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3.

같이 공부하자

💌 by 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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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벌써 기말고사지.”

수학여행 다녀온 게 엊그제 같은데. 쿠로오는 찌뿌둥한 고개를 하늘을 향해 올리며 ‘정말 싫다-’ 하고 중얼거렸다. 운동부지만 나름대로 성적을 열심히 챙기는 편이었기 때문에 최근에는 꽤 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아이리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시험 기간은 유독 빨리 오지. 나도 전학오고 첫 시험이라…….”

“하긴 그렇겠네. 아이하라는 적응하기도 바빴을텐데.”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네코마 시험은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 잘 몰라서 그게 좀 걱정이야.”

가라앉은 눈으로 미간을 슬쩍 좁히는 아이리에 쿠로오는 잠시 고민하다, 넌지시 물었다.

“좀 짚어줄까?”

“응?”

“문제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 나도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데.”

“정말? 그래주면 너무 고맙지!”

한 순간 얼굴이 불 켠듯 밝아진 아이리에 쿠로오는 눈을 끔뻑였다. 모범생같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더 성적에 신경쓰는 타입인가? 하긴, 매일 아침 일찍 가서 공부하는 애니까. 그래도 이정도로 좋아할 줄 몰랐는데. 작은 호의에 이렇게 좋아하니 뭔가 어깨가 올라가는 기분도 들었다.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참고하면 도움되지 않을까.”

“당연하지, 진짜 도움될 거야.”

“주말에 같이 공부하자. 말해야 하니까 도서관은 좀 그렇고…….”

“그럼 우리 집에서 보자. 언니 약속있어서 나간댔어.”

“오, 좋아. 점심 먹고, 1시?”

좋아! 아이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주 주말 쿠로오는 아이리의 집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이거, 처음 오는데 빈 손으로 오긴 뭐 해서.”

“우와, 쿠키네. 고마워. 잘 먹을게.”

아, 저 방으로 들어가면 돼. 쿠키를 두려고 부엌으로 가던 아이하라 아이리가 돌아보며 말했다. 그녀가 가리킨 방은 누군가가 쓰는 방이라기 보다는 남는 방 같았다. 언니랑 둘이 살기엔 제법 큰 집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아이하라네는 은근 부자일지도……. 쿠로오 테츠로가 그런 생각을 하며 죄 비싸보이는 방안의 가구를 둘러보던 사이, 아이하라가 간식거리를 들고 들어왔다.

“먹으면서 하자. 오렌지 주스 괜찮아?”

“응, 좋아.”

일단 국어부터 볼까. 둘은 자리를 펴고 긴 잡담 없이 바로 책을 펼쳤다. ‘이 선생님 중간고사엔 한자 문제 많이 내시더라.’ 같은 이야기를 해주는 쿠로오에 아이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집중해 들었다. 한참 설명이 끝난 뒤, 아이리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쿠로오를 빤히 바라보았다.

“쿠로오 군…….”

“응?”

“생각보다 엄청 모범생이구나!”

“그렇게 의외라는 듯이 말하면 상처받거든?!”

쿠로오는 그렇게 말했지만, 아이리는 새삼 정말로 놀랐다. 이런 건 정리해두지 않으면 모르는 건데, 오답도 제대로 해뒀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구나. 아이리는 쿠로오가 말해준 내용을 필기해 둔 제 노트를 보다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너무 고마워! 시험 잘 치면 내가 진짜 한 턱 낼게.”

“사준다면 사양은 안 하지.”

“말만 해! 쿠로오 군은 뭐 좋아하는데?”

“생선~ 특히 꽁치 소금구이.”

“우와, 되게 네코(猫)마랑 어울리는 메뉴.”

“그러는 아이하라는 뭐 좋아하는데?”

“나는 어…… 딸기 마카롱?”

“그거 식사는 아니지 않아?”

“좋아하는 음식이면 상관없지!”

둘은 그렇게 별 것 아닌 이야기나 하다가, 훌쩍 지나버린 시간을 보고 ‘뭐했다고 20분을 떠들었어?’ 하며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말고사가 임박한 고등학생들답게 머리를 쥐어뜯으며 공부하다보니 해는 진작에 떨어졌고, 쿠로오가 집으로 돌아갈 때쯤엔 두 사람 다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잘 가……. 오늘 고마웠어.”

“응……. 너도 들어가서 쉬어.”

낡아버린 고등학생들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

성적 붙었으니까 확인해라. 선생님의 말에 쿠로오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매번 시험칠 때마다 당연히 나오는 건데도 왜 이렇게 적응이 안 되지. 다른 아이들의 ‘아아-’하고 탄식하는 소리도 늘어졌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지.’

쿠로오는 벽에 붙은 성적표를 보며 제 이름을 찾았다. 늘 있었던 그 즈음을 더듬던 눈이 조금 더 위로 올라가 멈췄다.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는지 성적이 좀 올라 있었다. ‘오- 올랐다.’ 미미하긴 하다만. 그래도 올랐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기분 좋게 돌아서려던 찰나였다.

“야, 1등 걔 아냐?”

“맞네! 와, 뭐야…….”

“아니 어쩐지 내 등수 밀렸더라!”

“너는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던데.”

조금 소란해진 주변에 쿠로오는 다시 성적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1등이 누군데 저러…….’

쿠로오는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고 조용히 입을 벌렸다. 이름의 주인은 어느새 조용히 그의 옆에 와 벽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앗, 다행이다. 안 떨어졌어.”

안심하는 작은 목소리에 쿠로오 테츠로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시선 끝의 그녀는 정작 놀란 쿠로오와 달리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1] 原 愛理

“꽁치 좋아한댔지? 언제 먹으러 갈까?”

*

“공부 잘 한다고 왜 말 안 했어?!”

“안 물어봤잖아……?”

꽁치구이를 열심히 먹던 쿠로오의 질문에 아이리는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답했다. 물론 안 물어보긴 했는데……. 다른 건 상관없지만 쿠로오는 아이리에게 가르쳐주듯 말한 것이 다시 떠올리니 조금 민망했다. 전의 학교에서도 계속 1등이었다면서, 그런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아는 척 안 했지! 그는 민망함을 밥이랑 같이 씹어 삼키듯 입 안의 쌀밥을 꼭꼭 씹어넘겼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 입으로 공부 잘했다, 그렇게 말하는 건 민망하잖아. 딱히 일부러 숨긴 건 아니었어.”

“그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진짜 열심히 하긴 했나보다. 전학오자마자.”

“네 덕이지 뭐. 한 접시 더 시켜줄까?”

민망한 건 민망한 거고. 꽁치는 꽁치지. 쿠로오는 입에 음식을 넣은 채 조금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리는 그 모습을 보고 웃더니 사장님을 불러 꽁치구이 한 접시를 더 시켰다. 새 접시까지 깔끔하게 비우고서야 쿠로오와 아이리는 가게를 나왔다.

“배부르다. 여기 맛있네.”

“그치? 좋아하는 가게야.”

기말고사도 끝이고, 성적도 나왔고. 이제 곧 겨울방학이었다. 시간이 너무 빠른 것 같아. 아이리의 말에 쿠로오가 동감- 하고 말꼬리를 늘였다.

“겨울방학도 빨리 지나가 버리겠지.”

“겨울방학은 짧으니까 더 그럴 거야.”

“쿠로오 군은 연습이랑 공부 병행하려면 힘들겠다.”

“그게 고민이긴 해. 3학기는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나서 또 시험이 있고, 그 뒤론 3학년이니까……. 학원을 다니긴 부활동 때문에 애매하고.”

뭐,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나. 쿠로오는 목을 기울이며 그렇게 말했다. 아이리는 그 모습을 빤히 보며 잠시 고민했다. 오지랖일까. 하지만 고마운 것도 있고, 나도 도와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흐음, 하는 소리를 낸 아이리가 입을 열었다.

“그럼 부활동 없을 때 같이 공부하면? 모르는 거 서로 알려주면서! 예전에 친구들이랑 그렇게 같이 공부해 본 적 있는데 강제성도 있고 좋더라.”

생각해보지 않았던 제안에 쿠로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쿠로오로서는 나쁠 거 없는 제안이었다. 어차피 공부는 해야하고, 전교 1등이 같이 공부하자고 하는 건데.

“나야 좋지.”

쿠로오 테츠로는 그렇게 대답하며 웃었다. 이 약속이 자신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오는지는 상상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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