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남유리
-교시. 선생님의 말소리가 귓가에서 점점 잦아든다. 남모르게 호흡이 빨라지고 있었다.
원인 모를 진동으로 책상 한 귀퉁이의 병 속 물의 표면이 흔들렸다. 찰랑. 시선이 저도 모르게 투명한 물로 미끄러졌다. 호흡이 더 가빠졌다. 관자놀이 아래로 차게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잔뜩 쪼그라든 뇌가 요란하게 경보음을 울리며 곧 다가올 한계점을 알리고 있었다. 일순간, 시끄러웠던 머릿속 잡음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듯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두 손으로 책상을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에 잠긴 듯 먹먹해진 선생님의 외침을 뒤로 하고 나무문을 잡아뜯듯 밀어젖혔다. 그리고 문이 열리기 무섭게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젖은 계단에 부딪힌 발이 찰박찰박 소리를 내며 물방울을 만들어냈다.
아무리 입을 벌려 공기를 들이마시려 해도 어느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목덜미가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제멋대로 뻐끔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젠 이곳으로 숨을 쉬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처럼.
슬리퍼에 교복 차림으로 내리막길을 넘어질 듯 위태롭게 달려갔다. 바로 앞이 교문이었다.
경비실을 지나쳐 쉴 새 없이 뛰고 또 뛰었다. 사거리를 거쳐 왼쪽으로 쭉 가면 큼지막한 수족관이 하나 있다.
평일인지라 입장 대기 중인 사람은 아예 없었다. 슬리퍼는 어느샌가 벗겨져 흰 양말이 더러워지고 있었다. 슬쩍 돌아보니 직원은 내 쪽으론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 검은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런 와중에도 숨은 턱을 넘어 머리끝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익숙해진 지 오래인 길은 방향을 의식할 필요조차 없었다. 저절로 안내하는 발을 따르다 보니 어느새 한참을 이어온 뜀박질이 멈췄다. 나는 지금, 이곳의 가장 거대한 수조 앞에 서 있다.
얇은 유리판 너머 거대한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손을 가만히 유리에 대고 눈을 감았다. 속살을 드러낸 아가미가 벌렁거렸다.
끼긱. 손끝에서부터 얇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치 거미줄처럼 퍼져나간 균열은 마침내 나와 그들의 경계를 깨부쉈다. 와장창 요란한 소음과 함께 제각기 다른 크기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눈을 뜨자 날카로운 모서리가 내 눈앞에 겨눠져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반짝이는 유리조각들은 모두 허공에서 정지한 채 푸른 물과 그 속에 은밀히 숨은 어둠을 비춰냈다.
한 발짝, 한 발짝 소리 없이 걸음을 옮겼다. 푸른 수조 속 저 먼 곳에서 퍼져나오는 깊은 울림이 자꾸만 볼에 살포시 닿았다 튕겨 나갔다.
천천히 물에 몸을 집어넣자 눈앞을 뿌옇게 가리고 있던 막이 한 꺼풀 벗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영롱한 바닷속에 들어와 있었다. 아가미가 기쁨에 취해 껌뻑였다. 하얀 가오리가 유유히 물살을 가르며 내 앞을 스쳐지나갔다.
따뜻한 물속에서 두 다리는 온전한 자유를 누렸다. 해방감으로 온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가지각색에 크기마저 다양한 물고기들도 마침내 되찾은 너른 바다를 마음껏 누볐다. 수면을 뚫고 들어온 빛줄기가 우리를 안내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앞으로, 앞으로 향했다.
한창 그 속에 잠겨있던 나를 무언가가 불쑥 꺼냈다.
온 교실이 조용해져 있었다. 저 앞에서 내게 고정된 선생의 시선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페이지를 넘기고 펜을 고쳐잡았다. 늘어진 테이프 같은 선생의 말소리가 곧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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