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rthday
고생 끝에 낙이온다.
※ 2016년도 4월의 어느날
이번 리우 올림픽 대표팀 선수 선발에 주요한 지표로 사용될 15-16년도 시즌 보고서 발표회가 오늘로 드디어 끝이 났다. 아키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근을 하며 평소보다 거칠게 차를 몰았다. 빠르게 멘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 망설임 없이 빈칸에 차를 주차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빠르게 엘리베이터로 향해 10층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지하층으로 불러냈다. 한 층 씩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키라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휴대폰의 검은 화면이 밝아지면서 오후 11시 45분을 알리는 시간을 확인 한 뒤 그 밑으로 환하게 웃는 니시노야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4월 1일 니시노야가 보낸 라인 메시지를 떠올렸다.
「 마레상! 저 방금 일본행 비행기표 샀어요. 」
「 4월 10일에 저녁 9시에 나리타 공항 도착입니다! 」
그 메시지를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10일까지는 발표회 일정이 마무리될 거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조금 일찍 저녁을 챙겨 먹고 공항에 니시노야를 데리러 가야겠다고 계획을 세웠지만 현실은 계획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10일, 몰아치는 일정 속에 겨우 틈을 내어 데리러 가기 힘들 것 같단 라인 메시지를 보낸 아키라는 그 다음 날 새벽 1시가 넘어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아키라는 주홍빛 조명 아래 소파에 누워 곤히 잠든 니시노야를 바라보며 조용히 쓴웃음을 그렸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아도 마음 한구석에는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입술을 안으로 말아넣으며 소파 아래로 반 정도 흘러내린 이불을 니시노야의 위에 꼼꼼하게 덮어주었다. 그리고 속삭이듯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잘자.’
그 뒤로 다시금 밝아온 11일 아침, 진동으로 맞춘 알림에 잠이 깬 아키라는 잠든 니시노야가 깨지 않게 최대한 조심히 움직이며 출근 준비를 마쳤다. 가방을 챙겨 들고 집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아키라의 눈 끝에 곤히 잠든 니시노야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 모습에 목 끝까지 하고 싶은 말들이 올라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대신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아키라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지만 혹시라도 메시지 알림 소리에 니시노야가 깨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어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눈을 한 번 굴리며 고민하던 아키라는 곧 예전에 은행에서 받아온 수첩을 책상 서랍 안에서 꺼내, 그 수첩에 하고 싶은 말들을 쭉 적어 내리기 시작했다.
【 좋은 아침. 무사히 도착한 것 같아 다행이야. 편하게 쉬고 있어. 요새 바빠서 냉장고가 텅 비어있어. 현금을 두고 갈 테니 장을 좀 봐줄 수 있을까? 그리고 오늘도 새벽에나 들어올 것 같으니까, 졸리면 먼저 “침대”에서 자고 있어. 】
수첩과 함께 볼펜을 소파 옆 협탁에 올려두며 니시노야가 부디 잘 확인하길 바라는 마음을 남긴 채 아키라는 출근길을 서둘렀다. 그런 아키라의 마음이 닿았는지 니시노야는 잠이 깨면서 어제 켜둔 무드등을 끄기 위해 협탁을 향해 손을 뻗었고 수첩이 니시노야의 손끝에 걸려 바닥으로 떨어지며 제 존재를 들어냈다.
【 좋은 아침입니다! 고기랑 채소랑 이것저것 사서 냉장도 가득 채워놨어요. 그리고 딸기를 팔길래 한 팩 샀어요! 퇴근하면 잊지 말고 드세요! 】
【 오늘 햇볕이 좋아서 이불 빨래 해서 옷장에 있는 이불 꺼내놨습니다. 그거 덮고 자고 다 마르면 교체해 둘게요. 】
【 내일 저녁에 아사히 상이랑 밥 먹고 올게요!】
수첩으로 대화하자고 따로 말을 나눈 것도 아니었지만, 니시노야는 아키라가 남긴 쪽지에 답하듯 그 아래로 오늘 하루 있던 일이나 전할 말들을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그게 제대로 대화조차 못 하는 이 상황 속에서 서로가 곁에 있다고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퇴근 후 어김없이 소파에서 잠든 니시노야와 협탁 위에 조명 아래 은은하게 반짝이는 수첩을 바라보며 아키라는 볼펜을 잡아 그 아래 글자를 적으며 답을 남겼다.
【 늦은 저녁. 내일(이제는 오늘이지만)도 늦을 것 같아. 일본에 왔는데 계속 혼자 두어서 신경 쓰였는데 그래도 아즈마네씨랑 밥 먹고 온다니 다행이야. 맛있게 먹고 와. 】
거기까지 쓰고 아키라는 볼펜을 내려놓고 무드 등을 껐다. 그리고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냉장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쏟아지는 불빛 너머로 마지막 기억과 달리 가득 차 있는 냉장고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투명한 플라스틱 팩 안에 잘 손질되어 들어가 있는 딸기를 꺼내 들었다.
12일 아침, 예민해져 있는 감각은 피곤한 기색을 느낄 틈도 없이 알림이 울리기도 전인 새벽 5시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어스름한 기운이 가득한 방안을 둘러보며 목을 풀고 팔을 쭉 편 아키라는 침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협탁으로 가 수첩 위에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 좋은 아침. 딸기 너무 달아서 맛있더라. 아침에 회사에서도 몇 개 먹으려고 어젯밤에 남겨놨어. 신경 써줘서 고마워. 일단 일정이 변경되지 않으면 내일이면 끝날 것 같아. 너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여기까지였다. 출근 준비를 서두른 아키라는 어젯밤 먹다 남은 딸기를 대충 가방에 넣은 뒤 차 열쇠를 들고 집을 나섰다.
오늘도 집에 오니 다음날이네. 휴대폰의 잠금 화면에 보이는 4월 13일이라는 날짜를 보며 아키라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눌러 집 안으로 들어오자, 어제와 똑같이 소파에 잠들어있는 니시노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에서 자라고 했음에도 여전히 소파를 자처하는 니시노야를 보니 절로 깊은숨이 터져 나왔다. 오늘도 반 정도 흘러내린 이불을 잡아 덮어준 뒤 아키라는 협탁 위 수첩을 바라보았다.
【 마레상, 케이크는 미리 사려고 하는데 딸기 생크림으로 어때요? 】
【 아사히 상이 맛있는 집을 추천해 줬어요. 】
케이크? 아키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깜박이다 곧 소리 없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자신의 생일날이었다. 벌써 생일이 돌아온다고? 시간이 너무 빠르네.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아키라는 볼펜을 들어 그 아래로 답을 남겼다.
【 정말? 나는 딸기 생크림 케익 너무 좋아. 】
【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어. 오늘이 발표회 날이라서 오늘 안으로 일이 끝날 것 같아. 그래서 어제 팀장님이랑 이야기해서 내일부터 다음 주 화요일까지 휴가 냈어. 】
니시노야가 귀국한 겸으로 낸 휴가였지만, 생일날 쉬는 건 역시 좋은 기분이 들었다. 아키라는 살며시 미소를 그린 뒤 내일의 휴가를 위해 오늘을 불태우길 결심했다. 그렇게 새벽같이 또 눈을 떠서 출근한 아키라는 쉴 틈도 없이 일했고 아슬아슬하게 오늘 안에 집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지하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타 4층으로 향한 아키라는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평소와 달리 환한 집안의 풍경에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안 늦었나? 라고 생각하기엔 인기척 없이 지나치게 조용했다. 역시 자고 있는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키라는 발걸음을 죽이고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 도착하자 소파에 등을 기대 잠든 니시노야와 그 앞 테이블에 덩그러니 놓인 케이크 상자가 아키라의 시선 끝에 잡혔다.
“정말….”
기다리고 있다고 메시지라도 보냈으면 더 서둘렀을 텐데. 피곤하면 소파에라도 누워있지. 짧은 숨을 내뱉으며 아키라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니시노야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니시노야.”
“…….”
“니시노야.”
이름이 두 번이 불리고 나서야 눈을 천천히 뜬 니시노야는 제 시야에 잡히는 아키라의 모습에 느릿하게 말을 내뱉었다.
“생일 축하해요. 마레상.”
그 말에 아키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곧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어떻게 딱 12시인지 알았어?”
“시계요.”
아키라의 뒤로 보이는 디지털시계를 흘깃 시선으로 가리키며 니시노야 또한 웃음을 터트렸다.
“케이크 초 불까요?”
“그럴까?”
아키라의 대답에 니시노야는 천천히 팔을 뻗어 케이크 상자를 열었다.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며 아키라는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케이크를 조심스럽게 상자 위에 올린 니시노야가 초를 꽂는 사이 아키라는 성냥을 꺼내 들어 초 위에 불을 붙였다. 불그스름하면서도 주홍빛으로 빛나는 불빛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서로를 잠시 마주보고는 조심스럽게 박수를 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 끝나자 아키라는 입술을 모아 바람을 불어 촛불을 껐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니시노야는 말갛게 웃음을 터트리며 박수를 친 뒤, 소파 아래 둔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이거 선물이에요.”
“고마워.”
뭐야? 라는 궁금증이 담긴 눈으로 상자를 받으며 아키라는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제 머리색보다 더 주홍빛이 감도는 원석이 박힌 귀걸이 한 쌍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우와, 짧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귀걸이를 빤히 바라보는 아키라의 모습에 니시노야는 뿌듯한 표정을 그리며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뭐어?”
니시노야의 그 말에 아키라는 놀란 감정을 그대로 목소리에 담아 내뱉었다. 동그랗게 커진 눈과 떡 벌어진 입으로 자신을 보는 아키라의 모습에 니시노야는 시원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라네 집이 오팔 광산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에 일일 체험하러 간다고 이야기했잖아요. 그곳에서 제가 캔 오팔로 마레상 생각하면서 만들어봤어요.”
“진짜? 세상에…. 너무 예뻐. 고마워.”
뭐라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몰아치는 표정으로 아키라는 상자 안 귀걸이와 니시노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상자 안에 든 귀걸이로 바꿔 낀 뒤 가볍게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니시노야는 손끝으로 아키라의 귓바퀴를 쭉 쓸어내리며 끝에 달린 귀걸이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역시 잘 어울리네요!”
“그럼. 누가 날 생각해서 만든 건데.”
입술 끝을 말아 올리며 시원한 호선을 그린 아키라는 귀걸이를 만지고 있는 니시노야의 손을 가볍게 잡아 끌어당겼다.
“고마워. 완전 마음에 들어.”
“그 말 들으니 너무 뿌듯한데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어느새 이마를 맞대고 지그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누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입술을 짧게 부딪치고 떨어졌다.
“니시노야. 나 내일 휴가야.”
“네, 수첩에서 봤어요.”
“응. 그러니까….”
뒤에 이어지는 말 대신 아키라는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니시노야의 어깨를 감쌌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키라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등에 닿는 차가운 바닥의 감촉을 느낄 틈도 없이 다시금 부딪혀오는 입술에 두 사람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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