을 수 없었다.

 “동생, 지금 진짜 못생긴 거 알아?”
 “여기서 그 말을 해야겠어?”
 “어머, 사실이잖아.”

 세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지웠던 표정을 다시 그려 넣었다. 항상 지어 보이던 웃음이 세냐의 얼굴 위에 얹혔다. 티보이는 조리되지 않은 얼굴로 가장 인간다운 표정을 지었다. 인간은 모두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반면 기계는 아무런 표정 없이, 가장 기계에 가까운 상태로 눈을 뜨는 법이었다. 그리고 티보이는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도 인간과 닮아 있었다.

 “당장 전원을 내려.”

 세냐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도 상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명령에 가까운 그것이, 세냐 앵글러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었고 유언이었다. 티보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으니. 단지 아버지의 명령이라서가 아니었다. 세냐 앵글러는 티보이의 손에서 부서져야만 했다. 그게 바로 남매의 순리였다. 이 순간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티보이는 직접 누나를 망가트렸을 것이다. 때가 조금 빠르게 찾아왔을 뿐이었다.

 티보이는, 떨리는 손으로, 아니 떨고 싶어도 떨리지 않는 손을 뻗었다. 기계 장치가 손에 닿았다. 손의 온도와 같은 그것은 미지근했다. 그는 곧, 전원을 내렸다. 공간을 메운 모든 모니터가 동의를 구해온다. 폐기를 위한 사전 절차입니다. 안드로이드 <세냐 앵글러>의 초기화를 진행하시겠습니까. 동의 이후 취소나 복구는 불가능합니다…. (Y/N) 그는 Y를 눌렀다. 그 행위에서는 일말의 망설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망설이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세냐의 눈이 감기고 곧 공간의 모든 불빛이 꺼졌다가 빠르게 전원이 들어왔다. 정비실 밖에서 갑작스런 정전에 당황하는 직원들이 웅성거렸다. 소음은 곧 사라졌다. 이 공간의 모든 건 평소와 같았다. 단 한 가지만 빼고. 앵글러 컴퍼니의 간부 하나가 사라졌다. 본체는 아직 멀쩡했다. 하지만 그것을 세냐 앵글러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가. 기억 장치도 사고 회로도 날아간, 단지 세냐 앵글러의 일련번호만을 가진 그것은 앵글러 컴퍼니의 일원이자 티보이의 누나인 세냐 앵글러가 맞는가. 하지만 다시 전원을 넣으면 그것은 세냐의 얼굴로, 세냐의 목소리로 움직이리라.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었으므로. 곧 이 딱딱하고 차가운 기계 부품들은 쓰레기장으로 보내질 것이다. 티보이는 아무렇지 않은 동작으로, 바닥에 떨어진 그의 모니터를 주워들고 방을 나섰다. 정비실 문에는 곧 ‘멀쩡한 부품 없음. 재활용 없이 전부 폐기할 것.’이라는 메모가 붙었다. 소년의 필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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