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마히] 1
나나미 켄토가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마히토가 나나미를 밀치고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 여기가 주술사 집! 역시 깨끗하네~ “
나나미 켄토는 신발을 벗은 뒤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마히토가 신발을 벗지 않고 뛰어들어간 탓에 방바닥에는 얼룩이 가득 했고,
그 얼룩 자국을 보며 나나미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숨을 쉬는 나나미를 보고 마히토가 다가와 물었다.
“ 왜 그래? 어디 아파? 치료라도 해줄까? 아, 지금 술식을 못쓰는구나 ~ ”
깐족거리는 마히토를 보고 나나미는 제발 저 주령이 1분만이라도 가만히 있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발을 벗어주시겠습니까?”
“아?”
마히토가 바닥과 나나미의 얼굴을 번갈아보더니 박수를 치며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 너는 집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구나? ”
“ 주령도 집이 있습니까? ”
“ 집까진 아니고 잠깐 쉬어가는 장소 같은 건 있지. “
“ ….. 쉬어가는 장소? “
마히토는 산 속에 있던 자연 온천과 잠깐 들렸던 사무실, 자신이 시간을 보내던 터널을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저 휘파람 소리를 내며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마히토가 말하지 않을 것이란걸 눈치챈 나나미는 대화주제를 돌렸다.
“ 바닥에 얼룩이 생기니까요, 신발은 현관에서 벗고 들어오시죠.”
나나미가 손가락으로 현관을, 자신이 벗어놓은 신발을 가리켰다.
“ 여기? 그러지 뭐.”
마히토는 현관으로 걸어가 한쪽 발로 반대쪽 신발 뒷꿈치를 누르며 발을 빼냈다.
나머지 한 쪽도 똑같이 벗어 현관에 대충 던져놓고,
느긋한 걸음으로 방을 한번 둘러보다 거실 한켠에 있는 소파 위에 풀썩 하고 앉았다.
“ 그래서, 이제 뭐 할거야? 목욕? 식사? “
소파에 앉은 상태에서 고개만 돌려 나나미를 쳐다봤다.
나나미는 그런 마히토를 한번 쳐다보곤,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며 말했다..
“ 그것도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전화가 우선 입니다.”
“ 왜? 방금 퇴근한 거 아니야? “
마히토가 의아해하며 질문했다.
“ 당신 때문입니다. “
“ 우리 계약은 비밀인거 잊지 않았지? “
“ 바로 그것이 문제인겁니다.
당신과 계약 한 것을 들키면 안되는데, 그러면 주력도, 술식도 못쓰게 된 건 어떻게 설명해야할까요. “
“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
뻔뻔한 얼굴로 마히토가 나나미를 쳐다보았다. 그걸 본 나나미는 또 한숨이 나왔다.
“주술사 일을 할 수 없으니 잠시 쉬겠다고 연락을 취하는 겁니다. 제 빈자리를 누군가는 채워줘야 하니까요. “
구겨진 얼굴로 말하는 나나미를 보고 퍽 웃기다고 생각했는지, 마히토가 히죽거리며 답했다.
“ 내가 계약을 언제까지 하자고 할 줄 알고? “
“당신 성격에 그리 오래 갈 것 같진 않습니다만?”
나나미가 살짝 비꼬듯이 말하자 마히토는 그저 어깨를 한번 들썩이더니 소파에 누워 뒹굴기 시작했다.
“잠시만 조용히 해주시죠.”
“싫은데?”
“ 그러면 계약이 들켜 피해를 받는 건 당신이겠죠.”
마히토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전화기의 버튼을 몇 번 누르더니 귀에 가져다 댔다.
뚜ㅡ 뚜ㅡ 몇 번 신호음이 울리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 네, 이지치입니다. 나나미씨? “
“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급히 전달 할 것이 있어서요. “
전화기 너머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한번 나더니, 말소리가 들려왔다.
“ 무슨 일인가요..? “
“ 갑작스레 죄송하지만, 잠시 주술사 활동을 그만둬야 해서요.”
침묵.
이 상황을 보고 있는 마히토는 입을 손으로 꾸욱 누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꽤나 웃겼는지 눈에 작게 눈물방울이 맺힌 것이 보였다.
“ 네? “
침묵을 깬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이지치의 반응이였다.
“ 제가 직접 움직 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대신 부탁드립니다. “
“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
“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급한 사안이라. “
“외람된 말이지만, 이런 류의 부탁은 저보단 고죠씨가 더 잘 해결해주실 것 같습니다만..”
이지치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루만에 다시 복직을 해줄 수 있도록 한 것도 고죠의 도움이였으니까,
고죠라면 아무리 바쁜 주술계여도 나나미 한 명 정도는 빼돌릴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그 사람은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잘 돌아간다.
이 상황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분명 직접 개입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무 많은 변수가 일어난다.
애초에 저 주령을 집에 데려온 것도 변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으니.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는 공간에 문제덩어리를 데려오는 것이 그나마 대처가 쉬울 것이라고 판단해서 한 행동이였다.
이지치에게 연락 한 것은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입이 무겁고 실제로 몇 번이나 도움을 받았기에ㅡ
“.. 미안합니다. “
나나미가 이럴 사람이 아닌 것을 알기에 이지치도 나나미에게 문제가 생긴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평소라면 상황 설명 뒤 도움을 청할 사람인데, 그러지 않는 것은 그런 행위 조차 용납 되지 않기 때문이겠지.
“ 분명 고죠씨라던가,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릴거에요. 괜찮은 겁니까…? 무슨 일에 휘말린 건. “
이지치가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로 물어보자 나나미는 어딘가 쓸쓸해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러면 끊겠습니다. “
“ 네, 그 외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나나미가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고 전화기의 화면을 바라봤다.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자 마히토가 깔깔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 재밌습니까? ”
“ 어어어엄청!!! ”
마히토가 소파에서 배를 잡고 뒹굴며 웃다가 결국 바닥에 떨어졌다.
쿵.
“ 아야 ~ 아파라.. ”
마히토가 자신의 뒷통수를 매만졌다.
“ 자업자득입니다. “
마히토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꼴 좋다, 같은 감정이라도 느낀 것인지
무의식적으로 나나미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금방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마히토는 그것을 보았지만 딱히 말을 얹진 않았다, 놔두는 편이 나중에 재밌어 질 거라는 직감이였다.
나나미는 급한 일은 마쳤으니 쉬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도저히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당연히 저 주령 때문이었다.
입맛은 없어진지 오래고 몸이라도 개운하게 씻고 잠에 들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 혼자 욕실에 들어간 사이 무슨 짓을 벌일 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나미는 마히토를 자신의 시선 밖에 두고 싶지 않았다.
“ 목욕이랑 식사, 둘 중 무엇부터 할 것인지 물었죠?”
“ 그랬었나? 너무 웃겨서 잊어버렸네? “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것이 없군.
“ 식사는 하지 않고 씻은 뒤 잘겁니다. 당신은? ”
“ 나 ? “
“ 주령도 잠을 잡니까? “
나나미는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욕실로 가 욕조에 물을 받으려고 했다.
마히토는 턱을 괴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 잔다는 표현보단.. 휴면 상태가 맞으려나? 글쎄~ 아예 의식이 없는 건 아니고, 몽롱한 상태로 있을 때는 있어.
이것도 개체마다 다르겠지만.“
잇차 ㅡ! 소리내며 소파에서 일어나 나나미를 따라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따라오는 마히토를 보자 나나미는 한숨 돌렸나, 따라오라고 하면 분명 반대로 행동했을터이니..
다행이군 ㅡ 이라고 생각했다.
“ 그래서 주술사, 넌 씻고 잔다고? 내가 있는데 ? “
수도꼭지가 돌아가고 욕조에 물이 받아지기 시작했다.
마히토는 욕조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사람은 자지 않으면 죽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신 앞에서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지만요. “
“ 정 마음에 걸리면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것도 계약조건에 추가 할까? “
예상치 못한 답변에 나나미가 눈썹을 위로 치켜올렸다.
“ 허, 참 친절하군요. “
“ 내가 좀. “
마히토가 욕조에 담긴 물을 손바닥으로 내리치자 맑은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사방에 튀겼다.
“ 들어가도 됩니다, 저는 옆에서 따로 몸을 헹구면 되니까요. “
마히토도 예상치 못한 답변에 놀란 눈치였다.
“ 나 ? 나보고 여기 들어가라고? “
“ 안 될 것도 없죠. “
나나미가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어헤치며 말했다.
“ 갑자기 너무 친절해진거 아니야? 날 본 받기라도 하게 ?”
그런 나나미를 의심의 눈초리로 째려보고 있는 마히토였다.
“ 사실 당신이 제 시야 밖에 있는 것이 더욱 신경쓰여서, 차라리 같이 씻는 편이 낫습니다. “
눈치빠른 주령에게 둘러대봤자 소용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나나미가 사실을 말했다.
“ 정직한 답변 고맙네, 근데 주령은 굳이 안 씻어도 되는데. “
“ 인간 체험이라 생각하고 한번 속아주시죠.”
“ 잠깐 사이에 많이 뻔뻔해졌네 주술사? “
마히토가 상의를 다 벗은 나나미를 보며 말했다.
지금 영혼을 만질 수 있다면 참 재밌을텐데, 아쉽게 됐네ㅡ 라고 생각도 하며.
“ 뻔뻔해진 게 아니라 이 상황에 대한 생각을 포기한겁니다. 추가로, 아까 말했던 것을 조건에 포함하면 좋겠군요. “
“ 같은 시간에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는 거? “
“ 네. “
“ 혼자 자는 거 외로워? 허그해줄까? “
“ 헛소리. “
나나미 답지 않게 꽤나 험한 말이 나오자 마히토는 실실 웃었다.
역시 인간의 영혼이 반응하는게 제일 재밌네.
“재밌는 것도 구경 했으니 지금은 어울려줄게 “
마히토가 판초 같은 옷을 벗어던지고 바지를 내리다 멈추더니 말했다.
“ 생각해보니 이럴 때 그 말을 하면 되나?”
“ 네?”
“ 꺄악 변태~ ♡ 같은 거? “
나나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비키세요. “
“ 싫ㅡ은ㅡ데ㅡ ! “
마히토가 소리치더니 바지를 빠르게 벗고 욕조 안으로 들어가 물 속에서 머리만 빼꼼 내민 채로 나나미를 바라보았다.
나나미는 이것이 정녕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주령의 실체인가,애새끼나 다름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그것의 분위기에 휩쓸려 살짝 흥분한 자신에게 자괴감도 느꼈다.
“ 하…………. ”
계약 한 지 하루조차 지나지 않았지만 나나미는 급격히 피곤해 지는 것을 느꼈다.
“ 물이 따뜻하네! 그때 그 온천 정도는 아니지만~ “
“ 온천 이요? “
“ 그런 게 있어. 보글보글보글 “
마히토가 다시 딴청을 피우기 시작하자 나나미는 옷을 마저 벗기 시작했다.
자신의 옷과 마히토가 입었던 옷을 정리해 욕실 앞에 놓아 둔 뒤
이윽고 나체의 몸이 된 나나미는 샤워기를 잡아들어 자신의 몸을 물에 적셨다.
욕조 안에서 지켜보던 마히토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주령과 주술사가 같은 공간에서 이러는 거, 웃기네. “
“ 아까도 말했지만 당신 때문 ㅡ “
“ 아~ 알겠습니다~~~ “
마히토가 나나미의 말투를 따라하며 빈정거렸다, 나나미의 말을 끊은 것은 덤으로.
한차례 소란이 지나간 뒤 적막함만이 남았다.
친밀한 관계도 아닌 둘이 이정도 양의 대화 한 자체가 기적이리라,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만이 욕실을 가득 메웠다.
마히토는 나나미를 계속 관찰하고 있었고, 나나미 또한 그런 마히토를 바라보고 있었다.
“ 저 난해한 옷은 어디서 구한 겁니까? “
“ 옷 ? 선물받은걸로 해둘까? “
나나미가 마히토를 째려보았다.
“ 하아.. 아까부터 숨기는 것이 많군요.”
“ 너도. “
“ 저는 목숨이 달렸… 됐습니다, 다른 옷은 있는지? “
나나미가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을 잠그고 찬장에서 수건을 꺼냈다.
“ 아니, 없어. “
“ 그러면 기다리세요. 여벌 옷을 들고올테니 “
“너는 욕조에 안들어올거야? “
“ 당신이 들어간 물에 제 몸을 담그고 싶지 않아서 말이죠.”
수건으로 몸을 닦은 나나미가 욕실 문을 열었다.
나나미가 문 너머로 사라지자, 마히토는 눈을 돌려 주변을 탐색했지만 특별히 재밌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욕실이니까ㅡ 하며 홀로 남은 마히토는 지루한 표정을 내비췄다.
심심하기도 하고, 학습도 할 수 있을 듯하여
다짜고짜 주술사를 찾아온 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그냥 그때 그 아이를 죽이고 반응을 보는 것이 더 재밌었으려나.. 하지만 죽이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있으니 가끔은 이런 것도?
“문 앞에 두고 가겠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 중에 들려온 말소리에 정신을 차린 마히토는 욕실에서 대충 물기를 털고 나와 놓여진 옷을 집어들었다.
“ 이거 너가 입던 옷인거지? “
“ 그렇습니다만? “
거실 쪽에서 나나미의 대답이 들려왔다.
대답을 들은 마히토는 나나미가 준 옷을 살펴보았다.
얇고 편한 재질의 긴팔 티셔츠에 바지였다. 흠, 괜찮네. 내뱉듯이 중얼거리며 옷을 입고 거실로 향하자
거실에는 평소와 다르게 풀어진 차림인 나나미가 탁자 앞에 서서 마히토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마히토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오 ! 색다른 모습 발견!
아무래도 주령과 주술사, 적대 관계였으니 저런 모습을 볼 수 있을리가 없었다.
“ 헤 ㅡ 그 웃긴 넥타이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이런 옷도 있고.”
마히토가 자신이 입은 옷을 만지며 말했다.
“ 당신도 그렇게 입으니 꽤나…”
인간 같아 보인다고 말 하려 했으나 괜한 소음만 일으킬 것 같아 나나미는 입을 닫았다.
그러자 마히토가 탁자에 몸을 기대며 나나미를 바라보았다.
“ 꽤나? 어떤데? “
“ 앞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
“ 우와 ㅡ 주술사가 말 돌린다 ㅡ! “
마히토가 틈을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지자 나나미는 역시나 싶었다.
“ 계속 이렇게 있는 건가요, 둘이서. “
어쩔 수 없이 계약을 했다지만 동거라니, 서로 불편한 뿐인 관계에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저 주령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영혼의 변화를 알고 싶다고 했지만, 그건 굳이 자신일 필요가 없었다. 인간은 넘쳐나니까.
적대관계인 나와 이렇게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라고 생각하는 걸 알아차렸는지 마히토는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 너는 튼튼하고.. 생긴 것보다 여린 면도 있어서 재밌어.
돈도 많으니까 이것저것 놀기에도 좋을 것 같고~ “
그렇게 말하며 손목을 툭 툭 건드렸다.
“ 허. “
나나미가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손목에 있는 시계는 마히토가 추측한대로 꽤나 값이 높은 것이였기에, 나나미는 마히토의 안목이 좋다고 생각했다.
“ 내일 뭐하고 놀까? 좋은 생각 있어, 주술사? “
나나미는 주령의 취미생활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저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제 풀에 지쳐 떨어지길 바랄 뿐이었다. 물론 나나미의 뜻대로 마히토가 행동할리 없었지만.
마히토는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 이내 깨달음을 얻은 듯 말했다.
“ 음! 모르겠네~ 내일 일은 내일 정하는 걸로! “
예?
“ 그럴꺼면 왜 고민하는 척을… “
“ 의견도 안 낸 너가 할 말은 아니지? “
달리 반박 할 수도 없던 나나미는 손으로 미간을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오히려 좋을 지도 모른다, 내일 하루는 집에서 보낼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노력했다.
물론 밀폐된 공간에서 하루종일 주령에게 시달릴 생각을 하면 끔찍했지만 말이다.
“알아서 하시죠, 전 이제 자야겠습니다. “
“ 그래? 나는 어디서 자면 돼? “
마히토가 탁자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폈다.
“ 계약조건에 추가해주는 겁니까?”
“그렇지? 너가 말했잖아? 나 그렇게 나쁜 주령은 아니라고~ 물론 거짓말이지만 .”
“ 아까 확답이 없었으니 말이죠. ”
“ 눈치가 참 좋네, 어떤 바보는 자기가 위험한 것도 눈치 못채던데! “
깔깔 웃으며 말하는 마히토를 보니 나나미는 속이 들끓었다.
하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며 여기서 반응을 했다간 오히려 마히토에게 말려든다는 걸 알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몸을 돌려 손으로 침실을 가리킬 뿐이었다.
“응?”
“침실로 가서 자면 됩니다. “
“너는?”
“저는 소파에서 자면..”
“아니아니~ 나는 안 자도 상관없는 몸인데 굳이 침실을? 너가 쓰는게 낫지 않나? 이래저래 그게 이득일 것 같은데. “
마히토가 나나미의 말을 끊더니 말했다.
“ 당신이 거실에서 돌아다니며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 차라리 침실에 가두는 편이 낫습니다. ”
“ 역시나 “
마히토가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 알면서 물어보는건 꽤나 악취미네요. “
“ 이렇게라도 안하면 네가 나랑 대화를 안해주잖아? “
“ 당신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거든요. “
나나미가 마히토를 무시하고 걸어가 스위치를 눌러 전등을 끄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어둠속에서 마히토는 완전 밥맛이네, 라는 표정으로 나나미를 바라보다가 이내 침실로 발을 옮겼다.
“여기 맞지? 나 진짜로 들어가서 눕는다? “
“그러세요. “
침실 문 앞에서 서서 마히토가 말하자 나나미가 고개를 돌려 흘깃,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휴, 저런 모습을 보면 가끔씩 재미 없다고 느껴진다니까. 어쨌거나 주술사의 침실이나 구경해볼…?
신나게 방 문을 연 마히토는 나나미의 침실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우와.. 정말 잠 잘 때 필요한 것만 있잖아? 정말 재미없네….
이래서 나에게 침실을 양보했군,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모양새였다.
같은 시간에 같이 자서 같이 일어난다,얼핏 보면 괜찮은 조건 같지만 말이란 것은 언제나 빈틈이 있으니까,
찾는다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주술사는 그것도 고려한거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침대에 풀썩, 소리내며 누웠다.
괜찮아, 천천히 놀다 가면 되니까.
돌아가면 죠고한테 잔소리 들을려나~ 통보하고 뛰쳐나왔으니 엄청 열 받아 있겠지..
하지만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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