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
문정수
“수족관 갈래?”
“갑자기?”
“응.”
날씨는 무더웠다. 햇빛에 정수리가 지글지글 익는 것만 같았다. 손에는 땀이 차 끈적해졌다.
“언제?”
“지금.”
남유리는 멈췄다. 내 쪽으로 몸을 돌리자 대충 하나로 묶은 머리가 흔들렸다.
“시간 안돼?”
“안 될 건 없는데···갑자기 왜?”
“그냥. 싫으면 말고.”
남유리를 지나쳐 몇 걸음 걸었다. 양옆의 길에는 그늘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짧은 앞머리 아래로 땀이 차는 게 느껴졌다. 시원하지 않아도 좋으니 바람이 간절했다.
“가자. 수족관.”
걸음을 멈췄다. 곧바로 발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작은 수족관. 주말에도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닌데 평일 오후는 그야말로 말할 것도 없이 텅 비었다. 직원은 휴대폰만 뚫어져라 쳐다보다 끝이 질질 늘어지는 말투로 짧은 안내를 시작했다.
수족관 안은 냉방이 잘 되어있었다. 땀이 빠르게 식었다. 조금 있으니 약간 추워지기까지 했다.
남유리는 몇 걸음 앞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수조 안을 관찰했다. 몇 마리나 되는지 셀 수도 없는 물고기를 모두 눈에 담겠다는 듯 시선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겼다.
그러다 우리는 둥그런 반원 모양 천장이 있는 터널 같은 공간에 도착했다. 유리 천장 위로는 작고 큰 물고기들이 유유히, 혹은 빠르게, 각자의 속도로 헤엄쳤다.
유리는 천장에서 벽으로 이어졌다. 남유리는 터널에 들어서자마자 걸음이 빨라졌다. 그 애가 유리벽에 양 손바닥을 갖다 붙이고 생물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동안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남유리의 앞으로 몸통이 길고 제법 큰 물고기 한 마리가 다가왔다. 그 애는 팔을 느리게 휘저으며 마치 그것이 행동을 흉내내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다 다시 손바닥을 벽에 붙였다.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조그만 물고기들이 금세 손끝으로 달라붙었다.
“넌 환생하면 뭐로 태어나고 싶어?”
갑자기 그 애가 물어왔다.
“네가 환생 같은 것도 믿어?”
“그냥 ‘만약’이잖아.”
평소 같았으면 내게 눈을 흘겼을 터였다. 하지만 그 애의 시선은 온통 나한테 있어선 고양이 밥으로나 보이는 물고기들에 쏠려 있었다.
“나는 고래로 태어나고 싶어.”
그 애의 닫혀 있던 입이 다시 열렸다. 몸을 천천히 돌려 어깨를 유리에 기댄 채 나를 쳐다보았다.
미동 하나 없이 조용한 눈 속에서 문득 하늘을 향해 꼬리를 드높이 쳐올리는 고래가 보였다.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나는 바닷속에 잠겼다. 어둡고, 깊은, 답답하고 불안한 공간.
그런데 저 멀리 앞으로부터 거대한 고래가 빛을 내며 다가왔다. 고래는 온기를 품은 반짝이는 돌 같은 것들을 등과 배에 붙인 채로 빠르게 헤엄쳐 왔다. 그리고 날 통과해 그대로 지나쳤다. 강한 파동이 내 등을 뚫고 쏘아졌다.
“뭐해? 멍하니 서서.”
먹먹하던 귀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애는 유리벽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져 있었다.
“아냐. 아무것도.”
멍청하게 굳은 채로 입을 작게 달싹였다.
남유리는 그대로 뒤를 돌아 수족관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코너 뒤로 그 애의 발끝이 곧 사라졌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발이 바닥에 붙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멍한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깊이 잠겨있던 어떤 문장이 덜거덕 소리를 내며 천천히 머리 위로 끌어올려졌다. 나는 남유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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