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Days

BETTER DAYS 10

료켄유사♀

쓈's Universe by 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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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요약 - 오늘부터 첫날

하루

삐삐삐삐삐-

유사쿠의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아, 학교. 눈을 못 뜬채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더듬더듬 손을 뻗어 알람을 겨우 껐다.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 왜 이런 시간에 알람이 울리지? 편안한 햇빛 속에서 겨우 꿈뻑꿈뻑 눈을 뜨며 일어난 유사쿠는 문득 침대가 평소와 다르게 너무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도, 베개도 푹신하고 부드럽다. 방 안의 공기가 다르다.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이 낯선 곳에서 자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놀라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서둘러 머리를 굴렸다. 결혼. 그래. 나는 료켄과 결혼했고 어제부터 그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지. 학교까지의 거리가 멀어서 평소보다 일찍 알람을 설정해 둔 거고. 잠이 확 깬 유사쿠는 옆자리를 보았다. 료켄은 없었다. 어젯밤 그의 따뜻함을 충분히 느낀 덕인지 본래 성격 덕분인지 첫날 아침부터 곁에 없는 그에게 서운하거나 하진 않고 그저 자신의 알람이 료켄의 잠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했다. 료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찾으러 가고 싶지만 학교가 먼저다. 유사쿠는 침대에서 나와 학교에 갈 채비를 했다.

유사쿠가 교복을 다 입은 순간 료켄이 방문을 두드렸다.

"유사쿠."

"어."

"……"

"…… 아. 들어와도 돼."

본인의 방인데 굳이 노크까지. 유사쿠는 조금 의아했지만 이제 여긴 혼자만의 방이 아닌 두 사람의 방이고, 자기가 방금 옷을 갈아입었다는 걸 생각해내 료켄이 배려하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옷 갈아입는데 부끄러워 할까 봐. 사실 유사쿠는 상관 없지만. 료켄이 방으로 들어와 유사쿠의 잠옷을 정리해주며 물었다.

"학교로 출발하기 전에 아침을 먹을 시간은 있어?"

"없진 않지만, 난 아침 안 먹어."

"그럴 줄 알았어."

료켄이 어깨를 으쓱했다. 문 너머에서 음식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빵과 커피의 냄새 같았다. 아무래도 료켄은 유사쿠가 아침을 먹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혹시 몰라 준비를 해 준 모양이다. 신혼 첫 날 아침부터 준비해준 식사를 거절하는 것은 유사쿠 스스로도 조금 아닌 것 같았다. 시간이 있다고 말까지 했는데. 료켄에게서 아쉬움은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역시 미안했다.

"그래도 조금 먹는건 좋을 거 같아."

"후후. 날 위해 생각을 바꾼 건가? 고마워라."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어루만지는 료켄의 손이 따뜻하다. 유사쿠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옅게 물들었다. 그래도 당당하게 '맞아.' 대답하며 손길을 느꼈다. 많이 못 먹는다고 말하자 어차피 뇌가 활동을 시작할 만큼만 준비했다며 료켄이 유사쿠의 손을 잡고 다이닝 룸으로 내려갔다. 하얀 그릇에 올려진 단면이 노릇하게 구워진 빵과 약간의 샐러드, 오렌지 주스가 유사쿠를 반겼다. 소박하지만 따끈따끈한 정성이 담긴 아침식사. 유사쿠는 그런 것을 참으로 오랜만에 받았다. 가슴 저 안쪽에서 찌잉하고 무언가 울렸다. 또 빵이라 미안하다고 료켄이 말했다. 유사쿠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료켄을 바라보며 '고마워. 진심으로 기뻐.'라고 말했다. 료켄은 유사쿠의 미소에 기뻐했지만 찰나 쓴웃음이 스쳤다. 유사쿠가 왜 이토록 기뻐하는지 료켄도 깨달았으니까. 료켄이 먼저 앉힌 유사쿠의 눈은 식사에 고정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파삭, 버터를 바른 빵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둘은 대화 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준비된 식사의 양이 적어 금방 그릇을 비웠다. 마지막 오렌지 주스 한 모금으로 아침을 끝낸 유사쿠가 잘 먹었습니다, 인사하며 다시 고맙고 기쁘다고 말했다. 료켄도 다른 반응 없이 잘 먹어줘서 나야말로 기쁘다고 했다. 이런 것을 더 자주 정성 들여 해주어야겠다고 료켄은 다짐했다. 서로 마주보고 미소 지었다. 신혼의 행복이 퐁퐁 솟았다. 료켄이 그릇을 정리하는 동안 유사쿠는 먼저 이를 닦으러 갔다.

유사쿠가 신발을 신는 동안 료켄은 그 앞에서 기다렸다. 탁탁, 신발을 다 신자 먼저 합의했던 대로 나란히 반지를 빼 상자에 넣었다. 학교에 결혼반지를 끼고 가면 주변에서 괜히 관심을 가질 것을 우려해 유사쿠는 집을 나설 때 반지를 빼기로 했고, 한명만 빼기는 애매하니 료켄도 반지를 끼지 않기로 했다. 역시 가느다랗고 심플한 약혼반지도 살 것 그랬나. 료켄은 아주아주 조금 후회가 들었다. 반지를 끼기 시작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건만 갑자기 뺀 것이 어색한지 약지를 문지르는 유사쿠를 보며 아주 조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사쿠가 듀얼 디스크를 차고 가방을 들었다.

"그럼."

"유사쿠."

"왜?"

유사쿠가 현관문을 열자 료켄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유사쿠를 불러 세웠지만 어째 우물쭈물 그답지 않게 말을 하지 못했다. 유사쿠가 갸웃거리며 대답을 기다려도 대답없이 고개를 돌렸다. 뭐지? 인사가 너무 짧았나? 사랑하는 사이같지 않은 인사이긴 했다고 유사쿠는 생각했다. 너무 짧은 인사에 대해 핀잔을 주려던 것 같은데 핀잔은 연인이나 부부사이에는 좋지 않으니 그가 망설이는 거라 결론을 내렸다.

"료켄, 다녀올게."

"……그래, 잘 다녀와."

어색해도 나름 연인같이 인사를 해보았다. 료켄도 미소로 받아주었다. 그렇지만 굳어졌던 표정이 확 풀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 어색해서 그런가봐. 유사쿠가 집을 나섰다. 아침 바람이 차갑다. 입김이 낙엽과 함께 유사쿠를 스친다. 긴 내리막길을 반쯤 내려가자 아이가 듀얼디스크에 들어왔다.

"좋은 아침, 유사쿠!"

"아아."

"그런데 말이죠, 새댁. 신혼생활은 어떠신가요~?"

"좋아."

"정확히 어떻게 좋은데에~?"

"시끄러워."

"에잉…… 유사쿠쨩 부끄러워서 그렇지? 궁금해 궁금해! 아이쨩은 궁금한 것이 많아!"

아이가 유사쿠를 만나자마자 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결혼이라는 것을 파트너가 하게 되었으니 무척이나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아침부터 너무 시끄럽다. 궁금해하지 말라고 말해도 듣지 않자 결국 '닥쳐.'가 나왔다. 아이는 '닥쳐.'에도 지지 않고 재잘재잘 떠들었다. 유사쿠는 무시하다가 대충 대답했다.

"신혼생활에 대해 묻지마. 딱히 대답할 것도 없으니까."

"그래도 단언하건데 오늘 네가 제일 많이 듣게 될 질문일걸? 쿠사나기도, 타케루도 아오이쨩도 물을 테니까."

"그들은 너처럼 대답할 것이 없다고 해도 계속해서 묻진 않겠지."

"하여튼 두근거림이란게 없어. 그래그래 첫날이니까…… 그럼 마지막 질문! 오늘 '모닝 키스'나 '잘 다녀와 키스'는 했어? 어땠어?"

"그게 뭔데?"

"에, 유사쿠쨩 그것도 몰라? 단어 조합 그대로의 뜻이지 뭐. 인간들은 그런거 자주 하는 것 같던데?"

모닝 키스. 잘 다녀와 키스. 아이가 '유사쿠쨩은 AI보다도 잘 모른대요~' 장난치는 소리는 완전히 차단하고 처음 듣는 문화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정말 사람들이 자주 한다고? 그러고 보니 미디어에서 그런 비슷한 것들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맞아, 본 적이 있었다. 연인들이 그런 것을 했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뻔하네. 당신들 신혼인데 분홍빛 무~~드가 부족해용!"

"엇, ……아."

"잉 왜 멈췄어? 어, 어, 어 유사쿠!! 학교는?!"

유사쿠가 갑자기 발길을 돌려 다시 집으로 뛰어갔다.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 집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신발이 저 멀리 날아가던지 말던지 '료켄!' 큰 소리로 부르며 넓은 집 안을 찾아다녔다. 유사쿠가 크게 부르는 소리에 료켄이 리빙 룸에서 달려나왔다. 무슨 일이 있길래 이렇게 급하게 부르지? 학교는? 유사쿠와 맞닥뜨리자 유사쿠의 어깨를 잡고 진정시켰다.

"무슨 일이냐, 뭐 잊은 거라도?"

"료켄, 아까 나에게 '잘 다녀와 키스'를 하려고 했지? 하자."

"……뭐?"

유사쿠는 바로 눈을 감고 턱을 살짝 올렸다. 그 탓에 료켄이 무척 당황해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 키스를 기다리는 유사쿠를 앞에 두고 료켄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정말 '잘 다녀와 키스'를 하려고 했었지만 아주 부끄러워서 망설였고 끝내 하지 못했었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연인, 부부다운 행동들을 잘만 했는데 '잘 다녀와 키스'를 하려니 훅 끼친 신혼 느낌이 료켄을 지나치게 두근거리게 했던 것이다. 첫날 배웅부터 용기를 내지 못한 자신이 유사쿠에게 부끄러웠다. 그런데 지금 유사쿠가 '아까 못했지? 지금 해.'라며 기다리고 있다. 아까의 망설임을 들킨 것도 당황스럽고 유사쿠의 다이렉트 어택도 당황스럽다. 게다가 기다리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주먹을 꾸욱 쥔 손이 떨렸다. 유사쿠는 꿋꿋하게 료켄의 입술을 기다린다. 사랑하는 유사쿠를 계속 기다리게 할 순 없지. 뜨거운 손으로 유사쿠의 볼을 감싸고 입술을 맞추었다. 쪽. 커피의 맛이 나는 가벼운 키스. 유사쿠가 눈을 떴다. 작은 미소에서 기분 좋은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료켄도 마찬가지였다.

"잘 다녀와."

"응. 다녀올게."

아이와 로봇삐의 배웅과는 다른 포근하니 행복한 배웅. 밖의 찬 바람이 무섭지 않은 따뜻함이 차올랐다. 집을 나선 유사쿠의 발걸음이 가볍다. 아이가 '아이구 달다! 달어~!'하며 호들갑을 떨기 전 까지는.

"흐음……"

해가 반쯤 질 때가 되어서야 료켄은 로그아웃했다. 자이젠 아키라와의 내일 약속 시간을 다시 체크하고 남아있는 '처분할 것'을 생각했다. 아마 일주일 내로는 유사쿠를 뺀 다른 것들은 정리가 끝날 것이다. 창 밖에 펼쳐진 넓고 고요한 주홍빛 바다를 보며 곧 다가올 미래를 생각했다. 유사쿠와 결정을 내릴 미래가…… 하늘 저편에 어둠이 번지기 시작한다. 곧 유사쿠가 돌아오기로 약속한 시간이니 료켄은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고 부엌으로 갔다. 낮에 온 스펙터가 준비해준 식재료를 살펴보며 저녁은 무엇이 좋을지, 뭘 준비해야 유사쿠가 좋아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아마 유사쿠는 무엇을 차리든 좋아할 것이다, 그건 료켄도 알고 있다. 문제는 유사쿠의 호불호. 추리를 하려고 해도 쿠사나기 쇼이치가 제공할 그의 핫도그-맛있다. 사실 료켄은 사정이 없었으면 단골이 되고 싶었다.-말고는 단서가 없다.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사이라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없으니 이런 고민이 있다. 한숨과 함께 팔짱이 풀어지지 않는다.

이럴 때는 역시 요리책을 보며 정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료켄은 찬장 한쪽에 꽂혀진 책들 중 무작위로 뽑아 아무 페이지를 펴 보았다. 알리오 올리오. 심플한 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재료들은…… 있다. 주로 요리를 하던 스펙터가 다양한 시도를 해왔기에 부엌에 재료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료켄도 먹은 지 꽤 된 음식이니 알리오 올리오를 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늘 한 쪽, 올리브 오일, 페페론치노, 면, 치즈 등 재료를 꺼내 늘어놓자 현관쪽에서 '료켄.'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잰 걸음으로 나가 유사쿠를 맞이했다.

"나 왔어, 료켄."

"어서와."

아침과 다르게 망설임 없이 '어서와 키스'를 했다. 쪽, 가벼운 소리. 유사쿠의 가방을 들어주려 손을 내밀자 유사쿠가 가방 말고 손을 잡았다. 이것도 좋다. 손을 잡고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유사쿠가 좀 피곤해 보였다. 기가 빠진 듯 한 표정이다.

"피곤해 보이는군. 쿠사나기의 가게에 손님이 많았나?"

"아니, 평소랑 같았어. 피곤한 이유는 그게 아냐."

"뭔데."

"……다들 자꾸 물어봐서……"

한 템포 늦은 작은 대답에 료켄은 풋, 웃어버렸다. 누가 무엇을 물어댔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오늘 료켄도 '당했기'때문이었다. 일 때문에 찾아온 동료들이 '어떠신가요?' 계속 물어보았다. 심지어 자이젠 아키라조차 '후지키군에게 잘 해주고 있나?' 참견을 했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대체 몇 번을 한 것인지. 유사쿠의 재킷을 받아 옷걸이에 걸으며 '나한테도 다들 물어보더군.' 말했다. 료켄의 말에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를 풀려던 유사쿠의 손이 멈추었다.

"너는 뭐라 대답했어?"

"아직 하루도 안 되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지."

"나하고 똑같은 대답이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건 행복하다고도 덧붙였고."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해서 행복하다고 했어."

다시 행복한 수줍음이 유사쿠의 얼굴을 물들였다. 작게 퍼지는 분홍빛이 료켄에게도 옮겨가 료켄을 물들였다. 눈이 마주쳤다. 무의식적으로 얼굴이 가까워진다. 팔이 마음대로 유사쿠를 끌어안는다. 콩닥콩닥. 이대로…… 이대로…… 눈을 감고 입술을 맞추었다. 부드럽고 말캉한 입술을 맞대고 살짝살짝 오물거리며 숨결을 나누었다. 꼭 껴안은 서로의 체온의 따뜻함이 깊숙이 느껴진다. 사랑. 사랑이 느껴진다. 연인. 신혼. 실감이 난다. 행복함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반지를 다시 손에 끼우고 시간에 맞춰 저녁식사를 만들기 위해 료켄이 부엌으로 가기 전, 유사쿠에게 혹시 싫어하는 거나 못 먹는 게 있냐고 물어보았다. 보통은 금방 대답할 수 있지만 유사쿠에겐 어려운 질문이었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료켄은 다시 입안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유사쿠는 '일단'이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매운 거."

유사쿠가 차가운 물에 씻은 연한 샐러드 야채들을 톡톡 뜯으며 료켄의 작업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 오일에 빻은 마늘과 페페론치노를 넣어 향을 내는 간단한 작업인데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니 료켄의 손이 조금 긴장되었다. 정말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괜한 미안함에 기웃거리는 유사쿠에게 야채손질을 부탁한 것이 잘한 일인가 생각했다. 아무래도 유사쿠는 처음 보는 음식이라 요리책을 찾아봤어도 궁금한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오히려 아내에게 멋진 모습을 보일 기회라고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마늘과 페페론치노를 빼낸 오일에 면수를 넣고 면을 볶는 손은 이제 버벅거리지 않는다. 유사쿠의 반짝 빛나는 눈에 능숙한 모습이 담겼다. 치이이 볶는 소리, 처음 맡는 향긋하고 맛난 냄새, 팬 가장자리에 살짝살짝 튀는 불꽃과 진지한 료켄의 모습. 료켄의 요리하는 모습. 처음보는 모습.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신기하다. 료켄이 렌지를 끄자 별빛이 톡 터진 유사쿠가 미리 료켄이 내놓은 그릇을 가져왔다. 그릇을 받아 옆에 둔 료켄은 면 한 가닥을 집어 호호 불더니 유사쿠에게 내밀었다.

"아."

"…? 아, 아……"

먹기 편하게 집은 면발이 유사쿠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오물오물. 신중하게 낯선 맛의 정보를 인풋한다.

"어때? 맵거나 향이 세진 않아?"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

"맛있어, 정말로. 익숙한 맛이 아니라 그래."

"그럼… 됐어."

유사쿠의 성격 탓에 먼저 나온 말이 '나쁘지 않아'라 그렇지, 꽤 후한 점수를 주었다는 걸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료켄 안에 남아있던 긴장이 사라졌다. 입에 맞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릇에 알리오 올리오를 예쁘게 담고 마지막으로 취향에 따라 파르미자노 레지아노를 조금 갈아 얹는 것으로 끝.

멋진 식사가 끝나고 잘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비었다. 유사쿠는 빈 시간 동안 낯선 포만감을 어떻게 누려야 할지 잘 몰랐다. 설거지? 식기세척기가 잘 한다. 덱 조정? 이제 듀얼 할 일이 없다. 작업이나 정보를 찾을 일도 없다. 그래도 결혼했으니까, 연인이니까 료켄과 무언가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료켄은 이미 저녁식사 중에 '식사가 끝나고 작업 할 것이 있다.'며 유사쿠는 혼자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해두었다. 알았다고 별 생각없이 대답했지만 이렇게까지 뭘 해야 하나 헤맬 줄은 몰랐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맞은 익숙하지 않은 평범함. 남들에게는 일상인 것이 유사쿠에겐…… 무척 낯설다. 서글픈 일이다.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다. 우선 소화를 시킬 겸 넓은 집을 다시 돌아다녔다. 서재에서 읽어볼 것도 골라보고 체력 단련실에서 가볍게 뛰어보기도 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꽤 큰 화면의 텔레비전이 유사쿠의 눈에 들어왔다. 뉴스라도 볼까? 텔레비전 옆에 놓여진 리모컨을 들었다. 전원을 켜자마자 덴시티 뉴스가 나왔다. 소파에 가볍게 앉아 큰 사건사고 없는 뉴스를 시청했다. 덴시티의 평화. 방송국도 평화라고 생각했는지 진행자가 논객과 함께 덴시티의 평화를 칭송했다. 정상화 되어가는 솔 테크놀로지와 신설 링크 브레인즈의 평화도 화제에 올랐다. Playmaker, 그 계정명이 귀에 들리자 유사쿠는 텔레비전을 껐다. 순식간에 유사쿠에게 고요가 찾아왔다. 혼자다. 시끄럽게 소음을 낼 아이도, 로봇삐도 없다. 정적은 좋아하지만 낯설게 느껴졌다. 낯설음이 유사쿠를 가득 채웠다. 그것을 해소하고 싶다.

료켄이 보고 싶다. 해소할 방법을 료켄이 알려주었음 좋겠다.

유사쿠는 이 느낌이 어떤 종류의 '외로움'이자 '서운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에 혼자 있는 것이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료켄과 함께 있고 싶다.

학교에서 쓰는 태블릿을 들고 료켄의 작업실로 찾아갔다.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지 못 했다. 유사쿠도 작업 중에 집중이 끊기는 기분을 잘 알기에 아주 잠깐이라도 료켄의 집중을 방해하기 망설여졌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료켄을 불편하게 할 것 같았다. 화면을 보여주기 싫거나(볼 생각도 없지만), 아주 혼자인 것이 작업이 잘 되거나, '언제 끝나?' 질문을 듣기 싫다던가. 괜히 신혼 첫날부터 불편할 일을 만들 것 없지. 유사쿠는 발길을 돌려 문 앞을 떠나 리빙 룸에서 혼자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유사쿠의 발소리가 사라지자 료켄이 작업을 하던 손을 멈추었다. 들어와도 좋은데 유사쿠가 배려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찾아오는 발소리에서 외로움을 느꼈던 료켄은 유사쿠에게 첫날부터 정말 미안했다. 찾아 올 정도로 외로워 할 줄은. 당장 쫓아가 미안하다고 같이 있자고 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 하는 작업이 긴급한 일이라…… 드디어 처분 할 기회가 잡혔기 때문에 놓친다면 언제 가능하게 될 지 모른다. 유사쿠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어떻게든 끝내려 상대와 이야기를 서둘러 진전시켰다.

이미 씻고 머리까지 다 마른 유사쿠는 논문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자정이 넘었다. 피곤하지만 졸리지는 않다. 일찍 자는 날 보다 늦게 자는 날이 많아 새삼스런 시간은 아니다. 다만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시간뿐이었다. 조금 외롭다. 아주 조금. 괜찮아, 별 거 아니야. 유사쿠는 그렇게 '아주아주 작은 외로움'을 신경쓰지 않으려 했다. 늦게 자려는 것은 논문이 흥미로운데다 어차피 내일은 토요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다. 눈을 돌리곤 어려운 논문을 천천히 분석해가며-료켄이 예전에 공부 할 때 힘쓴 듯한 흔적들이 군데군데 쓰여있다. 덕분에 이해하기 한결 편하다.-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아무리 공부에 관심이 없는 유사쿠도 관심분야에는 마음이 가는 모양인지 때론 다른 서적들을 꺼내 어려운 부분을 찾아보기도 했다. 지식의 습득에 열중하다 다시 시계를 보았다. 새벽 두 시가 다 되어간다. 유사쿠의 눈빛에 힘이 없다. 멍하니 문을 바라보자 발소리가 점점 들린다. 눈에 빛을 반짝이며 문에 다가서는 것과 거의 동시에 료켄이 문을 열었다.

"유사쿠."

"!"

료켄이 유사쿠를 껴안았다. 유사쿠도 껴안으려 손을 뻗었지만 료켄이 더 빨랐고 깜짝 놀란 유사쿠의 손이 허공에 멈추었다. 그 손 그대로 료켄의 허리를 감쌌다.

"료켄……"

"오래 기다렸나?"

"아아."

유사쿠는 '아니, 딱히 기다린건 아냐.'라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작은 본심이 톡 튀어나와버렸다. 앗, 놀란 표정을 지은 건 료켄은 모를 것이다. 껴안은 채로 유사쿠의 등을 살살 도닥이던 료켄이 대답을 듣고 힘없이 훗, 웃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일이 계속 있어서…… 금방 씻을게, 이제 자자."

료켄이 씻고 나올 때 까지 말똥말똥 할 줄 알았는데 스스로도 의외로 유사쿠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침대가 푹신하고 이불이 따뜻한 덕도 있지만 료켄이 곁에 있자 갑자기 잠이 오는 것이다. 후아암~ 커다랗게 하품도 했다. 그래도 료켄이 완전히 씻고 나와 침대에 앉기까지 잠들지 않는데 성공했다. 료켄의 눈에 그렇게 견디고 있던 유사쿠가 퍽 귀엽다. 외로워 한 것도 기다리는 것도 참 귀엽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스러움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유사쿠의 어깨를 안고 이마에 뽀뽀했다. 유사쿠는 입술에 뽀뽀했다. 어젯밤 그랬듯이 유사쿠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잠자리에 들었다. 불도 꺼졌다.

"흐아암… 잘자, 료켄."

"너도 잘자."

유사쿠는 금세 잠들었다. 아침에도 한참 들여다 보았던 유사쿠의 자는 모습. 료켄은 품에 완전히 기대 안심하고 잠든 유사쿠 몰래 머리에 입술을 댔다. 유사쿠의 향이 난다. 이제 똑같은 샴푸를 사용하지만 자신과는 향이 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사쿠를 더 가까이 안고 료켄도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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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댓글 1


  • 전설의 미어캣

    잘 다녀와 키스 해주는 장면이 이 글에서 젤 좋아하는 부분이에요ㅜㅜ 불러세워놓곤 결국 말도 못 꺼내고 보내는 료켄이나 뒤늦게 알아차려서 집으로 되돌아오는 유사쿠까지.. 모든 행동들이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어요 혼자 살던 유사쿠가 이젠 배웅해주는 배우자도 생기고 둘이 아직 어색해서 삐그덕 거리지만(ㅋㅋ) 꽁냥꽁냥대는 모습이 정말 신혼같아서 보는내내 행복했어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_u.u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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