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호흡

청춘

남유리

오두막 by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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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엄마는 나를 종종 그렇게 부른다. 청춘이네, 하고, 묘한 그리움이 실린 어조로. 그럼 나는 말없이 설거지를 계속한다.

 

“청춘.”

“응?”

“아무것도 아니야.”

“뭐야, 싱겁게.”

친구는 그대로 다시 시선을 휴대폰으로 돌렸다. 청춘. 입속으로 계속 되뇌어봤다. 창문 너머엔 새싹이 막 돋아나고 있는 마른 나무가 있다.

통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커튼을 내려버릴까 생각했다. 밖의 운동장은 축구하는 남자애들의 고함소리로 시끄럽다. 문득 교문 근처에 주차해놓은 자전거가 마음에 걸린다. 톡. 톡. 느린 속도로 책상을 두드렸다.

종소리. 수업. 종소리. 쉬는 시간. 종소리. 수업. 종소리. 쉬는 시간. 종소리. 수업. 종소리···

 

지금 나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앞뒤 양옆이 모두 말소리로 가득 찼다. 이런저런 소리들이 섞여 하나의 소음이 됐다. 주머니에서 무선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동그란 피아노 음이 금세 귓속에 차오른다.

아이들이 우수수 빠져나가는 교문 옆 내 낡은 자전거가 보인다. 다행히도 누가 훔쳐가진 않았다. 가방을 벗어 자전거 앞주머니에 넣었다. 들은 게 거의 없어 수월하게 넣을 수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아직은 속도를 낼 수 없다.

혼잡한 도로를 벗어나 그리 넓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 따뜻한 바람이 한층 잘 느껴진다.

나른한 정신으로 잠시 브레이크를 눌렀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엄마에게 짤막한 문자를 남긴다.

-오늘은 조금 늦게 들어갈 거야.

1이 곧바로 사라졌다. 답장은 오지 않는다.

다시 페달을 밟았다. 곧 내리막길이 나온다. 희미한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매끄럽게 하강하며 바람을 맞는다. 머리카락 두세 올이 입에 들어간다. 머리를 묶지 않은 것을 조금 후회했다. 청춘. 문득 그 단어가 떠올랐다.

짧은 쾌락이 끝나면 주변은 어느새 조용해져 있다. 한적하고 좁은 길가엔 차도,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다. 그럼에도 최대한 한쪽으로 비켜선 채 천천히 발을 굴렀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두어 번 정도 더 지나가면 오래된 아파트가 나온다. 이 잿빛 건물엔 이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정문을 지나쳐 모서리를 따라 반 바퀴 정도를 뺑 돌았다. 구석진 곳에 아파트 초기에 구성된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몇십 년 전쯤에는 볼만했을지도 모르겠다만 지금은 그저 잡초가 무성히 자란 폐허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점을 가장 좋아한다.

모서리 부근에 금이 간 나무 벤치에 걸터앉았다. 풀들 사이에서 썰렁하니 혼자 나무다.

가방을 열어 종이봉투에 싸인 빵을 꺼냈다. 대충 제일 많이 팔린다길래 집어 든 것이었다. 한 입 한 입 씹으며 다시금 청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엄마가 바라는 청춘. 엄마가 그리워하는 청춘.

얼마나 노닥거렸다고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나는 수풀 새를 빠져나와 자전거 안장에 올라탔다.

가는 길은 오는 길보다 언제나 빠르게 느껴진다. 어느새 사거리에 들어섰다.

신호는 금방 바뀌었다. 사람도 없겠다 그대로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쭉 직진하려다 한 편의점 앞에서 속도를 줄였다. 짧은 고민. 대충 한 구석에 자전거를 고정해 놓고 편의점 문을 열었다.

진열대에서 어렵지 않게 원하는 것을 찾았다.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자전거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그대로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엄마는 작은 조명 하나만을 켜두고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찌개 끓여놨어.”

“응.”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빵을 한 손에 덜렁 챙겨 나온다.

엄마는 여전히 검은 글씨들에 집중하고 있다. 대뜸 그 앞으로 빵을 내밀었다. 엄마가 이게 뭐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청춘.”

이게 내 답이야. 전해질지는 모르겠다만 속으로 말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엄마가 서서히 입꼬리를 올린다. 희미한 미소.

“고마워.”

엄마가 왼손으로 빵을 받아들었다. 옅은 주름살 사이로 숫기 없는 여고생이 잠깐 스쳐간다.

“···”

“···”

이어지는 침묵. 그대로 엄마를 지나쳐 냄비가 있는 쪽으로 가려 했다.

“유리야.”

엄마가 날 불러세운다. 그 자리에서 몸을 틀었다.

“오늘은 밥 같이 먹을까?”

“그래.”

우리는 간간이 말없이 시선을 교환한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서로를 살핀다. 이게 우리가 서로를 아끼는 방식. 빵 봉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식기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조용히 교차한다. 따뜻함 침묵 속에 하루가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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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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