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우는 날
나는 나 자신의 삶부터 규정할 필요가 있다
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적인 장소에 밝히는 데 회의적이었다. 자신을 드러냄은 약점이며, 약점을 보이는 행위는 자해나 다름 없다고 여겼다. 끊임없이 가상의 이야기를 창작했다. 나의 이야기는 궁금할 자 아무도 없으며 스스로도 본인의 삶을 돌아보는 행위-자기객관화-는 감히 시도할 수 없었다. 자신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견디며 훑기엔 나는 너무 못난 사람이었다. 살아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 기실 죽은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의미 없는 나날을 보냈다.
심경의 변화가 있어 백지같은 장소에 글을 옮겨 적는다. 나같이 살지 말라든지, 어떤 공익성을 띤 글이 아니다. 오늘은 지독하게 덥고, 습하고, 매미 우는 소리가 크다. 매미가 내 방으로 들어와 우는 것처럼 들렸다. 귀를 막아도 들리고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땐 공사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멈추었으나 세상은 그렇지 않았고, 그래서 쓰기로 했다. 모든 경위가 납득이 되거나 중요한 이유가 있진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쨌든 멈추지는 않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맥없이 방에 있을 때 가장 안정된 상태라고 느꼈다. 공사 소음이나 매미 소리가 멀게 느껴지고 낮인데도 낮같지 않은 어두컴컴한 장소가 내가 누릴 수 있는 내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에 바깥에서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구태여 덮어두고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나는 불리하면 도망쳤고 억울하면 회피하여 그때마다 손에 쥐고 있던 걸 조금씩 내려놓았다. 지금의 나는 고귀하고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 것초자 없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답받는 세상임이 당연하다. 시작선부터 나는 한참 뒤였다며 과거를 돌이키고, 불평하고, 곱씹으며, 시작선부터 그랬으니 나는 늦었다고 이른 나이에 포기했다. 다른 이들이 이제 막 세상에 도전할 때 나는 일찍 포기했다. 기가 빠질 정도로 열심히 살아본 적 없이. 미루고, 도망가고, 회피하여 나는 더는 미룰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내겐 저축이 거의 없는 잔고와 짧은 가방끈밖에 남지 않았다.
삶이란 정말 무던히도 노력해야 한다. 노력한 사람이 보답받는 게 당연하나, 그럼에도 나는 멈춰있다.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면 나 자신을 불쾌해하고 시간을 아까워하면서도 무언가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난 늘 이해가 느리고 답답한 사람이니 무얼 시도하기엔 낯설었다. 핑계와 자기합리화는 정말 쉬웠고 벌어둔 돈이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할 때면 당장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버텼다. 그마저도 온전히 내 돈이 아니고 여기저기서 조금씩 준 돈으로 연명하던 차다. 나는 미성숙하고 사회가 원하지 않는 성인이다.
문득 언제부터 이랬나 곱씹자니 초등학생 시절부터 유구했다. 아직 인터넷에 옮겨 적긴 어려운 이유로 내 인생은 보편적인 삶의 기준에서 좀 엇나갔다. 그런데 주변에서 여기로 돌아오라고 일러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굳이 말하면 왜 엇나갔는지 타박을 했다.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란 말인가. 당장 내게 배움을 주던 사람들은 존경하기엔 모난 구석이 있었고 나는 내가 일찍이 글러먹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 글러먹은 아이는 미래에도 글러먹어서 낮인데도 어두컴컴한 방에 있어야 안정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오래도 지났고, 이제 초등학생 시절이라봐야 윤곽으로만 기억하는 나이에, 나는 해묵은 옛날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보려 한다. 나 자신이 살아서 지구에 존재했음을 어딘가에는 남기고 싶어서다. 언젠가 부끄러워지면 삭제할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땐 잠이 오지 않는다. 몸이 힘들지 않으니 말똥말똥하다. 새벽은 사람이 온갖 생각을 하게 만드니까 오랫동안 깨어있고 싶진 않다.
얼른 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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