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르베 씨에게

오두막 by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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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자해 언급 주의

친구가 죽었다.

경찰이 조사를 하고, 장례식이 열렸다. 눈물을 쏟아내는 그 애의 어머니를 뒤에서 안았다.

나는 가장 친한 친구였기에 가장 오랫동안 조사를 받았다.

지금 그 애의 책상에는 하얀 국화꽃이 한 송이 물도 없이 멀건 화병에 꽂혀있다. 앞으로 며칠에서 몇 주, 저 꽃이 책상 위에 버티고 있는 동안은 누구도 책상 가까이 가지 않을 것이다. 꽃이 그 애라도 되는 것마냥 측은히 바라보기도, 깨질까 스러질까 안절부절못하기도 할 것이다.

모두가 그 애에 대해 말하길 꺼린다. 출석을 부를 때면 교사들은 잠시 침묵하고, 아이들은 자연히 몇 분간 고개를 숙인다. 두터운 불편함이 교실에 내려앉는다.

그 애의 가족은 그 애의 사물함을 정리하며 기어코 눈물을 쏟았다. 사물함은 여타 학생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적당히 어질러져 있었고, 동시에 적당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 애의 언니는 동생의 교과서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꺼내어 품에 안고 천천히 책등을 쓰다듬었다. 마치 동생의 영혼이 그 안에 남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애는 정신병원에 주기적으로 다니고 있었다. 매일 아침 작고 동그랗고 하얀 알약을 먹었다.

그 애는 상담 선생님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했다. 상담을 받은 걸 후회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 애는 연보라색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애의 물건에 연보라색이 들어간 것은 거의 없었다.

또 그 애는 엄마의 요리를 좋아했다. 종종 내게 가족 중 자신만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며 반은 장난으로 반은 자랑 삼아 불만 털어놓듯 말하곤 했다.

그 애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괜찮았다. 하지만 한 주의 시작은 견디기 어려워했다. 때때로 이르면 저녁, 늦으면 새벽을 넘기기 힘들어하기도 했다.

가끔은 새벽 12시가 넘어서 불쑥 전화가 걸려 오곤 했다. 어김없이 발신인은 그 애였고, 나는 그 애의 전화를 한 번도 먼저 끊지 않았다. 우리는 길면 새벽 3시가 넘어갈 때까지 줄곧 통화를 이어갔다.

한 번은 그 애가 내게 자해에 관해 물어왔다. 나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 애는 내게 잘못 걸었다 말했다.

그 애는 우울해지거나 화가 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자기 얼굴을 보기를 싫어했다. 자기에게 얼굴이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 했다. 조금은 본인의 얼굴을 혐오하는 것도 같았다.

그 애는 잘 웃었다. 잘 먹었고, 잘 놀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평범히 흘려보냈다. 그리고 말없이 죽었다.

유가족과 경찰은 자살의 원인을 말해주지 않았다. 소문은 자연스레 불어났지만 나는 그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 애는 한동안 여러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나는 듣는 편이었다.

그 애는 음악을 좋아했다. 모든 음악은 아니었다. 그 애는 주로 가사가 있는 비주류의 노래를 들었고, 종종 가사가 없는 음악도 들었다. 가사가 있든 없든 마음에 드는 음악을 발견하면 신이 나서 약간 흥분한 상태로 플레이리스트에 음악을 집어넣었다. 음원이 나오지 않은 음악이라면 약간의 실망과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 애의 손은 예쁘다. 그 애도 자기의 손을 좋아했다. 유일하게 예쁜 신체 부위라며 마음에 들어했다.

그 애는 갑자기 찾아오는 무력과 공허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서서히 몰려오는 우울과 달리 그것은 그 애에게 큰 고통을 주지는 않았다. 다만 무감각해질 뿐이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대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 애는 몽상가였다. 생각하길 좋아했고, 동시에 싫어했다. 생각은 그 애와 함께 춤을 추다가도 그 애를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그는 녹아내리는 그 애를 보며 광폭하게 웃기를 좋아했다.

그 애는 순수를 동경했다. 순수한 이를 동경했다. 자신은 이미 지나쳐 온, 언젠가의 과거를 동경했다. 과거에 닿을 수 없음에 조금 슬퍼하기도 했다.

그 애는 죽었다. 몇 주 전쯤. 그 애는 세상에서 자기 존재를 완전히 지우고 싶어 했다. 먼지처럼, 물방울처럼 되고 싶어 했다. 애석하게도 세상엔 그 애의 존재를 증명해줄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그 애의 필통, 가방, 전화기, 머리끈, 신발, 교복, 명찰, 노트, 베개, 인형, 모든 것들을 소각장에 태웠다. 소지품들은 연기 없이 재 없이 깔끔히 사라졌다. 불마저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그 애는 꿈을 자주 꿨다. 매일같이 새로운 꿈을 꿨다. 가끔은 끔찍한 악몽을 꾸기도 했다.

그 애는 가족을 사랑한다. 친구를 사랑한다. 잠을 사랑한다. 물을 사랑한다. 신을 사랑한다. 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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