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마히] 2?
크리스마스 외전
딸랑….
잠결에 들려오는 소리에 나나미가 몸을 뒤척였다.
방울소리..? 피곤해서 환청이 들리나? 그게 아니라면 주령? 하지만 주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간 밤에 tv를 켜두고 잔 건가, 어찌됐건 확인을 위해 일어나야겠군.
아직 잠이 깨지 않아 흐릿한 시야에 붉은 형체가 보였다.
붉은 물체를 인지하자마자 나나미는 빠르게 일어나 전투태세를 취했다. 물론 이 긴장감을 얼마 가지 않았다.
“ 얏호~ 메리크리스마스, 주술사! “
마히토가 어디서 구해왔는지 붉은 산타모자를 쓰고 핸드벨을 흔들고 있었다.
“ 아침부터 뭐하자는 겁니까… ”
나나미가 마히토를 보며 싫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 크리스마스라며? 이런 거 하는 날이잖아. 인간 기준에 맞춰준건데? “
마히토가 계속 핸드벨을 흔들며 뿌듯해 하는 표정을 짓자 나나미가 마히토에게 다가갔다.
“ 하……. 저는 관심 없습니다. 이건 어디서 구한겁니까? “
나나미가 손에 있던 핸드벨을 뺏어갔다. 집에 없었던 물건인데, 하며 째려보고 있자
마히토가 당당하게 말했다.
“ 아 그거? 네 지갑에서 슬쩍한 돈으로 샀어. 주령이 돈이 어딨어? “
마히토가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더니 손가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 물론 이 모자도 네 돈으로 샀지? “
“ 이상한 것만 배워서.. “
나나미가 한숨을 쉬며 마히토가 돌리고 있던 모자도 뺏어가자
마히토는 엑 ㅡ 소리내며 나나미를 쳐다보더니, 이내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 챙겨줘도 싫다고 그러고! 너무한거 아니야? “
“ 해달라고 안 했습니다. 그리고 말도 없이 남의 물건을.. “
“ 됐어! 으~ 또 잔소리 시작이네.. “
마히토가 손으로 귀를 막고 투덜거리며 침실 밖으로 나갔다.
나나미는 산타모자와 핸드벨을 살펴보더니 침대 옆 협탁에 올려놓고 마히토를 따라 나섰다.
마히토는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는데, TV 에선 신나는 캐롤 음악과 함께 번화가 거리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송출되고 있었다.
“ 크리스마스인데,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
“ 넌 관심 없다며, 이제와서 뭘. “
“ 당신은 관심 있는 것 같아서요. “
나나미가 말하며 소파의 남는 자리에 앉자 그런 나나미를 보고 의외라는 표정으로 마히토가 바라보았다.
“ 싫으면 됐습니다, 강요할 생각 없어요. “
그렇게 말하며 나나미가 자리를 일어나려고 하자 마히토가 급히 소매자락을 잡더니 말했다.
“ 너.. 주술사 맞지? 어디 아파? 드디어 미친건가? “
“ 챙겨줘도 싫다고 그러니.. 됐습니다, 집에서나 있죠. “
“ 아니아니아니아니, 나갈거야! 인간들 구경하러 갈래. “
그렇게 말하더니 마히토는 소파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러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나미는 마히토가 꽤나 우스웠다. 이래서 장난을 치는건가,
생각을 하며 나나미 본인도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 주술사ㅡ! 준비 다 했어? 나 먼저 나간다? “
이윽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같이 나가죠.”
채비를 마친 나나미가 현관으로 걸어가자 그 곳엔 나름 멀쩡하게 옷을 입은 마히토가 있었다.
그도 그럴게 어차피 나나미의 옷장에서 마히토 마음대로 꺼내입는 것이니,
멀쩡한 옷 밖에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마히토가 자신의 옷을 마음대로 입고 더럽히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구멍 뚫린 이상한 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녀 주목을 받는 것 보단 훨씬 나았다.
“ 음? 그 목도리 마음에 드네, 내놔. ”
마히토가 나나미의 목에 있던 목도리를 풀더니 자신의 목에 둘렀다. 그리곤 마음에 드는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 목도리가 필요하면 사드리겠습니다. “
“ 너가 하고 있던 목도리를 뺏고 싶었던거지 그다지 목도리가 필요한건 아닌데? ”
“ 하… ”
또 시작이군.. 마히토는 갑자기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재능이 있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뜬금없이 이런 행동을 할 때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이였다.
나오자고 제안한 것이 살짝 후회 됐지만
하루종일 집에서 마히토가 툴툴대는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았기에 이래저래 끔찍한 건 똑같았다.
“ 그래서, 인간 구경만 하면 됩니까? “
“ 지금은 그런데.. 내 마음이 언제 바뀔지 누가 알겠어? “
“ 사고만 치지 말아주세요.”
“ 노력은 해볼게. ”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번화가에 도착했다.
번화가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 인간 엄청 많네 ~ 기념일이 뭔 대수라고. ”
“ 그런 당신도 구경하러..”
“ 어! 저기 인간들이 몰려있는데? 다녀올게 ~ “
마히토가 나나미의 말을 끊더니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나나미는 산책나온 강아지도 아니고.. 라는 생각을 하며 마히토를 급히 따라갔다.
한참을 헤매이다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한 나나미가 다가가 마히토의 어깨를 잡았다.
“ 혼자 행동하지 마세요, 잃어버립니다. “
“ 주술사. ”
“ 네? ”
“ 저 인간들, 뭐하고 있는거야? “
마히토는 끈이 달린 편지지에 소원을 적어 벽에 걸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 소원을 적고 있네요, 보다싶이. “
“ 그건 나도 알아.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종이도 펜도 주술적인 효과가 전혀 없어 보여,
그렇다고 이 장소가 특별한 것도 아니야.
그런데 왜 이런 불필요한 짓을 하고 있는거야? 자원 낭비 아니야? 이루어지지도 않을 소원을 왜 적고 있는건데? “
마히토가 전혀 이해 안된다는 표정으로 즐겁게 소원을 적는 사람들을 흘겨보았다.
나나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하기 시작했다.
“ 이렇게 적어서 자신의 소원을 내보내는 것으로 일종의 기도를 하는 겁니다. 이루어지면 좋겠다, 라고요. “
“ 주술사도 아닌데 효과가 있을리가. “
“ 때로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겁니다. “
“ 퍽이나. “
“ 여기까지 온 김에 당신도 하나 적어보시죠. “
“ 내 소원 ? 인류멸망 같은 거 밖에 없어. “
마히토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더니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인간에게 관심이 있지만 결국 주령인가, 사고방식 자체가 틀리다. 역시 위험하군.
“ 하지만.. 네 말대로 온 김에 적어 볼까? “
변덕도 심하고. 정말 최악이다.
“ 인류멸망을 쓰기엔 보는 눈이 많으니까 ~ 이걸로 쓰면 되겠다! “
마히토가 펜과 편지지를 집어들더니 무언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무엇을 쓰는지 궁금했지만 마히토가 보여주지 않았기에 결국 소원의 내용은 알 수 없었다.
펜을 내려놓은 마히토가 피식, 옅은 웃음을 보이더니 몇걸음 뒤에 있는 벽에 편지지를 걸어두고 돌아왔다.
“ 만족했나요? “
“ 응, 근데 더 캐묻지 않네. “
“ 당신이 쓴 소원이요? “
“ 맞아. “
“ 밝힐 생각도 없는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
“ 오늘 하루 잘 어울려주면 알려줄 수도 있지. “
“ 여기서 더 어울려 주는 것도 힘들겁니다..”
나나미가 정색하며 말하자 마히토는 재밌다는 듯 나나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꽤나 얄미워 나나미는 무심결에 마히토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 악! 뭐하는거야! “
“ 무심결에. “
“ 갑자기 때려놓고? “
“ 갑자기라고 하기엔 당신이 저지른 짓이 너무 많습니다. “
그 말을 들은 마히토는 잠시 고민하다가 어련하시겠어요~ 같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이지 않은가, 솔직히 지금까지 참은 게 대단한 것이다.
저 주령의 장단에 맞춰주다가 홧병으로 죽을 지경이였다. 마히토도 그걸 알고 있는지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 있잖아 주술사. “
“ 네. “
“ 크리스마스라고, 할 일이 많은 건 아니네. “
마히토가 나나미에게 맞은 부위를 손으로 문질렀다.
“ 아무래도 당신은 주령이니까, 인간이랑 다르죠. “
“ 그러면 너는, 너도 인간이잖아. “
“ 제가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하는 지 궁금한가요. ”
“ 응, 궁금해. “
“ … 일을 했죠, 주령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니까요. “
“ 진짜 재미없어. “
마히토가 툴툴 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나나미는 마히토의 뒤를 따라 걸었고, 한동안 말없이 앞으로 걷는 것만을 반복하였다.
계속 걷다보니 번화가에서 멀어져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외진 골목에 도착하였다.
“ 인간 구경은 질렸습니까? “
“ 응, 재미없어졌네. “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죠. “
나나미가 몸을 돌려 골목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갑자기 마히토가 나나미의 손을 잡고 골목으로 끌어당겼다.
“ 여기서 볼 일이 남았나요? “
“ 하나 남았어. “
“ 아무것도 없어 보입니다만.. “
나나미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사람은 커녕 볼거리도 없었다.
이 골목에 있는 건 사람들이 밟고 다녀 너덜너덜해진 전단지, 쓰레기통, 실외기 같은 것들 이었다.
“ 아니? 있어. “
마히토가 나나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평소처럼 툴툴거리고 얄미운 목소리가 아닌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마히토를 보자 나나미는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골목에서?
마히토가 자신의 목에 있던 목도리를 풀어 나나미의 목에 걸치더니, 목도리를 잡아당겨 나나미를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마히토는 나나미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 뭐하자는겁니까?! “
“ 아무것도 없어보인다고 했지? 아니야, 여기 너가 있잖아.”
이 말을 끝으로, 마히토가 다가와 나나미와 입을 맞췄다.
당황한 나나미는 잠시 멈춰있다가 급히 손을 움직여 마히토를 밀어내었다.
“ 흐읏, 지금, 무슨….”
나나미의 입술에 차가운 살결이 닿는 촉감이 맴돌았다. 그 느낌이 불쾌했던 나나미는 손으로 입을 닦았다.
여러번 강하게 닦아보았지만 머릿속에서 불쾌함이 떠나지 않았다.
“ 별로야? 책이라던가, 영상이라던가, 크리스마스에 꼭 이러던데. “
마히토는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이런 마히토의 행동에 나나미는 욕설이 나올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며 참았다.
여기서 격한 반응을 보여봤자 마히토의 장난감과 다를 바 없기에.
“ 이건 연인이나 가까운 사이나 하는거지, 저희가 할 행동이 아닙니다. 당신이 모를 리가 없을텐데요. ”
“ 우리 정도면 가깝지 않나? 같이 살고 있잖아. “
“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
마히토가 나나미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자 나나미는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 왜 도망가는 거야? “
“ 당신이 다가오고 있잖아요. “
“ 내가 다가오는 게, 뭐. “
“ 하… “
마히토는 이 상황을 즐기는 듯 했다. 그런 마히토를 보자 나나미는 없던 두통이 생기고 있었다.
왜 나오자고 했을까,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지만 실내였다면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차라리 입술 하나면 괜찮은 걸지도 ㅡ 라며 위안 삼아 보기로 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 현재에 집중 하기로 하면서.
재미없어졌다고 말한 이후로 이런 행동을 했으니 결국 심심해서 벌인 것 일 터이다.
그렇다면 심심하지 않게 해주면 그만이다, 어울려 달라고 했던가? 좋다.
잠시 어울려주는 것으로 끝낼 수 있다면 얼마던지 어울려주마.
나나미가 뒷걸음질을 멈추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 뭐해? “
“ 어울려줄테니 이쯤 하시죠. “
나나미가 성큼 다가가 멱살을 잡자 마히토는 살짝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갑자기 적극적이네, 주술사. “
나나미는 대답 대신 입을 벌려 혀를 섞는 것을 선택하였다.
마히토는 눈을 한번 껌벅이더니 이렇게 나오시겠다?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 어디 실력 좀 볼까.“
그렇게 말하곤 눈을 감고 나나미의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으득 소리와 함께 두명의 입이 떨어졌다. 나나미의 입술에는 타액과 피가 섞인 묽은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 매너가 엉망이군. “
나나미가 입안에 고여있던 묽은 피를 바닥에 퉷, 뱉어내었다.
그걸 본 마히토가 혀를 내밀더니 깐죽거리기 시작했다.
“ 많이 해봤나봐? 나는 이런 쪽에 경험이 적어서~ 혀를 씹은 건 미안! “
말과 다르게 전혀 미안해보이지 않았다. 분명 일부러 혀를 씹은 것이 분명했다.
나나미는 혀를 차며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자 마히토는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툭툭 치며 옷을 정돈하고 나나미를 바라보았다.
“ 뭡니까? 부족한가요? “
“ 아니, 이런거구나.. “
마히토가 혼자 중얼거리며 잠시 생각에 빠진 듯 하였다.
그런 마히토를 보니 나나미는 어이가 없었다.
“ 아뇨.. 보통은 일부로 혀를 씹지 않습니다. “
“ 들켰네. “
“ 속은 적이 없습니다..”
나나미가 한숨을 쉬자 마히토가 싱긋 웃어보이더니 나나미의 귓가에 속삭였다.
“ 잘 어울리면 알려준다고 했었지, 내 소원은 너와ㅡ “
헉,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나나미는 소파에서 눈을 떴다. 급히 시계를 확인 해보니 초침이 새벽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자리 탓인지, 아니면 자신의 침실에서 다리를 뻗고 있을 주령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꿈을 꾸다니..
악몽이라 봐도 무방했다. 꿈이 너무나도 생생한 나머지 입술에 감촉이 남아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저녁을 먹지 않아 구토 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정도, 속이 울렁거리고 몸은 식은 땀으로 뒤덮여있었다.
나나미는 머리를 쓸어넘기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망할 주령.
내가 눈을 떴으니 그 망할 주령도 아마 눈을 떴겠지, 이런 상태를 보이고 싶진 않았기에 화장실을 가는 것은 포기했다.
분명 소리를 듣고 침실에서 나와 심기를 긁을 것이였다.
나나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다시 눈을 감는 것 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악몽을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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